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트마 간디’를 두고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인류(人類)가 쏘아올린 빛나는 별’이라고 평한 글을 보았다. 보통 인간이 그런 위대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인간에게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아우슈비츠를 생각한다면 또 아우슈비츠의 내면을 쳐다본다면 그래도 그런 생각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아우슈비츠’라 할 때는 1940년 4월부터 폴란드 남서부 ‘오슈비엥침’(폴란드식, 아우슈비츠는 독일식 발음)에 나치 독일군이 건설한 일군(一郡)의 수용소들을 말한다. ‘인종 차별’과 ‘반유대주의’로 무장한 제3제국(나치독일)의 수용소인 것이다. 처음에는 폴란드인 정치범이 수용되었다가 대규모 소련군 포로들이 수용되었는데 1941년 10월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유대인 문제의 ‘최종해결’을 위해 가스실을 갖춘 비르케나우 수용소가 건설되었다. 최종해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1942년 7월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이곳으로 유대인들이 이송(移送)되었다.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20세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하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총 24개국에서 4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끌려와서 강제 노역과 고문, 살해의 과정을 거쳤는데 그 중에 90프로가 유대인이었다. 열차를 타고 이곳으로 처음 끌려온 포로 중 어린이, 노인이나 동성애자, 여호와의 증인 등 반사회적 인물이라고 여겨졌던 사람들은 도착 하자마자 바로 공동 샤워실로 들어갔다. 샤워기에서는 물 대신에 ‘치클린B’라는 가스가 흘러 나왔다. 시체는 녹여져서 비누 등의 재료로 쓰였으며 유골은 태우고 남은 재를 비료로 사용했다. 지금도 소각장에는 재가 가득한데 약 120만 명 정도가 소각되었다. 살아남은 노동력 있는 성인남녀들이 강제노역에 할당되었다. 그리고 차례로 죽어갔다.
전쟁말기가 되자 나치독일은 자신들의 만행(蠻行)을 감추기 위해 모든 증거 자료를 소각하고 수용소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일찍 1945년 1월, 소련군에 의해 아우슈비츠가 해방되었을 때 100만 벌 이상의 옷과 7톤의 머리카락,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신발과 안경이 발견되었다. 살아남은 수용자 가운데 5만 8천 명은 철수하는 나치에 의해 ‘죽음의 행진’으로 끌려갔고 해방된 수용자는 7천 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 해방된 7천 명 중에 ‘빅토르 프랑클’, ‘엘리 비젤’, ‘프리모 레비’가 있었다.
‘생존자(生存者) 문학’이라고 한다.
나치독일에 의해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던 자신들의 경험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아우슈비츠의 역설적(逆說的) 부산물로서 ‘생존자 문학’이라는 문학 장르가 탄생한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서 조선의 근대화가 앞당겨졌다고 말하는 일본인이나 정신 나간 한국 역사학자가 있다던데 이런 것도 나치독일 덕분이라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빅토르 프랭클’, ‘엘리 비젤’, ‘프리모 레비’는 생존자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였다.
생존자 문학이란 단순히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지옥을 경험한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묘사해야 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 태생부터 악마적인, 지옥의 문학인 것이다. 그런데 그 지옥은 인간이 만든 것이고, 그 악마는 자신과 다름없는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을 썼던 프리모 레비는 이 사실을 견디지 못하고 1987년 4월 11일, 67세의 나이로 아파트 현관에서 계단 아래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때로부터 70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나치독일의 범죄를 밝혀내기 위해서 애쓰는 독일의 모습을 본다. 일본과는 판이하게 다른 끝없이 사죄하는 그들의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박수를 치다가도 아우슈비츠를 생각하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공포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얼마나 더 악(惡)해 질 수 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