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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다나오는 미지의 섬이다. 피라미드 모양으로 해발 3천여미터를 솟구쳐오른 화산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울창한 열대우림, 빠른 속도로 정글 사이를 흐르는 강물이 만들어낸 크고 작은 폭포들, 망그로브 나무가 우거진 늪지대는 탐험 정신으로 무장하고 미지의 세계를 찾아나선 관광객들을 매료시킨다.
민다나오는 원시의 섬이다. 전 세계가 하나로 이어진 오늘날과 같은 첨단의 세상에서도 민다나오에는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원시섬이 남아 있다. 흔히 문명과 동떨어져 고립된 원시생활을 하는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곳으로 아마존강 상류와 파푸아뉴기니 섬 등이 꼽히거니와 그런 곳마저도 이미 내부적으로는 문명화되고 관광지로 뒤바뀐지 오래다. 그러나 민다나오에는 지금도 석기를 사용하며 동굴 생활을 하는 ‘지구 최후의 원시부족’ 타사다이족이 남아 있다. 이들 부족 27명이 코타바토 주의 밀림에서 처음 발견되었을 때 전 세계는 석기시대와 똑같은 방법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경악했다. 타사다이족이 수만년 동안 변함 없는 생활을 해오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이 외부세계와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7천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에서 민다나오는 루손섬 다음으로 큰 면적을 가지고 있다. 지도를 보면 북부의 루손과 남부의 민다나오 두개의 큰 섬 사이에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이 들어차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크기는 크지만 민다나오는 아직도 필리핀에서 가장 오지이고 변방이다. 필리핀을 식민 통치한 미국인들은 민다나오를 가리켜 와일드 웨스트, 즉 미국 개척시대의 거친 서부와 비교하곤 했다.
민다나오의 분위기는 필리핀의 다른 섬들과 크게 차이가 난다. 그것은 이 섬 주민들이 이슬람 교도이기 때문이다. 민다나오의 주민은 대부분 무슬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필리핀 무슬림 대부분이 민다나오 섬에 살고 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민다나오를 비롯한 술루 해의 여러 섬에 이슬람 신자들이 몰려든 것은 14세기가 끝나갈 무렵의 일이다. 처음에 남지나해를 오가는 무역상들을 따라 이슬람교가 퍼져나가다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지아의 회교도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해오면서 민다나오는 급속도로 이슬람화 되었다.
1565년 스페인 함대의 미구엘 레가스피가 도착했을 때 이 지역 전체는 이미 완전한 이슬람 지역으로 변해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의 도래로 이슬람 세력의 북상이 중단되면서 수도 마닐라가 위치한 루손섬 등 다른 지방에선 기독교가 자리를 잡았지만 민다나오 섬만은 유일하게 이슬람 권역으로 남게 되었다.
민다나오의 무슬림은 스스로를 모로라고 부른다. 모로는 스페인 사람들이 8세기에 에스파냐를 정복했던 무어 회교도를 연상하며 붙여준 이름이다. 처음에는 업신여기는 의미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으나 지금 민다나오의 무슬림들은 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긍지로 삼는다. 이들 모로들은 민다나오 섬을 자신들의 성지로 여기고 자치권을 획득하기 위해 오랜 세월동안 필리핀 정부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왔다. 필리핀으로부터의 정치적 분리독립을 지향하는 모로민족해방전선(MNLF),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의 두 그룹과 특히 MILF의 배후지원을 받는 강경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인 아부사야프 반군은 민다나오를 이슬람 국가로 독립시키기 위해 강경책도 불사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안정이 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다나오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민다나오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은 ‘필리핀의 숨은 진주’라고 불리는 잠보앙가 반도이다.
민다나오 섬 남서쪽으로 집게 손가락처럼 삐죽이 고개를 내민 잠보앙가 반도는 아름다운 풍광과 때묻지 않은 자연환경으로 인해 최근 들어 생태 관광의 보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눈이 시리도록 맑은 바닷물과 붉은 산호가 만들어낸 분홍빛 모래 해변은 잠보앙가 반도의 자랑이다.
반도 남단에는 잠보앙가 항구가 자리잡고 있다. 이 항구의 별명인 ‘꽃의 도시’는 ‘꽃의 땅’이란 뜻의 말레이어 잠방간에서 유래한 것으로, 처음 이곳에 터전을 닦은 말레이 이주민들이 붙인 이름이다. 민다나오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관광도시답게 여러 소수 인종들이 섞여 살아가는 잠보앙가 항구는 남부의 이국적인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신선한 해산물과 필리핀 전통음식으로 유명한 잠보앙가의 식당에서는 저녁마다 뱀부 댄스라고 불리는 민속춤 공연이 벌어진다. 짝짓기 춤의 일종인 이 댄스는 스페인 식민 시대에 비롯된 것이지만 머리에 두르는 천은 아랍식이고 사용되는 악기는 필리핀 민속품이며 발로 맞추는 장단은 민다나오 전통 율동에서 유래된 것이다.
잠보앙가 주민들은 챠바카노라는 독특한 언어를 사용한다. 필리핀 원주민어 바탕에 스페인어가 섞여 만들어진 이 특이한 사투리는 뱀부 스페니시, 즉 대나무 스페인어라고도 불린다. 챠바카노로 대화를 하는 잠보앙가 주민들 틈에 섞여있다보면 필리핀이면서도 스페인풍에 아랍의 이슬람 풍까지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이곳만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잠보앙가 항구 앞에 펼쳐진 술루해는 이곳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잠보앙가 사람들은 이 바다에서 물건을 교역하고 고기를 잡아가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바다에는 수많은 섬들이 줄지어 떠 있고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해주는 여객선 항로가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잠보앙가로부터 여객선을 타고 술루해의 작은 섬들을 찾아다니는 뱃길 여행은 잊지 못할 추억을 자아낸다. 적도무풍대에 속해 파도가 치지 않는 술루해의 수면은 잔잔한 호수와도 같다. 그 위를 미끄러지듯 항해하는 여객선 갑판에 앉아 서쪽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저녁 해와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바다를 보노라면 또 다른 세상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특히 바다여행에서 만나는 빈타의 행렬은 최대의 눈요기감이다. 여러가지 색깔이 어우러진 대형 돛을 올린 이 지역 특유의 범선 빈타의 선단이 물 위에 떠 있는 광경은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잠보앙가 반도와 바실란 섬을 오가는 여객선이 이사벨라 항구에 도착하자 여객선 주위로 작은 보트들이 몰려들었다. 보트마다 나이 어린 소년들이 서넛씩 타고 있다. 여객선 승객들이 호주머니에서 작은 동전 몇 개를 꺼내들더니 갑자기 바다에 내던진다. 그러자 보트에 타고 있던 소년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첨벙 소리를 내며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수면 위로 떠올라온 그들의 입에는 동전이 물려져 있었다. “승객들이 던져주는 동전을 주워 생활하는 아이들입니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이 하역작업을 하는 지루한 대기시간 동안 동전 찾아오는 묘기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소년들의 재주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승객들에게 한 선원이 설명을 했다. 맑은 바닷물에 동전이 떨어지면 가라앉으면서 반짝거리게 되는데 소년들은 물 속을 빠른 속도로 잠수하면서 가라앉는 동전을 입으로 문다는 것이다.
잠보앙가 반도의 명물은 바닷가에 지어진 수상가옥 마을 리오 온도(Rio Hondo)이다. 밀물과 썰물이 들락거리는 해변에 말뚝을 박고 그 위에 길을 내고 집을 지었다. 물 위에 올라선 집들의 숫자만도 5백 채가 넘는다. 마을에 들어서면 집과 집을 연결하는 널빤지 길이 바다 위로 꼬불꼬불 이어진다.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나무 다리 밑으로는 바닷물이 시내처럼 흐른다. 고기를 잡으러 먼 바다로 나가는 통통배들이 다리를 지날 때마다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민 주민들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무척 정겹게 보인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옷을 훌렁훌렁 벗고 바닷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치면서 집으로 향한다. 수상가옥으로만 이루어진 마을이라 해도 리오 온도에는 있을 것이 모두 있다. 커다란 마을회관도 물 위에 서 있고 모퉁이를 돌 때마다 과자 가게며 과일 가게가 눈에 띈다.
마을의 중심부에는 바닥이 흙이 아니고 나무 판자라는 것만 다를 뿐 놀이터도 있고 작은 네거리도 있다. 그러나 바다 위로 이어지는 이 널빤지 길은 외곽으로 나갈수록 점점 작아지고 허술해져서 발을 딛기가 겁이 난다. 중간중간 나무가 빠져있어 처음 오는 사람은 발을 헛디뎌 바다로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다. “밤에 뛰어다니다가 가끔씩 바다에 빠지기도 해요. 그래도 아무 상관 없어요. 헤엄치면 되니까요. 수영이 걷는것보다 편해요” 마을 아이들의 말처럼 과연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에게 수영은 육지 사람들의 달리기만큼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사말족이 사는 마을인 리오 온도로부터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타우수그족의 수상마을 탈룩상가이에 도착하게 된다. 마을에 도착한 날 큰 규모로 지어진 모스크에서는 마침 이슬람 식으로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민다나오 섬의 여러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먼저 이슬람으로 개종한 타우수그족은 그 이름에 ‘해류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남지나해의 해류를 따라다니며 살아온 이들은 고기잡이를 주업으로 하는 한편, 말레이지아로부터 필리핀으로 물건을 밀수하는 해상무역에도 관여하고 있다.
잠보앙가 반도 해변과 술루해의 섬 여기저기에 흩어져 물 위에서 살아가는 사말족과 타우수그족의 삶은 물 위에 지어진 그들의 수상가옥만큼이나 위태롭고 고달프게 보인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그들의 삶에 너무나 만족하고 있었다. “바다에는 내 땅, 네 땅이 없어요. 함께 일하고 공평하게 분배하지요. 육지에서 농사짓는 것보다 우리에겐 이 생활이 맞아요”
열대림의 대자연과 넉넉한 바다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 아름다운 산호초가 지천으로 깔린 바다를 터전으로 삼은 이곳 사람들은 조화로운 자연만큼이나 넉넉하고 풍요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 Park Jongwoo / OnAsia
http://docu.tistory.com
첫댓글 꼭한번 찾아보고 싶네요. 짐보앙가...
컴터가 말썽을 부리더니 글이 이렇게 되었네요.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다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