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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장면.
[표지이야기] 무죄와 벌 ① 허위 자백
두 남매는 죽은 언니를 보았다 하고 피의자는 동생을 살해했다고 진술한 ‘충남 보령 살인사건’… 왜 세 남매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자백했을까
1660년 경찰 조사에서 존 페리는 어머니, 동생과 함께 실종된 윌리엄 헤리슨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서자 피고인들은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다른 직접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판사의 집요한 신문에 존은 다시 헤리슨 살인에 연관된 듯이 진술했다. 결국 존과 어머니, 동생은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았고 형은 집행됐다. 2년 뒤 죽었다던 헤리슨이 살아서 나타났다. 영국 법률가 프리드리히 에드윈 스미스 버컨헤드가 소개한 자백이 거짓으로 판명된, 기록이 남아 있는 최초의 오판 사례다.(<더유명한 재판>, 1938)
오판에 대한 연구는 193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됐다. 죄 없는 사람을 검찰이 잘못 기소해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된 65건의 사례가 밝혀져 ‘무고한 사람이 처벌받을 리 없다’는 통념이 처음으로 깨졌다.(<유죄 선고받은 무고한 사람들>, 에드윈 보차드, 1932) 1980년대 후반 DNA 검사가 형사재판에 활용되자 오판으로 수감된 피고인들이 잇따라 풀려났다. 미국에서는 2013년 3월 현재까지 303명이 면죄를 받았는데 그중 18명은 사형선고를 받았던 사람이다. 석방될 때까지 이들은 평균 13.6년을 복역했다. 오판이 발생한 원인을 보면, 허위 자백(27%), 부적절한 과학적 증거(50%), 목격자의 오인 지목(72%) 등으로 나타났다.
2013년 2월 드디어 한국에서도 첫 오판 연구가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김상준 부장판사가 펴낸 서울대 법학전문 박사 학위 논문 ‘무죄판결과 법관의 사실 인정에 관한 연구’가 그것이다. 1995년부터 2012년 8월까지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540건을 전수조사해 그 원인을 밝혀냈다. 540건 중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는 504건(93.3%)이었다. 물론 이 중에는 진범이지만 증거가 부족해 풀려난 사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범인 열 사람을 놓치더라도 무고한 한 사람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형법적 대원칙을 1심 판결이 지켜내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한겨레21>은 ‘1심 유죄-2심 무죄’로 판결이 엇갈린 원인을 기획 시리즈로 다룬다.
첫 번째 원인은 ‘자백’이다. 형사재판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자백보다 더 유죄판결에 영향을 끼치는 증거는 없다. 연구 대상 540건 가운데 180건(31.5%)에서 나타났다. 110건(20.4%)은 피고인이, 60건(11.1%)은 공범이 자백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미국·독일 등과 달리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가 재판 증거로 인정 받는다. 뒤늦게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하더라도 수사기관에서 일단 자백하면 유죄판결로 한 발짝 다가갈 수밖에 없다. 자백 위주의 수사가 보편화된 이유다. 그래서 형사사건에서 피의자가 자백하는 비율이 한국은 90%나 된다. 영국(60%)이나 미국(45%)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문제는 자백이 늘 진실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설마 형벌을 받으려고 거짓말을 하겠느냐고 흔히 추론하지만 허위 자백은 생각보다 흔히 일어난다. 고문이나 폭행이 없어도 말이다. 이제부터 <한겨레21>이 단독 공개하는 허위 자백 사건을 만나보자. 세 남매가 실종된 또 다른 형제를 살해하고 그 주검을 엄마가 야산에 묻었다고 수사기관에서 진술했다.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_편집자
2007년 6월8일 충남 보령경찰서에서 김유정(당시 17살)은 수갑이 채워진 자신의 손을 낯설게 바라본다. 경찰관 3명은 몇 시간째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동생들이 다 얘기했어. 그날 네가 밀어서 지민이가 넘어져 죽었다고. 엄마랑 네가 지민이를 어디다가 묻었니?” 여동생 혜정(당시 10살)의 진술서를 경찰관이 내밀었다. ‘지민이 언니가 유정이 언니에게 간 후 조금 있다가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지민이 언니는 천장을 보고 누운 채로 있었고, 유정이 언니는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지민이 언니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남동생 상민(당시 8살)의 진술서는 더 상세했다.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지민이 누나의 어깨 부분을 두 손으로 흔들어봤다. 움직이지 않았다. 누나의 코 부분에 손바닥을 대어봤다. 숨을 쉬지 않았다.’ 여동생과 남동생의 진술서를 읽던 유정은 아득해졌다. 경찰관이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자백을 하면 넌 미성년자니까 형량이 그리 크지 않아. 부모님이나 동생들도 더 이상 고통받을 일이 없고.” 밤샘 조사가 이어지자 유정은 마침내 자술서를 쓴다. ‘5월30일날 9시께 지민이랑 같이 있었다. 지민이와 사소한 말다툼 끝에 지민이를 밀게 됐다. 그 결과 지민이는 머리를 벽에 찧게 됐고 의식을 잃게 됐다. 부모님은 날 위해 지민이를 숨기게 됐다.’
유정과 여동생들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
충남 보령시에 사는 고등학교 3학년생 유정은 5남매 중 둘째다. 위로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언니(당시 22살)가 있고, 아래로는 중학교 2학년인 지민(당시 14살)과 초등학교 5학년인 혜정,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상민이 있다. 부모는 집에 딸린 조그만 카센터에서 일하고 포도농사도 짓는다. 날마다 밤늦게까지 일하지만 가계는 빠듯했다.
2007년 5월30일 유정은 이웃 마을에 품앗이를 간 아빠·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에게 밥을 해먹였다. 여동생 둘이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 싸워 파리채로 몇 대 때려줬다. 그날따라 부모가 늦었다. 요금을 내지 못해 집전화가 끊겨 연락해볼 방법도 딱히 없었다. 밤 8시55분쯤 유정은 바로 밑의 여동생 지민을 불렀다. “엄마·아빠 오시나 포도밭에 나가봐.” 30분쯤 뒤 부모가 돌아왔다. “지민이 못 봤어요?” 유정이 물었다. 엄마는 오는 길에서 못 봤다고 했다. 유정은 9시50분쯤 동생을 찾으러 나섰다. 포도밭까지 갔지만 보이지 않았다. 동생 친구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엄마도 집 주변과 마을을 돌아봤고 동네 가게에서 맥주를 마시던 아빠에게도 알렸다. 밤 11시쯤 집 근처 보령 경찰서 치안센터에 실종신고를 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지민은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은 가출이나 교통사고, 납치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가족이나 지인이 살해한 뒤 주검을 버렸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뻔한 시골 동네에서 밤늦게 여중생이 부모를 마중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웠다. 가족 이외에 지민이 포도밭으로 가는 걸 봤다는 목격자도 없었다. 경찰은 피해자 집에 거의 상주하며 가족의 동태를 관찰했다. 실종된 지민을 찾으려고 그런다고 하니 가족들은 불평조차 할 수 없었다.
이웃을 탐문한 결과 경찰은 유정과 여동생들이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정보를 얻었다. 뭔가 더 캐내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진 경찰은 혜정과 상민을 따라다녔다. 초등학교, 도서관, 운동장, 놀이터 등을 오가며 두 아이에게 집요하게 물었다. “지민 언니(누나)가 사라진 날 무슨 일이 있었니?” 경찰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그날 밤 유정과 지민이 다투었다고 말해줬다. 특히 경찰이 꿈이던 상민은 좀더 적극적이었다. 경찰은 더 구체적인 진술을 유도하며 반복해서 물었다. “유정 누나가 때렸니? 지민 누나가 넘어졌니?”
2007년 6월8일 오후 5시50분쯤 집에 있는 혜정을 경찰서로 데려갔다. 여자 경찰 1명, 남자 경찰 3명이 번갈아가며 말했다. “상민이가 다 이야기했다. 쿵 소리가 나서 가보니 지민이 누나가 누워 있었고 상민이가 코에 손을 대보니 숨을 안 쉬었다고 했다. 너도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라.” 그런 일이 없다고 혜정은 말했다. “혜정아, 거짓말하면 안 돼. 학교에서도 거짓말하면 한 대 맞을 것 두 대 맞지 않니?” 여자 경찰의 말에 혜정은 무서워졌다. 보령경찰서 진술녹화실에서 혜정은 진술을 했고 그 모습은 녹음·녹화됐다. 이후 참고인 진술서도 작성했다.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경찰 지민이 언니가 없어진 날, 무슨 일이 있거나 무슨 소리를 듣지 못했나요?
혜정 유정이 언니가 지민이 언니를 아빠 방으로 불렀는데, 조금 있다가 쿵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경찰 그래서 상민이와 혜정이는 무슨 행동을 했나요?
혜정 상민이가 궁금해 먼저 아빠 방으로 가보았고, 저도 조금 있다가 아빠 방에 가보았습니다.
경찰 무엇을 하고 있던가요?
혜정 지민이 언니는 천장을 보고 누운 채로 있었고, 유정이 언니는 그 옆에 앉아 있었고, 상민이는 서서 지민이 언니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경찰 누워 있는 지민이 언니는 눈을 감고 있던가요, 아니면 뜨고 있던가요?
혜정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경찰 지민이 언니가 숨을 쉬던가요?
혜정 직접 손을 대거나 확인하지 않았지만 콧구멍을 벌렁거리지도 않았고 가슴 부위가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경찰 당시 지민이 언니가 피를 흘리던가요, 아니면 입에 거품이나 침을 흘리고 있던가요?
혜정 아닙니다. 그냥 깨끗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경찰 자고 있다고 생각했나요, 죽었다고 생각했나요?
혜정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혜정은 “지민이 언니가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로 진술을 마쳤다. 같은 날 상민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동석자는 담임선생이었다. “전화를 받고 오후 8시쯤 경찰서에 갔는데 경찰이 상황 이야기를 했다. 형사가 영상녹화실에서 상민과 대화를 해보라고 했다.” 담임선생에게 상민은 혜정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경찰 지민이 누나가 어떻게 됐다고 생각했나요?
상민 숨을 안 쉬는 것으로 보아 죽었다고 생각하고는 혜정이 누나에게 가서 “지민이 누나가 죽은 것 같아”라고 말을 하였고, 혜정이 누나도 저를 따라서 아빠 방으로 와보았습니다.
경찰 엄마·아빠가 집에 와서는 지민이 누나를 찾지 않던가요?
상민 엄마가 지민이 누나가 어디에 갔는지 아빠 방에 있는 유정이 누나에게 물었으나 저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유정이 누나가 뭐라고 말을 하였는지도 잘 듣지 못하였습니다.
상민은 엄마 방에 있어서 듣지 못했지만 유정이 엄마에게 “지민이가 죽었어요”라고 말을 했다고 혜정은 진술했다. 그리고 엄마가 손으로 지민을 잡고 흔들거나 들어보며 죽었는지 확인했다고 했다. 전혀 움직이지 않자 엄마는 심각해졌다. 엄마는 지민을 두 팔로 들어 자동차 뒷좌석에 태웠다. 유정이 따라나섰다. 30분에서 1시간 뒤 엄마와 유정이 집으로 돌아왔다. 지민은 보이지 않았다. 혜정은 “엄마와 유정이 지민을 산에 묻은 것”이라고 진술했다.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온 아빠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계모 아니냐’ ‘연기 잘한다’ ‘그러고도 엄마냐’
이모가 조사가 끝난 아이들을 경찰서에서 만났다. 경찰이 자리를 비켜줬는데도 아이들의 증언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모는 “마치 녹음기 돌리듯이 좔좔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섬뜩할 정도로 무표정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니 밤 12시였다. 그 자리에서 경찰은 혜정에게 사건을 재연하라고 시켰다. 혜정은 쓰러져 누워 있는 모습을 흉내 냈다.
앞서 저녁 7시30분께 경찰은 유정과 엄마·아빠를 소환했다. 엄마는 밥하다가 말고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밤샘 조사를 받았다.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유정은 처음에 침묵했다. 경찰의 질문이 끝없이 반복됐다. 무섭고 당황스러워 빨리 끝내고만 싶었다. ‘나는 부모님과 우리 가족을 사랑합니다. 나는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가족이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님에게 아무 피해가 없게 해주세요.’ 자술서를 쓰자 피의자 신문조서가 이어졌다. 날이 바뀌어 6월9일에 작성된 조서 내용이다.
경찰 피의자와 엄마는 사망한 지민이를 차량에 태우고 어디로 간 것인가요?
유정 운전은 엄마가 했는데 야간이고 어두워서 정확한 위치는 잘 기억이 안납니다.
경찰 지민이를 땅에 묻은 건가요, 아니면 물가에 버린 건가요?
유정 차량으로 20~30분 이동해 갔고 야산으로 데려가 땅속에 묻었습니다.
경찰 아빠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나요?
유정 지민이가 어디 있냐고 물어 제가 잘못해 사망하게 해 산에 묻었다고 했고 그 말을 할 때 엄마도 곁에 있었습니다. 아빠는 무척 화를 내며 지민이를 묻은 곳이 어디냐고 그곳에 가보자고 했고 엄마와 아빠가 집을 나서 차량 시동을 걸어 지민이를 묻은 곳으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목격자인 혜정과 상민에 이어 피의자인 유정까지 하루 만에 자백했다. 주검만 찾으면 사건 해결이다. 그런데 엄마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다. “왜 아이들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민의 사체를 본 적이 없다. 억울하다.” 경찰은 ‘아줌마, 무슨 소리 하냐. 얘들이 다 말했다’고 비난했다. ‘계모 아니냐’ ‘연기 잘한다’ ‘그러고도 엄마냐’는 말도 엄마는 들었다. “경찰이 자꾸 반복해서 (사체 유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경찰과 내가 생각이 틀린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음날 오전 9시까지 계속된 신문을 버텼다. 경찰은 막무가내로 현장검증을 요구했다. 하도 졸라대니까 인근 야산으로 따라나섰다. ‘가서 확인해보면 되지 않겠나’ 엄마는 생각했다. 경찰은 현장검증 장소에 고모부를 불렀다. 고모부는 “지민이를 찾아 넋이라도 달래줘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엄마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주검을 찾지 못한 경찰은 구속영장 신청을 결정하지 못했다. 피해자의 집 주변에 잠복하며 인근 야산을 계속 수색해 나갔다. 자연스럽게 지민을 유정이 살해하고 부모가 주검을 유기했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졌다.
2007년 6월21일 밤 12시25분 지민이 살아서 돌아왔다. 실종신고를 한 지 22일 만이었다. 5월30일 저녁 9시께 부모를 마중 나갔던 지민은 이수열(당시 32살)에게 납치됐다. 지민은 그동안 발목에 수갑을 찬 채 이수열의 집 장롱에 갇혀 있었다. 6월21일 저녁 8시 이수열이 이웃 일가족 3명을 살해하고 도망치며 지민을 풀어줬다. 지민이 돌아온 날, 온 가족은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동생들이 나쁘게 될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