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뭇했던 여름날의 추억을 만들며
어제(2009. 8. 2) 일요일 오후, 남자들끼리는 자주 보는 동기생(‘오도리’라는 모임)들이 오랜만에 부부동반으로 모였다.
지난 번 아들 공진이의 결혼 축하에 대한 감사의 인사로, 점심을 대접하기 위해 우리가 초대를 한 것이다.
우리 식구까지 모두 여섯 쌍인데, 한 사람은 부인이 바쁜 관계로 혼자만 오고, 한 사람은 시골에 급한 일로 가게 되어 부인만 참석하니 모두 열 명이었다.
본래는 물이 있는 조그만 계곡의 정자에서 모이려고 했는데, 계곡의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그냥 우리 집에서 모이게 되었다.
이 날의 주 메뉴는 꼼장어구이였다.
꼼장어는 하루 전날인 토요일에 통영에서 택배로 보내온 것인데, 애초에 우리는 양념이 다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꼼장어를 손질만 해서 보낸 것이라 우리가 양념장 등 모든 준비를 해야만 되었다.
집사람도 처음 해보는 것이라 걱정이 된다고 했지만, 어쨌든 일은 벌여놓은 것이고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만 되었다.
일요일 아침에 집사람과 함께 둘이서 준비에 들어갔다. 인터넷에서 양념장 만드는 법을 찾아서 양념장을 만들고, 꼼장어구이나 볶음을 찾아 설명된 대로 대충 만들어 시식을 해보니 제법 먹을 만하다.
이젠 됐다싶어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갔다.
나는 평소 음식 만드는데 거들어주는 법이 없이 집사람 혼자 다 해왔는데, 이날만큼은 손이 부족해서 나도 거들 수밖에 없었다. 약간 데쳐진 장어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잘라진 장어를 양념장에 버무리고...
오랜만에 집사람을 도와 음식 준비하는 것을 거들어주니, 나도 집사람도 모두 기분이 좋아진다.
옛날 어릴 적에는, 내가 집안의 막내라 어머니께서 식사 준비하는 것을 가끔 도와드리고는 했었다. 감자 껍질을 벗기거나, 파를 다듬거나, 호박순을 손질하거나, 김에 들기름을 바르고 소금 뿌리기, 불 때기 등, 간단하지만 손이 필요한 일들이었다.
간혹 칼국수, 수제비, 만두를 만들 때는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기도 하였다. 명절 때는 식구들 모두가 모여앉아 송편을 만들거나 가래떡을 썰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부모자식 간에, 또는 형제간에 대화가 오가고,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보통 음식은 주부가 혼자 도맡아 하고 아이들에게는 일을 시키지 않으며, 손님을 치룰 때는 외식으로 때우니, 부모와 자식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서 대화가 부족하고, 이에 따라 소통도 원활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오후 두 시가 되어 사람들이 모이고, 가족들은 오랜만이니 더욱 반가워하고, 준비된 꼼장어구이에 더불어, 시골에 계신 장인장모님께서 직접 재배하시고 담근 복분자주를 곁들이니 안성맞춤이 되었다.
비록 장어구이 전문점에서 먹는 것에 비하면 모양이나 맛이 모자랄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직접 준비하고 요리했다는 것이 마음을 더욱 흡족하게 해주었다.
식사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중에, 저녁에는 요즘 화제인 ‘해운대’ 영화를 보러가기로 하였다. 한 명은 나중에 아이들과 보기로 되어있다고 하여, 아홉 명이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하였다. 인터넷에서 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8명까지 밖에 예약이 안된다고 하여, 내가 자전거를 타고 영화관에 가서 9명분 표를 사 가지고 왔다. 우리 집에서 영화관까지는 5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영화를 보러가기 까지는 몇 시간 동안의 여유가 있어서, 가족들은 2층(한의원)으로 내려가 물리치료, 휴식, 담소, 수면 등을 취하고, 남자들은 영화비를 조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통의 화엄경 법회(동양화 감상이라고도 한다)를 가졌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모두 함께 영화관으로 향했다. 이 모임에서는 예전에 ‘친구’라는 영화를 부부 동반하여 단체로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 실로 몇 년 만에 다시 맞는 부부동반 영화관람이었다.
원래 친구들과 무리지어 하는 행동은 가벼운 흥분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보통인데, 오늘은 집사람들까지 동행하여 문화생활을 즐기게 되었으니 모두들 기분이 유쾌하고 고조된 느낌이었다.
오십이 훨씬 넘은 나이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거대한 팝콘을 잔뜩 사서 들고 다니며 먹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도, 친구들과 어울린 덕분이 아니겠는가?
‘해운대’라는 영화는 인터넷에서 이미 화제만발인 영화이다.
이제 개봉한지 10여일 되었는데, 벌써 400만의 관객이 관람했다고 하며, 한국 최초의 재난 영화라고도 하고(내 기억에는 다른 재난 영화도 있었던 듯한데), 멜로 위주에 재난이 가미된 것이라고도 하고, 컴퓨터그래픽이 잘되었다, 못되었다 말도 많은 영화이기도 하다.
어쨌든 영화의 주요 배경이 우리가 사는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우리 집은 해수욕장에서 도보로 10여 분 거리)이기에 더욱 관심이 가기도 하였으며, 과연 영화 속의 쓰나미가 우리가 사는 곳 까지 덮칠까 하는 것도 흥미꺼리 중의 하나였다. 오늘 모인 여섯 동기생 중에 세 명이 해운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가는 것도 있을 터이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낯익은 배경이 펼쳐진다. 해운대해수욕장과 미포, 그 주변의 건물들, 해운대 시장통 거리, 동백섬에 있는 누리마루, 광안대교 등, 모두가 낯익은 곳이다.
영화는 코메디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곳곳에서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해수욕장 뿐만 아니라 야도(야구도시)로서의 면모도 유감없이 보여준다. 롯데의 이대호 선수도 우정 출연(?)했다. 비록 고역스런 배역이기는 해도...
영화는 재난 영화이기 이전에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저런 모습으로 갈등하는 상황과 그리고 애틋한 사랑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쓰나미라는 재앙이 없었다면 영원히 갈등 속에 지냈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메가 쓰나미라는 크나큰 재앙 속에서 인간적인 사랑을 되찾게 되는 모습도 그려진다. 그리고 너무나 영화적이고 교육적이기에 약간 어색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휴머니즘 같은 요소가 있기에 어린이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가족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내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을 던져 인명을 구하는 항공구급요원(소방관), 조카와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었음에도 위기에 처한 조카를 사력을 다해 구하는 구청장, 위 두 사람의 최후의 장면이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으며, 또한 눈물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특히 전자(항공구급요원역 : 인터넷에서 보니 배우 이민기라고 하던데, 나의 조카와 많이 닮았다)의 경우, 자신의 연적이자, 자신을 괴롭힌 사내를 위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장면이 이 영화의 최고 포인트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가 매우 잘 만들어졌다는 평을 하였으며, 나 또한 이 영화를 천만 명 정도는 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 섞인 말을 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 덕분에 오늘의 우리 모임이 더욱 소중한 추억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 한 가지 에피소드를 곁들이자면, 이 영화에 우리 동기생이 엑스트라로 출연하였다. 우리 동기생 중에 정종덕 동기생이 부산시 소방항공대장으로 근무하는데, 이 영화의 촬영에 많은 협조를 하였으며, 본인도 비록 엑스트라지만 화면에 서너 번 보였다.
이 영화에 나오는 소방항공대의 모습이 정종덕 동기생이 항공대장으로 근무하는 곳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 영결식장에서 고인들에게 거수경례를 하며 지휘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