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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청명시집> 중_ 우포늪에서 / 우한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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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牛浦) 늪에서 / 우한용 시인
1. 물
우포에 와서 돌아보면 고인 물이 썩는다는 소리가 헛된 저주(咀呪)라는 것을 알겠다.
물이 고여도 고이기 나름이라 쇠뜨기나 버들뿌리와 어울려 녹음을 빚어내는 교환(交驩)만이 아우성으로 못에 잠겨 고요하거니
산은 가벼운 그림자로 잠기고 구름은 형적 없이 스르르 돌아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운행하는 이 은밀한 한때는 겁(劫)을 헤아린다.
어찌 흐름만이 맑고 향기롭겠나 고여도 크게 고여 그윽할 양이면 썩어서 맑아지는 역사는 여기 보겠네..
2. 풀
몇 억년 대지의 풋가슴에다가 실뿌리를 대고 올라와 전신이 물에 잠겨 바람 탈 겨를 도 없이 조용히 흔들리는 수초며
아득한 지심(地心)에 뿌리 얽어두고 갈밭은 지난해 치열한 삶의 흔적 상기도 성마른 불길로 서걱이는데 그 밑에 푸른 창을 들고 혁명은 온다.
이승에서 꽃비를 기다리는 이들은 자운영(紫雲英) 들판에 스스로를 이끌고 올 일이다. 꽃비단 들판에 바람 지나가면 쇠뜨기, 갈대, 생뚱맞은 흰 제비꽃, 애기똥풀꽃....
이분법에 길들은 우리네 민초(民草)는 꽃과 화초를 아등아등 가르고, 먹는 풀과 잡초를 우격으로 비기는 동안 풀들은 늪가에서 바람과 혼음(混淫)에 몰입한다.
3. 새
물올라 윤기 푸른 버들가지 늪에 잠긴 산 그림자 핥고 있는 사이 소리없이 시공을 가로지르는 아, 저 유연한 거장의 붓질.
4. 꽃
한 생애 꽃으로 피고 싶지 않은 하찮은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 복사꽃이 곱고 배꽃은 눈물겹다.
우포 늪 단물에 내 욕망의 손이라도 씻고 돌아보면 봄언덕 들판의 꽃이란 꽃은 각각 제 생김대로 제 빛깔로 핀다.
한 떨기 꽃으로 피고 싶은 인생, 쪽배 저어 알밴 붕어를 건져서 생애를 운영하는 이 그림 속에서 나는 산문으로 메마른 꽃을 그린다.
-우한용시집, 문학의전당 발간 <청명시집> 중에서.
-우한용교수의 첫시집을 축하드립니다.
[발문]
일상에서 대 자유까지 - 우한용의 시 세계
유 자 효 (시인)
1968년의 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캠퍼스. 우한용은 국어과, 나는 불어과 신입생이었다. 우리가 만났던 것은 사대 문학회에서였다. 첫 인상부터가 우한용은 매우 겸손한 학생이었다. 그리고 무척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그를 만나려면 도서관으로 가면 되었다.
당시 사대생 가운데는 지방 출신들이 많았고,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가정교사를 하곤 했었다. 우한용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업이 끝나면 가정교사를 하는 집으로 부랴부랴 달려가야 했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지친 그는 가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쓰러져 자는 수도 있었다. 그를 찾아서 도서관에 갔다가 혼절한 듯이 잠에 빠져 있는 그를 보고 깨우기가 안쓰러워 그대로 돌아 선 적도 있다.
그가 이렇게 공부만 열심히 하고 가정교사를 충실히 하는 학생에 그쳤다면 평범한 모범생에 불과했으리라. 그러나 그는 가슴에 불을 안고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사대 문학회는 매우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써클이었다. 우리보다 10년 정도의 선배들 세대에 문리대에서 문학의 바람이 인적이 있었다. 그 선배들은 ‘산문시대’라는 동인지를 내면서 서울대에서는 보기 드물게 왕성한 습작 활동을 했다. 김승옥, 김지하, 김현,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던 선배들이었다.
사대 문학회는 매주 합평회를 열었다. 합평회에 작품이 오르면 성하게 돌아가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작품에 대한 무자비한 비평과 난도질이 횡행했다. 살벌한 합평회가 끝나면 우리는 학교 근처의 막걸리 집으로 몰려갔다. 안주 없는 카바이트 막걸리를 마시며 문학을, 인생을 논했다. 시계며 학생증이며 사전이며 교과서까지 술집에서 맡아주는 모든 소지품들이 막걸리 값으로 대체되었다. 격론이 도를 넘으면 때로는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기도 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도 슬픈 일들이 많았을까? 이념과 전쟁으로 빚어진 가족사며 잘 안 되는 연애며 잘 안 되는 문학이 우리에게는 눈물의 원천이 되곤 했었다.
박정희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학기마다 데모로 교문이 잠기던 시절. 우리는 시대의 암울함을 습작으로 풀었다. 당시 우리의 작품 소재 가운데 유난히 ‘겨울’이 많았던 것이 그런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우한용은 사대 문학회원 가운데서도 무척 열성적으로 활동하던 학생이었다. 그의 작품은 자주 합평회 석상에 올랐다. 그때에도 가차 없는 비판의 칼날이 가해졌다. 그러나 그의 경우 특이한 것은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판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무서운 동료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했다. 그리고는 또 다른 작품으로 대답을 했다.
조선 시대에 왕이 친히 소를 몰아 논을 갈던 선농단이 사대 캠퍼스 안에 있었다. 선농단은 청량대란 이름으로 불리웠다. 오늘날 설렁탕의 유래가 왕이 친경을 끝내고 소를 잡아 신하들과 함께 나누던 선농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청량대는 가난한 젊은이들이 청춘의 뜨거움을 달래던 장소였다. 사대 문학회는 청량대에서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우리는 수업 시간 틈틈이 청량대에서 만나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문학회 회원들이 청량대에 모일 때면 우한용은 빠지는 적이 없을 정도로 낭만적인 학생이었다.
우리들은 10년 전 문리대 선배들의 ‘산문시대’에서 힌트를 얻어 문집을 꾸미기로 했다. 문집의 이름은 ‘창작시대’로 정했으나 자금이 문제였다. 우리는 이른바 착취 결사대를 만들어 문학회 출신 선배들을 찾아 나섰다. 그때 우리를 도와준 선배들이 김광협, 김원호, 윤삼하, 박해준, 유성규, 유태환, 장경렬, 김미순 선배 등이다. 우한용은 ‘착취 결사대’에도 열심이었고, 실적도 좋았던 학생이었다.
문학에 대한 우리들의 열정은 재학 중에 결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학신문이 현상 공모한 대학 문학상을 사대생들이 석권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에 윤상운, 유자효, 이재국 등이 잇달아 수상했으며 소설에도 김범수가 입상했다.
우한용과 나의 대학 1,2 학년 당시, 군을 제대하고 돌아온 선배들 가운데는 김태일, 장영간 형이 문학회 활동에 열심이었다. 김태일 형은 불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아침에 만나면 충혈된 눈으로 ‘간밤에 소설 100장을 썼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모두 태워버리고 나왔다’는 말을 예사로 하곤 했다. 그는 세모의 지하도에서 불의의 사고로 비명에 갔다. 그가 죽던 해 대한일보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던 그의 소설은 군사 분계선에서 남북의 병사들이 만나 벌어지는 일을 다룬 것이었다. 그 비슷한 소재가 몇 십 년 뒤 JSA란 영화로 나타났으니 그의 감각이 얼마나 앞서 갔었는 가를 알 수 있다.
그 당시 문학회 멤버들 가운데 문단에 나아간 사람들은 소설에 이문열, 우한용, 시에 윤상운, 유자효, 김철교, 김진경, 윤재철, 최두석, 평론에 김재홍, 신상철, 전영태, 박호영, 희곡에 김한영 등이다. 사대 문학회. 그것은 우리 청춘의 질풍노도와도 같던 시대였다.
우한용과 나는 대학 2학년 때 군대에 갔다. 나보다 먼저 입대하는 그를 전송하러 인천에 있는 그의 집에 간 적이 있다. 아들을 군에 보내며 그의 모친이 눈물을 보였다. 그때 어머니를 따스하게 위로하던 그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는 효자였다.
3년간의 군 복무를 끝내고 우리는 캠퍼스에서 다시 만났다. 어느 날 수업을 끝내고 학생회관으로 가는데 우한용이 국어과의 한 후배 여학생을 내게 소개했다. 나의 눈앞에 아름다운 한 여학생이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나는 곧바로 국어를 부전공으로 신청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의 전공은 뒤로 하고 수강을 핑계로 국어과 강의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 뒤 우여곡절 끝에 그 여학생은 나의 아내가 되었으니 우한용은 내게는 중신아비인 셈이다.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 잔, 못하면 뺨이 석 대라는데 아직 그에게 술 석 잔을 사지 못한 나는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다.
대학 다닐 때, 나는 그를 우공이라고 불렀다. 내가 그를 그렇게 불렀던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었다. 하나는 禹公이라는 경칭이다. 비록 친구지만 이름을 부르지 않고 나의 존경의 뜻을 담아 부른 호칭이었다. 또 하나의 뜻은 牛公이다 즉 소처럼 묵묵히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 빗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시집의 원고를 보니 그의 아호가 于空으로 돼 있다. 그에 대한 나의 평범한 부름에 그는 철학적인 뜻을 담아 이렇게 멋진 이름으로 탄생시켰다. 그러고 보면 내가 그의 아호를 지어준 셈이 된다. 시집의 발문을 쓰고 아호를 지어줬으니 이쯤 되면 내가 술 두 잔은 산 폭이 되지 않을까?
우한용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은사의 따님을 아내로 맞았다. 그 선생님은 그 제자가 얼마나 좋았으면 사위로 삼았을까? 그는 자식 농사에도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또 소설가가 되었으며 모교를 직장으로 하고 있다. 나는 그가 처 복, 자식 복, 직업 복을 모두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우한용이 회갑을 맞았다. 세월의 무상함이 새삼 가슴을 친다. 회갑이란 우리의 인생이 한 갑년을 돌아 나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회갑은 그의 인생이 이제 후반생의 출발을 한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그의 후반생은 그의 성실함과 꾸준한 노력 그리고 불같은 창작 혼이 결실을 맺는 시기가 되리라고 믿는다. 그 출발선상에 그가 서 있다.
나는 우한용의 ‘청명시집(聽鳴詩集)’을 읽으며 두보의 시들을 연상했다. 우한용의 생이 두보처럼 시대의 고통과, 가난과 질병의 신산함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그 삶의 궤적이 한 권의 시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래서 이 시집의 제목을 청명(聽鳴)으로 한 것은 타당하다. 그는 ‘청명’을 ‘말이 꽃으로 피어나는 울음을 듣는 것’이라고 머리말에서 썼다. 그는 60생애를 한 권의 시집으로 축약했다. 우리는 우한용이 쓴 시편들에서 그의 울음을 듣는 것이다. 그의 절실한 소리를 듣는 것이다. 남들이 모두 칭송하는 그의 지난 삶이 그에게는 과연 어떠했을까?
이 시집은 모두 6장으로 짜여 있다. 매 장이 모두 특색을 갖는다. 1장 ‘물길 따라 바람 가고’에서의 16편에는 주로 여행을 통해 본 심상들이 담겨 있다. 여행은 일상의 틀을 깨고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한다. 우한용이 여행을 통해 발견한 새로움은 어떤 것일까?
우포에 와서 돌아보면 고인 물이 썩는다는 소리가 헛된 저주(咀呪)라는 것을 알겠다.
물이 고여도 고이기 나름이라 쇠뜨기나 버들뿌리와 어울려 녹음을 빚어내는 교환(交驩)만이 아우성으로 못에 잠겨 고요하거니
산은 가벼운 그림자로 잠기고 구름은 형적 없이 스르르 돌아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운행하는 이 은밀한 한때는 겁(劫)을 헤아린다.
어찌 흐름만이 맑고 향기롭겠나 고여도 크게 고여 그윽할 양이면 썩어서 맑아지는 역사는 여기 보겠네..
- ‘우포(牛浦) 늪에서’ 중에서 ‘1. 물’ 전문
‘고인 물이 썩는다’는 소리는 ‘헛된 저주’이며 그것은 ‘쇠뜨기나 버들뿌리와 어울려 녹음을 빚어내는 교환(交驩)’이라고 본 것은 탁월한 발견이다. 따라서 ‘역사’는 ‘썩어서 맑아지는 것’이다. 이쯤되면 우포 늪에서의 그의 발견은 개안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강릉에 부는 바람은’에서 그는 ‘날아오르는’ ‘새떼들’을 ‘이념의 새떼들’로 보았다. 참으로 신선한 표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풍경에서 우리 시대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그는 물이랑으로 시간이 부서지며 생성되는 모양을 보기도 하고, 공룡의 발자국이 있다는 바다에 적조가 일면, 거기 한낱 공룡이 어찌 울음이라도 울 수 있겠느냐고 탄식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의 발견과 탄식은 ‘봄눈’에서 보는 것처럼 ‘황홀’이며 ‘무상’이며, ‘요염’이며 ‘혼란’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우한용의 세상관이 아니겠는가?
2장 ‘숲의 향기에 취하여’의 16편에서 우리는 외면에서 내면으로 옮겨가는 그의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의한 나이 먹음의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하다.
시간의 불꽃을 피워낸다.
시간의 불꽃은 기억의 산야를 불태운다. 시간의 불꽃은 욕망의 벌판을 밀어붙인다. 시간의 불꽃은 약속의 말씀을 지워나간다. 시간의 불꽃은 신화의 돌기둥을 되세운다.
시간의 불꽃은 욕망의 흔적위에 인간의 형상을 다시 빚어낸다.
(‘관악을 보며’ 부분)
기억의 산야를 불태우고, 욕망의 벌판을 밀어붙이고, 약속의 말씀을 지워나가고, 신화의 돌기둥을 되세우는 것은 시간의 불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시간의 불꽃은 무엇을 하는가? 시간의 불꽃은 욕망의 흔적 위에 인간의 형상을 다시 빚어낸다. 즉 욕망은 사위어지고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탄생. 재탄생이다. 이렇게 우한용의 시선은 외면에서 내면으로 향하면서 성숙해가고 있다.
내면을 보는 그의 시선은 ‘맵고 아린 매향과 더불어’ 오는 ‘개벽’을 보기도 하고(아 천지는 매향으로 아득하여라), ‘백록담 물바닥에’ 도는 ‘구름’을 보기도 한다.(꽃구름) ‘자작나무 숲’에서 ‘빛과 어둠이 상생하는’ ‘장려한 모순’을 보기도 하고, ‘시간의 반란’은 새로운 발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하여 그의 내면은 ‘국화꽃 삶아 마셔 맑은 정신,/ 육신의 허물이 너무 두껍다.’는 경지에 이른다.(국화차를 마시며) ‘갈밭을 지나며’에서는 ‘나는 나를 사랑하는 죄가 무겁다’고 참회하기도 하고, 개인적 참회가 ‘새들 앞에서’에서는 ‘조선 장닭만이 목을 뽑아 내 가슴을 치며 운다./어제 읽은 역사책 갈피에 붉은 피가 또 번진다.’는 역사성을 띄고 나타나기도 한다.
우한용의 세계는 앞으로 그의 내면 세계로 치중해 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가 그러한 시선 이동에서 얼마만한 성과를 이루어 보여줄 것인가? 이것이 독자의 관심이기도 하다. 그것이 종교적인 세계가 되진 않을까? 거기에 대한 해답의 일단을 우리는 3장 ‘하늘 우러러 우는 뜻은’의 시 16편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나를 바라보며 미소하는 너의 눈 빛 속에 비로소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듯 뭇별들 장엄한 화음 속에 나는 우주의 한 존재로 빛을 뿜어내기 시작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지구는 정녕 하나의 아름다운 별로 우주의 화음 속에 어울려 우렁우렁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별을 보며’ 전문)
이 시에서 우리는 우한용의 우주적인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다. ‘나를 바라보며 미소하는/너의 눈 빛 속에 비로소/내가 인간으로 태어나’며, ‘지구는’ ‘우주의 화음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작음과 큼이 결국 같은 우주관 속에서 태어나고 공존한다. 이것은 대 긍정의 우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연잎에 앉은 먼지도 인연’(흙을 만지며)이며, 이애주의 춤에서도 ‘은하’를 본다.(승무)
4장 ‘인정은 계절에 흔들려도’에서의 15편에서는 삶의 편린들을 만날 수 있다.
올해는 눈이 참 많이 왔어, 그래요, 춥기는 또 얼마나 추웠어요? 런닝셔츠 바람으로 식탁에 앉아서 추억을 하얀, 탈색된 추억을 이야기하는 동안
농민들이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살을 하고 눈에 무너진 비닐하우스 앙상한 철골 사이 그 철골을 닮아서 주름이 깊은 얼굴이 있다.
(‘얼굴’ 부분)
이 시를 읽으며 나는 대학시절 합평회에서 보던 그의 산문 한 편을 읽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소설은 언제나 생활의 주변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그가 자주 등장시킨 인물들이었으며, 힘든 삶의 역정이 가슴 아프게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산문 정신이 우한용 문학의 기저가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4장은 그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들로 짜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겨울밤’에서는 ‘종일토록 내 운명의 짐을 끌고/길이 어두워오도록 기다린 까닭은/내 짐이 가난하게 빛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그대여, 편히 쉬시라.“(’겨울밤‘ 처음과 끝 부분) 첫 연과 끝 행의 사이에서 우리는 하나의 이야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서사구조를 갖춘 한 편의 소설이 떠오를 것 같은 작품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설가가 쓰는 시의 특징을 발견하기도 한다.
‘자기 먹을 것을 제 손으로/만들어 먹을 줄 알면 그게/사는 것이지, 그래 됐다’(‘굳은 빵을 먹으며’ 부분) 그렇다. 이것이 우한용 문학의 정신이다.
5장 ‘탑의 그림자 못에 어리면’의 15편에서는 일상의 중요한 모습들이 담겨 있다. 가장 재미 있기도 하고, 또 가장 감동 깊은 부분이기도 하다.
‘매화 향기와 유물론’은 장시이다. 하루에 있었던 일들이 담겨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편린들이 번득인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아서’의 한 부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가 우한용의 장기가 잘 살아나 있는 작품으로도 보인다. 긴 시임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라든가 ‘살아 있음이 환희’나 ‘오기 서린 무릎을 꺾어 절을 하고’ ‘소주는 물에 탄 불’ ‘기억 속에는 기가 없다’처럼 반짝이는 표현들이 군데군데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러나 행이나 연 구분은 좀 더 연구될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설명이 너무 장황한 것도 흠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한용이 쓴 시조 한 편을 보자.
호젓한 숲속 홀로 견딘 영혼인가 빚을 때 그대로 강골로 버티고 서서 쑥돌도 오래 닦으면 사리되어 빛나리.
척박한 생애에도 선연의 비는 오고 철따라 꽃을 피우던 바람과 만나면 고운 빛 사리가 되어 사랑으로 남을까.
악업을 씻어내는 해맑은 독경소리 뼈마디 어느 한 곳 사리를 못 피우면 마음속 한 자리 부도를 모셔놓고 살아라.
(‘고달사 부도 앞에서’ 전문)
이 작품은 이 시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보인다. 왜 딱 한 편 실려 있는 시조가 다른 수십 편의 자유시보다 완성도가 높아 보일까? 그것이 시와 산문의 차이에 대한 설명이 된다. 분방한 상상력이 시조라는 정형성에 걸러져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시는 상상력의 절제된 표현이다. 이 정도의 완성도를 보이기란 쉽지 않다. 앞으로 또 다른 우한용의 시조를 기대한다. 그의 운문 작업은 시조가 가장 그에게 맞는 장르인지도 모르겠다. 6장 ‘말은 꽃이 되어 흐드러진다’의 16편을 읽으며 나는 마침내 평화를 얻은 우한용과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 장의 작품들을 읽으며 나는 편안하였다. 그는 ‘꿈을 꾸는 일 자체는 소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말은 말’(‘그리하여’ 부분)이라고 단언한다. 이렇게 그의 어조가 자신에 차고 단호해졌다. ‘횡재처럼 얻어걸리는 시상이라는 것이/말하자면 쪼잔하고 치사한 물건이라/반은 남의 것이고 그래서 장물같은 것’(‘근거리’ 부분)이라는 구절을 보면 웃음을 금할 수 없다. 옳은 말이다. 그래서 시인들이 고민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라도 남의 시상이나 아이디어를 훔치지 않으려고 고심하는 것이다. 장물아비가 되지 않으려고 말일세. 아셨는가? 친구여.
‘나도 좀 위험하고 싶다’에서는 모범적으로 살아오던 학자의 정신적 탈선 유혹을, ‘피부과에서’는 ‘낯바닥을 최첨단 레이저로 지’지고 있는 회갑 교수의 모습을 상상하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제 대 자유인으로 유연하게 걸어가는 우한용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가 오래 갈구하던 정신적 자유를 얻어가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에 젖는 요즈음이다.
그의 회갑을 충심으로 축하하며 그나 나나 좀 오래 살아서 못 다한 우정을 길게 나누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