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고구려 제17대 소수림왕 2년인 372년, 전진의
왕 부견이 중 순도를 시켜서 불경과 불상을 보내옴으로써 비롯되었으며, 이에
왕은 전진에 사신을 보내어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또 소수림 왕은 불교를
법률로 정하여 공포하고 375년 순도에게는 초문사, 아도에게는 이불란사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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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지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불교가 고구려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불교는 BC 5세기 초엽에 중인도 히말리야 남쪽 기슭 가비라 성에서 성주 정반왕과
왕비 마야의 아들로 태어난 싯다르타가 생로 해탈의 법을 구하려고 29세에 집을
나와 부타가야의 보리수 나무 밑에서 오랫동안 수도한 끝에 35세에 깨달음을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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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진 종교입니다. 싯가르타는 도를 깨달은 뒤에 석거모니로 불렀습니다.
"인간은 욕망을 근거로 하여 이루어졌다. 욕망은 물질이나 어떤 것을 바라는 데서
일어나며, 만물은 서로 인연으로 맺어졌다, 그러한 욕망에 얽매이지 않고 예사롭게
보아 넘기면 인간 스스로가 만드는 고뇌에서 벗어나게 되며, 지극히 복되고 평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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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한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불교는 처음에 인도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전파되고,
아소카왕이 불교를 믿게 되자 동아시아의 여러 지방에 퍼졌고 최근에는 구미에도
알려져 있습니다. 고구려에서는 금강산, 평양구사, 반룡사 등의 절을 지어서 불교가
널리 퍼졌고, 백제에서는 고구려보다 13년 뒤인 침류왕 1년에 인도의 중 마라난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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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진나라를 거쳐서 들어와 불교를 전하였습니다.
신라는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여 제23대 법흥왕 때인 527년에
공인하였습니다. 이것은 계기로 불교는 신라의 사상,문화, 정치, 생활 등 각
방면에 크게 영향을 미쳐서 불교 문화를 세계에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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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가 법회를 통해 석가모니가 자신의 미륵 권좌를 도적질 하였다고 설파하자,
석총이라는 고승이 반발하였고 야단법석 집회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이때 철퇴를 맞아 죽거나 생매장 당한 중들이 20여명 이었다고 합니다.
여섯 글자 옴 마 니 반 메 훔은 지혜와 방편이 불이의 일체를 이루고 있는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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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의해서 부정한 몸, 말, 마음을 청정 무결한 부처님의 몸, 말, 마음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부처님을 성취하는 본질은 나 자신 안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밖에서 부처의 상태를 구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 해탈의 중요성이 아닐까?
생각하기에 따라서 기독교의 자아를 죽이는 것과 불교의 무아지경이 비슷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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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지 모르지만 주체가 누구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날 것입니다.
마이테리아 (미륵보살)는 자신의 웃타라탄트라(Utaratantraㆍ장엄한 대승의 연속체)
에서 모든 존재는 그 자신의 (연속하는) 본질 안에 부처의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
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 안에 정화의 씨앗을 있고, 여래성(Tathagata - garbha)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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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으며, 이 정화의 씨앗, 여래성은 불자들을 완전한 부처님의 상태로 바꾸고
계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에고,에고, "소승은 불자가 아니라 머리가 아파옵니다.
하지만 촉으로 볼때 윤회 사상을 얘기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보다 옴마니 밤메홈이 더 뉴-버전이라고 하던데 궁예는 마구니일까,
진짜 미륵일까?
2015.9.5.sat. 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