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8일 전남매일 15면의 고정 컬럼 전매광장에 실린 원고를 그대로 옮깁니다.
영산강, 어찌 할까?
오 홍 근(한국스카우트 중앙이사⦁광주예총 감사)
전 세계가 걷는 중이다. 우리나라도 옛길 찾기와 올래 길 찾기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걷는 사람이 많아졌다.
필자도 최근에 ‘영산강 350리 따라 걷기’의 동호회의 일원으로서 영산강의 시원인 담양 용소에서부터 목포 하구언까지 350리 물길을 대부분 걸은바 있다. 현재도 영산강 개발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열심히 걷고 있는 전남도청 해양수산환경국의 실무진들과 매주 토요일에 영산강 뚝방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정말로 영산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만 보다가 맘먹고 걸어보니, 그 동안 내 나라에 관심이 소홀했던 부끄럼을 숨길 수 없었다.
세계적 명소인 그 어느 곳보다 독특한 한국적 미를 지닌 영산강변의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것을 하루만 걸어보아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국의 5대강 개발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맨 먼저 영산강을 개발할 요량으로 기공식을 마친지 오래다. 그런데 최근에 영산강 개발계획이 구체화되면서 많은 예산이 삭감되고 핵심 사업이 누락된 실속 없는 사업이 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어 어쩐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정부 정책에 아무런 힘이 없는 민초의 한사람인 필자는 전국 4대강의 대운하 계획이 나왔을 때부터 영산강이 첫 번째 케이스가 되어 시행착오를 거친 후 다른 강으로 이어질 거라는 우려를 하였다. 그게 현실로 나타나서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국가가 영산강을 살린다고 한다. ‘살린다.’는 말의 전재는 이미 죽을지도 모르는 중병에 걸렸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된 것은 경제 제일주의를 표방하고 자연보호와 환경보전을 무시한 채, 1960년대부터 시작한 경제 성장위주의 개발로 인한 폐해가 극에 달하고 있음을 말한다. 중병을 치료하려면 일반적으로 두 가지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는 치료에 적합한 의사를 만나야 하고, 둘째는 그 환자에 적합한 최상의 진료를 받는 일이다. 그런데 정부가 영산강의 실태를 잘 아는 주민이나 전문가 등, 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완성된 설계도 없이 기공식을 마치고 서둘러 추진하지 않나 싶다. 흡사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 없이 수술부터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오늘의 한국 경제발전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온 세계가 칭찬 하지만 현시점에 볼 때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학자들에 의하면 한강의 개발은 기간 시설을 통해 시가지 교통문제를 해결하고 일자리를 창출하여 국민의 소득을 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반만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민족의 혼이 어린 수많은 정자와 강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 하며 굽이굽이 흐르는 강줄기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이 송두리째 없어졌다는 것이다.
자연과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것은 그리 많은 세월이 걸리지 않지만 원상을 회복하거나 아름답게 가꾸기에는 수백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분명히 말하지만 남도인의 정서와 역사가 이어져 오고 있는 영원한 고향인, 영산강을 개발하는데 똑같은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지도자들이 임기 내에 실적을 얻으려는 성과주의에 억매이지 말고 50년 또는 100년을 두고 차분하게 천천히 많은 토론과 합의를 거쳐서 자손만대에 자랑거리가 되게 개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강을 살린다는 이유로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원형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강변가까이 자동차 전용 도로를 만들어서는 안 되며 걷고 달리며 자전거 정도만 통행할 수 있도록 옛길을 보존하는 형태여야 한다. 만일 지역 발전이나 경제의 발전을 위해서 자동차도로가 중요하다면 강변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 도로를 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강변의 습지와 수많은 역사를 안고 쌓여 있는 자연자원과 문화재들을 함부로 훼손하지 말고 원형을 살리는 상태에서 공원이나 체육시설 등 생활 편의 시설은 최소화함으로써 자연의 생태를 그대로 보존하면 좋겠다. 물론 배를 띄워 옛 로망도 찾고, 뱃길을 살려 경제에도 보탬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가급적 강변을 많이 살리고 필요한 최소한의 면적만 토목공사를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보다도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적극적인 예산 투자로 영산강변의 도시와 마을로부터 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는 생활과 농업용 폐수가 직접 흘러들지 않게 하고 강물을 정화하는 데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려야 할 것 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영산강 살리기’는 많은 세월을 필요로 하지만 영산강 스스로가 살아나도록 자연치유를 돕는 것이 최선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서둘러 개발해야 한다면 많은 사람의 합의를 거쳐서 영산강이 언제까지나 영산강으로 남게 보존함으로써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