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떠났지만 정신은 남아(2)
-월간 <스토리문학> 주간이셨던 박건호 시인 추모특집
김순진(시인, 월간 스토리문학 발행인)
노래는 작사와 작곡을 합쳐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그러니 노랫말 하나로 모든 것을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온 것의 그의 시각이다. 상호 보완을 통해 한 편의 노래가 완성되고 그것이 조화를 잘 이루어야 오래도록 사랑받는 명곡이 된다. 박건호 작사가 작사한 대중가요 중에는 ‘라나 에 로스포’가 부른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곁을 떠나간 뒤에/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예예예 예예예예 예예예 예예예예(중략)”란 가사의 <사랑해>란 노래가 있고 ’패티 김‘이 부른 “사랑해 사랑해 당신을 사랑해/ 저하늘에 태양이 돌고 있는 한 / 당신을 사랑해/ 그대 없이는 못살아 / 나 혼자서는 못살아(중략)”의 <그대 없이는 못살아>란 노래가 있다. 가사만으로 볼 때는 서로 구분이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가사들에 붙여진 멜로디를 대입해서 보면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이렇게 가사는 어떤 멜로디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기도 합하는데 반대로 멜로디 또한 어떤 가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그러기에 그는,
“시인들 중에는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대단히 자존심 상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음악은 공동 예술임으로 작사가와 작곡가가 서로 의견을 맞추어 양보하여야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고정관념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변경할 줄 모르는 사람은 발전성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도 그 자체가 노래가사가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타인의 의견을 귀담아 들을 때 보배가 되는 수가 있지요.”라고 필자에게 말한 바 있다.
-> 박건호 시인 홈페이지 <시섬> 식구들과 함께 시낭송회 후 한 컷
톨스토이의 『부활』이나 토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는 창녀가 등장한다. 창녀는 가장 밑바닥 인생인데 작가는 그를 통해 인생의 진실을 이야기하여 감동을 준다. 존 스타인 백이 일본에 초청되었을 때 일이다. 그는 세미나에 참석했으나 재미가 없어 모든 일정을 변경하고 뒷골목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 때 일본 작가들은 ‘당신은 1류 작가인 줄 알았는데, 왜 3류 항동을 하느냐’고 비아냥댔다. 그 말을 들은 존 스타인 백은 ‘작가가 어떻게 1류나 3류로 나뉠 수 있느냐?’ 반문했다. 박건호 선생의 생각이 그렇다. 아무리 글이 약한 사람들이라도 그 사람의 글에는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문학에서는 아직 수많은 등급이 존재한다. 그 등급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신만이 정통이고 자신만이 문학적 지위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문학적 귀족들의 지적 오만 속에서 한국문학은 스스로 타이타닉 호가 되어 바다로 침몰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간혹 문학이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만큼 문학의 치열함을 설명하는 말이겠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생명에 애착이 강한 것을 보게 된다. 그럴 때면 박건호 선생은 ‘가끔 펜을 집어던지고 깊은 충동에 싸이곤 합니다. 어디까지가 인간의 진실이고, 문학적으로 바른 길일까요? 그것은 나를 피 마르게 괴롭히는 명제중 하나입니다.’라고 말했었다.
선생이 돌아가시기 10년 전 쯤의 일이다. 선생의 신장 기능이 떨어져 일주일에 세 번씩 병원에서 피를 정화하며 목숨을 연명하였다. 그때 선생은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문득문득 가슴이 서늘하였다고 말했었다. 다행이 신장을 기증한 사람이 있어 제2의 생명을 얻었지만 그 후, 정상인 비슷한 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선생은 문학을 하며 암흑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그때조차 선생은 문학이 생명에 우선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6년 전에도 선생은 가슴뼈를 톱으로 자르고 심장으로 통하는 두개의 혈관을 왼쪽 다리와 배에서 쓰지 않는 혈관을 떼어다가 교체했다. 그때 선생은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고 말했었다. 그때 선생은 한 편의 시도 쓰지 못했다. 진정한 문학은 진정한 삶의 이야기다. 산 사람의 삶은 문학을 통해 수억의 삶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문학은 치열하되 진실해야 한다는 게 박 시인의 생각이었다. 그러기에 박 시인은 “저는 작사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시인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치열성을 진실한 마음으로 시를 씁니다.”라고 말했었다.
지난해 초, 시인은 시집『그리운 것은 오래전에 떠났다』와 『나는 허수아비』라는 수필집을 내셨다. 시은은 스스로를 ‘허수아비’라 불렀는데,
“어린 시절 그리운 모습 중에 하나가 들판에 허수아비입니다. 허수아비는 두 눈을 부릅뜨고 팔을 벌린 채 들판에 서서 가을을 지키지요. 그러나 철 지난 허수아비는 외롭습니다. 허수아비에게 죄가 있다면 열심히 들판을 지킨 것뿐인데 사람들은 그를 면하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지요. 텅 빈 들판의 허수아비에겐 새떼들도 오지 않습니다. 홀로 남아 잊혀져가고 있을 뿐이지요. 잊혀 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필요할 때 나를 데려다가 들판을 지키라 해놓고 모두 떠나가지요. 작곡가들이나 가수들은 끊임없이 작품을 써달라고 하고 어느 곡을 취입할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러는 동안 써주는 작품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실제로 한 두 곡만 취입하면 맥이 풀립니다. 작품을 쓰느라 보낸 시간들,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겪은 고통은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그렇지만 나는 작곡가들이나 가수들의 부탁에 울며 겨자 먹기로 허수아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은 전성기가 있다가 추수 끝난 들판을 지키는 허수아비가 되어간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허수아비의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오니 아주 잊혀지는 건 아니지요.”라 말했던 기억이 새롭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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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월간 <스토리문학> 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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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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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소설가
월간 스토리문학 발행인
도서출판 문학공원 대표
저서 [광대이야기] 외 7권
첫댓글 우리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으리...
모닥불이 박시인님의 노랫말이였군요 좋아하는 노래였지만 작사자에 관심을 두지 못하여 왠지 미안한 맘이 드네요 하늘에 계신 박시인께 다시 한번 명복을 빌며 감사올립니다 좋은 글 올려 주신 김순진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주옥같은 노래들이 선생님이 작사하셨다는것을 새삼 알게 되였습니다...우리세대에 많이 불려지던 곡들...아름다운 이야기들....친구들도 함께 읽을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노랫말로 하시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빚어내신 존경하는 박건호 시인님의 명복을 빕니다
시인의 정신이 노랫말에 고스란히 새겨져서 부르는 입과 듣는 마음의 귀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요.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
♥ 추모하는 마음을 전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