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 이렇게 준비하라] [1] "학원에서 대필(代筆)한 자기소개서 큰 낭패볼 것"
특별좌담
다소 투박하더라도 성장 과정 솔직히 표현을
특목고 출신 우대안해 대학별 비율 공개 추진
9일부터 대입 수시 원서접수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대입 시즌에 돌입했다. 이번 수시모집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입학사정관제다. 지난해 40개 대학에서만 실시한 입학사정관제는 올해 87개 대학으로 확대됐으며, 2학기 수시모집에서는 총 선발인원(22만7000여명)의 10%인 2만2000여명을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한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과 학생·학부모들은 여전히 "입학사정관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전형인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입학사정관제가 공정하게 운영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하다.
조선일보는 대학입시를 관장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와 공동으로 수험생들이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특집을 기획했다. 그 첫 회로 이배용 대교협 회장(이화여대 총장)과 이주호 교과부 차관, 이원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고3 학부모 김주연(43)씨가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좌담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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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대입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좌담회가 9일 조선일보·대교협 주최로 열렸다. 왼쪽부터 이주호 교과부 차관,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 고3 학부모 김주연씨, 이원희 교총 회장./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학원에서 준비하면 불이익 받는다"
김주연=큰아이가 인문계 고3인데, 입학사정관제에 원서를 내도 될지 모르겠다. 수능·내신 공부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하지만, 특목고 학생들이나 외국을 순회하며 '스펙'을 쌓은 아이들에 밀려 잠재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이배용=입학사정관제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보는 제도다.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성이나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 성장 잠재력을 보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무엇을 새로 준비하기보다는 자기가 어떻게 주도적으로 교과·비교과 활동을 해왔는지를 정리해서 자신의 성장 잠재력을 자기소개서에 정확히 기재하는 게 필요하다.
이주호=사실 입학사정관제는 공교육을 바꿔서 교육을 살리자는 취지인데, 교육내용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입시가 이뤄지다 보니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당장 점수 체제에서 과소평가받는 학생들에게는 잠재력·창조성을 보는 입학사정관제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수능과 내신을 중심으로 대학에 지원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 특성에 따라 잘 선택해서 준비해야 한다.
이원희=입학사정관제의 본질은 학교 활동을 충실히 하고 열심히 한 아이들이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는 제도일 것이다. 문제는 점수뿐 아니라 특징을 반영하다 보니, 사교육 전문 기관에서 '스펙'이나 자기소개서 등을 전문적으로 만들어준다며 학생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사교육업체에서 체육관을 빌려 대규모 입시설명회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주호=그래서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이 사교육을 유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입학사정관 연수 때도 이 부분에 중점을 뒀다. 연수과정에 모의평가라는 게 있었다. 입학사정관들은 학원에서 대필(代筆)한 '자기소개서'를 가려내는 훈련을 받고 있다. 개별 대학에서도 사교육을 걸러내는 방법을 갖고 있다. 사교육 기관을 거쳐서 입학사정관제에 응시하면 정말로 큰 불이익이 있을 것이다.
이배용=사교육을 거치면 오히려 낭패를 볼 것이다. 대학들은 전문적인 사교육 기관에서 매끄럽게 만들어놓은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투박하더라도 학생이 학교 교육을 받은 과정이 진솔하게 표현돼 있는지를 보겠다. 사교육 기관에서 준비한 학생들을 걸러내기 위해, 전문가들을 불러 입학사정관과 교수 사정관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특목고 우대 없을 것"
김주연=고1인 둘째가 다니는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입학사정관제는 일반고를 위한 제도가 아니니 수능점수를 올리라"고 하셨다. 엄마들끼리는 특목고 학생들에게만 유리한 제도가 아니냐며 불안해한다. 첫째가 입학사정관제 서류를 준비하려고 했더니, 학교마다 원하는 인재상이 조금씩 달라서 그때마다 다시 작성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이배용=일반고나 특목고 중 어느 누구도 유리하고 불리하지 않다. 대학마다 맞춰서 자기소개서를 다시 쓴다고 하셨지만, 대학은 억지로 인재상에 맞추는 학생들보다 자신을 잘 알리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본다. 예컨대 굳이 '리더십'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동아리에서 위기가 있을 때 이런 역할을 해서 잘 풀어갔다"는 식으로 쓰면 되는 것이다.
이주호=특목고 부분은 앞으로 대학정보공시시스템에 신입생 출신고교 유형별 비율을 공시하게 하겠다. 신입생 중 특목고 비율이 공시되면, 입학사정관 제도로 특목고 늘리는 것은 공시 때문에라도 힘들어질 것이다. 하버드대학도 그렇지만 좋은 대학이란 특정 학교 출신이 아니라 다양한 학교의 학생들을 뽑은 곳이다. 이번에 카이스트도 다양한 학생들이 입학하니까, 교수님들이 좋아한다고 들었다.
김주연=대학들 설명회를 가면 학교 자랑만 한다. 학부모들이 궁금한 것은 내 아이 점수로 갈 수 있을까, 뭐가 모자랄까, 내 아이의 특성을 학교가 좋아할까 등이다. 그런데 대학 설명회는 이런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학부모들은 "몇 점이면 간다"고 얘기하는 걸 듣고 싶으니까, 사교육업체 설명회에 가는 것이다.
이배용=그래서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는 것이다.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점수에 맞춰 대학 가는 게 아니라, 나와 잘 맞는 대학으로 가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대교협 차원에서도 더욱 친절하고 정확하게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홍보에 나서겠다.
◆"공정성 확보 위해 노력할 것"
이원희=80여개 대학마다 각기 다른 인재상을 내놓는데, 학교 현장에서는 제대로 해본 적도 없어서 입학사정관제 준비 과정이 다소 버겁다. 입학사정관제가 고교 교육 정상화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홍보해왔지만, 고교 선생님들은 복사하고 자료 찾느라 업무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이주호=업무 증가 부분에 대해서는, 교원전문성 제고 방안의 일부로 행정 담당하시는 분들을 전문화시킨다든지 해서 어떤 식으로든 학교를 재구조화하고 문제를 해결하겠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공교육이 변해서 입학사정관제의 꽃을 피워야 한다. 과거에는 '점수 경쟁' 때문에 학교에서 못하던 독서·인성교육이 입학사정관제에서는 평가받을 수 있다.
이원희=입학사정관제 도입하면 대학에 지원금을 주다 보니까, 너무 빨리 늘어난다는 느낌이다. 입학사정관이 과연 학생들 서류 분석을 철저히 공정하게 하실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배용=입학사정관제 전형에 참여하는 인원은 훨씬 많다. 이화여대만 해도 전임 입학사정관은 15명이지만, 교수들이나 전직 교장·교사를 풀가동해서 사정관이 100명이다. 모두들 입학사정관제가 사회적인 관심·초점이 돼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윤리성이나 공정성이 무너지면 전체가 다 무너진다는 것을 인식하고, 굉장히 긴장한 상태에서 옷깃을 여미고 노력하고 있다.
조선일보 2009.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