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7.29.논설] 학교 구내 상점을 들르다 벽에 붙은 포스터에 눈길이 갔다.
앙증맞은 여자아이가 촛불을 들고 있는 그림 옆에는 '800만 촛불의 힘으로
이명박 교육정책 심판! 시민이 승리합니다! 저는 꼭 투표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미 있던 무슨 공모전 포스터 위에 덧붙여
놓은 작은 스티커였다. 워낙 글씨가 눈높이에 맞춰져 있고 색깔이 선명해
눈에 잘 들어왔던 것이다. 공식 교내 게시물 위에 불법으로 부착된 홍보물의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교육감 선거 홍보물인 길거리
현수막 중에는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집니다'라는 문구도 눈에 띈다.
'휘둘린다', '무너진다' 등의 강한 동사에 뭔가 절박함이 담겨 있는데, 정작
우리 아이들 교육이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에 노출되는지 분명하지 않다.
숨겨진 조각그림을 찾아내는 것은 여전히 유권자의 몫이다.
'교육대통령'으로 불러도 좋을 만큼 막강한 인사권과 연 6조원에 달하는 예산권을 갖고 있는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내일로 다가왔다. 촛불, 심판, 시민, 승리 같은 고감도 단어들이
정치선거 문구를 이루는 데 손색이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교육정책'이라는 말이
생경할 지경이다. 정파를 응징하는데 왜 아이들 교육이 동원되어야 하는가.
산적해 있는 교육현안과, 한여름 폭염보다 뜨거운 우리 국민의 교육열을
생각하면 온 국민이 투표장으로 향해도 부족할 판에, 투표율이 10%에서 20% 사이를
맴돌 것이란 예측이다. 일부에서는 홍보부족을, 일부에서는 휴가철을 이유로 들지만,
사람들이 관심이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짐작건대 교육선거가 아이들 위주의 정책
중심이 아닌 이념의 대결장으로 변질되면서 정작 중요한 유권자의 관심을 놓친 때문은 아닐까.
유권자인 부모들은 누군가를 심판하고 뭔가를 응징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좋은 선생님 밑에서
귀한 배움을 누리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대개의 엄마들은 아이들에 대한
철 이른 이념교육을 걱정한다. 특정 이념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의 게임에서
자유롭게 세상을 배워 나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연의 이치와 수리, 바르고 아름다운
우리말의 습득을 기초로, 아이들이 훗날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성향을 결정하고 삶의 철학과
이념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여리고 때 묻지 않은 마음과 머리가 엉뚱한 의견으로 오염되기 이전에,
스스로 건강한 의견을 형성하게 되기를 바란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경쟁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그렇다면 경쟁을 피하게 하기보다는 경쟁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도록 가르치고 싶다. 경쟁에서
뒤진 사람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마음씨를 가르치고, 페어플레이 정신과 깨끗하게 승복하는 자세를
가르치고 싶다. 새로 선출될 서울시 교육감은 이 모든 바람을 구체화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전국의 초·중·고등학교가 전부 교육감 권한인데, 특히 서울시 교육감의 경우 서울시 여섯 군데
교육장의 인사권을 모두 행사해 서울시 교육행정의 내용과 형식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선제 구청장을 거느린 서울시장보다 서울 전체를 장악할 수 있고, 전국 교육감협의회 의장을 겸해
초·중·고에 사실상 권한이 없는 교육부 장관보다 힘의 범위와 강도가 커서 '교육대통령'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고 한다. 이렇게 중요한 인물을 선출하는 일을 그저 매양 치르는 선거의 하나로 치부하고
무관심할 수는 없다. 이번 교육감 후보의 공약을 그들의 약력과 함께 꼼꼼히 살피고 투표할 계획이다.
그 전에 할 일이 그들이 내건 공약과 캐치프레이즈에서 정파적 색채의 단어를 모두 걷어낸 후,
실제 어떤 교육행정을 펼지, 정책 위주의 선별적 탐독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키우고 싶은
아이의 모습과 엇비슷한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를 찾아내야 한다. 얼마간의 수고를 감수하더라도,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