나무 뿌리위에 놓여 있는 도끼의 비유.
마3:10절, 405.215.195장.&
사도 요한은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 또한 유대인들을 상대로 회개하라고 폭탄같은 선언을 하였습니다. 또한 요한은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신념 때문에 그릇된 사고방식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과,
그들에게 심판이 임박했음을 경고한다는 것이 어려운 줄 알면서도 먼저 그들의 그릇된 생각을 없애고 그 다음에 임박한 진노가 있고 외친 것입니다. 이 같은 내용을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요한이 경고를 내리게 된 동기입니다. 첫째, 저들이 조상들의 신앙의 공적만 의지함을 보았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선조들의 높은 신앙의 공적만 의지하며 자신들의 신앙의 행위를 등한시했습니다. 겔18;19-20절에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범죄하는 그 영혼을 죽일찌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 행악자의 아들이라도 아버지의 나쁜 본을 보고 경고를 받아 선을 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들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사명을 부여받고 이 땅에 왔으며 또한 주님은 각자의 공적에 따라 상과 벌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처럼 자기의 사명을 포기하는 태도를 버리고 많은 열매를 맺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과거의 공적이나 조상들의 공적도 내세우지 말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하나님이 보실 때에 합당한가를 헤아려 보면서 의로운 일에만 전력 할 것입니다. 둘째, 아브라함 같이 순종심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이 우상시 여기며 내세우는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불순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망의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히11: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자랑하고 내세우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움직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지 아니하고 우월감과 자만에 빠져서,
죄악에 치달으므로 사도요한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선조들과 같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롬4:14절에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 졌느니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순종의 신앙은 없으면서,
일정한 율법을 지키면 축복도 받고 멸망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의인에 대우를 받아 구원에 이르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생각이 저들의 잘못입니다. 어서 회개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라고 요한이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2.재난의 임박함과 엄격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본문의 도끼나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키며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회개하지 않는 모든 유대인들을 지칭한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의 말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요한의 이와같은 심판의 예언은 일차적으로,
주후 70년에 발생한 로마의 예루살렘 멸망을 가리키며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에 의한 최후의 심판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때 참된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은 지옥불에 던져질 것을 의미합니다.(말4:1,마18:8). 그러나 이 말씀은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서 그 변화된 모습을 외적인 행동으로 나타내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없음을 또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 가운데 신앙의 정진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다 할지라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더욱더 좋은 열매 맺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갈6:7,엡5:8-11절).
3.찍히게 될 나무에 대한 교훈입니다. 첫째, 나무는 바르게 성장해야 가치가 있습니다. 나무는 똑바르게 성장해야 가치가 있으며 용도도 다양한 것입니다. 구부러진다던지 뿡퉁아리가 생기면 사용가치가 적어 화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바르게 자란 나무가 용도가 다양한 것입니다. 신자도 신앙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신앙이 바로 되지 못하면 자신도 불행하고 가족도 교회도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아브라함 같이 순종의 신앙이 되어야 복이 되는 것입니다. 백부장같이 명령만 요구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같이 외조모의 영향을 받은 착하고 거짓없는 믿음으로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매일 이들과 같은 신앙으로 발전하고 있는가 점검하며 바른 신앙으로 전진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유실수는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마21:19) 길가에서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서 잎사귀 밖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 나무가 곧 마른지라고 했습니다. 주께서는 시장기를 느끼시고 길가의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에게로 가서 열매를 찾으셨습니다. 무화과 나무에 잎이 무성하다는 것은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음을 은연중 암시합니다. 그러나 그 나무에는 잎사귀 밖에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는 무화과 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으로써 주께서는 무화과 나무가 상징하는 이스라엘 민족에 임할 심판을 예고하시며 성도들의 신앙행위에도 열매가 없는 신앙자(信仰者)는 불행(不幸)이 임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셋째, 바람을 막아주는 나무는 무성해야 합니다. 바다 주변이나 들과 집 근처에 서있는 나무는 태풍(颱風)을 막아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 가지와 잎이 무성하지 못하면 제대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가 교회에서도 무성한 나무같은 역할을 해야 하나니 교회가 어려움이 있을 때
이를 막아주는 신자, 어려움을 당하는 신자가 있을때 보호해 주고 도와 줄 수 있는 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신자중 세상의 향락과 유행바람에 빠진 자가 있으면 사전에 가로막는 역할을 잘하는 신자가 되어야 하며 성령의 은혜가 무성한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넷째, 나무는 인적이 드문 속에서 자라야 합니다. 나무는 큰 길가와 공원 등 사람이 많이 내왕하는 곳에서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이는 사람들의 손이 많이 닿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신앙성장도 주안에서 말씀을 배우며 계명과 교회의 제도를 잘 준행하며 보수적 입장에 있는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소속이 분명한 교단산하의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충성을 해야 할 것입니다. 신자가 교회를 등지고 기도원이나 자주 찾아 다니며 신비적인 은사에 지나치게 치우치면 바람직한 신자가 되지 못합니다.
다섯째, 나무중에도 기대가 큰 나무가 있습니다. 기대가 큰 나무라면 유실수중 열매가 크고 많이 열리는 나무이고 재목이 되는 경우는 크고 곧은 나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뜻을 우리 성도들의 영적인 면으로 말한다면 곧은 재목과 같이 생활이 밝고 곧아야 하고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아니하는 성도를 말하며,
유실수 같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같이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는 성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생활을 하지 아니하면 찍히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4.하나님은 심판이 이미 완료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찍는다는 것은 예로부터 심판을 가르칩니다. 렘46:22절에 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니 이는 그들의 군대가 벌목하는 자같이 도끼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애굽이 비옥하여 그들과 그들이 고용한 자들까지 평안하게 잘 먹고 지냈으나,
이제는 그들이 즐기던 쾌락이 끝나고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좋은 열매 즉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어 불에 던지우게 될 것이라고 했으니 이는 준엄한 책망입니다. 잠28;13절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하신대로,
죄를 숨기지 말고 과감하게 버리는 자만이 형통의 축복을 받게 되며 심판을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므로 구원을 받은 것이 좋은 예입니다.
5.예비가 없으면 찍힌다는 것입니다. 막1:2-3절에 보면 보라 내가 내 사자를 앞에 보내리니 저가 내 길을 예비하리라고 했습니다. 예비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파나)인데 그것은 자신을 돌리다 돌이키다 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은 완악한 인간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찍힘을 받지 아니한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려면 필히 회개가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매일 매순간마다 우리가 저지르는 죄악을 회개하여 자신을 성결케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불러도 메아리가 없는 광야에서 주를 예비하라고 요한은 외쳤습니다.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외쳤습니다. 요한같이 우리도 외칩시다. 주님을 만나려면 회개하고 성결한 맘으로 예비하고 있으라고 외쳐야 하겠습니다.
6.주님을 소개하는 절규의 외침이었습니다. 막1:87-8절에서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이 많은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진리, 그의 설교,
그의 사명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뿐이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 못한다고 자신을 낮추며 예수를 소개하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요3:30절에서 예수는 흥해야 겠고 나는 쇠하여야 겠다고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닦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은 망해도,
주님의 복음이 세상에 충만하고 소위 세례를 받으려 나온 독사 같은 인생들이 그 앞에 굴복하여 주님께만 영광이 들려 지기를 소원하는 애절한 절규의 외침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빌1:20절에서 오직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만을 위해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복음이 이 땅에 넘치게 하는데 최선을 합니다.
7.열매를 요구한 외침이었습니다. 첫째, 믿음에 열매를 요구합니다. 사람은 그의 열매로 평가된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마7:16). 성도는 믿음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야만 합니다. 그리할 때 죄사함을 받고 마음이 청결하게 됩니다.(행15:9). 거룩하게 되고(행26:18) 영적으로 성장합니다.(엡4:13절)
믿는 자에게서 이러한 열매가 없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둘째, 행함의 열매를 요구합니다. 예수께서 믿는 자의 착한 행실을 빛과 소금으로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마5:13-16). 빛은 적극적인 선한 행실을 소금은 소극적인 선한 행실을 의미합니다.
빛은 능동적으로 소금은 피동적으로 하나님의 선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행함으로 열매를 맺지 않은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약2:26). 회개하여 믿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 성령에 열매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열매로 맺어야 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을 바울은 성령의 열매라고 했습니다.(갈5:22-23). 이러한 성령의 열매는 성령 충만한 심령 속에 맺혀지며 성결된 심령 속에 맺혀집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며 그리스도안에서 성장해 가는 삶입니다. 이것은 종교적 삶의 내용이며 본질입니다.
나무를 제거하는데는 도끼와 톱이 있습니다. 그러나 톱은 나무를 제거하는데 잔인한 점은 없고 부드러운 감이 드는 것입니다. 반면에 도끼는 나무를 제거하는데 잔인하여 무섭고 공포감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잔인한 도구를 사용하신다는 것은 죄를 회개치 아니하고 영적인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자는 인정도 사정도 동정도 없이 무서운 처벌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주 작은 죄 까지도 철저하게 회개하는 자가 하나님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녀입니다. 그리고 천국은 의로운 자가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자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기업을 유업으로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