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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지맥(火旺枝脈)
낙동정맥에서 분기한 비슬지맥이 비슬산에서 남진하다가 천왕산에서 남으로 열왕지맥이 분기하고, 열왕지맥은 남진하면서 서쪽으로 낙동강을 향해 두 가닥의 산줄기가 다시 분기하는데 토평천을 사이에 두고 위쪽은 왕령지맥, 남쪽이 화왕지맥이다.
정월 대보름날 억새태우기로 유명했던 화왕산을 주산으로 하여 위로 토평천, 아래로 계성천을 낙동강으로 흘리며 창녕군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계성천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남지읍 남지리에서 끝을 맺는 36.8km의 산줄기다. 당초에는(신산경표) 우봉지맥이 끝을 맺는 기강나루 건너편으로 이었다가 개정판에서 도초산을 포함하여 남지리로 수정하면서 조금 길어진 셈이다.
구간거리
(열왕산~2.0km)~분기봉(663)~2.4~관룡산~3.0~화왕산~1.6~구현~2.0~비들재~0.6~구현산~3.6~남통고개(5번국도)~5.4~등산(-0.2)~3.0~창령고개~0.5~큰갓실산~4.3~가림고개~2.8~성사고개~1.2~우실등~3.9~도초산~2.5~낙동강 / 36.8km
주요봉우리
분기봉(663) 관룡산(754) 화왕산(755.8) 구현산(579) 등산(147) 큰갓실산(122) 우실등(220) 도초산(166)
산경표 72頁
楡南山-火王山-靈鷲山-太子山
-古老峙-華嶽山-
대동여지도 현 남지면쪽에
비슬산에서 내려와 火王山 ...여통, 반월산, 통초산이 보인다
창녕군을 가로지르는 화왕지맥
화왕지맥 1구간
2012. 07.20 (금)
산길 : 분기봉~남통고개
거리 : 15.5km / 08:30
(접근 : 놋단이~2.3~분기봉)
분기봉(663)~2.4~관룡산~3.0~화왕산~1.6~구현~2.0~비들재~0.6~구현산~3.6~남통고개(5번국도) / 15.5km
Cartographic Length = 17.7km Total Time: 08:30
긴 장마 끝에 급하게 찾아 낸 지맥. 어쩌면 어떻게 이 지맥을 아직 안했을까 싶기도 하다만 ‘신산경표’ 초판에는 없던 지맥이다. 맨발 선배님 말씀을 빌면 새로 생긴(?) 지맥인 것이다. 부산에서 창녕은 100km도 안되는 거리라. 더 만만하게 붙을 수 있고 두 구간으로 나누면 되겠다 싶다.
지난산행 덕산지맥 마치고 등산화를 조진고문님 차에 흘리고(!) 오는 바람에 한겨울 重등산화를 신을 수도 없어 발목 없는 파이브텐 등산화를 신고 나섰다. 마눌님의 재삼재사 17시까지는 돌아오라는 압박이 없었더라도 팅팅불은 발로는 더 이상 가지도 못하겠더라. 조금 더 갔어야 다음구간 한방으로 조져 질텐데 처음으로 만난 아스팔트 도로인 5번국도 남통고개에서 신발을 벗어 던졌다. 다음은 다음이고 당장의 발바닥이 물러 터질 지경인기라. 화왕산 오르면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지만 습기를 잔뜩 머금은 날씨는 후덥지근하기 짝이 없다. 뉴스에는 인근 밀양날씨가 올들어 최고인 34.7도를 기록했단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새벽녘 안개비에 젖은 풀잎의 물방울은 노단이마을에서 지맥에 접근하니 이미 양말까지 적셨다. 그렇게 챙겨 다니던 여벌의 양말은 또 오늘따라 차에 두고 오는 바람에 갈아 신지도 못하고 두 세번 쥐어 짜냈지만, 짠다고 새 양말 되나. 다시한번 상기하자 “배낭에 양말 두 켤레~!!”
분기봉 접근 들머리에 대해 심도있는 연구를 했다. 관련 산행기도 검색을 하고 북쪽 청간마을에서 올라간 트랙까지 찾아냈지만 아무래도 남쪽 노단이 마을쪽이 더 가깝고 마치고 차량회수 거리도 짧은거 같은데 노단이에서 올라 간 기록은 찾지를 못했다. 지도를 살펴보니 마을에서 어느정도 올라가는 임도(점선)는 있으나 계곡 합수점에서 끝나버리고 더 이상 길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볼데도 없지만 일단은 남쪽에서 붙어 보기로 했다.
관룡사까지는 여러번 가 본 길이고, 관룡사 입구에서 우측으로 직진하니 도로는 금새 1차선으로 좁아지나 포장은 양호한 편이다. 노단이저수지에서 좌회전하여 저수지둑을 건너가게 되는데 여기서 저수지 우측으로 직진하는 임도는 열왕지맥 심명고개를 넘어 밀양 무안으로 넘어가게 된다.
못둑 위로 길은 이어지고 얼마간 더 올라가면 이런 첩첩산중에 신비스럽게도 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노단이마을이다. 대형버스는 안되더라도 25인승은 들어올 만하다.
05:45 노단이마을
06:24 칠목재
06:50 화왕지맥 분기봉
07:16 다시 칠목재
08:10 구룡산
08:48 관룡산
09:07 옥천삼거리 임도
10:04 화왕산
10:30 배바위
11:03 鳩峴
12:00 비들재
12:31 구현산
13:00 삼성암 갈림봉 (556봉)
13:40 묵은 헬기장
14:20 남통고개 (5번국도)
놋단이마을
05:45 노단이마을(300m)
새주소 도로번호판에 [옥천노단이길]로 표기되어 있다. 마을 입구에 마치 방문객들을 위함인지 적당한 주차 공터도 있고 손님을 맞이하듯 노송 두 그루가 반기는데 그 형상이 묘하다. 한 그루는 길바닥에 뿌리를 두고, 또 한 그루는 축대 위에서 뿌리를 내렸는데 자라난 가지가 중간에 서로 만나 서로 사랑을 속삭이는 자세라. 완전히 만나 합일을 이루었더라면 영락없는 연리지(連理枝)가 되었을 터인데. ‘노단이’ 그 유래가 또한 궁금하지 않을쏘냐.
놋다이(魯洞)
노따이, 놋단이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한자로는 노단[露丹] 으로도 쓰인다. 가장 깊은 골짜기 안의 마을로 토질이 붉다하여 초목까지도 붉었다하는데 이에 따라 붉을 단(丹)을 써서 노단 이라 하였다 한다. 그러나 '丹'은 땀, 담의 음차(音借)이다.
이곳은 높은 지대의 마을이고 골짜기이니 높은 땀, 담, 뜸, 높다랗다 등의 말이 높은 담-놋단-놋따이 등으로 변하였다고 보여진다. 지리산의 노고단도 그런 연유가 아닌가 추정해보나 확신할 수 없다. 전에는 15여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8호가 산다.
어디나 그렇듯이 가장먼저 아는 채 하는 놈은 개들이다. 고요한 새벽적막 깨는 실례를 범했지만 얼른 사라지는게 상수다. 열 가구가 채 안되어 보이지만 마을 형태는 갖추었고 시멘포장길은 이어진다. 여섯시도 안된 시각이지만 벌써 밭에는 사람이 나와 있다. 올라가는 길이 있는지 물어보려 했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관뒀다.
05:52 개천 사방댐 공사중
포장길 끝에는 골짜기 사방댐을 만드는 공사판이다. 다리를 건너면 묵은 임도에는 잡초가 들어찼다.. 혹시나 싶어 발목 짧은 스패츠를 둘러보지만 신발 자체가 허약한 놈이라 얼마나 버텨 줄는지 의심이 간다.
05:53 노란색 폐건물
돌로 쌓은 축대 위에 축사였던지는 모르겠으나 노랑색을 칠한 길쭉한 폐건물에 칸 마다 창문이 나있다.
좀 더 올라서니 넓은 밭지대다. 우측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이나 왼쪽으로 묵밭의 끝까지 가보니 개울이 흐른다. 개울 건너편에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일단은 세수부터 하고
개울 건너 들머리는 숲이 우거져 과연 길이 있을라나 싶었는데 올라 갈수록 길이 확연히 살아나더니 [삼돌이] 리본이 보인다. 내가 찾기는 제대로 찾았구나 싶다.
칠목재
06:24 칠목재 (510m)
노단이마을에서 1.3km에 30분 정도 걸렸으니 준수하다 하겠다. 고민은 한낱 기우(杞憂)에 불과했으니. 그래도 가능하면 분기봉에서 가까운 열왕지맥쪽으로 붙으려 했으나 ‘그거는 니 생각’일 뿐이고 산길은 보이지 않았다. 한 겨울 헐빈한 산길 같음사 대충 눈치로 때려잡고 쳐 올릴 수도 있겠으나 오늘같이 빽빽하고 축축한 날씨에야 뚫린 길 찾아낸게 감지덕지다. [구룡산0.9km 부곡온천13.6km]
칠밍이재(七明峴) - 놋다이의 북쪽 가장 안쪽의 산인데 고암면 감리 청간마을로 가는 고개가 있다. 칠밍이는 칠목(七項)의 와전으로 이곳에 일곱군데의 높고 낮은 목이 있다하여 칠목재라 한 것이 칠미, 칠명 등으로 변하였다. '명'의 발음을 이곳에서는 미, 밍이 등으로 한다. 칠명재의 서편 봉우리는 560m 이고, 재의 높이는 500m 이며, 동편에도 660m 봉우리가 있는데, 밀양군 청도면과의 경계이고 청도면, 고암면, 창녕읍 등 3개면의 경계가 된다.
너무도 가쁜하게 올라선 마당에 분기봉 빼먹을 이유가 없다. 갔던 길 되돌아오는거 만큼 싱거운 일이 없지만 기우이긴 해도 거저먹었다는 감이 있는 판에 이거까지 띵가 먹겠나. 두말 않고 우틀해 올라간다.
지맥이기도 하지만 [부곡온천 가는길] 팻말까지 걸린 일반 등산로라 더 뚜렷하다. 그런데 잠깐 동봉으로 향하더니 길은 자꾸 왼쪽으로 휘돈다. 팻말이 안내 하는데 설마 어문데로 가겠냐 싶고, 조금이라도 발을 보존하고 싶은 생각에 젖은 풀숲을 외면하고 그대로 따라 올라가니 이정표가 서 있다.
06:43 청간 갈림길
[구룡산1.5 부곡온천13.0km]이정표 있는 삼거리. 분기봉에서 북쪽으로 뻗는 지능선인데 왼쪽의 뚜렷한 길은 청간에서 올라 온 길이다. 우측으로 틀어 올라가면 벤치 두 개 있는 봉우리. 살짝 내렸다가 다시 오른다.
청간 갈림길
663봉 (분기봉)
정점이 불분명하다
06:50 화왕지맥 분기봉 (질매등 663m)
지형도에 아무 표기없는 봉우리인데 고도는 663m 찍힌다. 딱히 어디가 정점인지도 불분명한 분지형태다. 나무벤치 두 개가 있고 주위는 비비추 군락이 넓게 퍼져있다. 벤치 뒤쪽이 긴가 싶어 살펴보나 길 흔적은 없어 남쪽으로 십여미터 더 나아가니 희미한 갈림길이 나온다.
열왕지맥에서 화왕지맥이 분기하는 지점이나 열왕지맥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_@- 이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아래쪽에서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 여느 지맥 분기점 같으면 리본들이 주렁주렁 할텐데 여기는 그런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무에 삐딱하게 걸린 [부곡온천 가는길] 팻말을 하나 떼어 뒷면에다 적어 걸었다. [화왕지맥 분기점]
지대가 너무 평평해 GPS없이는 어디가 어딘지 식별이 곤란하기도 하겠다.
대구매일신문에는 이 봉우리를 질매등으로 표현했다.
살매재 다음의 ‘질매등’(670m)이다. 거기서 ‘화왕산 능선’이 서쪽으로 갈라져나가 토평천의 남쪽 둑이 되는 동시에 다시 여럿으로 분기해 창녕읍·대지면·유어면·장마면·남지읍의 넓은 땅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흔히 ‘열왕지맥’이란 이름 탓에 터무니없이 ‘여래봉’을 주시하게 되나, 실상 이 구간 핵심 지형은 이 ‘질매등’인 것이다. 질매등은 창녕읍·고암면·청도면 세 읍·면이 만나는 ‘삼면봉’(三面峰)이기도 하다.
이 분기봉은 삼면봉이고, 지맥은 창녕군 고암면과 창녕읍의 경계로 시작을 한다. 화왕산에 가서 온전히 창녕읍에 들었다가 구현산 지나 삼성암 갈림봉에서 다시 장마면을 만나는데, 이 갈림봉 역시 창녕-장마-계성의 삼면봉이다. 이 삼면봉부터 5번국도를 만나기까지 우측으로 길쭉하게 들어온 장마면계가 이해가 안되는 그림이다. 무슨 행정구역(면계)를 요따우로 그어놨는지, 현실에 맞게 고칠 생각은 없는지 참으로 한심하다.
다행히 올라 온 길 보다는 덜 뚜렷하지만 서쪽 마루금따라 길이 이어진다. 그래 방금 왔던 길 그대로 되돌아가느니 제대로 마루금따라 밟아보자 싶어 들어갔다. 길 흔적은 뚜렷하다 하더라도 양쪽에서 길을 덮은 풀이며 나뭇가지는 물을 그대로 머금고 있어 건드리면 우수수 뱉아내는 샤워기다.
그나마 절반쯤 내려오니 길 흔적마저 흐지부지 하다가 종내는 없어지고 만다. 그러면 그렇지 올라올 때 길을 못 찾은 이유가 있다. 결국 올라올 때의 등산로 만나는 지점까지 길 흔적이 없고, 올라 갈 때 못 찾은게 당연하다.
칠목재
조찬
07:16 다시 칠목재
올라오면서부터 축축하던 신발은 이제 절벅거린다. 이정표 기둥에 기대앉아 아침을 먹고 간다. 마눌이 싸준 빡빡된장을 밥에 비비고 열무김치를 겻들이니 여름철 산중식사로 더 보탤게 없다. (07:40 출발)
07:48 마루금 합류
칠목재에서 서쪽으로 출발 하면서 산길은 정면의 570봉을 왼쪽으로 피해 비스듬히 올라간다. 어차피 왼쪽으로 꺾이는 봉우리이므로 왼쪽 길을 마다할 이유도 없고 길은 이 길밖에 없다. 보다 유식한 말로 traverse 라 한다지. 비스듬히 오르면서 방화수 인지 물통이 놓여있고 물이 졸졸 흐르는 가는 도랑을 건너 올라서니 봉우리에서 내려온 마루금과 합류한다. [구룡산0.6 부곡온천13.9km] 이정표가 있다.
이제 고도 560에서 740을 올리는 비탈이 기다린다. 울창한 숲속이기도 하지만 뚫린 구멍이 있더라도 온 천지가 허연 구름속이다. 노랑색 철기둥에 굵은 로프가 걸린 비탈을 20분 오르면 구룡산이다.
08:10 구룡산 (740.7m △청도335)
구룡산은 지형도의 명칭은 아니고 현지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이정표 표기도 그렇고 창녕군의 지명유래에도 구룡산으로 나온다. 삼각점과 안내문, 그리고 최근에 세운듯한 자연석의 정상석이 있고 주변은 나무가 둘러싸 조망은 없다.
관룡산 남쪽편은 병풍을 둘러치듯 절벽을 이루고 있고 산등성이가 아홉 개가 있어 구룡산(九龍山)이라 한다.
헬기장 4거리
구룡산에서 내려가면 100m 거리에 녹이 쓴 간판 [화왕산 부곡온천간 등산로]이 보이더니 헬기장인 듯한 넓은 공터가 나오고 길은 사방으로 나있다. 우선 정면길은 [위험 등산로 아님] 팻말이 막고 있고, 왼쪽 길은 [옥천3.1km] 방향이고 리본도 여럿 걸려있다만 옥천리 어디로 내려가는지 모르겠다. 지맥은 당연히 우측 2시방향이다. [화왕산3.4km] 이정표가 가리킨다. 여기부터 길바닥이 더 뺀질뺀질 한걸보니 관룡산 등산로에 들었나 보다.
구룡산에서 관룡산 구간은 지도에서도 확연히 표시가 나듯이 남쪽은 절벽지대다. 옥천리에서 쳐다보면 수려하게 보이는 암봉이 바로 여기다. 등산로는 암봉을 피해 우측으로 돌아 내려간다. 구불거리며 6분 내려오니 거대한 바위 아래 굴이다.
헬기장터 4거리
굴
08:28 바위굴 (680m)
길게 파고 들어간 굴이 아니라 거대한 바위의 한쪽 처마 아래에 옆으로 길게 깊은 공간이 형성된 모습이다. 그 안에 비닐로 만든 움막이 하나 있고 벽면 깊숙한 곳에는 촛불과 향로, 불상이 놓여져 있다.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작은 고랑을 만들어 흘러내린다. 그 공간의 크기로는 지리산 동부 칠암자 코스의 금낭굴 유슬이굴 선녀굴 보다 몇 배나 더 커고 앞에도 밭을 가꿀만한 넓은 터를 갖추고 있어 필시 어떤 유래나 이름이 있을만도 하다.
08:36 관룡사 갈림길
암릉 능선을 우측으로 피해 돌아 내려가다가 능선에 올라서면서 [관룡사1.0km] 갈림길을 만난다. 남쪽 절벽 아래로 굵은 로프로 안전시설을 했다. 수 십년전 관룡사에서 이 길로 올라온 적이 있으나 어떻게 오른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지나온 방향으로 돌아보니 설악의 용아릉 같은 암봉이 구름속에서 잠깐씩 모습을 보여주는데 안내판에는 [병풍바위]라 했다. 길지 않지만 암릉이 이어지고 로프로 안전시설이 되어 있다.
08:47 관룡산 갈림
느티나무 하나가 땅바닥에 뿌리를 거미줄 처럼 드러낸 공터다. 좌측 몇발치에 관룡산 정상이고 화왕산은 우측이다.
[←관룡사 1km]
병풍바위쪽
여로
[←관룡산 화왕산→]
관룡산
08:48 관룡산 (觀龍山 ×754m)
넓은 헬기장터가 관룡산 정상이다. 최근에 놓은 듯한 바닥 기초 시멘트가 덜 마른 정상석이 있다. 산은 밖에서 봐야 제대로 보이는 법이라, 헬기장 한가운데 서봐도 도무지 산세가 느껴지지 않는다.
관룡사를 지을 때, 용이 등천 하는 것을 보았다 하여 절 이름은 관룡사, 산 이름은 관룡산으로 불렀다 한다. 고암면 감리와 경계를 이룬다. 굴덤의 동쪽이다. 정상 남쪽편은 병풍을 둘러치듯 절벽을 이루고 있어 이곳을 구룡산(九龍山)이라 하기도 한다.
[창녕 빛벌문화]에 이곳 경치를 노래한 시가 있다.
적적송림 찾아들어 청계에 목욕하고 장송을 차일삼아 석경에 앉았으니
관룡의 종성은 구름밖에 들려오고 고산 구룡에는 운금이 자욱하다
인왕대문 들어서니 천년고찰 옥천폐사 풍경소리 가냘프고 목탁소리 처량하다
웅장한 대웅전은 옛것이 분명하고 약사전 지붕에는 신라기와 얹혀있다
척촉을 짓밟으며 송간세로 올라가니 낙락절벽 연대위에 천년전 고석불이
태연히 앉아서 이 세상을 웃는고야 구백홍진 어디가고 잠간 우화하는 도다
옥천사는 옥천리 관룡사 아래쪽에 그 터가 남아있고 창녕군 기록을 보면,
옥천사(玉泉寺) 터
관룡사 들어가는 입구 옥천리 산 293 번지에 있는 터로 약 800평이 되는데, 고려 때에 옥천사가 있었던 자리이다. 석축과 주춧돌, 연화대석, 석탑재, 석등의 하대, 옥개석 등 석조물들이 남아있다. 축석의 크기를 보면 사찰의 규모 또한 컸으리라 짐작된다. 이 절에서 고려 말 신돈이 태어나 공민왕의 신임을 얻어 고려 왕조의 중흥을 꾀하다 죽었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玉泉寺 在火旺山南高麗辛旽母乃此寺婢也旽誅寺廢後改創未旣以旽之故復有論列者撤去
기록을 보아 옥천사가 없어지게 된 것은 신돈의 일로 인한 것인데 그 후 절을 다시 지으려하다가 역시 신돈의 일 때문에 재건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임진란 때에 불이나 페허화 되었다고 한다.
삼거리로 되돌아나와 북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운데 물고랑 처럼 움푹 패인 길이다. 길은 더 넓어졌고 내리막이 다하면 넓은 공터의 임도 삼거리다.
09:07 옥천삼거리 임도
좌로 옥천, 우로 청간, 정면 화왕산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로 포장은 안되었지만 아주 양호한 임도라 승용차도 얼마든 다니겠다만 아래쪽에서 통제를 한다. [화왕산-부곡온천간 등산로] [화왕산 군립공원 안내도]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옥천쪽에서 아저씨 한분이 라디오 소리 내며 올라온다. 반가운 생각에 인사를 했더니 라디오에 나오는 소리는 목사님 설교방송이다.
지맥 마루금은 임도 건너편에서 바로 숲을 헤치고 능선으로 올라야한다만 젖은 신발은 숲길을 외면한다. 안그래도 자타가 공인하는 임도파인 내가, 전에 안 가본 길도 아니고, 젖은 풀숲을 헤칠 이유가 없는 바라. 긴말 않고 임도행이다.
장금이 집
마루금과 100여m 간격을 두고 평행으로 가는 임도다. 오르막으로 가다가 고개를 넘으면 화왕산성의 모습이 보이면서 초가집을 만난다. 드라마 허준과 대장금을 촬영한 세트장이다. 한복을 입은 장금이(이영애) 그림이 붙어 있는지라 나는 ‘장금이 집’으로 알고 있는데 앞에는 약수터도 있어 하루 묵어가기에 그저그만이다. 공식적으로야 허용이 안되겠지만 살짜기 들어와 죽은 듯 자고 가면 누가 알겠노. 장금이네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젖은 양말 짜내고 간다.
09:47 화왕산성 동문
옥천임도 삼거리에서 장금이 집까지 온 만큼 더 가면 화왕산성 동문이다. 금정산 동문처럼 누각이 있는게 아니라 성벽이 뚫린 통로다. 안으로 들어서면 우측으로 화왕산 정상부가, 왼쪽으로는 배바위 봉우리가 둘러싼 가운데 움푹하게 꺼진 분지에는 문화재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다. 왼쪽 성벽을 따라가면 배바위로 바로 질러가고 우측으로 올라가야 화왕산 정상이지만 역시나 나는 한가운데 길 ‘서문’을 향해 간다. 아래쪽에 울타리를 두르고 모셔진 바위가 창녕조씨 득성비다.
창녕조씨 득성
창녕 조문(曺門)의 시조 탄생과 득성(得姓)유래를 살펴보면 시조의 모(母)는 신라한림학사 이광옥(李光玉)의 따님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속병으로 치병을 앓았으나 백약이 효험없어 신음중에 주위로부터 창녕 화왕산용지(火王山龍池)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기도드리면 효험을 본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지성으로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안개가 자욱이 일어 백주(白晝)임에도 주위가 캄캄해지면서 물속으로 끌려들어가는 몽롱한 지경에 빠져들었다가 얼마 후 정신을 차려 집으로 돌아온 그로부터 속병은 씻은 듯이 나아지면서 태기(胎氣)가 있어, 그 뒤 아들을 낳았는데 겨드랑이 밑에 "曺"(조) 자와 같은 글무늬가 새겨져 있었을 뿐 아니라 꿈에 장부가 나타나 "나는 동해신룡(東海神龍)의 아들 옥결인데 이 아이의 아비이다"하면서 "이 아이를 잘 기르면 크게는 공후(公侯)가 될 것이고 적어도 경상(卿相)은 틀림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신라 진평왕(眞平王)께서 이광옥으로 부터 전해 듣고 왕(王)이 기이하게 여기어 아이를 직접 접견하고 보니 과연 풍모가 특이하고 겨드랑이 밑에 "曺"(조) 자와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음을 보고 성을 "曺"(조) 라 사성(賜姓)하고 이름을 용지(龍池)에서 동해신룡의 정기를 이어 받았다하여 "계룡(繼龍)"이라 지어주었다 한다. 그로부터 장성하여 신라 진평왕의 부마(駙馬)가 되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용지 근처에 높이 2.4M의 자연석에다 『창녕조씨득성지지(昌寧曺氏得姓之地)』를 새겨 두었다.
동문
화왕산성 (왼쪽 배바위, 오른쪽 화왕산 정상)
서문
산성 안쪽은 전부 억새밭이다. 수년전(2009) 정월 대보름날 연중행사로 이 억새를 태우다가 바람을 잘못만나 배바위쪽에서 일곱의 목숨이 억새와 함께 타버렸다. 그 후로 억새태우기는 중단되었지만 사람들 즐기기 위한 눈요깃거리로, 혹은 풍년을 기원하는 풍습도 있었다지만 이 넓은 산 비탈을 다 태우면 이 속에 함께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은 어찌되는건가. 일곱 목숨 태우기 전에 진작에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
09:56 서문
동문에서 서문까지 산성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거리는 440m다. 물이 졸졸 흐르는 길에는 개구리 폴짝 뛰고 메뚜기 날아다닌다. 서문 역시 별스런 문(gate)이 있는게 아니라 자하곡으로 내려가는 통로다. [자하곡매표소 2.4km]
화왕산으로 올라간다. 이 길은 아침에 분기봉 찍으러 올라갔던 것처럼 도로 내려와야 할 길이다만 어찌 화왕지맥에서 화왕산을 빼먹으랴. 더구나 [정상0.2km]밖에 안되는 거리다.
화왕산 북쪽면
10:04 화왕산 (火王山 △755.8m)
화왕지맥의 이름을 만든 산이고 지맥 최고봉이다. 산경표와 대동여지도 모두 火王山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현 지형도에는 火旺山l이다. 글자 그대로 ‘불이 성한 산’이라 해마다 불을 질렀나. 정상석 뒤쪽에 불룩 솟아오른 삼각점은 너무 닳아 글자(번호)를 읽을 수 없다. 멀리로 비슬산, 가야산이 보인다지만 오늘 날씨는 먼 시야를 열어주지 않는다.
저번에 종호와 왔을 때는 날파리들이 얼마나 끓어 대는지 숨도 제대로 못 쉰 기억이 있는데 오늘은 깨끗하고 잠자리 떼만 한가하다, 지리산에도 한 때 왕파리 떼의 소탕을 천적(잠자리)을 이용해 퇴치를 했다카던데 여기도 잠자리들이 파리를 다 잡아 먹은건지.
다시 올라 왔던 길 도로 내려간다. 시각이 이쯤되면 올라오는 사람도 있을 법 한데 어찌 이리도 사람이 없나 하다가, 오늘이 금요일에 평일 날 백수짓 한다는 생각을 깜빡했다.
서문을 지나 다시 배바위로 오름이다. 성벽을 왼쪽으로 피해 돌아가는가 싶더니 여기도 문화재 발굴한다고 줄을 쳐놨다. 중간쯤 오르니 창녕읍내를 덮고 있던 구름이 걷히며 사람사는 세상이 보여진다. 잠깐씩 내밀던 햇살도 사정없이 내리쏘니 팔뚝에 토시를 차야겠다.
배바위 이후 동쪽으로 뻗는 능선 : 맨 뒤 능선 너머에 비들재
배바위
배바위 상단부의 홈 : 안에 뭐가 꼼지락 거린다.
영취산
관룡산, 구룡산
10:30 배바위
“예전에 대 홍수가 났을 때 배를 묶었다고 배바위라...” 안 봐도 비디오다. GPS의 고도는 화왕산 정상이나 여기나 비슷하게 찍힌다. 사람이라고는 없는 지경이라 바위 위로 올라섰다. 바위 꼭대기에 금정산의 금샘 처럼 움푹 파인 홈 안에 고인 물은 어제 내린 비라 치고, 그 안에 꼬물거리는 생물들은 뭐냐. 하늘에서 내려왔나 이 물이 마르면 니들은 어찌 살아 갈거라고 그 안에서 놀고 있노.
남쪽으로 이어지는 산길도 눈에 익다. 제작년 가을에 종호와 삼성암에서 여기로 올라왔으니 그리 먼 기억도 아니다. 건너편 봉우리에는 무선중계소와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다음봉에는 철주에 ‘등산로표시등’ 이라 적혀있는데 밤에 불이 들어오는가 모르겠네. 내려가면 우측으로 [자하곡 매표소 2.8km]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다.
11:03 鳩峴 (683m)
×753봉을 넘으면 지형도의 구현(鳩峴)인데 고갯길은 보이지 않는다. 비둘기 구자에 고개 현, 우리말로 비들재가 되는데 비들재는 아직 멀었다. 비들재에서 올라가면 구현산인데 이게 또 ‘비들재산’ 아닌가. 그렇다면 고개 흔적도 없는 이곳의 鳩峴 표기는 아무리봐도 잘못된 걸로 보이니, 비들재로 옮겨 한데 묶어야 쓰겠다. 조선지형도(1917)에는 현 비들재 위치에 鳩峴이 표기되어 있다.
×723에서 우측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서쪽으로 뻗는 능선을 타고 자련골로 떨어지겠다. 지맥은 왼쪽 급한 내리막 길이다.
680쯤 되는 봉 오르기 직전 왼쪽으로 갈림길이 있어 살짝 돌아가는가 싶어 들어가 보니 자꾸 어긋난다. 이 길은 옥천리 관룡사 입구쪽으로 떨어지는 길이겠고, 지맥은 680봉을 바로 올라서야 된다. 돌아나와 올라가니 마사토 깔린 바닥에 여러 형상의 방굿돌이 놓인 봉우리다. 배낭 내리고 양말을 한 번 더 짠다. 여기서 서쪽으로 갈라지는 능선이 화왕산에서 보이는 ‘만물상’ 같은 바위로 이루어진 그림같은 능선이다.
양말 벗어 널고 신발 깔창을 빼 햇살에 노출시켜 보지만 10여분 앉아 있는다고 이게 마르겠나. 커피 한잔 타 마시고 떡 조각 몇 개 먹고, 젖은 양말 도로 신고 내려간다. 몇발 내려가니 넓은 헬기장이다.
헬기장
오래 묵은 보도블럭이 헬기장이었음을 말할 뿐 휑하니 넓은 터만 남았다. 이 능선상 유일한 공터가 아닌가 싶다. 이제 비들재를 향한 내리막이다. 내려가면서 왼쪽 나무 사이로 멀리 노단이저수지가 보인다. 직선으로는 얼마 되지도 않을 거리를 빙빙돌아 왔단 말이지. 바닥에 깔린 그늘사초가 바람이 부는 모습을 보여준다.
배바위에서 보는 화왕산 : 맨 왼쪽이 정상
창녕읍
나아 갈 능선
680봉
비들재
12:00 비들재(400m)
옥천에서 창녕읍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옥천리의 주소가 창녕읍이라 면계를 살펴보니 이게 요상하다. 옥천리에서 옥천저수지 아래 골짜기로 뚫린 길은 옥천저수지 둑에서 계성면계와 접하고 있다. 그러니까 옥천리에서 읍사무소에 가려면 현재 나있는 아스팔트 도로를 이용하여 계성면을 지나고, 오늘 구간 마치는 여초주유소 앞에서 장마면을 거쳐야 비로소 창녕읍으로 들어간다. 남의 면 땅을 밟지 않으려면 비들재로 넘어가야 하는데 차를 타고 넘지는 못하겠다.
행정구역도를 보면 옥천리는 창녕읍에서 산(화왕지맥) 넘어 갇힌 마을이다. 그래서, 창녕군 내에 옥천이 두 곳이 있는데 이곳은 산 가운데 있어 ‘산옥천’으로 부르고 이방면 옥천리는 들 가운데 있어 ‘평옥천’이라 부른단다.
700이 넘는 봉우리에서 400까지 떨어졌고 이제 다시 올려야 하는데 그나마 구현산이 600이 안되긴 하지만 산행 후반부에 들고 보니 다리씸이 아침 같지 않다. 그렇다고 여기서 끊고 임도따라 옥천으로 내려가느니 구현산을 넘겠다. 발뒷꿈치가 따끔거리긴 해도 구현산만 넘으면 거의 내리막 길만 남는다.
그리 급하지 않은 오름이라 나 역시 급하지 않게 들숨 날숨에 왼발 오른발 맞춰가며 느긋하게 오른다. 530쯤 되는 봉에서 살짝 내렸다가 급격하게 솟구친다. 그런데 여기서도 왼쪽으로 조은 길이 보여 혹시나 봉우리 생략하고 질러가나 싶어 따라 들어갔다. 전에 본 구현산은 이렇다할 멋도 없는 봉우리라 그냥 지나도 좋다는 생각으로 돌아갔는데 동쪽으로 내려가는 능선에 이르고는 곧바로 정점을 향해 치켜 오른다. 아마도 안부에서 정면으로 오르는 길은 없나보다.
비들재 이후로 길 사정이 다소 나빠졌고 구현산 정상부는 돌투성이라 오르기가 까탈맞다. 조망이 되는데가 여러군데 있어 여러번 숨을 달랠 수가 있다. 동으로 놋단이저수지, 북으로 지나온 능선에 관룡산은 내가 저기서 왔나 싶을 정도로 멀어졌고, 비들재를 넘어 창녕읍으로 내려가는 임도가 보인다.
옥천리, 노단이저수지
비들재에서 창녕읍으로 내려가는 임도가 보인다
12:31 구현산(鳩峴山 ×579)
비들재(鳩峴) 위에 있어 구현산인가. 고마 한글로 ‘비들재봉’으로 같이 맞추지 그랬나. 나무 팻말은 반토막 난 채 나무에 묶여있고 자연석에다 ‘구현산’이라 쓴 정상석이 참하게 보이긴 한데 기반공사 없이 세워놓아 성질 더러븐 넘 만나 걷어차이기라도 하면 굴러 가겠다.
구현산에서 서쪽으로 분기하는 산줄기에 쌍교산(△469.5m)이 있는데(1.5km) 남쪽 삼성암 분기봉에서 우틀하면 쌍교산을 지척에서 보며 내려가게 된다.
구현산을 지나가면 이게 또 그냥 이어지는 능선이 아니라 80미터 가량 떨어졌다가 다시 오른다. 좌우로 희미한 길 흔적이 있는 안부인데 지도를 보면 동쪽 옥천리에 ‘고도방지’라는 지명이 눈에 띈다. GPS 달아매고 고도에 민감한 내게는 신기한 이름이다.
고도방지(古道坊)
담안의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옥천저수지 위에 있다. ‘옛길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고도방으로 쓴다. 11호가 살고 있으며 달성서씨 세거지다.
오름길은 거리 급하지 않다. 돌아보이는 구현산은 소뿔처럼 홀로 솟았고, 왼쪽으로 보이는 쌍교산은 넓은 밥상처럼 보인다.
돌아 본 구현산
쌍교산
좌: 삼성암 / 우: 지맥
13:00 삼성암 갈림봉 (556봉)
창녕 계성 장마면이 만나는 삼면봉이고 마사토 바닥에 소나무 숲속의 작은 공터일 뿐 별다른 특징이라고는 없다. 우측으로 틀어 서로 향하면 지맥은 계성면계를 따라가고 장마면계는 1시방향으로 갈라진다. 즉, 능선길은 계성면계 계곡으로 내려간 물길은 장마면계가 된다.
지난번 여기를 지날 때는 10월 달이라 송이철이었던지 송이 지킴이를 만났었다. 송이하면 영양, 청송이나 강원도겠지만 남쪽에서는 옥천송이 또한 한 이름하는 갑따. 서쪽 능선에 들면서부터 왼편으로 녹쓴 철조망이 이어진다. [산주외 출입금지] 팻말이 낡을대로 낡았다.
준희님이 붙인 [석대산, 큰갓길산, 우실등 가는길] 팻말이 반겨주는데 석대산은 어디를 말함인지 모르겠다. 옛지도는 물론 오만 지도 다 뒤져도 석대산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부산일보 개념도에 삼성암 갈림봉(556봉)을 석대산으로 표기한게 있는데 근거는 없다.
지형도에는 삼성암 갈림봉(556봉)부터 5번국도까지 지명이나 고도표기가 전무하다. 556봉에서 서쪽 130m 거리에 있는 암봉이 여기보다 조금 더 높아 보이는데 이걸 석대산이라 함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봉우리는 일부러 애써 올라가면 몰라도 길은 암릉을 피해 우측으로 비켜간다.
왼쪽 봉우리가 석대산인가...
13:40 묵은 헬기장
GPS 고도로는 440이 나오고, 내 키 만한 소나무가 빼꼭히 들어찬 가운데 바닥에 밟히는 보도블록이 한 때 헬기장이었음을 말해준다. 우측으로는 쌍교산이 지척이고, 왼편으로는 계성천 건너 영취산이 역광으로 날카로운 능선을 보여준다.
헬기장터를 지나면 산길은 계속 내리막질 친다. 고도가 300대로 떨어지고 소나무 빽빽한 풀밭길이다. 진작부터 차 소리는 요란한게 산길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려준다.
비탈이 완만해 지면서 뚜렷하던 길도 없어지고 만다. 풀숲 빈데를 골라 이리저리 돌며 벌목 덤불을 피해 내려오니 자꾸 우측으로 쏠린다. 면계선과 맞추려 왼쪽으로 옮겨가며 내려오니 편편해지면서 다시 길이 나타난다. 우측으로 숲이 뚫리며 5번국도와 고속도로가 보인다. 국도와 고속도로 사이에 있는 지계소류지 우측으로 고속도로 아래 뚫린 구멍(굴다리)이 보인다.
어수선... 길이 없어졌다.
뚜렷한 선이 구마고속도로, 아래쪽 5번국도
가운데 왼쪽 소류지 옆에 고속도로 통과할 굴다리가 보인다
남통고개
5번국도
14:20 남통고개 (5번국도)
끝까지 마루금을 고수하려니 산길이 너무 피곤하다. 우측 밭을 통해 도로에 내려섰다. 신설 5번국도 옆의 마을길이다. 우측으로 내려가 여초주유소 앞에서 택시를 불렀다.
여초주유소에서 놋단이 마을까지 거리는 10km 남짓인데 택시비는 2만원을 달란다. 조금 비싼 감이 들지만 첩첩산골임을 고려해 긴말 않고 지불했다. 차를 몰고 놋단이저수지 옆길 심명골로 조금 올라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씻고 집에 오니 마눌님과 약조한 다섯시에 5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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