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천(悳川) 홍성종(洪聖鍾) 회장
지난 사십 년간을 오로지 정직과 근면 성실로 한길만을 걸어 온 성공한 기업인이 있어 이곳에 소개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연천군 중면 횡산리 출신으로 남양공업 주식회사 대표이사 덕천(悳川) 홍성종(洪聖鍾)회장이다.
특히 홍성종회장은 제2대 재경연천군민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틈나는 대로 연천을 찾을 뿐만 아니라 재경연천군민회의 모임에는 열성적으로 참여하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자타가 공인하는 연천맨이다. 또 정직과 성실, 신의를 모토로 기업을 운영하여 오늘날의 남양공업이 세계의 100대 자동차 부품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열성을 바치며 외길 인생을 살아 온 분이기도 하다.
홍성종회장은 일제 치하이던 1928년 6월 5일 연천군 중면 횡산리에서 부친이신 홍재선공과 모친 곡성 임씨 사이에 5형제 중 4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지런하고 성실하였으며 배움에 대한 의욕이 남달라 등하교 60리(중면 횡산리에서 연천군 차탄리까지)길을 걸어 다니며 개근상을 받았을 정도로 향학열이 높았다.
소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졸업 후 철원에 있는 제2초급 중학교에 진학하여 어렵사리 학업을 마치고 철원에 있던 당시 삼우철공소에 입사하여 타고난 근면, 정직, 성실성을 사장으로부터 인정받아 서울로 같이 올라와 갖은 역경과 고난을 거친 후 오늘날의 남양공업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아래에 덕천(悳川) 홍성종(洪聖鍾)회장의 인터뷰 내용을 싣는다. 참고로 본 인터뷰는 필자가 직접 한 것이 아니고 남양공업 사십년사에 실린 것을 발췌하여 옮긴 글이다. 만일 필자가 인터뷰를 했더라도 질문 내용은 같았을 것이다.
“세계100대 자동차부품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자동차산업과 자동차부품산업의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던 1960년대 말 뜨거운 열정 하나로 남양공업을 설립한 지 40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감회가 참으로 새로울 것 같습니다.
처음 남양공업을 설립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년이 지났다니 세월이 참으로 빠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간 40년 세월이 그냥 흘러만 간 게 아니라서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설립 초기 20평 남짓했던 공장에 생산 설비라고는 달랑 산반 몇 대에 불과했었는데, 이제 수만 평에 달하는 1,2공장과 중국 상해 인근에 현지법인과 공장까지 갖추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지난 세월 생사고락을 함께하면서 헌신적으로 일한 수많은 임직원들 덕분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우리 남양공업 임직원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습니다.
자동차부품산업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일제 말기 학업을 마칠 무렵,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철원의 삼우철공소라는 공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삼우철공소가 서울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삼우철공소 사장님의 권유로 서울로 오게 되었습니다.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온 뒤 삼우철공소 사장님이 설립한 서울피스톤공업에 근무하면서 기술을 배워 기술과장까지 역임 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 이후 직장 생활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제 사업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기업 경영을 통해 조국의 경제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남양공업 설립 후 오늘처럼 성장하기까지에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어려웠던 시절은 언제였습니까?
처음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초창기엔 고객이 찾아오지 않아 고생했고, 이후 기아자동차와 거래 할 때는 신제품 개발과 제품의 품질 향상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노력해야 했습니다. 1970년대 말 제2차 석유파동과 함께 자동차산업이 침체되었을 때는 여러 차례 위기를 넘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고비는 1997년 기아자동차 부도 사태와 연속하여 이어진 IMF 외환위기 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화의를 신청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하루하루 부도를 막아가면서 버텼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회사를 믿고 참아준 당시 모든 임직원들이야 말로 정말이지 오늘의 남양공업을 있게 한 주인공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양공업 설립 이후 최대 고비였던 IMF 외환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합니다.
외환위기 직전에 모기업이나 다름없던 기아자동차가 도산하였습니다. 당시 매출액의 90% 이상이 기아자동차에서 발생했던 저희들로서는 참으로 난감했지만, 달리 어쩔 방도가 없었습니다. 채권 회수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새로운 거래처를 발굴하기 위해 전 직원이 뛰어다닐 밖에요. 그런데 얼마 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환위기 국면까지 도래하니 정말 하루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화의 신청 서류를 만들어둔 상태에서 눈물을 머금고 인적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한편, 살고있던 아파트까지 담보로 내놓고 상황이 호전되길 기다렸지요. 다행스럽게 이듬해 가을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여 정상화시키기 시작했고, 우리 남양공업은 기아자동차에 이어 현대자동차에도 제품을 납품하면서 IMF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부도 직전까지 갔던 남양공업이 오늘과 같이 성장할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어떤 위기 국면 하에서도 노와 사가 하나 되어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고자 했던 화합과 신뢰의 노사문화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자랑하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 저희 남양공업은 거의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한 회사였습니다. 그런 만큼 창업 초기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노와 사가 서로 남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고 경영진과 직원의 구분도 크게 의미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한 가족처럼 생각했으며 실제로도 가족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사 화합의 기업문화는 회사가 성장하는 동안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회사의 주인이라는 기업문화로 인해 강철과 기계를 다루는 거친 업종임에도 다른 회사에 비해 이직률이 크게 낮은 데서도 이러한 노사 화합과 상호 신뢰의 기업문화를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어떤 경우에도 공장 문을 닫을 수 없다는 평소의 신념을 꿋꿋이 실천한 것도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노사 화합을 바탕으로 노사가 일치단결하여 노력한 결과 높은 경영 성과를 낲았으며 각종 수상 실적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가장 의미 깊은 수상으로 어떤 것을 꼽으시겠습니까?
임직원들의 노력 덕분에 국가나 단체로부터 적지 않은 상을 받았습니다. 큰 상이든 작은 것이든 모두가 소중한 우리 회사의 자산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상으로는 ‘노사문화 대상’이 있습니다. 노와 사가 서로 적이 아니고 함께 성장해 나가는 협력자라는 취지에서 서로 노력한 결과 큰 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 무엇보다 기쁘고 의미 있는 상이었습니다.
이어 ‘국가생산성 대상’ 수상도 기억에 남는데, 이 상 역시 저를 비롯한 모든 임직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노력한 결과였기에 그 기쁨이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많은 상을 받으면서 먼저 생각한 것은 수상 자체가 아니라 그 상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상에 담긴 의미를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다면 수상의 의미는 그만큼 축소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회장님의 경영 철학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근본을 중시하고 초심을 잊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회사 이름을 남양이라 지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회사를 설립할 때 회사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제 성인 남양 홍씨의 본관인 남양에서 이름을 따 왔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근본을 잊지 말자는 의미였습니다.
이후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원칙과 본분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남양공업의 본분은 건전한 생산 활동을 통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여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나아가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임직원들에게 골고루 이익을 나눠주고, 이와 함께 풍요롭고 밝은 사회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남양공업의 모든 임직원들은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 활동과 생산 활동을 전개 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것이 저희의 책무이자 권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남양공업의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성장을 멈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남양공업을 성장시키는 바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조업은 흔히 우수한 설비와 높은 기술력만 있으면 탄탄대로를 걷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은 그 바탕에 있는 인재를 간과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훌륭한 인재야말로 기업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토대입니다. 이에 따라 남양공업에서는 인재양성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기능이며 기술 교육은 물론이고 어학이나 교양 교육을 위해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병역특례업체 지정을 통해 우수한 인력을 선발하고 있으며 향후 해외 연수 같은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중국법인 설립 이후 인재양성에 더욱 많은 관심과 투자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남양공업은 중국법인을 교두보 삼아 글로벌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중국법인 설립은 모기업인 현대·기아자동차의 현지법인 설립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2002년 말부터 준비를 거쳐 2003년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기왕 중국시장에 진출한 이상 강소남양을 발판 삼아 장차 세계시장에 진출, 남양공업의 미래 비전 달성을 앞당긴다는 계획도 수립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강소남양에 대한 투자를 확충했고 글로벌 업체에 대한 부품공급 전략을 구체적으로 실천했죠. 많은 임직원들이 노력해준 덕분에 중국 내 글로벌 자동차기업에 부품을 공급하기로 계약을 체결하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낳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여 반드시 비전을 실현하고야 말겠습니다.
끝으로 남양공업의 비전을 실현하기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남양공업은 지난 40년 동안 여러 차례 위기를 딛고 일어나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임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땀 흘린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향후 우리 남양공업은 이러한 화합과 신뢰의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비전 달성을 위해서는 저를 비롯하여 저희 남양공업 임직원 모두가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어떤 환경 변화 속에서도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변화의 선두에 서서 시대를 이끌어 간다면, 우리는 반드시 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서 비롯된 세계경제 침체로 인해 우리나라의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고, 또 우리나라 자동차산업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렇게 남양공업의 미래가 불투명하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앞으로 회사의 역량을 더욱 키우고 이를 집중하여 세계 100대 자동차부품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미래 비전을 반드시 달성하고자 합니다.
(이상 남양공업 사십년사에 실린 인터뷰 중에서)
위와 같이 훌륭한 분이 연천 출신이라는데 같은 연천 출신으로서 크나큰 자부심과 함께 연천의 자랑거리이며 참으로 존경심마저 일게 한다. 더우기 필자의 고향도 중면이어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르다고 할 것이다.
지혜롭고 총명한 조모님
홍성종 회장에게는 지혜롭고 부지런하며 총명한 조모님에 대한 일화가 있어 소개한다. 조모님께서 당시 약 70리 가량 떨어진 곳에서 가마를 타고 시집을 오게 되는데 하루 종일 가마를 메고 오느라 지친 가마꾼들이 목적지를 약 5리 정도 남겨두고 휴식을 취하게 되었고 조모님도 종일 가마안에서 답답하게 있다가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오셨다고 한다.
이때 근처 나무 등걸에서 새까맣게 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바로 이것이 분봉(여왕벌이 일단의 일벌들을 이끌고 분가하는 것)임을 안 조모님께서는 친정에서 출출할때 먹으라고 싸준 엿을 보관중이던 치마에 발라 가마꾼들에게 건네주며 벌들을 유인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벌들을 가마안에 잘 보관하여 시집으로 가지고 와서는 정성껏 키우게 되는데 벌통이 50여개에 이르도록 번성을 시켰다고 한다. 당시에는 벌들이 분봉을 하게 되면 엿이나 꿀을 바가지에 담아서 유인을 했는데 어떻게 치마에 담을 생각을 하셨나 싶어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참으로 지혜롭고 총명한 분임을 알 수가 있다.
한국의 말(馬)들은 뒷발질을 하지 않는다.
홍성종회장에게는 기업 초창기에 다음과 같은 일화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기술이 아직 발전이 되기 전이라 기술제휴를 위해 일본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 기아자동차의 권유로 협력업체 경영자들과 일본을 방문했을 때인데 한국의 경영진들과 일본 마쓰다자동차의 경영진들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요시와라고 하는 일본측 주물공장 사장이 묘한 인사말을 하였다고 한다.
요지는 "옛날에 일본에는 사무라이 시절이 있었는데 이때는 바람처럼 빠른 용마가 많았지만 지금은 용마가 사라지고 없어 보여 줄 것이 없다." 라는 말이었다. 그러자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의 내용인즉 당신들에게는 기술을 가르쳐 줘도 뒤통수를 칠 우려가 있으니 기술을 전수해 줄 수가 없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그곳에 있던 누구도 그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홍성종회장은 그말의 뜻을 금방 알아차렸다. 바로 옆에 앉은 기아자동차 협력업체 회장인 대원공업 허승열회장에게 귓속말로 대응할 말을 전해 주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허승열 사장은 역시 인사말을 통해 "한국의 말들은 이상하게도 뒷발질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용마를 보여 줘도 다칠 염려는 없을 것이다." 즉 우리는 당신들의 뒷통수를 칠 마음이 전혀 없으니 기술을 전수해 줘도 괜찮을 것,이라는 뜻의 우회적인 표현인 것이다. 그야말로 장군! 하니 멍군! 하는 답변인데 이런 선문답이 오가도 사람들은 그때까지도 그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요시와를 비롯한 나이 지긋한 일본의 경영인들은 무릎을 치며 호쾌하게 웃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 중에 자신의 말을 금방 알아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감탄과 경외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 기아자동차와 마쓰다 자동차와의 기술제휴는 원만하게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이 일화 또한 참으로 지혜롭고 총명한 홍성종회장의 일면이라 할 수가 있겠으며 이는 조모님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남양공업만의 탁월한 복리후생 제도 홍성종회장의 훌륭한 인품과 후덕함을 보여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남양공업의 직원들에게 베풀어 주는 복리후생제도일 것이다. 바로 다음과 같은 복리후생 제도이다.
노사화합의 기업문화 이외에도 노사간의 갈등을 없애고 노사화합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대립적 관계에서 협력의 관계를 유지하여 왔으며 이러한 노력은 IMF 당시 뿐만 아니라 회사가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서로 협력하여 위기를 넘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이러한 노력으로 현대와 기아자동차로부터 신노사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노동부로부터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노사간에 항시 이해와 협력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회사를 아끼는 이러한 노력은 임단협 무교섭타결을 이끌어 내는 등 타사에 모범이 되고 있다.
이는 홍성종회장의 경영철학이 어떠한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연천 출신의 성공한 기업인이며 고향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홍성종회장이야 말로 우리가 귀감을 삼고 따라가야 하는 훌륭한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깊이 깨닫게 해준다. 부디 남양공업이 가일층 발전하여 세계 100대 기업이 아닌 세계 10대 기업으로 우뚝 서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사진은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남양공업 제1공장
남양공업 제2공장
중국의 강소 남양유한공사
2009. 5. 20. 카페지기 이 준용
|
|
첫댓글 연천 출신의 자랑스러운 기업인 남양공업주식회사 홍성종 회장님에 대한 새로운 면면을 알게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연천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게하는 훌륭하신 홍회장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타지에 살고잇는 한사람으로서 연천에 홍회장님처럼 훌륭하신분께서 고향을위해.. 애써주시는맘...특히 연천군 중면 횡산리 군민들께서는 어깨가 으쓱하시겠어여 ..홍회장님 존경합니다,,,
자랑스러운 연천인을 소개하여주는 이준용님의 열정은 대단하십니다.이처럼 훌륭하신 남양공업 홍 회장님 계신다는 것을 이번 야유회에서 처음알았네요.좀 부꾸러운 일입니다.용서하세요?
고리울님 무슨 과찬의 말씀을... 부끄럽습니다. 그나저나 그날 인사도 잘 못드리고 죄송합니다. 혹 불편한 점은 없으셨는지요. 처음 접해 보는 행사라 미숙하기만 했던 점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차후로는 좀 더 짜임새있고 기획을 잘 편성해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역시도 홍성종회장님 같으신 분이 계시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인자하신 회장님 존경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바랍니다.... 이준용님 께서 남양공업사 소개해주신내용 잘읽었습니다, 역시 이준용(카페지기 총수)님 이십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새록 새록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군요. 이준용님이 소개해 주신 글 잘 읽고 갑니다. 대단한 연천 출신 회장님이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