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은 문신 중심의 문벌 귀족 사회를
크게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개경의 보수적인 문벌 귀족은 이러한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고 무신들을 차별대우
하였으며, 심지어 군인전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등 실정을 거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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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에 기록은 “의종은 수시로 거동하면서 아름다운 곳에 이를
적마다 행차를 멈추고, 가까이 총애하는 문신들과 술 마시고 글을 읊으며
돌아갈 줄 몰랐으니, 호위하던 장수들이 피곤하여 불평을 토로하였다.
……. “문신들은 의기양양하여 취하도록 마시고 배부르게 먹고 있는데
무신들은 모두 굶주리고 피곤하니, 이 어찌 참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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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무신은 정3품인 상장군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고, 2품 이상의
고위 관직에는 문신이 임명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군대의 총사령관도
문신이 맡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거란의 침략을 막은 강 감찬과
묘청의 난을 진압한 김 부식 등은 모두 문신으로 군대의 총사령관이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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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입니다. 12세기 이후 문벌 귀족들은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토지
소유를 확대했으며, 문벌 귀족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문신이 군사 부문의
최고 지휘관까지 독점하는 등 무신에 대한 차별 심했어요. 문벌 귀족의
토지 확대로 인해 군인전을 제대로 지급 받지 못한 하급 군인들의 불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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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졌지요. 이러한 지배 체제의 모순이 정치적으로 폭발하여 무신 정변이
일어났습니다. ‘정중부’, ‘이의방’ 등 무신들은 무신정변을 일으켜 많은
문신을 죽이고 의종을 폐위한 후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합니다(1170).
무신 집권 초기에는 중방이 핵심 권력 기구로 활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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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고위 관직을 독점하고 토지와 노비를 불법적으로 늘렸으며, 저마다
사병을 길러 세력을 강화했어요. 초기에는 무신 간의 권력 다툼으로 사회가
혼란했습니다. 정중부가 이의방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했으나, 그도 경대승
에게 죽임을 당해요. 경대승이 죽은 뒤에 이의민이 정권을 잡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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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최 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음으로써 이후 4대 60
여 년 간의 최 씨 정권이 전개됩니다. 무신들의 과도한 토지 소유는 전시과
체제를 붕괴시켰고 농민을 궁핍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천민 출신 최고
권력자의 등장은 하층민들의 사회의식을 변화시켜 농민과 천민의 대규모
봉기가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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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 정권에 반발하여 서경 유수 조위총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많은
농민이 가세하여 지방관의 탐학을 국가에 호소합니다. 명종 때 공주 명학
소에서 망이. 망소이 형제가 과도한 수취에 반발하여 봉기했고 정부는 ‘명학
소‘를 ’충순현‘으로 승격시켜 무마했으나 이들이 봉기를 계속하자 군대를
파견하여 토벌합니다. 운문과 초전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신라 부흥을
기치로 봉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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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항쟁은 신분 해방 투쟁으로 발전했고 노비였던 만적은 개경에서
누구나 공경대부가 될 수 있다고 부르짖으며 노비들을 모았지만 내부자의
밀고로 실패한 케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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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원년(1198)에 사노 만적 등 6인이 (개경의)북산에서 나무하다가 공노비
와 사노비들을 불러 모의합니다. ‘고려사‘를 인용합니다. “정중부의 반란과
김 보당의 반란 이후로 고관이 천민과 노비에서 많이 나왔어요. 장수와 재상
이 어찌 씨가 따로 있으랴. 때가 오면 누구나 될 수 있다. 우리가 왜
근육과 뼈를 괴롭게 하며 채찍 밑에서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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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충헌은 국왕에게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안을 올려 개혁을 건의
합니다. ‘봉사 10조’는 최 충헌이 당시 고려 사회에 심각한 폐단이 무엇
인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어떻게 그 폐단 없앨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최 충헌 자신도 토지와 노비를 늘리고
어장 등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독점하면서 정권 유지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했고 또한 농민 항쟁을 적극적으로 진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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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에 언급된 최 충헌의 봉사 10조 중 일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2조 필요 이상의 관원을 도태시킬 것
제3조 토지 점유를 시정할 것
제4조 조부를 공평히 할 것
제6조 승려를 단속하고 왕실의 고리대업을 금할 것
제9조 비보(裨補) 이외의 사찰을 없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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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충헌은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정치 기구로 교정도감을 설치하고,
그 우두머리인 교정별감이 되어 최고의 권력을 행사했으며, 경대승 사후
폐지되었던 도방을 부활시켜 사병으로 삼았습니다. 최 충헌의 뒤를 이은
최 우는 교정도감과 도방의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자신의 집에 정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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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하여 인사권을 장악했습니다. mbc에서 56회를 방영한 ‘무신’(2012)
은 무신정권 60년을 다루는데 개인적으로 무신정권 전반기를 다루는
‘무인시대’보다 흥미진진하더이다. 국가의 공식적인 군사 기구로 좌별초,
우별초, 초의 군으로 편성된 삼별초를 설치하여 정권 유지에 활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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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에서 제가 건진 것은 도방의 대방 최 우(고종)가 도읍지를 강화도
로 옮기면서 ‘김 준’의 시대가 시작되는데 삼별초라는 친위대에 소속되면서
부터로 봅니다. 몽골 놈들이 대륙인들이라서 물을 아주 질색한다고 하더이다.
강화도가 갑자기 좋아졌습니다. 한때 고려의 도읍지였던 강화도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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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우는 몽골이 침입해 오자 강화 천도를 단행했으나, 무신 정권은 몽골의
침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어요. 최 우의 아들 최 항, 최 항의 아들 최의가
이어서 집권 하다가 고종 때 최 씨 정권이 무너지고 이후 김 준이 등극합니다.
임 연, 임 유무 등 무인들이 잠시 권력을 잡았지만, 원종 때 개경으로 환도
하면서 왕정이 회복됩니다(1270).(계속)
2021.3.12.fri.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