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상북도 상주군 중동면 오상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저의 고향 상주는 '洛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洛東江의 이름이 낙양의 동쪽을 흐른다는 뜻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고향인 中東은 동쪽의 한 가운데라는 뜻이 됩니까? 아무튼 상주군에 속하는 모든 면들이 낙동강의 서쪽에 있지만, 저의 고향 중동면만은 유일하게 낙동강 동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중동이라는 이름은 동쪽에 떨어져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동쪽에 떨어진 곳은 엄청난 벽촌으로, 상주읍내로 나오려면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름에 큰 비가 내리면 꼼짝없이 갇혀 지냈습니다. 학교도 못갔습니다. 지금이사 교량이 건설되어 읍내에서 자동차로 10분 남짓이면 도착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무려 2시간은 걸려야 했습니다.
저의 고향 상주 사람들은 5일장을 보러 오는 중동면 사람들을 구분하는 방법을 압니다. 신발에 모래가 묻은 사람은 중동면 사람들 뿐이니까요. 그곳에는 아주 아름다운 강모래가 길게 이어진 강변이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군들은 이 아름다운 백사장에 전투기 사격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 종일 전투기가 사격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가끔씩 터지는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기관총 소리에 저희 고향 사람들의 청각은 아주 작살이 났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청각이 별로 좋지 못합니다. 저희 고향 사람들이 모두 목소리가 큰 것은 이 탓입니다. 저희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다른 사람도 그러리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혹여 불쾌하신 분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고향 사람들 가운데 아주 낮은 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 고향 후배 중에서 성석제라는 소설가가 있습니다. 동인문학상까지 받은 아주 출세한 작가이지요. 이 사람 소설에 보면 반말족, 큰소리족, 또 무슨 족과 같은 이상한 종족 이름이 아옵니다. 아마도 제 고향 사람들을 그렇게 나누어 부른 것 같습니다. 대로글방 주역공부반에는 상주사람이 저를 포함하여 4명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이 2명, 중간 정도인 사람이 한 명,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한 면 있습니다. 오늘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할 줄 아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그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저는 고향 마을에서 국민교육을 받고(그때는 초등교육이 아니라 국민교육이었습니다. 학교를 초등학교라고 불렀으니까요), 14살 먹은 봄날에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중등교육을 받으러 갔습니다. 저와 같이 국민교육을 받은 친구들이 120여명이나 되었으나 중등교육을 받으러 간 친구들은 불과 6명이었으니,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천성이 게을러서 죽어도 집에서 농사일을 하기 싫었던 저에게는 중학교를 간다는 것이 농사일에서 해방되는 엄청난 기쁨이었습니다. 비로서 저는 자유를 찾았습니다. 고향의 초등학교에서는 제법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저는 중학교에 진학하여 기가 팍 죽고 말았습니다. 저 정도의 실력을 가진 녀석들이 수두룩했으니까요. 그것은 저에게 최초의 좌절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만났던 친구들 중에서 지금까지 아주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3있습니다. 건국대학교의 K교수는 제 앞자리에 있었고, 지금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친구는 어디에 앉아 있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대우그룹에 다니다가 망하기 전에 얼른 나와서 대구에서 사업을 하는 K군은 세월이 한 참 지난 다음에 대학을 같이 다녔고 그 후로 오랫동안 저의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융감독위원회라는 쬐꼼은 아리송하고 무시무시한 곳에 있는 K라는 친구도 가끔 만납니다. 다른 녀석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교실에 있었던 친한 친구 중에서 그만은 k가 아닙니다. 그의 이름은 L입니다.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교과서 외에 읽었던 책은 면사무소에 다니시던 삼촌이 어디에선가 빌려 온 '삼국지'였습니다. 뒷장의 상당 부분이 떨어져 나간 이 책을 읽은 저는 얼마나 흥분을 했던지, 학교가는 길에 몰래 가지고 가다가 논둑 밑에서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저는 그 날 처음으로 결석을 하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부지에게 모질게 두들겨 맞았고, 삼촌에게도 당분간 용돈 한 푼도 못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픔보다는 떨어져 나간 뒷부분이 어떻게 전개될까가 더 궁금했습니다. 그 절절한 궁금증은 중학교에 가서야 풀렸습니다.
몇 학년이었나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마도 입학한지 1년정도 지났을 그 어느 날, 우리 반에서 공부를 엄청 잘하던 L군이 점심시간만 되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다른 녀석들이 모두 놀기 바쁜 점심시간에 도서관을 찾았던 것입니다. 도서관이라? 그런 게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고등학교와 같이 붙어 있던 저희 학교에서 중학생 녀석들이 감히 찾아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하던 저는 어느 새 L의 뒤를 따라서 도서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L은 자기가 읽었던 책 가운데 삼국지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고, 저는 그의 덕분에 오래 궁금증을 풀 수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과서에서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던 수호지, 서유기, 홍루몽, 십팔사략과 같은 중국소설과 고전을 실재로 읽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아라비안 나이트, 일본의 무협소설 미야모도 무사시에 관한 이야기, 그리이스 로마 신화는 물론 당시에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던 박계형의 연애소설도 읽었습니다. 그것은 지적인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저의 소년기를 어둡지 않게 밝혀 주었던 카다란 충격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L은 저의 스승이자 우상이었습니다. 그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으므로 감히 친구로 여기기에는 석연치 않았던 존재였습니다. 그러한 동경이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 그와 저의 사이를 오히려 더 이상 가깝게 발전시키지 않았던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L은 학교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저의 첫번째 스승이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다음 저는 같이 붙어 있던 상주고등학교로 진학을 했고, L은 서울의 어느 고등학교를 갔다는 말도 있고, 어떤 친구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못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간간히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은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아주 깔끔한 모습으로 우등생같이 잘 살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을 뿐, 약간은 2류라고 생각했던 저와 그가 중학교 동창이라는 이유로 다시 친구가 된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 후로 근 20여년의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마침 직장을 그만두고 쉬고 있던 저는 그가 정당에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를 다시 만난 날이 언제였던가는 아리송합니다. 아무튼 어느말 제가 먼저 전화를 걸었습니다. 잘 모를지도 몰라, 내가 누군지라는 생각을 했던 저는 전화기 저 쪽에서 블려오는 의외의 반가운 목소리에 조금은 당황했습니다. 연락이 되는 다른 친구와 같이 만났던 것 같은 그날 우리는 삼천공원 곁에 있었던 닭도리탕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 날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 후로 가끔씩 주로 제가 먼저 전화를 해서 만났고 차도 마시고 그렇게 지내다가 좀 더 가까워 질 수가 있었던 것은 그가 국회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저도 KBS 부근에 있던 어느 회사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였습니다. 우리는 가끔씩 점심을 먹고, 여의도 고수부지를 거닐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좀처럼 듣기 힘든 국가의 정책에 관한 심도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여전히 그는 제와 다른 세계에서 무엇인가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가 저에게 막막한 어려움이 다가왔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찾았지만 쉽게 마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다가 저는 뭔가 다른 길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지금 아시는 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려웠던 시절이 다가와서야 정말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친구가 되기까지 근 30여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제가 얕은 공부를 하고서도 뭔가 깨달은 것처럼 주절주절 떠들 때에도 그는 바쁜 점심시간을 한두시간 넘기기를 예사로 하면서 저의 말을 들어 주었고, 그때마다 추임새를 넣어주기도 하였습니다. 한 때는 감히 나와 친구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던 그가 간간히 내가 하는 말을 수첩에 적기까지 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신이 났던지!
이제 그에게 어려운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오랜 정당생활에서 그가 모시던 분이 두 번이나 대통령에 출마했다가 실패를 했습니다. 저는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분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가 사랑하는 친구가 오랜 꿈을 실현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수정처럼 맑은 눈과 학같이 고결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대통령을 모시고 자신의 역량을 모두 발휘하여 이 나라에 보탬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모시던 주군의 실패는 그에게 모든 꿈을 접어야 하는 계기가 된 듯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좌절과 함께 그와 저도 어느틈에 중년의 사나이들이 되었습니다.
그의 좌절은 오히려 저에게는 희망이었습니다. 그는 저와 찬구들의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하던 그가 저와 하루 종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어느 날은 능내에 있는 다산 정약용선생님의 유택으로 드라이브를 가기도 했습니다. 요즈음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면 이상한 현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때로는 사진처럼 또렷이 나타납니다. 그는 좌절을 한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커다란 주름을 접고 있을 뿐입니다. 그 큰 주름이 펴지는 어느 날, 그는 저와 저의 친구들에게 어린 소년 시절에 우리가 동경했던 멋진 친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이런 호를 붙여 주었습니다. '及雨' 그가 어린 시절 저에게 읽도록 권해 주었던 수호지의 주인공 송강의 별호인 '及時雨(때맞추어 내리는 비)'에서 따왔다고 주절주절 성명을 했습니다만, 사실은 우리반 친구인 '級友'라는 뜻도 포함되었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주역에도 그의 이름과 호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주역 건괘 단전에는 '大哉라 乾元이여 萬物이 資始하나니 乃統天이로다. 雲行雨施하야 品物이 流形하니라!' 그렇습니다. 그의 이름자에 들어있는 구름이 비가 내릴 때를 기다리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주역 공부반에서 학같이 앉아있는 깨끗한 남자가 있으면, 그가 곧 저의 친구 급우선생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그런 그가 어찌 저에게 주역을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왔겠습니까?
묵계님의 글이 저의 미천한 글샘을 자극합니다. 저도 제 생에서 제 가슴을 뜨겁게 해준 사람들을 하나씩 그려내고 싶어지군요. 남들에게는 평범하게 보일지라도 나에게는 그렇게 특별한 사람인 것을... 그래서 우정을 두고 그리도 귀중한 것이라 하겠지요. 찬바람이 살을 에이는 저녁에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2003/12/11]
장만옥 하하... 박계형이라... 저 중2때 그 사람이 쓴 '님 그리워 밤에 우는 새'라는 책을 수업시간에 몰래 읽다가 교무실 가서 망신 엄청 당했더랬습니다. [2003/12/11]
스프링 늦은 저녁에 서류정리하다가 고만 팽개치고 턱을 처억 고이고 찬찬히 감상합니다.그림같은 동화를..잔잔하고 무심한것 같으나 알알이 적셔있는 급우선생에 대한 묵계님의 풋풋한 애정을,불알시절의 고향과 같이 뭍혀 동양화 그리듯 곱게 그려내시는 묵계님의 필력도 대단하시고.. [2003/12/11]
스프링 세파를 어느정도 각자 떨어져 살면서 거쳐온뒤의 만남과 우정은 이전것과는 비교가 안 되겠지요.위의 장형에게도 서서히 글빨이 생기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묵계님의 초인술이야 지가 예전에 혹독히 함 겪어봐서 자알 알지요. [2003/12/11]
묵계 장만옥님은 여성입니까? 남성입니까? 제가 워낙에 어두워서 어데서는 여자목소리나고 오데서는 남자목소리나데요? 좋은 우정담 있으면 하나 올려주소서. 감동받게스리. 장만옥님은 여성입니까? 남성입니까? 제가 워낙에 어두워서 어데서는 여자목소리나고 오데서는 남자목소리나데요? 좋은 우정담 있으면 하나 올려주소서. 감동받게스리. [2003/12/11]
장만옥 허걱~ 또 이렇게 멍석을 까시오면... 쪼가리글은 경망스럽게 휘딱휘딱 날리는 편이지만 감동을 주문하신다면... 깨갱~ 꼬리를 내릴 수밖에요... 간밤의 따땃해져오던 마음도 출근하여 외상매출금 보고 받으면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것을... [2003/12/12]
장만옥 후각이 예민하시군요. 사람에게는 남성과 여성 양성이 공존하고 있는 바 사회적 길들임에 따라 머리 기르는 사람에게서 여성성이 두드러지게 되지요.저는 그 길들임에 영향받기 싫은 사람이기 때문에 가끔 남자 목소리도 튀어나오고 하는 게지요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어떻습니까...묵계님 취향에 따라 맞춰드릴 수도..ㅎㅎ [2003/12/12]
부밍런 처음부터 시작하여 꼬리말 까지 읽고나니, 선비의 고장 낙동강 상류의 경치 좋은 정자에 묵객 들이 모여앉아 선문답을 하는듯 하구나!!!!! 지나가는 객이 끼어 들어 누가 되지는 않을런지 .... 청도 카페에 이런 장도 있구나!!!!! [2003/12/12]
바가엑스 묵님, 장님, 스님 대화에 언감생심 끼여들 엄두도 못내구 있슴니다. 좋은 글 기냥 즐팅하고 갑니다.. 좋고 밝은 날로만 사시기를.. [2003/12/12]
칭다오신 이것을 다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20대의 나이에 감당키 힘들정도의 글들이 많지만 고이 가슴과 마음속에 간직하렵니다.... [2003/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