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의 최후
서주를 차지한 조조는 유비 삼 형제 및 부하 장수들과 큰 잔치를 열었고 진규, 진등 부자에게
많은 녹봉과 벼슬을 더해 주었습니다. 조조는 유비로 하여금 원술이 여포와 손잡는 것을 막게
하고 자신은 하비성 앞에 진을 치고 여포에게 항복을 권했습니다. 조조는 두 달이 넘도록 좌충
우돌 하면서도 하비성을 함락 시키지 못해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곽가와 순욱이 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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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함락시킬 묘책을 냅니다. 거수와 사수의 물길을 터 하비성을 물에 잠기게 하는 계책
이었습니다. 성문이 물에 잠겼는데도 개의치 않고 술을 마시던 여포는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주색에 빠져 몰골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크게 놀란나머지 여포는 술 마시는 자의 목을
베고 금주령을 내렸습니다. 이때 여포의 부하 후성은 도적을 죽이고 도난당한 말을 찾는데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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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웠습니다. 이를 치하하러 온 장수들과 술을 마시고 싶었던 후성은 여포에게 허락해줄 것을
청하지만 여포는 노발대발하여 후성을 곤장 50대형에 처했습니다. 억울한 후성을 위로하러 온
위속과 송헌은 후성과 함께 여포를 배반할 것을 모의했습니다. 후성은 먼저 여포의 적토마를
훔쳐 조조에게 달아났고 위속과 송헌은 여포가 잠든 사이 방화천극을 집어 들고 여포를 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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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 조조에게 바쳤습니다. 고순, 장요, 진궁 등도 모두 사로잡았습니다.
여포는 조조 곁에 앉아 있는 유비에게 옛정을 참작해 달라고 사정을 하는가 하면 조조의
부하가 되겠다며 매달렸으나 참형에 처해졌습니(하비전투/ 여포사망 198년).
중국역사 중 가장 용맹한 장수를 꼽는다면 진나라 말기의 역발산 기개의 초패왕 항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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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여포를 꼽을 수 있지만 그토록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사를 이루는
데는 실패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들의 실패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이들은 유방이나 조조에 비해 훨씬 더 정이 많고 인간적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인심을 얻는 데는 실패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베푼 정이 대중을 포용한 큰 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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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개인적 감정에 치우친 사사로운 인정이었습니다.
둘째 인재를 활용하는 용인술에 있어서도 부족함이 드러납니다.
항우는 자신이 스승으로 모셨던 범증의 충고를 끝내 듣지 않았고,
여포는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진궁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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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이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이 부족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힘에 비해 머리가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이 두 사람이 그 용맹에다
지모를 갖춘 완벽한 인간이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수 있었겠지만, 인간을 창조하는데 있어
장단점을 함께 부여하는 조물주의 공평함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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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장요는 조조를 향해 나라의 큰 도적이라며 꾸짖자 노한 조조가 직접 장요를 죽이려 하자
관우가 급히 말렸습니다. 또 유비는 조조에게 장요는 "마음이 곧은 사람이니 살려 두어 크게
써야합니다" 이에 조조는 동감을 표하며 손수 장요의 결박을 풀어 주고 입고 있던 옷까지 벗어
입혀 주었고 장요는 조조의 후대에 감격하여 조조의 부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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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조는 예정을 생각해서 진궁을 살려주려 했으나 진궁이 장수를 욕 뵈지 말고 빨리 참형
하라고 해서 진궁도 죽여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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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혈서
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유비를 데리고 황궁에 들어가 헌제를 뵙게 했습니다. 헌제가 황실의 족보를
따져보니 유비는 자신의 숙부뻘 이었습니다. 헌제는 기뻐하여 유비를 좌장군 의성정후로 봉했고
이후 사람들은 유비를 유황숙이라 불릅니다. 조조는 대신들의 동태를 엿볼 요량으로 헌제를 모시고
사냥에 나섰는데. 만조백관이 모두 참여하여 이루어진 대규모 사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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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제는 사슴을 겨냥해 세 차례나 화살을 쏘았지만 모두 빗나가자 조조에게 쏘아 볼 것을 권합니다.
조조는 헌제에게 활과 화살을 빌려 사슴을 쏘아 명중시켰고 대신과 장수들은 황제가 사용하는
화살이 사슴에 꽂힌 것을 보고 일제히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조조는 황제 앞을 가로막고
대신과 장수들의 치하에 답례하고 나섰습니다. 만세를 외치던 사람들이 크게 민망해 하며 분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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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었습니다. 이때 크게 노한 관우가 당장에라도 조조를 베어 버릴 기세였지만 유비가 눈짓으로
만류했습니다. 궁으로 돌아온 헌제는 동귀비의 오라버니인 동승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금포와
옥대를 벗어 주며 "집에 돌아가 부디 자세하게 살펴보고 짐의 뜻을 저버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동승은 옥대와 금포를 한참동안 살펴보다가 깜박 졸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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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등잔의 심지가 갑자기 타올라 불똥이 튀어 자주 빛 비단에 떨어지면서 구멍이 나고
말았습니다.구멍 난 옥대 속에는 글이 적힌 흰 비단이 들어 있었습니다. 헌제가 쓴 혈서입니다.
그 안에는 역적 조조를 제거하고 사직을 바로 잡으라는 헌제의 간곡한 부탁이 들어 있었습니다.
동승은 이 글을 읽고 눈물로 밤을 새웠습니다. 이튿날 동승은 헌제의 뜻을 받들 계책을 생각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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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를 탁자에 올려놓고 잠이 들고 말았다. 이때 동승과 교분이 두터운 시랑 왕자복이 찾아 왔다가
탁자 위의 조서를 보고 말았습니다. 조서의 간곡한 내용을 읽은 왕자복은 동승과 함께 헌제의 뜻을
받들기로 합니다. 그리고 오석, 오자란, 서량의 태수인 마릉 등이 비단에 서명을 했고 함께 할 만한
새로운 사람으로 유비를 천거했습니다.(계속)
2016.4.27.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