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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19. 11. 23.~24.(주말)
- 음력(11. 27.~28.), 일몰17:20, 일출07:18
●산행지: 금남정맥 마지막구간 (중장리고개~구드래나루터)
●산행코스: 중장리고개-팔재산-널티고개(무너미고개)-상리임도-안골산갈림봉-노성지맥분기점-벌문이고개(고분티고개)-성정산-반송고개-복룡재(이인휴게소)-망덕봉-진고개-깃대봉-감나무골고개(멍덕재)-가자티고개-됨봉-신앙고개-천주교 공원묘지-청마산성 갈림길-조석산-청마고개(오산고개)-석목고개-금성산-계백문-남령공원-부여여고-부소산성-영일루-사비루-낙화암-고란사-구드래나루터
●먹거리: 생수1,000cc, 쏘시지2, 치즈크래커2, 군밤100g, 초코파이2, 미니자유시간8, 사탕
●준비물: 텐트, 폴대, 팩, 침낭, 우모, 바람막이, 충전지, 스틱, 헤드랜턴2, 손수건, 구급약, 장갑, 버프, 수면용안대, 귀마개, 휴지, 물티슈, 부직반창고, 우의, 예비 양말, 옷
●거리: 약 47.3Km
●소요시간: 약 24.24h
●누구랑: 나홀로
●경비: 하행고속11,900, 김밥3,000, 택시3,700, 이인휴게소 식사,빵,음료17,500, 부소산성입구 식사7,000, 유람선7,000, 뒤풀이10,000, 상행버스17,100
●날씨: 6~20도
●산행경과:
- 13:43 : 중장리고개 1,500cc
- 14:11 : 팔재산 (364.1m)
- 14:50 : 널티고개 (무너미고개)
- 15:40 : 상리임도, 식수
- 16:05 : 안골산분기봉
- 17:00 : 노성지맥분기점
- 17:17 : 벌문이고개 (고분티고개)
- 17:39 : 성정산 (237m)
- 19:08~20:20 : 복룡재 (구수리고개), 이인휴게소
- 21:24 : 망덕봉
- 22:16 : 진고개
- 22:44 : 깃대봉
- 23:24 : 감나무고개 (멍덕재)
- 23:45 : 감토봉
- 00:17~06:45 : 가자티고개
- 07:27 : 신앙고개
- 09:18 : 청마산
- 09:50 : 조석산
- 10:10 : 청마고개 (오산고개)
- 10:30 : 부여나성
- 10:45 : 석목고개 (주유소 식수)
- 11:10 : 금성산
- 11:35~11:50 : 부소산성입구 식사
- 12:32 : 부소산 영일루
- 12:57 : 부소산 사자루
- 13:05~13:32 : 낙화암, 고란사
- 13:47 : 구드래나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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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남정맥 3구간 중장리고개~구드래나루터 40.4km
- 3-1구간 중장리고개-진고개 18.8km
- 3-2구간 진고개-구드래나루터 21.6km
※ 사전정보
- 중장삼거리-윗장고개 도보 800m (산성동에서 중장삼거리 버스 20분 소요)
- 널티고개 논산방향 100m에 지하도
- 복룡고개 이인휴게소 세븐일레븐
- 안골산, 청마산, 고란사
- 탄천면택시: 041-853-5321
※ 식수조달 가능지역 :
- 청마고개 능산2리 버스정류장 슈퍼,
- 석목고개 주유소, 부여여고앞,
- 부소산: 영일루앞 매점, 식수대, 화장실
※ 서울에서 중장리고개 가는길
- 148번 강남고속터미널
* 서울경부-공주 06:05, 1.30h, 11,900
* 공주종합버스터미널-산성동 시내버스종점으로 택시 이동
* 공주-갑사행 버스
- 산성동 종점-갑사 320, 321번
- 중장삼거리 하차-중장고개 800m 도보 이동 (널티고개-계룡저수지-중장3리-중장2리-중장3거리)
※ 부여에서 서울 오는길
- 구드래나루터-성왕동상R-부여터미널 도보15분
- 부여-남서울, 막차20:30, 17,100원
- 부여-동서울, 막차17:25, 17,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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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봉 지나 612m봉에서 공주시 계룡면으로 진입하여 계룡면(구왕리, 중장리, 기산리, 봉명리 등) 리계를 따르고,
상리임도를 지나 340m봉에서 계룡면과 이인면의 면계를 타다가 이인면(발양리, 반송리, 산의리, 이인리, 복룡리, 달산리 등)을 지나며,
복룡재에서 오르는 망덕봉(215m)에서 탄천면으로 넘어가 탄천면(광명리, 삼각리, 덕지리, 남산리, 가척리 등)을 지나고,
가자티에서 됨봉(160m)을 올라 187m봉에서 190m봉까지 공주시와 부여군과의 경계를 따르다 다시 부여군 초촌면 신암리와 부여읍 상금리 리계를 따르고,
청마산(233m)갈림길에서 부여읍(능산리, 송곡리, 용정리, 석목리, 가탑리, 쌍북리, 구아리 등)을 지나며 금성산(121m)넘고 부소산(105m) 부소산성 따라 구드래나루터에 이릅니다.
계룡산 이후론 2~300m 고도로 리계를 지나 부여로 향하는 모습이 왠지 억지스럽지만 가까이는 2차동학농민운동(1894. 10월) 당시 논산에 집결한 동학군이 공주를 포위공격 하기 위해 넘은 야트막한 고개들로 일단 산경표에 충실히 따랐습니다.
늦게 출발해도 밤새워 진행하면 새벽에 끝나고, 금남정맥 마지막 구간은 남은 거리가 넉넉해 계산이 복잡했습니다.
공주유스호스텔을 문의하니 하룻밤 숙박에 76,000원, 짐이 다소 버거워도 텐트와 침낭을 가져가 비박하기로 합니다. 이인휴게소에서 왕갈비탕으로 저녁을 먹고 10km를 더 가 가자티고개에서 비박했습니다. 진고개에서 가자티고개까지는 지자체에서 톱으로 잡목을 제거하고 방화선을 구축해 등로가 아주 모범적이었습니다.
난생처음 방문한 부여~
정림사지, 궁남지, 부여박물관, 왕릉 등을 둘르지 못해 아쉬웠지만 부소산을 넓게 돌아 영일루, 군창지, 수혈병영지, 반월루, 사비루, 낙화암 등을 둘러보고, 고란사 종도 때리고, 구드래에서 백마강유람선도 승선해 강바람을 쏘였습니다.
자잘한 패망국의 역사라는게 백제 사비 뿐만 아니라 신라 경주도 마찬가지지만 복원을 할려해도 망국의 왕궁터가 어디였는지 그 기록과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ㅠ
한편으로 부산에서 수학여행 왔다는 초딩5년생들을 보며 문화강국의 힘이란 백제 사비를 구경하기 위해 세계인들이 방문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경주 김석기의원에 의해 수천억의 예산이 소요되는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에관한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부여도 누군가 노력하여 관광 복원에 힘쓰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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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는 고조선 이후 기자조선, 위만조선이 나타나고 이후 한사군이 설치되고
낙랑군이 마지막까지 남아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라는 이야기로 고구려에 함락되고,,,,
한사군이 느슨한 틈음 타~
한문으로 흑룡강성 중국어로 헤이룽장성... 길림성에 고구려의 주체가 나타나나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따르면 주몽의 아버지는 천제(天帝)의 아들이며 북부여의 왕인 해모수(解慕漱)였다. 이것은 그가 동부여에서 태어났는데도, 고구려 왕실의 법통의 근원을 북부여에 두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주몽의 어머니인 하백(河伯)의 딸 유화부인(柳花夫人)이 천제의 아들이라는 해모수와 정을 통한 뒤 집에서 쫓겨났다. 이 때 동부여의 금와왕(金蛙王)이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유화부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이상히 여겨 방 속에 가두었더니 햇빛이 따라다니며 비치어 태기가 있어 큰 알을 하나 낳았다.
이에 알을 덮어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사내아이가 껍데기를 깨뜨리고 나왔다. 사내아이의 골격과 생김새는 영특하고 기이하였다. 이미 일곱 살에 스스로 활과 살을 만들어 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에서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므로 이름을 주몽이라 하였다.
졸본(卒本 : 일설에는 紇升骨城)에 이르러 도읍을 정하고 비류수(沸流水) 위에 집을 짓고 살면서 기원전 37년 나라를 세워 고구려라 하였다. 왕위에 올라 기원전 36년(동명성왕 2)에 비류국(沸流國)송양왕(松壤王)의 항복을 받았다.
그리고 기원전 19년 동부여에서 첫 부인 예씨(禮氏)와 왕자 유리(類利 : 뒤에 유리명왕)가 도망해 오므로 태자로 삼았다. 그 해 9월에 왕이 돌아가니 용산(龍山)에 장사 지내고 시호를 동명성왕이라 하였다.
고구려 주몽은 졸본부여 공주 소서노와 재혼하였다.
소서노는 만주 졸본천의 토착세력인 연타발의 딸로 북부여 왕 해부루의 서손이었던 우태와 혼인해서 비류와 온조라는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우태가 먼저 사망하자 두 아들을 키우면서 지냈다.
이때 소서노의 나이 32세, 주몽은 21세였다. 하지만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고 안정을 찾자 첫 부인인 예씨와의 사이 아들 유리가 부러진 칼을 들고 주몽을 찾아왔다.
그를 후계자로 삼자 비류와 온조는 어머니 소서노를 모시고 남쪽으로 내려가 비류는 미추홀(인천)에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세력을 키워 나갔다.
하지만 비류의 세력은 확장되지 못하고 온조의 세력권에 합류하였고 온조는 합쳐진 세력으로 나라를 세우고 백제라 하였다. 백제는 한강 유역의 비옥한 땅과 한강을 기반으로 온조부터 개로왕까지 493년간 백제 부흥의 시대를 열었다.
백제는 고이왕부터 서서히 고구려와 틈이 벌어지기 시작하여 고국원왕이 평양성에서 근초고왕에게 죽임을 당한 이후에 절정에 다다랐다. 5세기 들어 개로왕 때(475년) 평양으로 천도한 고구려 장수왕의 침략으로 백제는 한성시대를 마감하고 웅진천도를 하게 된다. 고구려에 대항할 지원병 1만여 군사를 신라에서 지원받아 문주왕이 달려왔으나 이미 상황은 백제의 패배로 종료되어 폐허로 변해버렸고 개로왕은 아차산성 밑에서 참수(475년 9월)되었다. 이에 문주왕은 백성들을 이끌고 1개월여 짧은 기간에 허겁지겁 웅진 천도를 단행하였다.
문주왕이 웅진(공주)을 도읍지로 정한 것은 강이 흐르고 산이 방어벽 역할을 해주는 공주의 방어적 위치와 함께 그곳 토착세력의 전폭적 지원 때문이라는 것이 학계의 견해이다.
웅진에서 문주왕으로부터 성왕 때까지 64년간 백제의 부흥기를 열었고, 동성왕은 신라 왕족과의 혼인을 통해 관계를 돈독히 하며 고구려 세력을 견제하고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국제관계를 넓혀나가며 왕권 강화에 주력하였다. 정치적 경제적 기반이 잡혀나가자 웅진성을 떠나고자 하는 왕들이 생겨났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다가 성왕에 이르러 사비(부여)로의 천도가 단행되었는데, 금강을 따라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고 중국으로 가는 뱃길(대외 진출)이 훨씬 수월한 사비성은 동성왕이 이전부터 새 도읍지로 눈여겨 두고 부소산성을 축조하는 등 사전 계획적으로 천도할 준비를 하였다.
사비로 천도(538년, 성왕 16)한 백제 성왕은 부여가 뿌리라는 것을 강조하며 국호를 남부여(南夫餘)로 고치고 백제의 숙원사업인 옛 한성을 되찾기 위해 신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공격하여 잃은 한강 하류의 6군을 회복하기도 하였으나(551년, 성왕 29) 신라 진흥왕이 나제동맹을 깨고 백제의 땅을 공격하여 한강유역을 모두 차지하자 신라와 전쟁을 하였고, 성왕은 옥천 관산성전투에서 신라군 매복병에 의해 시해(554년, 성왕 32)되어 백제의 중흥은 미완의 개혁으로 중단되었다. 백제의 발달한 문화와 불교를 일본에 전파하기도 하는 등 백제는 사비성에서 122년 동안 안정된 부흥기를 보냈으나 권력층의 내부 분열과 신라의 `통일삼한` 대업을 가진 김춘추에 의해 서기 660년 7월 18일 의자왕 때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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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장리고개~구드래나루터: 40.4km
- 3-1구간: 중장리고개~진고개 18.8km
- 복룡고개~진고개 5.5km
- 3-2구간: 진고개~구드래나루 21.6km
- 반송고개~구드래나루 32km
- 진고개~석목고개 15km
만학골재(180m) → (2.1km) → 중장리고개(中壯里峙/윗장고개/691지방도/160m) → (0.6km) → 팔재산(八재山/364m) → (1.7km) → 널티고개(板峙/23번국도/85.5m) → (2.9km) → 안골산갈림길(338m) → (3.1km) → KT송수신통신탑(137m) → (0.8km) → 벌문이고개(87m) → (0.8km) → 성정산(城頂山/城項山/237m) → (4.5km) → 복룡고개(伏龍峙/구수리고개/697지방도/110m) → (2.6km) → 망덕봉(望德峰/210m) → (2.9km) → 진고개(645지방도/81m)
진고개(645지방도/81m) → (2.7km) → 감나골고개(멍덕재) → (2.5km) → 가자티고개(123m) → (0.5km) → 됨봉(160m) → (1.6km) → 신앙고개 → (3.8km) → 조석산(182.4m) → (0.8km) → 청마산갈림길 → (1.9km) → 청마고개→ (1.9km) → 석목고개 → (1.3km) → 금성산(金城山/통수대/121m) → (1.7km) → 부여여고 → (1.9km) → 부소산(扶蘇山/사자루/105m) → (1.0km) → 구드래나루터(8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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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고속터미널에서도 10:30분 출발하기 1분 전에 취소된 자리를 얻어 탔는데, 공산성 바라보다가 산성터미널에서 갑사가는 버스를 타기가 빠듯합니다. 택시기사에게 세 정거장 앞 옥룡동사무소앞 버스정류장으로 가자고 하여 승차하였습니다.^^
♤ 공주 공산성
공주 공산성(公州 公山城)은 사적 제12호로, 충청남도 공주시에 소재하고 있는 성이다. 웅진성(熊津城)·쌍수산성(雙樹山城)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발고도는 110m의 구릉 위에 석축과 토축으로 계곡을 둘러 쌓은 산성이다. 475년 백제 문주왕 때부터 사비로 옮기기 전까지 백제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축성 시기는 백제 국력이 안정된 동성왕 때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축조된 이래 여러 차례의 개축을 거쳐서 현재까지 이른다. 성의 구조는 석축 약 1,810m, 토축 약 390m이다. 상단의 너비는 약 70cm 정도이다. 토축 산성은 돌을 혼합하여 쌓았는데 대개 높이 1m, 바닥너비 8.5m, 윗면너비 3m 정도이다. 성내에는 깊이 2m 정도의 호가 형성되어 있다. 성내에는 영은사·공북루·쌍수정과 비석 주초석·창고터·연못터 등이 남아 있다.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으로 백제의 문주왕 원년(475) 한강유역의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한 후 삼근왕·동성왕·무령왕을 거쳐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옮길 때까지 대표적인 웅진시대의 도성이었으며 백제가 멸망한 직후에는 의자왕이 잠시 거처하였고 의자왕이 그의 장수 예식진과 함께 소정방에게 항복을 한 장소이다. 이곳을 거점으로 나당연합군에 대항하는 백제부흥운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 후 신라·고려·조선시대에도 행정과 군사적 요충지였다. 백제 시대 토성 735m, 조선시대 석성 1925m, 총둘레 2,660m의 포곡형 산성이다.
산성의 북쪽에는 금강이 흐르고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하는 천연의 요새로서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성곽의 길이는 2,660m이며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포곡형으로 원래 백제 시대에는 토성이었으나 조선 시대 대부분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총 8개의 유적지들 중 공주지역에 2곳(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 4곳(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이 세계 유산 등재 심사를 최종 통과했다. 이번 세계 유산 등재는 충청권에서는 최초로 선정 되었다.
중장리고개에서 중장리 내리막길 150m 지점 커브돌면 있는 약천사입니다. 절이름이 약천사이니 물맛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제 중장리고개에서 물 보급이 가능하겠죠.^^
♤ 중장리고개(윗장고개/691지방도/160m)
갑사(甲寺)에 있는 짐대(솟대)의 이름을 따서 대장(大檣)골 또는 장대라 하였다가 대장(大檣)골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하여 중장(中壯)이라 하였다. 공주시(반포면 구왕리)와 논산시(계룡면 중장리)를 이어주는 691지방도이다. 구왕고개로도 불린다.
논산지역의 맹주 바랑산님의 표지기와 입간판입니다.^^
♤ 팔재산(364m)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앙에 위치, 정상 밑에 있는 돌이 여덟 팔자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여 팔재산 또는 팔자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동쪽은 계룡산지, 서쪽은 월암천, 남쪽은 갑사 곡구를 비롯한 계룡저수지가 위치해 있다. 정상에 삼각점이 있다.
좌측 논산방향으로 70m 내려가면 터널이 있습니다.
중장리고개에서 여력이 남았다면 이곳 널티에서 마치고 유평리 영규대사 묘를 관광하면 좋겠단 생각입니다. 공주가는 시내버스가 자주 다니니 말입니다.
♤ 널티고개(板峙/85.5m)
공주~논산간 23번 국도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좌측으로 100여m 내려가면 국도를 지날 수 있는 굴다리인 원동교가 있다. 이 곳이 널티고개(板峙, 96m)인데, 충남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와 월암리를 잇는 재로서 무너미고개라고도 한다. 널티 아래 계룡면 유평리는 기허당 영규대사의 고향이자 그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가까이는 2차동학농민운동 당시 남접과 북접이 서울로 북상하기 위해 논산에 집결하여 공주로 넘어가던 고개이고, 공주 우금치전투에서 패퇴하던 퇴각로입니다.
상리임도에 조그만 둠벙이 있고 물소리가 제법 크게 들립니다. 안골산갈림봉을 걸치지 않고 임도를 따라 올를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 상리 임도
상리 안부(150m)로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와 월암리를 연결하는 소 농로이다.
♤ 노성지맥
안골산을 지나 성정산 동남쪽 약 1.5km지점의 표고 약148m봉에서 분기해 남진하여 반송고개-개코빼기산(195.4m)-두루봉-수실고개-밀머리고개-구야고개-노성산(348.1m)-봉우재산(205m)-쇠지기에 내려선 이후론 얕은 구릉지대로 도로가 맥이되어 육군항공학교-월명산(75.9m)-불암산(59m)등을 걸쳐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 북쪽 들녘을 지나서 논산천과 금강의 합수점 강경 옥녀봉(44m) 앞에서 끝나는, 논산천 좌측위의 불암산에서 끝을 맺는 도상거리 약 35.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 노성지맥 개념도
♤ 벌문이고개
논산시 노성면 반송리와 공주시 이인면 발양리를 잇는 17번 도로, 고분티고개 라고도 부른다.
공주시 이인면 반송리와 목동리를 잇는 2차선 아스팔트 도로인 반송고개(벌문이고개)에 내려섰다가 바로 건너편 오르막을 오른다.
다행히 성정산까지 어둡지 않아서 진행했습니다. 성정산에서 90도 급좌틀로 내려갑니다.
♤ 성정산(城頂山/237m)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용성리에 위치하고 있는 이 산은, 둘레를 성을 쌓아 놓았으므로 성재 또는 성정산(城頂山)이라 한다. 지도에 한자로 城項山(성항산)으로 표기되어있는데, 頂(정수리정)을 項(목덜미항)으로 잘못 표기한 것이다. 그 뜻으로 보더라도 ‘성(城)의 꼭대기’를 뜻하는 성정(城頂)이 타당하다. 논산시 노성면 반송리와 공주시 이인면 작골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의 800여m의 둘레가 되는 백제시대의 용산성터가 남아 있다.
♤ 반송고개
급좌틀하여 해충포집기가 있는 밤나무단지를 통과하여 내려서면 과수원 관리인이 사는 건물의 개가 짖는 반송고개입니다.
통행량이 많아 시끄럽습니다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어딥니까... 부지런히 휴게소로 찾아듭니다.
♤ 복룡재(伏龍峙/구수리고개/697번 지방도로/105m)
구수티고개라고도 하며, 천안-논산간 25번 고속도로 아래, 논산시 노성면 복룡리와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697 지방도가 지난다.
♤ 망덕산
시끄러운 고속도로 굉음을 뒤로하고 마음속으로 목표를 세우며 그래 가능한 가자티까지 가자~~
"신바람공주"라는 표지기가 여기저기 널렸던데 그만 공주 따라 한눈 팔다 살짝 알바를 하고 도착한 망덕산입니다. 여기서 90도로 급우틀 해야 합니다.
진고개에 있는 외딴집입니다. 빈집인지 인기척이 없습니다. 마당에 수도꼭지라도 있다면 고마울터인데 문을 열고 내부를 들여다볼 수도 없고.... 한참을 서성이다~
♤ 진고개(645지방도/81m)
799도로에서 645도로가 갈려나가는 삼거리를 진고개 삼거리라 하며 삼거리를 지나 오른 고개를 진고개라한다. 진고개는 645번 지방도가 공주시 탄천면 안영리와 삼각리를 있는 고개를 말한다. 진고개(81m)는 고개처럼 느껴지지 않는 삼거리 교차로로, 진고개란 지명은 비만 오면 질척거려 진고개라 칭하는데, 이곳도 예전엔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없이는 못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탄천에서 논산, 강경으로 이어지는 645지방도가 지나는 이곳은 일제시대에는 중요한 군사도로였고, 6.25 당시는 미군 장갑차들이 고개가 높아 여러 대가 고개 밑으로 굴러 사고가 났던 곳이라고 전해온다.
진고개에서 가자티고개까지는 지자체에서 톱으로 잡목 밑둥을 잘라내 방화선처럼 길을 정리하여 아주 좋습니다. 깃대봉 지나며 계룡산을 돌아보라고 족장으로 방향을 가리켜 놓은 표지석이 있습니다.
215봉을 빙 둘러 감나무고개로 가야하는데 오르막 직전 우측에 금광 채굴하던 금강굴이 있나보네요. 무슨 여자가 고함치는 소리가 계속 들려 "왜 그러는데?" 하고 맞받아 쳐줍니다. 예보에 없던 비가 오기 시작해 마음이 급해집니다.
♤ 감나무고개 (멍덕재)입니다.
저쪽 고개 바로 아래에 인가가 있는지 야심한 밤인데도 금강굴 가기 전부터 계속해서 째지는 음악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감나무고개를 지나 감토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하는데 사유지라며 말뚝을 박고 줄을 매어 길을 막아 놓았습니다. 아마도 멍덕재에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사는 모양입니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금새 나올거 같은 감토봉을 한참 올랐습니다.
♤ 가자티고개
오늘의 목표지점 가자티고개 전경입니다. 공주시 탄천면을 지나 부여군 초촌면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택시기사에게는 공주시 탄천면 가척리 넘어가는 고개라고 해야 알아듣는 다는군요.
가자티고개 주위를 둘러보니 커다란 무우밭이 있네요. 수확해간 밭에서 무우 하나 찾아서 씻어먹습니다. 아직은 비닐텐트에 가벼운 여름침낭으로도 충분했는데 한겨울에도 끄덕없는 원정용텐트에 동계침낭을 준비했습니다. 바람이 없어 무겁게 들고온 팩은 쓰지도 않고 돌로 눌러 텐트를 설치합니다.
가자티고개에서 잠깐 올르면 됨봉입니다. 됨봉에서 급좌틀 해야합니다. 이후 잠깐 공주시와 부여군의 경계를 따르다 부여읍으로 들어섭니다.
♤ 신앙고개
신앙고개를 지나면 좌측 아래로 천주교공원묘지가 나옵니다. 빙둘러 지나갑니다. 아마도 신앙리로 넘어다니는 고개라 신앙고개라 한 듯....
206m봉, 여기 도착하기 직전에 사료공장 때문인지 아주 고약한 거름냄새가 나는 장소를 지났습니다.
청마산은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100m 정도 다녀와야 합니다. 드디어 청마산 정상에서 금강이 바라다보입니다.
♤ 부여청마산성(扶餘靑馬山城)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으로 둘레 6,500m, 지정면적 416,621㎡. 사적 제34호이다. 순수한 포곡형 산성으로 현재 성안에는 망대(望臺)·우물터·건물터·절터가 있으며, 수구문으로 추정되는 계곡 외에는 특별한 방어시설은 보이지 않는다. 이 산성은 백제 말기에 수도인 사비(泗沘)를 방어하기 위한 외곽시설로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 서쪽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데 높이는 약 4∼5m, 너비 3∼4m 정도이다. 동쪽 성벽도 이와 비슷한데 많이 무너져 있다. 무너진 부분의 단면층을 보면 기초 부분으로 내려갈수록 잡석(雜石)을 많이 넣어 축조하였고, 특히 기초 부분은 먼저 개흙(진흙)을 깔고 그 위에 잡석을 깐 다음에 성벽을 축조하고 있다. 또한 다른 성과 같이 내부의 흙을 파서 축성하였으므로, 내부는 자연적인 호를 이루고 있다. 북쪽 성벽에는 4,5단의 석축상태가 원형대로 남아 있다. 전반적으로 성벽의 붕괴가 심하나 성벽의 통과지점은 확인할 수 있다. 지형상으로 보아 수구(水口)는 서쪽 성벽에 설치되어 있었으리라 추정되나 성벽이 무너진 관계로 확인할 수 없으며, 현재 계곡의 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곳이 수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수도였던 사비와 연락하기 위하여 이 산성의 주문(主門)은 서쪽 수구문 쪽으로 있었을 것이나 무너져서 알 수 없다. 백제산성은 방어가 목적이었던 관계로 성문이 적은 것이 특징인데, 그래서인지 남문이 없으며 시야가 트인 곳에는 망대가 있다. 성안에 있는 계곡 위쪽, 현재 경작하고 있는 곳이 당시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성안에는 속칭 ‘각씨우물’이라 전해 내려오는 우물터가 있는데, 수량이 풍부하다. 경룡사지(驚龍寺址)·의열사지(義烈寺址) 등이 남아 있으며, 성 남쪽에는 백제고분군이 있다. 이 산성은 백제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또 순수한 포곡형 산성이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특히 석성산성(石城山城)·성흥산성(聖興山城)·증산성(甑山城)과 함께 수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한 외곽방어 시설로서 의미를 지닌다.
♤ 청마산을 지나면 청마산성내 봉우리 조석산인데 여기에 올라서면 금강이 잘 바라다보입니다.
♤ 청마고개 (오산고개)입니다.
♤ 부여 나성 /사적 제58호
둘레 약 84㎞. 면적 63만4056㎡. 백제의 수도인 사비(泗沘)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성으로 사방에 문지(門址)가 있다. 이 나성은 수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한 외곽 방어시설이며 축성 연대는 성왕대(523∼554)를 전후한 시기로 보고 있다.
성벽은 부소산성(扶蘇山城)의 동문 부근을 기점으로 하여 동쪽으로 약 500m 지점에 있는 청산성(靑山城)을 거쳐 남쪽으로 석목리 필서봉(筆書峰) 상봉을 지나 염창리 뒷산의 봉우리를 거쳐 금강변까지 토축이 있었던 것으로 전하나 현재는 청산성 동쪽으로 약 200m와 석목리에서 동문다리까지 그리고 필서봉에서 염창리까지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에는 동쪽으로 논산으로 왕래하는 동문지와 공주로 통하는 동북문지가 있다. 동문지 부근의 나성 단면을 조사한 결과 저변 13m, 상변 4m, 높이 5.2m이며 황토질흙으로 토축되어 있다. 이곳에서 서쪽 약 300m 지점에 1978년 상수도사업으로 나성의 단면이 드러났는데 저변 13m, 상변 2m, 높이 5.2m의 토축이었으며 진흙으로 다져서 만든 판축(版築)의 흔적이 있다. 표고 121m의 가장 높은 필서봉에는 횃불을 올린 봉수터와 건물터가 남아 있다.
나성의 끝부분은 적심석(積心石)을 넣고 축조한 부분이 노출되어 있다. 서쪽 나성은 부소산성 서문 바깥 지점을 기점으로 하여 현재 유스호스텔을 거쳐 관북리·구교리·유수지(遊水池)·동남리·군수리·성말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동쪽 나성문지는 구아리로 통하는 서북문지와 장승배기 남쪽에서 규암으로 통하는 서문지가 있다. 남쪽 나성은 동리·중리·당리의 뒷산에 연결하여 축조하였으며, 주초석과 문초석이 남아 있다.
나성 안에는 백제시대 왕궁을 비롯, 관아·민가·사찰·상가 및 수도수비를 위한 방위시설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상부·중부·전부·하부·후부의 오부제도(五部制度)를 두고 다스렸다. 전체적인 구조상 남쪽은 금강이 흐르고 있고 또 수로도 파 놓아서 이 나성은 자연적인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주서 周書》에 따르면, 도성 안에는 민가가 있었으며 방(方)마다 500인씩 총 2,500인의 군대로 방위에 임하였다 한다. 나성이 완성되고 오부제가 완성된 시기는 7세기 초인 무왕 때로 추정되고 있다. 이 나성은 청산성·청마산성과 함께 왕도의 보호를 위한 외곽 방어시설로 중요한 성이었다.
♤ 석목고개
석목고개는 부여읍 석목리와 가탑리를 이어주는 4번 국도가 금남정맥을 가로지르고 있으며, 도로는 왕복2차선 아스팔트포장도로이며 SK가스충전소가 자리하고 있다.
♤ 금성산(金城山/121m)
일산(日山)으로 불리는 금성산은 부여 시가지의 동쪽에 위치하여 부여읍 동남리(東南里)와 쌍북리(雙北里), 가탑리(佳塔里)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백제시대에 임금이 거주하던 금성(金城)이 있던 곳으로 도성 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무노정을 좌측으로 바라보며 내리막길로 향합니다.
♤ 남령공원
금성산을 다 내려왔습니다.
금성산을 내려와 이곳 큰 도로에서 우회전 하여 부소산으로 가기 위해 부여여고로 향합니다.
코너에 고박사냉면집에서 밥부터 시켜 먹었는데 사장님과 이런저런 대화 중에 배낭을 보더니 식당에 놓고 부소산을 다녀오시라고 맡아주시겠다 말합니다. 너무 고마와 뒤풀이 막걸리 한잔을 여기서 합니다.^^
♤ 팔각정
백제왕궁에서 이용하였던 우물 어정이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부소산에 오르는 부여여고 내에 있습니다.
♤ 부소산길
부소산성 내에는 영일루 앞과 산성광장에 매점이 있습니다.
♤ 부소산(扶蘇山/105m)
충청남도 부여군의 부여읍 쌍북리(雙北里)와 구아리(舊衙里)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96m). 부여읍의 진산으로서 평지에 돌출하여 남쪽은 산세가 느리고 순하나, 북쪽은 가파른 낭떠러지로 백마강과 면해 있으며, 꼭대기에는 반월성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부소산은 현 북쪽 3리에 있는 진산이다. 동쪽 작은 봉에 비스듬히 올라간 곳을 영월대(迎月臺)라 부르고, 서쪽 봉을 송월대(送月臺)라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는 "동쪽 봉우리에 영월대가 있고, 서쪽 봉우리에 송월대가 있다. 줄기가 공주 계룡산에서 뻗어 온다. 고을의 주산(主山)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부소산은 부여의 진산이라 부소산이라고 부른다. 『해동지도』의 현내면에 부소산의 명칭과 함께 산의 모양이 기록되어 있고, 서쪽에 고란사(皐蘭寺)와 낙화암이 함께 표시 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현내면에 부소산이 있는데 한글지명으로 '부소산'이라 쓰고, "본군의 군청 뒤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소산이라는 산 이름은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에 처음 보이며, 부소(扶蘇)의 뜻은 백제시대 언어로 소나무(松)의 뜻이 있어 '솔뫼' 즉 '소나무가 많은 산'으로 보는 학설이 유리하다.
♤ 부소산성(扶蘇山城)
『이 산성(山城)은 백제 성왕(聖王) 16년(538) 공주에서 이곳으로 옮겨 123년간 사용한 사비도성(泗沘都城)의 중심 산성으로 이중의 성벽(城壁)을 두른 백제식 산성이다. 성내에는 당시의 군창터로 전해오는 곳에서 탄화된 곡식이 나오고 있으며, 사자루, 반월루, 고란사, 궁녀사가 성내에 있고 유명한 낙화암이 있어 관광지로 이름나 있는 곳이다.』
해발 106m밖에 안 되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동쪽과 북쪽으로 두 봉우리로 나누어진 부여의 진산이다. 산의 정상과 능선을 흙으로 둘러싸고 있는 산성이 부소산성으로 사적 제5호로 지정돼 있다. 백제 도성으로 추정되는 부소산성은 평시에는 왕궁의 후원으로, 전쟁 시에는 최후 방어성으로 이용했던 사비백제시대의 대표적 산성이다.
산성 안에는 식량을 저장하던 군창지(軍倉址), 삼천궁녀가 몸을 던진 낙화암, 고란사와 고란초, 해맞이 명소 영일루(迎日樓), 사자루 등 백제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부소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에 있는 사자루입니다. 원래 이름은 사비루라고 하는게 맞다는군요.
사비루에 올라 현액도 구경하고 백마강 건너편 왕흥사지터와 부산, 그리고 백제문화단지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 백마강
백제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백마강은 부여 역사 유적지구를 지나는 금강 구간 16km를 부르는 이름이다. 금강이 상류에서는 적등강 중류에서는 웅진강이라 불린 것처럼 부여에서는 백마강이라 불린다. 해강 김규진이 쓴 《백마장강(白馬長江)》"백제에서 제일 큰 강"이라는 뜻의 백마강은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 16km의 물줄기로 백제 부소산성을 반달 모양처럼 휘돌아 흐른다. 백마강은 일명 백강이라고 하기도 한다. 백제시대에는 부여의 옛 명칭 '사비'를 따서 사비수(泗沘水), 사비강, 백강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금강은 전북 장수군 수분리 신무내산 뜬봉샘에서 시작하여 장항, 군산앞 서해바다까지 401km를 흐르는 큰 강으로 금강을 지역에 따라 고유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데, 금산군 제원 부근에서는 광석강(廣石江), 대전시 회덕에서는 부강(芙江) 또는 절강, 공주에서는 곰강 또는 금강(錦江), 금강천이 합류되는 천정대 부근에서는 창강(蒼江)으로 불리며, 백마강 이하 서해바다까지는 진포(鎭浦)라고 부른다. 원래 금강은 곰강(웅진 熊津)의 음역이므로 공주부근에 한정하여 불렀으나 점점 확대되어 지금의 금강 전체를 지칭하게 된 것이다.
낙화암에 위에 정자 백화정
♤ 낙화암
삼국유사에는 "타사암"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란사 전경
고란사 범종은 누구나 치라고 열려 있습니다, 다만 깨지지 않게 살살 때리랍니다.^^
한번 마시면 3년 젊어진다는 백제 왕도 마셨다는 고란정... 약수
구드래나루터와 왕복하는 고란사나루터입니다.
고란사나루터에서 올려다본 고란사 전경입니다.
♤ 고란사
낙화암 아래 백마강가 절벽에 자리하고 있다.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 여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진 절로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란사 뒤 고란초와 한잔에 3년이 젊어진다는 고란약수가 유명하다.
♤ 조룡대(釣龍垈)
낙화암 아래 바로 앞쪽의 작은 섬 모양 바위이다. 옛날 당나라 군사가 백제의 왕이 있는 성을 공격하기 위해 백마강를 거슬러 오던 중 갑자기 풍랑이 일어 진군할 수 없게 되었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수소문하여 그 연유를 알아내고는 수중 바위에 걸터앉아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강물 속에 백제 무왕의 화신인 청룡을 낚아 올린 곳으로써 용의 조화를 막고 풍랑을 멈추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바위에는 지금도 그 발자국이 남아 있다고 한다.
♤ 구드래 나루터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에 있으며, 사적 제6호로 지정된 나루터이다. ‘구드래’는 부소산 서쪽 기슭 백마강변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 그 어원은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드래 나루는 백제 사비성의 관문 역할을 한 곳으로 백제의 무역항이었다고 한다. 당대 일본 등 외국 사신들과 장사꾼들은 배를 타고 군산포를 거쳐 금강을 따라올라 와, 구드래 나루에 입항하였다. 처음 듣기에도 특이한 지명인‘구드래’, 구다라, 굿들개, 구들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구다라설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구다라’로 그 뜻이 대국, 섬기는 나라, 백제를 뜻한다는 것이다. 굿을 하며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모시는 장소라는 의미의 ‘굿들개’라는 주장도 있지만 나루터 입구 유래비는 삼국유사를 근거로 ‘구들설’로 되어 있다. 옛날 백제왕이 강 건너에 있었다는 왕흥사에 가기 전 잠시 머물며 예불을 드리던 바위가 있었는데, 왕이 도착하면 바위가 구들처럼 스스로 따뜻해져 ‘구들’, ‘구드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대의 강과 낮은 산이 서로 어울려 빼어난 경관을 이루었던 구드래는 예로부터 부여에서 청양으로 통하는 나루가 있어 인적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은 백마강에 유람선이 오르내리는 곳이 되어 더욱 유명해 졌는데, 백제 시대에는 외국 사신들이 부소산성을 드나들었던 유서 깊은 포구였다. 달 밝은 밤에는 백제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1969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면서 시원한 강바람을 찾는 관광객의 휴식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 구드래조각공원
♤ 사비도성 가상체험관
♤ 부여 객사
♤ 성왕로터리
♤ 부여읍
** 금남정맥이 지나는 마을
진안군, 완주군, 금산군, 논산시, 공주시, 계룡시, 부여군
♤ 진안군
♤ 완주군
♤ 금산군
♤ 논산시
♤ 계룡시
♤ 공주시
♤ 부여군
♤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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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다나시네요 감히 못 따라하겠습니다
금남정맥 추카드립니다 항상 무탈산행하세요
무슨 말씀을 요~^^
이번에 배낭이 꽤 무거웠습니다. 다음에 갈때 텐트, 침낭 버리고 가면 무겁다는 말 사라질듯 하네요.^^
금남정맥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저는 구드레나루터에서 시작했는데 엄청남 안개로 별다른 조망을못했습니다
풍라라님 덕분에 감상 잘 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천자봉님!
고흥지맥 재밌게 하시죠~^^
시간이 있어 조금 여유있게 둘러봤습니다. 금동대향로 보러 부여박물관 걸어서 다녀올렸는데 하늘이 물렁물렁해서 빨리 상경하였습니다.^^
금남정맥 완성을 축하드립니다. 퐁라라님
장거리 하시면서 박장비 까지 매고 운행
하시려면 많이 힘드실 텐데요..
홀로 대단하신 걸음을 하시고 계시네요.
쭉~
이어지는 정맥길 안전하게 마무리 하시기
바라겠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다류대장님!
여건에 따라 최선의 방법을 궁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경우엔 거리도 짧고, 표고도 낮고, 시간을 늦출려다 보니~^^
홀산은 무게와 싸움이라 중간에 물과 식당 위치 정보가 중요한데 얻기가 힘듭니다.^^
지맥하시면서 보충가능한 장소 꼭 표시해주세요~^^
퐁프렌드님 축하합니다
교통편이 만만치 않을것인데요..
고생하셨고요 남은정맥길 화이팅입니다
네, 지맥님 감사요~^^
사전에 최대한 빠르고 편한 방법으로 갑니다.
한남금북의 경우 속리산입구로 가서 세조길로 천왕봉에 올라 시작할려고요.^^
한달만에 금남길도 뒤안으로 두셨네요.
멋진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호남, 낙동, 금호남에 이어 네번째 정맥 마무리이군요..
홀로 박배낭메고 가자티고개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제가 지날때는 봄무렵이었는데 싱그러운 신록을 맞으며 지나던 기억이 나네요.
구드레나루며 백제의 혼이 서린 낙화암을 나루배에 승선하여 바라보던 기억도 납니다.
멋진 마무리 수고많으셨습니다. 다음 행선지는요??
네 방장님! 방장님 산행기도 읽어보았습니다.^^
작년겨울 낙남도 끝냈으니 이제 가까운 한남, 한북, 금북만 남았고요,
한북은 10여년 전에 대간 끝내고 마쳤으나 다시 할려고 생각 중입니다.^^
다음엔 한남금북 속리산에서 출발합니다.^^
우와아....퐁라라님도 엄청난 분이셨네요
그것도 미처 모르고 ....홀로 이렇게 다니시는것을 보고 깜작 놀랬습니다.
대단하십니다.
항상 안전산행 아시죠? 멀리서 축하와 함께 뜨거운 응원 보냅니다.
무슨 말씀을 요~
엄청난 분이 많은 홀대모에는 보이지 않게 활동하는 분들이 훨 더 많습니다.^^
박..까지 하시고
정맥 졸업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무형님!^^
훌쩍 가버리면 새벽에 끝나게 되어 낮에 구경도 할겸 일부러 늦췄습니다.^^
잘한 결정이었던거 같습니다.^^
퐁라라님! 산행기의 끝장을 보는듯합니다 어마마한 전투력에도 상상 이상입니다 제가 첨 대간길을 구드레에서부터 시작했는데 비박이 뭔지도 몰랐기에 바리바리 등짐지고 개고생하던 추억이 아련합니다 퐁라라님의 산행기 적극 추천해야되겠네요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happy마당쇠님!^^
야간운행도 있어 사전에 산행지에 대한 정보를 많이 섭렵하는 편이고요.
그러나 정작 필요한 정보는 건지기 힘들었습니다.
해서 후답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산행기를 남기고자 했습니다.^^
엇그제 금남에 드신거 같은데 벌써 졸업을 하셨네요.
축하드림니다.
네 부뜰이운영자님!
금남이 짧고 엑기스가 있어서 종종 최종 졸업지로 정하는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금남정맥 완주를 축하합니다.
빠른 걸음이시군요.
늘 즐산,안산하시기 바랍니다.
네, 대길운영자님!^^
한남금북 발진 준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