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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북도 울산시의 삼태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번호 : 제155-2번째 지맥산행
산행일자 : 2022년 10월 03일 (월요일이자 개천절 휴일 당일산행)
산행날씨 : 새벽엔 흐렸고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하였다가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햇살이 비추며 후덥지근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21도에서 영상 26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무룡고개(가운데고개, 무룡로 2차선 포장도로, 무룡로 31번 4차선 포장도로의 무룡터널, 양떼목장 가는길 플랭카드) 이정표(약천사 2.2 Km와 성불사 3.9 Km 및 아래율동 4.9 Km, 무룡산MBC
송전탑 1.9 Km)-시멘트 포장도로-260.4봉 우회-마루금 접속 갈림삼거리(비포장임도) 이정표(작은 무룡산 2.5 Km와 성불사 3.5 Km, 무룡정자고개 0.5 Km)-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비포장
임도)-잡목등로-비포장임도-능선진입-로프등로-비포장임도-약천사 이정판(남은거리 1.3 Km)-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약천사 1.5 Km, 성불사, 양떼목장 2 Km 이정판들)
이정표(성불사 1.5 Km, 아래율동 2.5 Km, 무룡임도 2.4 Km)-아랫율동2길 1차선 포장도로(공군제8146부대 철문)-찬물내기 약수터(음용불가) 이정표(진달래 군락지 0.5 Km, 마골산
헬기장 2.1 Km, 무룡정자고개 2.9 Km)-능선진입-사각쉼터(진달래 군락지, 벤취쉼터) 이정표(마골산헬기장 1.57 Km, 찬물내기약수터 0.5 Km, 성불사 0.9 Km)-우중산행-329.8
삼각점봉(이정판, 삼각점 분실)-우회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지뢰제거작전 안내판, 양떼목장 이정판) 이정표(진달래 군락지 0.4 Km)시멘트 포장도로(위험지대 과거 지뢰 매설지역
경고판)-비포장임도-지뢰제거작전 관련 안내문 이정표(마골산 헬기장과 봉대산, 염포삼거리 5.41 Km, 성불사 2.2 Km와 무룡정자고개 4.59 Km)-마루금 접속-헬기장(양떼목장 입구,
사각정자) 이정표(봉대산과 염포삼거리 5.26 Km, 성불사 2.35 Km와 무룡정자고개 4.74 Km, 새바지산)-비포장임도-마골산 갈림삼거리(비포장임도) 이정표(화장실 690 m와 돈문재 1.8 Km,
섬골해변가, 무룡정자고개 5.5 Km)-남목 감나무골 입구 갈림삼거리(마골산등산안내도, 구급함, 옥류천 이야기길 안내판) 이정표(염포정 2.57 Km와 마골산 찬내미골 넘에 염포정,
주전초등학교 4.74 Km와 머리진바위 하마방, 남목 감나무골 입구 1.8 Km와 부부암 여근암 남근암 쉼터바위)-마골산(297.4미터 정상석, 돌탑, 벤취쉼터2)-갈림삼거리 복귀-비포장임도-
마골산 숲속쉼터(안내판, 팔각정자2, 운동기구, 옥류천 이야기길 안내판) 이정표(염포정 1.58 Km, 마골산정상 1.02 Km, 남목 감나무골 입구 2.06 Km)-예비군 훈련장-전술훈련장
이정판(현대자동차 예비군훈련장) 이정표(돈문재 0.4 Km, 무룡정자고개 6.6 Km, 심청굴 0.5 Km)-시멘트 포장도로-사각정자와 벤취쉼터들 이정표(마골산헬기장 2.3 Km와 무룡정자
고개 6.9 Km)-감나무골 입구 갈림삼거리(옥류천 이야기길 안내판) 이정표(염포정 0.6 Km, 마골산정상 1.75 Km, 감나무골 입구 3.06 Km)-이정표(염포정 0.45 Km, 감나무골
입구 3.06 Km)-동축사 삼층석탑 갈림삼거리(이정판, 사각정자, 헬기장) 이정표(동축사 1.72 Km와 장군발자국터 큰휘양바위 송급암, 마골산정상 2.61 Km와 찬새미골 넘에 범밭재 머리진방
마골산 소평마을)-남목고등학교 갈림삼거리 이정표(염포정 200 m, 남목고등학교 2.85 Km, 남목고등학교 2.45 Km)-편백나무 조림지-289.1 삼각점봉(폐 콘크리트 건물, 삼각점 소실)-
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 이정표1(염포정 50 m, 남목1동사무소 3.18 Km, 마골산정상 2.3 Km)과 이정표2(염포삼거리 2.55 Km, 무룡정자고개 7.45 Km)-290.1봉(염포개항기념공원,
염포전망대, 염포정은 수리중, 동축산 염포팔각정 안내판)-염포 전망대 조망-새밭재 이정표(염포삼거리 2.1 Km, 염포정 0.1 Km)-시멘트 포장도로-운동기구 이정표(염포삼거리 1.9 Km,
염포정 0.49 Km)-갈림삼거리 이정표(염포삼거리 1.8 Km, 남목고등학교 1.88 Km, 염포정 0.57 Km)-능선진입-편백나무 조림지-251.6봉(새밭재봉? 종이코팅지)-잡풀 비포장임도-길주의
갈림삼거리(방향표시 없는 우측능선) 이정표(남목고등학교 1.2 Km, 감나무골 입구 3.66 Km)-우거진 잡풀등로-8번과 22번 송전탑-굵은 소나무와 편백나무 조림지-NO1 송전탑-지독하게
우거진 잡목 내리막 등로-길주의 갈림삼거리(J3클럽 천왕산님 띠지, 우측)-남목초등학교장 안내판-1차선 포장도로-당고개(방어진순환도로 6차선 포장도로, 정수장 버스정류장, 횡단보도로
도로 통과)-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산불감시초소) 이정표(안장바위 갑옷바위 엄포산정상)-정각사-대추나무 과수원과 밭경작지-능선진입-대나무 밭(물탱크2)-쉼터 공터-바위암릉-
억새마대등로-바위봉 앞 불전-바위암봉 조망-소나무 등로-121.1봉(이정판)-무명묘지 안부-비포장임도(우측)-벤취쉼터2-좌측 조망-소나무 제선충 예방주사 사업 안내판-시멘트 포장도로-
비포장임도-돌탑-돌탑과 갈림삼거리 이정표(염포산정상 0.6 Km, 남목 2.3 Km, 현대고등학교 1 Km)-돌탑과 갈림삼거리 이정표(염포산정상 0.3 Km, 남목 2.8 Km, 염포약수터 0.5 Km,
정상화장실 0.2 Km)-갈림삼거리(좌측)-염포산(203.4봉, 오승정 팔각정자, 운동기구울산18 지적삼각점) 이정표(화정산삼거리 2.8 Km와 동구청 3.9 Km, 남목 3.1 Km, 정상
화장실 0.1 Km와 한마음체육공원 1.1 Km)-안부(방어진공원안내도, 팔각정자, 벤취쉼터들)-시멘트 포장도로-염포산 산악자전거 대회코스 안내판-갈림삼거리 안부 이정표(화정산
삼거리 2.7 Km, 염포산정상 0.1 Km, 염포약수터 0.4 Km와 성내 0.9 Km)-비포장임도-갈림삼거리 이정표(화정산삼거리 2.4 Km, 염포산정상 0.4 Km, 원각사 0.5 Km와 성내 0.7 Km)-
능선진입-174.2 삼각점봉(이정판, 띠지들, 삼각점 소실)-갈림삼거리(우측)-전망데크-비포장임도 접속-사각쉼터와 벤취쉼터-시멘트 포장도로-미포조선소 갈림삼거리 이정표(미포
조선소 0.4 Km, 염포산정상 1.6 Km)-이정표(미포조선소 0.4 Km)-능선진입-송전탑-131.6봉(이정판)-비포장임도 접속-성골삼거리 이정표(화정산삼거리 0.8 Km, 염포산정상 2 Km,
성골삼거리 2.2 Km)-성골삼거리 이정표(화정산삼거리 0.4 Km, 염포산정상 2.4 Km, 성골삼거리 2.2 Km)-해파랑길 띠지들-화정산삼거리 이정표(미포구장 1 Km와 입암골 대구멀재
봉화산 천내봉수대, 염포산정상 2.8 Km, 동구청 1.1 Km)-1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비포장임도)-송전탑 조망-146.7 삼각점봉(이정판, 울산456 삼각점)-울산대교전망대-울산대교
주차장과 버스정류장-시멘트 포장도로 이정표(염포산정상 3.3 Km)-대나무 도로-산불감시초소 이정표(월봉사 1.4 Km, 울산대교전망대 0.5 Km와 염포산정상 3.95 Km)-방어진체육공원
축구장-화정천내숲속길 이정표(울산과학대 0.5 Km, 염포산정상 4.3 Km, 문현삼거리 1.2 Km)-천내봉수대 조형물-봉수대의 비치물목(방호시설과 비품)-봉수대의 비치물목(거화재료)-
봉수대의 비치물목(봉수군 거주시설과 비품)-주전남목봉수대 관련 고문서-117.7봉(화정 천내봉수대)-조릿대 등로-능선진입-월봉사 갈림삼거리 이정표(월봉사 0.5 Km, 염포산
정상 4.95 Km)-텃밭 등로-텃밭 출입금지 목재통과-능선진입-봉수로 6차선 포장도로-문현삼거리 이정표(슬도 2.4 Km, 울산대교전망대 2.1 Km)-방어진순환도로 4차선 포장도로-봉화재
갈림삼거리(셀프 오일뱅크 주유소)-꽃바위로 2차선 포장도로-정림아파트 앞 주차장-능선진입-지독한 잡목등로-삼나무 조림지-억새마대등로-망개산(83.9봉, 굵은 소나무와 띠지들)-
벤취쉼터2-17번 송전탑-통나무계단-꽃바위로 2차선 포장도로-58.9봉 진입불가-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갈림삼거리-화잠로 2차선 포장도로-화암추등대 전망데크산책로-화암등대길-
화암추등대와 항로표지관리소-삼태지맥 산행종료-화암추등대 전망데크산책로 입구-산행종료
산행거리 : 21.60 Km (무룡고개 일명 가운데고개에서 화암추등대 나무데크 입구까지)
지맥산행 : 20.38 Km - 무룡고개 일명 가운데고개에서 화암추등대까지
접속구간 : 01.22 Km - 화암추등대에서 화암추등대 나무데크 입구까지
산행트랙 :
산행시간 : 07시간 34분 (06시 12분부터 13시 47분까지 접속구간 모두 포함하여)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4시 00분 모나리자 모텔에서 기상 후 산행 준비하여 출발
04시 40분 모텔 근처 편의점에서 미역국과 컵라면으로 아침 해결 및 필요 물품 구매(12,500.-원)
05시 30분 화암추등대 나무데크 입구 근처에 애마 주차시키고 카카오톡으로 택시 콜
06시 12분 삼태지맥 제2구간 산행 들머리인 무룡고개 일명 가운데고개에 도착 해 산행 준비 후 곧바로 출발(17,000.-원)
올때 - 13시 27분 삼태지맥 마지막 날머리인 화암추등대에 도착 해 삼태지맥 산행 종료
13시 47분 화암추등대 나무데크 입구에서 모든 산행 마무리하고 배낭 정리한 후 등산복 갈아입고 곧바로 귀가
19시 30분 약간씩 막히는 도로를 타고 무사히 귀가해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자축
삼태지맥이란 ???
삼태지맥(三台枝脈)은 낙동정맥의 백운산(892m) 북쪽에서 동쪽으로 분기해 간 호미지맥이 44.1 Km를 달려 원고개를 지나 토함산으로 가기 전 중간지점인 토함산목장에서 남쪽으로 또 다른 가지를 쳐 삼태봉, 동대산, 무룡산, 염포산, 망계산을 지나 울산광역시 동구 화암추등대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0.5 Km가 되는 산줄기를 말하는데 태화강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삼태지맥 마루금의 상당 부분은 현재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어 도로를 따라 진행되고 마지막 날머리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조선업체 중 한곳인 현대중공업이 차지하고 있어 어렵게 우회하며 진행을 해야 하는 특이한 산줄기이다.
오락가락하는 비로 인해 등산복과 등산혹 흠뻑 젖어 어려운 산행이었지만 대부분 임도와 도로로 이어져 생각보다 편하고 이른 시간에 산행을 마무리하고 무탈하게 귀가하며 즐거움을 만끽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삼태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북 경주시와 울산시 및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와 네이버의 지식백과 그리고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오늘은 아침 7시 이후로 약간의 바가 오전 11시까지 내린다는 예보로 인해 남아 있는 삼태지맥 산행을 진행해야 하는지 아니면 포기하고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야 하는지 고민이 되지만 대부분의 등로가 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임도로 이뤄져 있어 우산을 준비해 진행하고 올라 가기로 한다.
예전과 달리 예보에 맞춰 아침 7시 30여분이 지나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데니 금새 폭우처럼 내려 잠시 사각쉼터에서 비를 피하고 다시 출발하니 오전 11시까지 내리고 비는 그쳤지만 풀섶에 내려 앉은 빗방울들로 인해 등산바지와 등산화는 흥건히 젖어 삼신지맥에서의 악몽이 되살아 나지만 이곳은 우거진 잡목 등로가 아니기에 조금은 편안하게 안심하고 진행을 한다.
비에 젖은 등산화를 신고 진행하다 보니 사타구니에 상처가 생기고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면서 진행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생각ㅈ=보다 심하지 않아 잘 마무리하고 화암추 등대를 다녀 와 배낭을 정리하고 귀가를 하는 시간은 피곤이 밀려 와 두어번이나 쉬면서 어렵게 올라 왔지만 너무 늦지 않게 올라 와 또 하나의 지맥 산행을 마무리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시간이었다.
이제 남아 있는 7개의 지맥 산행도 나무 완주에 목매이지 않고 늘 하던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안전을 최우선으로 무탈하게 진행하고 희열을 느끼며 즐기는 시간이길 바래 본다.
오늘 새벽은 조금 늦게 일어 나 모텔 근처의 편의점에서 누룽지와 김치로 든든하게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화암추등대 가는 데크 아래 주차장에 애마를 주차시킨 후 산행 들머리인 가운데고개 일명 무룡고개로 올라가니 어둠이 사라지고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오늘은 오전에 비 소식이 있어 우산을 챙겨 시멘트 포장도로와 뚜렷한 능선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 찬물내기약수터 지나 진달래 군락지 사각쉼터에 도착하니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군부대 입구에서는 지뢰매설 지역이라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양떼목장 앞 헬기장 지나 빗물 머금은 마골산을 다녀 온 후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염포전망대로 오르니 풍경과 조망을 즐기라고 잠시 비가 멈추고 일망무제로 펼쳐진 환상의 조망들을 즐기다 보니 북쪽으로 오늘 이 산객이 빗속에 어렵게 걸어 온 삼태지맥 상 저 멀리 무룡산에서 우측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마루금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마음 편온하게 즐겨 보는 시간이다.
지나 온 북쪽으로 저 멀리 무룡산까지 이어지는 지나 온 삼태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그 이름들을 불러주고 이제는 진행 방향인 남쪽을 살펴보니 우측 옆으로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이 흐르고 그 태화강 바로 좌측으로 강물을 따라 흐르는 남아 있는 삼태지맥 마루금이 저 멀리 끝자락의 화암추등대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속 시원하게 펼쳐져 이 산객의 가슴속에 잔잔히 희열의 물결을 전해 준다.
태화강과 삼태지맥 마루금 사이로는 전세계 조선소 중 가장 유명하고 큰 미포조선소와 현대중공업이 이어져 있는데 이곳에서는 바로 앞 능선에 막혀 잘 보이지 않기에 아쉬움도 남기는 모습이다.
대부분 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임도를 교대로 갈아타며 걷다 보니 도상 해발고도가 명기된 봉우리들은 좌우측 능선 방향으로 가깝게 존재하고 있어 오르다 보니 풀섶과 나뭇가지에 모여있던 빗방울들이 비산하며 온 몸을 흥건하게 적시고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 드디어 울산대교 전망대에 도착을 하고 갈길 바쁜 지맥 산행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비가 그친 사이 울산대교 3층 야외전망대로 오르니 강풍이 불어 주의가 필요하지만 생각보다 환상의 풍경들과 조망들이 펼쳐져 있어 360도 돌아가며 많은 사진과 추억들을 남겨 본다.
이제 지척으로 다가 온 삼태지맥 마지막 화암추등대가 우측 태화강과 만나는 마지막 지점으로 보일듯 이어져 있고 그 태화강 강변으로는 섹에서 가장 유명한 밉포조선과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가 줄지어 늘어 선 모습이 환상적이면서도 역동적인 풍경으로 가슴속에 쌓이는 시간이다.
울산대교 전망대에서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임도를 따라 진행하다 보니 드디어 울산시내를 지나 화암추등대 가는 데크 등로를 만나 우측에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공장을 두고 걸어가니 드디어 태화강이 동해바다와 만나는 합수점에 도착을 해 더 이상 흙으로 된 육지로 걸어갈 수 없기에 화암추 등대 앞 방파제에 올라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이틀간 삼태지맥이란 이름으로 열심히 걸었던 마루금 산행으 마무리하는 시간은 언제나처럼 늘 개운하고 시원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많은 아쉬움도 남기는 시간이다.
이제 16년 간 이어져 온 이런 의무적인 산행도 7번만 더 진행하며 더 이상 그 의무가 사라지니 기회가 많이 줄어들 것임을 알기에 더욱 남아 있는 지맥 갯수가 줄어들수록 이런 아쉬운 마음도 크게 남아 있을 것이지만 또 다른 취미로 산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래보는 시간이다.
토요일 날 저녁에 천안에서 친구들과 모임을 끝내고 삼태지맥 첫구간 산행 날머리인 가운데고개 일명 무령고개로 출발하니 새벽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으로 날머리 도착 시간이 아침 6시 30여분이 지나가고 있어 아침식사 할 시간도 없이 조금은 빠르게 달려 중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면서 빵과 모나카를 구매해 아침대신 먹다 보니 아쉬움을 남겼는데 오늘은 날머리에서 가까운 모텔을 예약해 새벽 조금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 여유있게 아침식사까지 마치고 화암추등대 가는 데크 밑 교각 아래 주차시키고 카카오택시를 콜하니 금새 도착을 한다.
택시 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새 가운데고개 일명 무룡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아직은 어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시간이라 조금 더 여유를 부리며 산행 준비하고 남쪽의 양떼목장 가는 방향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새벽 6시 12분으로서 이제서야 여명이 완전히 밝아오며 세상이 조금씩 봉기 시작한다.
가운데고개(무릉고개, 정자고개)는 울산광역시 북구 연암동과 어물동 및 신현동으로 이어지는 고개를 말하고 명칭 유래를 보면 가운데고개는 가분데고개 또는 왕거령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옛날 하상면과 강동면의 가운데 위치하여 가운데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신라시대 임금이 이 재를 넘어갔다고 하여 왕거령이라고도 부른다고 전해진다.
울산광역시 북구 신현동 구남마을에서 구남저수지 옆을 지나 어물동을 거쳐 연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고 가운데고개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산지가 발달되어 있으며 동쪽으로는 우가산(牛家山)의 낮은 산지를 지나 바로 동해가 펼쳐진다.
무룡산(舞龍山)을 가로질러 지나는 고개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커다란 노목들이 자라고 있으며 구남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구남저수지 옆으로 고갯길이 나 있다.
서쪽에는 염포동의 염포산(鹽浦山)을 시작으로 새바지산, 무룡산, 동대산(東大山), 관문산에 이어 경주의 토함산까지 산맥을 이어간다. 가운데고개는 강동 지역과 울산 읍내를 연결하는 주요 고개 중 하나로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에서 울산으로 이어지는 무룡로라는 신작로가 1930년대 가운데고개를 넘어 개설되었으며 이때 원래의 선형(線形)이 많이 바뀌었고 지금도 그 잔형(殘形)이 일정 구간에 많이 남아 있다.
지방도에서 국도로 승격한 무룡로는 무룡산 자락을 돌아 굽이가 많아서 초기에는 사고도 많아 흔히 아흔아홉 구비길이라 하였고 무룡로 구간의 정상 부근이다.
현재 가운데고개 정상에는 무룡고개라는 이정표가 걸려 있으며 2006년에 새로운 국도제31호선이 생기면서 정상부에 무룡터널이 건설되고 많은 차량들이 국도제31호선을 이용하게 되어 무룡로 고갯길은 차량 통행이 줄어들었고 더불어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 사이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다.
고갯길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커다란 노목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산행의 운치가 좋은 편이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며 지도를 확인해 보니 중간에 도상 260.4봉이 보여 혹시나 하고 도로 좌측으로 진입할 수 있는 등로가 있을까 살펴보며 오르는데 초반 한군데 진입로를 통과하니 나니 더 이상 좌측 능선으로 오를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결국 아쉽지만 도상 260.4봉은 들리지 못하고 통과하게 되었다.
오르며 좌측을 보니 콘크리트 옹벽이 보이고 그 옹벽 주위로는 우거진 칡넝굴들이 완전히 막고 있어 능선 방향으로는 진입을 원천 봉쇄하고 있어 아쉽게 걸어 오르니 송전탑이 올려다 보이는 좌측 능선 방향의 절개지 위로 260.4봉이 올려다 보이지만 오를 수 없으니 사진에만 담고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무룡고개에서 0.5 Km 진행해 온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보이는데 도로 좌측 원 마루금 방향을 살펴보니 묘지 지나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 능선들이 보여 잠시 배낭 내려놓고 260.4봉을 다녀오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그냥 마음 편히 비포장임도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도상 260.4봉을 들리지 못하고 진행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자책하며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승복을 입고 운동을 하는지 아니면 산책을 하는 승려 한분이 내려 와 인사 나누고 계속 전진해 걸어가니 어느 순간 시멘트 포장도로가 비포장임도로 바뀌면서 거의 유사한 풍경과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조금 더 비포장임도를 따라 오르다 임도가 좌측으로 휘어지는 우측으로 나즈막한 돌담들이 나타나고 그 돌담 위로 산딸기 가시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사이로 유일하게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어 그곳으로 올라 잠시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금새 다시 넓은 비포장임도로 내려서는데 지도를 보니 방금 전 타고 온 비포장임도로서 계속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해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비포장임도로 내려서서 우측으로 몇걸음 걸어가니 다시 임도 우측 잡풀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등로가 열려있어 그곳으로 진입하며 본격적인 능선 산행을 이어간다.
남서 방향으로 보이는 능선으로 진입하니 우거진 잡목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곧이어 물길이 흐른 흔적이 남아 있는 등로가 보이는데 얼마 전 폭우가 내렸을 때 만들어진 물길이 비가 그치면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등로이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갑자기 등로에 로프가 설치된 지점 지나 무명안부를 통과하니 굵은 소나무 아래로 키 작은 잡목들이 보이지만 그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나 있어 진행에는 어려움 없이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다시 넓은 비포장임도와 만나 그 임도를 따라 우측인 서쪽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는 자꾸만 좌측으로 휘돌아 이어지는데 임도 가까운 곳으로 마을 주민들이 밤과 도토리를 수확하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들어 와 처음에는 멧돼지의 발자국 소리인 줄 착각하며 긴장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한동안 좌측으로 휘돌아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임도는 이제 남쪽 방향으로 바뀌고 밤을 수확하는 주민이 타고 온 SUV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풍경도 눈에 보이는 지점을 통과하니 약천사까지 1.3 Km 남아 있다는 작은 이정판 지나 개발제한구역내 행위제한 안내판이 서 있는 좌측으로 넓은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등로 좌측인 북쪽을 보니 어제 오흐 늦게 넘어 온 울산시 무룡산 정상에 설치된 많은 방송국 통신탑들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생각보다 가깝게 보여 조금은 실망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북쪽으로 무룡산을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진행하니 임도 우측으로 조릿대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우측 전봇대 옆으로 많은 생활쓰레기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곧이어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이제부터는 아랫율동2길이라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인 동쪽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가는데 그 갈림삼거리 좌우측으로는 약천사와 양떼목장 및 성불사로 갈 수 있는 방향과 거리 표시들이 보이는 많은 이정판들이 세워져 있어 사진에 담고 산행을 진행한다.
그렇게 그 갈림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른 뒤 뒤돌아 보니 우측에서 내려 온 삼태지맥 마루금과 좌측에서 올라오는 아랫율동2길 1차선 포장도로가 갈림삼거리 지나 올라 오는 모습이 보인다.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공군부대 건물이 나타나는데 철문은 굳게 잠겨 있어 다시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아랫율동2길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앞으로 벤취쉼터가 보이는 찬물내기약수터에 도착을 하는데 생각보다 수량이 풍부해 물 한모금 마셔버려고 검사결과서를 확인해 보니 대장균 검출로 음용불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어 가지고 간 식수로 갈증을 달랜 후 이제 타고 온 아랫율동2길이라는 1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이정표 옆으로 나 있는 능선등로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는데 아직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으로 능선으로 오른다.
찬물내기약수터에서 음용불가라는 안내문에 따라 약수 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손만 닦은 후 이제 1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진달래 군락지까지 0.5 Km 거리라는 능선 방향으로 올라 굵은 참나무 사이로 나 있는 뚜렷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태화강과 그 강 위로 건설된 명촌대교 및 명촌대교 건너편으로 울산광역시의 번화가가 한눈에 들어 오는데 오전부터 비 소식이 있어서 그런지 새벽부터 박무가 심해 생각보다 조망이 아쉬움을 남긴다.
그 명촌대교 좌측 뒤로도 태화강에 세워진 다리 교각들이 보이는데 연무로 인한 그리움만 쌓이는 시간이기에 사진으로만 남기고 다시 산행에 집중한다.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굵은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완만하지만 뚜렷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꾸준히 걸어 오르니 다시 굵은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잡목지대 사이로 등로가 보이고 잠시 후 하늘이 열리면서 사각쉼터와 시멘트 벤취2개와 이정표가 보이는 지점에 도착을 하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며 폭우가 쏱아져 잠시 사각쉼터로 들어가 비를 피하며 우산을 꺼내 드는데 사각쉼터 좌측 뒤로는 진달래 군락지라는 이정판도 보여 봄철 진달래가 피는 계절에는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는 듯 보인다.
물 한모금 마시고 배낭 커버를 씌우는 사이 비가 잦아들기 시작해 우산을 들고 출발하려는데 북쪽으로 어제 내려 온 무룡산 정상부의 방송국 송신탑들이 보여 사진에 담으며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본다.
출발하려다 사각쉼터에서 북쪽 방향을 살펴보니 사진 좌측 소나무 가지 사이로 정상에 많은 방송국 통신탑들이 보이는 무룡산이 지척으로 솟아 있고 그 우측 저 멀리 나즈막하게 이어지는 탕근산 방향의 조망이 열리는데 쏱아지는 빗줄기 속에 시야가 사라지며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아마도 탕근산 우측 무명의 산줄기 뒷쪽으로는 동해바다가 보일 것 같은데 가늘게 쏱아지는 빗줄기가 시야를 방해해 무룡산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우산을 펴 들고 사각쉼터를 내려 와 출발하며 이정표를 확인해 보니 우측으로 성불사 갈림삼거리로서 진행 방향으로는 마골산헬기장까지 1.57 Km 거리라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보이는 남동 방향으로 진행된다.
잠깐 내린 폭우같은 빗방울들이 등로 옆 잡목과 잡풀들을 흥건히 적셔 뚜렷한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해도 금새 모여있던 빗방울들이 튕기면서 산객의 등산바지와 등산화를 흥건히 적시기 시작하지만 그래도 뚜렷한 등로 덕분에 우산을 받쳐들고 진행할 수 있어 모바일 폰으로 사진을 담으며 진행하는데엔 큰 어려움이 없어 다행이다.
그렇게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가지가 많은 굵은 참나무에 준희 선생님이 걸어 둔 이정판이 보이는 도상 329.8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삼각점을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소실된 것은 아닌지 궁금해하며 곧바로 출발한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329.8봉에서 삼각점을 찾지 못하고 출발하니 평이한 등로가 잠시 더 이어지고 이리저리 잡목가지들을 피해 걸어가다 보니 금새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주위에는 많은 이정판들이 세워져 있어 살펴보니 좌측으로 양떼목장 가는 도로와 지뢰제거작전 관련 안내판 그리고 또 다른 군관련 안내판들이 보이는데 지도상으로는 남동 방향으로 나 있는 완만한 오르막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해야 될 듯 싶은데 트랙은 좌측 양떼목장 방향으로 크게 꺽어 동쪽 방향으로 진행하도록 되어 있어 무슨 사연이 있는 듯 보였다.
이곳 양떼목장 갈림삼거리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양떼목장 입구 헬기장까지는 옛날 군부대지역으로 지뢰들이 대량 매설되어 있어 부득이하게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원 마루금을 포기하고 좌측 양떼목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임도를 번갈아 타며 진행을 해야 하는 우회등로처럼 보여 아쉽지만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을 이어간다.
여전히 추적거리는 비가 내리고 우산을 받쳐들고 넓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양쪽 곳곳으로 지뢰매설 지역으로 위험구역이니 절대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판들이 보이고 간간히 트럭과 SUV 차량들이 통행하는 것으로 봐 한적한 도로는 아닌 듯 싶다.
그렇게 한동안 그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드디어 임도 우측으로 원 마루금과 접속하는 양떼목장 입구 헬기장 직전 지점에 도착을 하고 마지막으로 지뢰제거작전 지역임을 알리는 안내판과 무룡고개에서 4.59 Km 지나 온 지역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진 한장 남긴다.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임도 우측의 원 마루금과 접속하여 조금 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좌측 옆으로 커다란 양떼목장을 알리는 사진이 보이고 그 옆으로 철문이 굳게 닫혀 있는 양떼목장 출입구가 보이는 헬기장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본다.
울산시 북구에 있는 양떼목장은 처음 들어 본 이름이라 인터넷을 통해 알아 보니 가족 나들이 하기 좋은 곳으로 먹이체험 등을 할 수 있으며 입장료를 받고 여러가지 학습체험이나 자연과 친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는데 강원도 양떼목장과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어 동남권 시민들에게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는 자연학습장 같은 곳으로 인식되는 곳이다.
울산 양떼목장 입구를 확인하고 살펴보니 안쪽 저 멀리 몇마리의 야에들이 보이지만 비가 내려서 그런지 한가하기만 하고 다시 323미터의 헬기장으로 올라 북북서쪽을 살펴보니 가랑비가 내리는 도중에도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마루금 뒤로 정상에 방송국 송신탑들을 이고 있는 무룡산 정상이 아스라히 보여 사진에 담고 다시 한번 더 오늘 걸어 온 등로를 살펴보지만 마루금은 잘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세도 낮고 등로도 좌우로 왔다리 갔다리 도로와 비포장임도를 많이 걸어 와 분간하기 어렵다.
그래도 드넓은 울산광역시의 양떼목장과 그 뒤로 무룡산을 살펴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이곳에서 우측인 남동 방향으로 방향을 크게 꺽어 이름도 흔하지 않은 마골산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헬기장을 지나 임도 방향으로 진입하니 입구에 무룡고개에서 4.74 Km 진행해 왔다는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전방으로 사각쉼터와 벤취쉼터들도 보이는데 비가 내리고 있어 사진에만 담고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임도 양쪽으로는 관목의 활엽수들 사이로 잡목들이 우거져 보이고 금새 안개가 짙게 밀려오며 잠시 몽환적인 분위기도 보여주는데 약간의 바람이 불자 신기루처럼 안개가 사라져 버린다.
한동안 더 평이하게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마골산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이정표를 보니 산행과는 관계없는 장소 표시만 가득해 사진에만 담고 지도로 확인하며 좌측 임도를 따라 잠시 마골산을 다녀 오기로 하는데 지도에는 마골산이란 지명 이름은 보이지 않고 297.4봉으로 표기된 봉우리만 보이는 곳으로 다음 지도에는 마골산으로 표시된 봉우리가 맞다.
좌측으로 분기한 비포장임도를 따라 평지처럼 걸어가니 마골산등산안내도와 구급함 그리고 옥류천 이야기길 안내판이 서 있고 또 다시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삼태지맥 산행과는 관계없어 보여 사진으로만 담고 그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좌측 잡풀들이 무성한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벤취쉼터들과 커다란 돌탑 그리고 아담한 오석의 정상석이 박혀있는 297.4미터의 마골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주위를 둘러 보지만 설명과는 달리 나무들에 막혀 풍경과 조망은 전혀 볼 수 없기에 올라던 등로를 타고 곧바로 뒤돌아 내려온다.
마골산(290봉, 마골산숲속쉼터와 정자들)은 울산광역시 동구 동부동에 있는 산으로 명칭유래는 보면 마골(麻骨)은 삼(麻) 껍질을 벗겨낸 흰색의 삼대를 뜻하는 한자어로서 산에 줄지어 있는 많은 바위들이 마골처럼 보여 이름을 마골산(麻骨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울산광역시 동구에 자리 잡은 마골산은 해발 297m 높이의 산지로 북구와 동구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산지가 발달해 있고 남쪽으로는 낮은 평야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새바지산을 시작으로 무룡산(舞龍山)과 동화산(東華山)에 이어 동대산(東大山)까지 산맥을 이어가는데 산세는 전형적인 노년 산지로 동서 사면은 완만하나 남쪽 사면은 대체로 급한 편이다.
크고 작은 노목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곳곳에 전설을 품고 있는 기암들이 자리 잡고 있고 서쪽으로는 울산 제1강 태화강(太和江)이 울산만으로 유입하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방어진반도 주변으로 울산항을 비롯한 여러 항들이 모여 근해 어업의 주요지가 되었다.
높이는 낮지만 바닷가 산의 특성 때문에 주변 조망이 매우 뛰어나며 곳곳에 자리 잡은 기암괴석들로 인해 더욱 인기가 많은 산이다.
마골산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동구의 방어진반도를 이루고 방어진반도 내에 울산의 관광지로 유명한 대왕암공원과 슬도가 자리 잡고 있다.
마골산의 소망길에는 해골바위와 장적암, 휘양바위, 공부암, 송곳바위, 촛대바위 등의 기암들이 즐비한데 바위 하나하나마다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를 품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 산이다.
특히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인 동축사(東竺寺) 뒤편에 있는 관일대는 두꺼비 모양의 바위들이 모여 있으며 방어진 12경에 해맞이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마골산 정상을 확인하고 다시 갈림삼거리에서 서쪽으로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마골산 갈림삼거리에 복귀해 이제부터는 좌측인 남쪽으로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우산을 쓰고 진행을 이어간다.
임도 양쪽으로는 제법 굵은 소나무와 벗나무들이 보이고 그 아래 잡목들이 자라는데 봄철 벗꽃이 피는 계절에 오면 운치있는 산책로가 될 듯 싶은 임도이다.
잠시 더 굵은 소나무들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걸어가니 갑자기 마골산 숲속쉼터 안내판이 나타나고 팔각정자와 운동기구들이 보이는데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고 비까지 내려서인지 주민들은 전혀 보이지 않고 가끔 산책하거나 운동을 즐기는 시민들만 교행할 뿐이다.
마골산 숲속쉼터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다시 우측으로 팔각정자가 하나 더 설치되어 있고 운동시설들이 펼쳐져 있는데 바로 옆으로는 옥류천 이야기길 안내판이 다시 보여 옥류천 이야기길을 찾아보니 옥류천 이야기길은 울산광역시 동구 마골산 옥류천 일대에 조성된 산길로서 명칭유래는 마골산 옥류천 일대에 길을 조성하면서 역사와 문화 및 관광 자원과 지역 커뮤니티를 연결해 길 속에 이야기가 스며들도록 조성되었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였으며 옥류천 이야기길은 총 길이 14.9 Km에 차선과 폭은 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는 산길이다.
건립경위는 2011년 3월 정부의 친환경생활공간조성공모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어 총 10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아 2011년 6월 착공하여 동년 12월 준공되었다. 옥류천 이야기길은 총 4개 구간으로 정비하였는데 3개의 개별 구간과 전체를 아우르는 1개 구간으로 나뉜다.
사색과 소통의 길인 동축사길은 알바위~사기쟁이집골~도린자기~바람골장군바위~장수발자국터~동축사~관일대~관음정~공부암~망조당묘~옥류천 입구로 이어지며 신라 천년의 부처님 설화가 간직되어 있다.
은혜와 치유의 길인 소나무숲길은 도린자기~거북바위(남근암)~전망대~쇠평마을~울산테마식물원~남목마성~주전봉수대~주전몽돌해변~소직골~옥류천 입구로 이어지는데 소나무가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많이 있고 남목마성의 이야기에는 울산목장의 감목관이었던 홍세태의 아름다운 시가 스며들어 있다.
기기묘묘한 바위 탐방 길인 소망길(4.6㎞)은 남장사~착호비~불당골~거북바위~마애여래불상~촛대바위~장적암~해골바위~무적골~남목고로 이어지며 바위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걷는 재미를 더해 준다.
옥류천 이야기길은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없이 걸을 수 있는 완만한 신길과 울창한 숲 그리고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 옥류천 계곡이 있는 아름다운 길로서 스토링텔링 작업의 일환으로 2011년 장세련과 장세동 작가는 옥류천 이야기길을 출간하였다.
서울 창덕궁 후원에서 발원하여 창경궁을 통해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옥류천만 생각했던 산객에게 또 다른 옥류천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운치있는 비포장임도를 지맥 산행을 하면서 우산을 받쳐 쓰고 여유있게 걸어가니 임도 양쪽으로 갑자기 군 훈련장이 나타나고 살펴보니 에비군 훈련장으로서 잠시 후 만나는 갈림삼거리에 현대자동차 회사에서 설치한 커다한 전술훈련장이란 입간판이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이곳에서 비가 그쳐 우산을 접고 조금은 편안하게 진행하지만 이미 젖어 버린 등산복과 등산화로 인해 개운하지 못한 기분 또한 사실이었다.
예비군 훈련장을 지나 남쪽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큰 어려움 없이 빠르게 걸어가니 갑자기 햇살이 화사하게 비추면서 젖었던 등로를 말리기 시작하는데 습도가 높아서 그런지 코끝에 전해지는 공기는 생각보다 상쾌하지 못하다.
한동안 굵은 벗나무 아래 변색되기 시작하는 잡목들의 잎새귀들을 확인하며 진행하니 벤취쉼터와 사각쉼터 및 이정표들이 보이는 지점에 도착을 하는데 이제 마골산헬기장에서 2.3 Km 를 지나 온 지점으로 우측인 서쪽으로는 염포천과 심청골 지나 울산시의 양정동 마을 방향으로 펼쳐진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살짝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다.
진행 방향으로도 살짝 보이기 시작하는 마루금을 확인하고 사진에 담으며 계속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비포장임도로 바뀌는 무명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기 시작하고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감나무골 입구가는 이정표와 구급함이 설치된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울산시 양정동의 심청골과 감나무골 등 옛 정취있는 이름들은 이제 명맥만 유지할 뿐 거대한 산업 현장으로 변해 그 흔적들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격세지감을 느끼는 지역 중 한곳이 되었다.
감나무골 입구가는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또다시 좌측으로 감나무골 입구가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이제 염포정까지는 0.45 Km 거리만 남겨 둔 지점으로 사진에 담고 조금은 완만해진 오르막 도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좌측으로 동축사 삼층석탑으로 갈 수 있는 안내판과 이정표 및 사각정자가 보이는 드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아무 표시도 없는 무명봉이다.
동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로서 573년(신라 진흥왕 34) 진흥왕의 명으로 창건되었는데 창건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권3인 황룡사장륙조(皇龍寺丈六條)에 따르면 573년 3월 지금의 울산광역시 태화지방인 하곡현(河曲懸) 사포(絲浦)에 서역에서 온 큰 배가 닿았는데 이 배에는 인도의 아소카왕이 보낸 편지와 황금 3만 푼 및 황철 5만 7천근이 실려 있었고 편지에는 아소카왕이 석가삼존불을 주조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황금과 황철을 배에 실어 인연 있는 국토에 가서 장륙존상이 되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삼국유사에는 아쇼카왕의 기원을 담은 배는 1천 3백여 년간 16대국(大國)과 5백중국(中國), 7백소국(小國), 1만 부락을 거쳐 신라에 닿았다고 설명되어 있었으며 배에는 장륙상의 모형 불상도 함께 실려 있었다.
이에 왕은 황금과 황철로 황룡사 장륙존상을 만들었으며 모형 불상은 사포 동쪽 부근의 깨끗한 곳을 골라 절을 짓고 모셨는데 이 때 모형 불상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절이 동축사라고 하고 뒤에 모형 불상도 황룡사에 옮겨 모셨다고 전한다.
이를 통해 동축사는 축(竺)의 동쪽 곧 인도의 동쪽에 있는 절이라는 의미를 지님을 알 수 있으며 934년(경순왕 8) 중창하고 고려 정종(재위: 1035∼1046) 때 옥인(玉仁)이 중수하였으나 이후의 연혁은 전하는 것이 없다.
1931년 완성(翫性)이 중수하였으며 1975년 주지 도암(道庵)이 정주영(鄭周永) 등의 시주로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는데 이 때 대부분의 건물을 보수하고 600근의 범종을 주조하여 새로 지은 범종각에 두었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칠성각 및 서향각, 무량수전,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는데 이들 건물이 들어선 마골산 터는 창건 당시 유행하던 평지가람형은 아니어서 창건 당시에는 사찰이 해안가나 평지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오랫동안 이곳이 절터로 이어내려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유물로는 고려 중기에 제작된 동축사삼층석탑이 전하는데 본래 대웅전 앞에 있었으나 1977년 중창할 때 경내에서 약 40m 서남쪽으로 옮겼으며 기단의 한변 길이가 1.8m, 높이 3.25m이고 이밖에 사적비가 있다.
동축사 갈림삼거리의 팔각정과 헬기장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변색되어 가는 벗나무를 살펴보며 걷다 보니 오늘 내린 비로 인해 비포장임도 곳곳에 물 웅덩이가 생겨 일반 잡목 등로였다면 오늘도 많은 고생으로 힘든 산행이었을 것을 그나마 도로와 임도로 진행하니 비의 영향을 최소화하며 진행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를 번갈아 갈아타며 빠르게 걸어가니 비가 내리는 중에도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이 가끔 보이고 곧이어 임도 좌측으로 도상 289.1 삼각점봉이 보여 올라가 보니 벌목 후 편백나무들을 조림한 지역인데 오래된 낡은 콘크리트 폐 건물이 보이고 그곳으로 올라 아무리 삼각점을 찾아도 보이지 않고 단 한장의 선답자의 산행띠지도 걸려있지 않아 폐 건물만 사진에 담고 옆으로 설치된 이정표를 보니 좌측으로 남목고등학교 갈림삼거리 이정표인데 이제 진행 방향으로는 염포정까지 200미터 거리임을 알려준다.
아무 표시도 찾지 못한 도상 289.1 삼각점봉을 사진에 담고 뒤돌아 나와 비포장임도를 따라 조금 더 전진하니 넓은 공터에 많은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고 진행 방향으로는 산불감시초소와 특이한 모양의 전망대가 보이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염포정이란 정자가 보잊 않아 의아하게 생각하며 공사중인 곳으로 가 보니 특이한 모양의 전망대는 염포전망대이고 이곳은 바로 염포개항기념공원으로서 지도상으로는 290.1봉인데 이 산객이 생각했던 정자의 염포정은 보이지 않는다.
염포는 울산광역시 북구 염포동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포구로서 신라 때는 하곡현(河曲縣), 고려 때는 지울주군사(知蔚州郡事), 조선시대에는 울산군(蔚山郡)의 관할 하에 있었으며 진(鎭)이 설치되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울산군 방어진읍 염포리로 되었다가 1962년 울산시 염포동으로 편입되었다.
지명 유래는 예로부터 소금밭이 많아 소금나는 갯가라 하여 붙여졌다고 하는데 지형상으로는 서북쪽에 하안평야가 있을 뿐 갯가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염포진(鹽浦鎭)이 있어 수군만호가 주둔하였으며 문헌상에는 이곳에 성이 있어 둘레가 1,039척이 되고 성내에는 우물이 3개 있다고 하였다.
1426년(세종 8) 부산포(富山浦) 및 제포(薺浦)와 함께 삼포에 왜관(倭館)을 설치할 때 염포에도 일본인의 거주가 허락되었는데 삼포의 왜관 규모는 신숙주(申叔舟)의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에 의하면 36호 120명 정도였다고 하며 당시에 왜국 사절이 서울을 갈 때 염포에 상륙하여 언양과 경주 및 안동을 거쳐 가도록 정하여 염포는 좌로(左路)의 시발지가 되었다.
삼포의 개항 당시 염포의 왜인의 수를 60명으로 한정하였는데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이 일어날 당시에는 120여 명이 상주하였으며 1512년 임신약조의 체결로 염포의 왜관은 폐쇄되었다.
염포는 역사적으로 울산 지역을 방어하는 군사기지로서 큰 몫을 하였는데 태화강(太和江) 하구에 위치하여 개운포(開運浦) 및 유포(柳浦)와 함께 울산의 좌병영을 지키는 수군의 군사기지였다.
조선시대에는 부근에 가리산(加里山)과 천내산(川內山) 봉수가 있었고 동쪽 해안 지대에는 목장이 있었으며 염포 대안에는 처용암(處容巖)이 있는데 신라 때의 처용가 전설이 전하는 곳으로 오늘날에도 어부들은 이 바위에서 용제(龍祭)를 지낸다.
특이하고 멋진 염포전망대가 세워져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배낭을 내려 놓고 나무데크를 따라 전망대로 오르니 제법 바람이 불며 한기를 느끼지만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환상의 풍경과 조망에 한동안 그 전망대에서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제일 먼저 남쪽으로 이제부터 삼태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걸어 만나야 할 마루금이 펼쳐진 나즈막한 산줄기와 그 우측으로 거대한 미포조선과 현대조선을 끼고 흐르는 태화강 그리고 그 태화강 넘어 우측으로 펼쳐진 드넓은 울산시내의 풍경이 하나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잠시 사진에 담으며 그 이름들을 불러 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태화강 합수점이 있는 사진 정중앙부로 화암추등대를 찾아 보지만 보이지 않고 그 앞으로 솟아 있는 거대한 타우 크레인들만이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소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듯 보인다.
이제 눈을 서쪽과 남서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발 아래 거대한 현대자동차 공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그 바로 뒷쪽으로 태화강 넘어 울산시의 전경이 펼쳐지는데 그 울산시의 서쪽을 감싸며 흐르는 낙동정맥과 영남알프스의 장쾌한 산줄기는 내린 비와 안개로 인해 보이지 않으니 아쉬움만 남긴다.
다만 사진 우측 가장자리 방향의 중앙부로 조금 남아 있는 산림지대인 돋질산이 보이는데 저 돋질산은 천성산에서 분기한 남암지맥의 마지막 봉우리로서 가시잡목과 철조망으로 고생하며 내려왔던 몇년 전 추억이 떠오르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제 눈을 북서 방향으로 돌리니 사진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태화강이 서쪽 방향에서 흘러 와 남쪽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흘러가는 모습이 보이고 그 우측 위로 동천 넘어 거대한 울산시의 전경이 또한 펼쳐지는데 다만 안개가 껴 있어 그 울산시를 포근하게 감싸며 흐르는 낙동정맥 마루금은 볼 수 없으니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하다.
어제 하루 종일 등로 우측으로 봤던 호미지맥의 묵장산과 치술령 줄기는 이제 박무속에 흐릿하게 펼쳐진 모습이 드러나 있는데 그 바로 좌측 아래로 솟아 있는 연화산까지가 시야의 한계 라인인 듯 보인다.
이제 눈을 북쪽으로 돌리니 사진 좌측 뒤 가장 먼곳으로 희미하게 무룡산이 보이는데 그 정상에 솟아 있는 방송국 송신탑들도 박무속에 존재감을 알려오지만 그저 인공 구조물이 보일 뿐 분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 우측 앞으로 오늘 이 산객이 비를 맞으며 우산을 받쳐 들고 어렵게 걸어 넘어 온 삼태지맥 마루금이 이곳 염포전망대까지 길게 이어지는 풍경이 환상적으로 펼쳐져 있는데 시야가 조금 더 깨끗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나마 지나온 마루금을 추억하며 살펴보고 다시 가슴속에 저장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한 시간으로 남겨 본다.
이제 눈을 동쪽으로 돌리니 공사중인 염포개항기념공원이 바로 발 아래 내려다 보이고 산불감시초소 우측 옆으로 염포전망대로 오르는 입구의 나무데크도 보이는데 전망대를 내려간 후 우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알록달록 단풍으로 변색되어 가는 벗나무 뒤로 울산시 동구의 또 다른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과 동해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동해바다는 하늘인지 바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박무속에 약간의 아쉬움도 느낀다.
한동안 그렇게 염포전망대로 올라 많은 사진과 추억을 담으며 보이는 산줄기와 마을들 이름을 불러 준 뒤 젖은 등산복과 불어 오는 바람에 한기를 느낄 쯤 전망대를 내려 와 벗어 둔 배낭을 둘러메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금새 이정표가 서 있는 새밭재를 통과하는데 새밭재는 울산광역시의 동구 남목동에 위치한 고개로서 동축사에서 염포로 넘어가는 높은 고개로 숲속에 온갖 새들이 둥지를 틀고 산다고 하여 유래한 지명인데 조선지지자료에는 조전령산(鳥田嶺山)으로 기록하고 있다.
동축사가 있는 산을 마골산(麻骨山)이라고 부르는데 마골산의 마골(麻骨)은 삼대(麻木)를 삶아 껍질을 벗기고 남은 줄기를 한자의 뜻이다.
새밭재는 사잇고개라는 뜻과 지릅고개의 뜻으로 기록한 것인데 이는 모두 곧장 넘어 가는 고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새밭재 안부 지나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임도는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가끔 산책과 등산을 즐기는 시민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걸어가니 약간의 운동기구들이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까지 승용차로 올라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도 보인다.
그 운동기구가 설치된 안부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지금까지 걸어 온 시멘트 포장도로는 우측으로 버리고 좌측의 황톳빛 비포장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는데 지도를 보니 임도 바로 우측 옆으로 도상 251.6봉이 보여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벌목 후 편백나무들을 식재한 조림지 지나 굵은 참나무에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고 서래야 박건석님이 종이코팅지에 새밭재봉으로 이름을 붙힌 도상 251.6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좌측 비포장임도 방향으로 내려가니 부부가 올라오며 밤을 수확하기 바쁜 모습이 보인다.
이정판은 보이지 않는 도상 251.6봉 지나 다시 좌측 비포장임도로 내려가니 목초들이 자라 장딴지까지 올라와 풀섶에 머금은 물방울들이 튕기면서 다시 조금씩 말라가던 등산바지와 등산화를 흥건히 적시기 시작한다.
이제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남목고등학교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만나는데 사진을 담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정표에 표기가 없는 우측의 남동 방향으로 소로를 따라 진행해야 한다고 인식을 했으면서도 무심코 동쪽인 좌측 남목고등학교 방향으로 내려갔다 뒤돌아 올라 와 정상 마루금으로 진행하며 둔덕을 넘으니 굵은 참나무들 아래 묵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가 나타나는데 더욱 크게 자란 잡풀들이 이 산객의 허리춤까지 올라 와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스틱으로 풀섶에 모여있는 빗방울들을 털어 보지만 한계가 있어 다시 등산바지와 등산화가 흥건히 젖어들기 시작하고 등산양말까지 약간의 눅눅함을 느끼는 순간 발가락 물집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어 진행중에도 자꾸만 발자락을 움직여 통증을 완화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것 역시 한계가 있는 듯 보인다.
잠시 후 8번과 22번이란 두개의 숫자가 보이는 송전탑 지나 다시 눈 앞으로 보이는 송전탑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데 잡목들이 우거져 우측 간벌된 굵은 소나무 아래 작은 편백나무 묘목들이 식재되어 있고 훈증 나무더미들이 보이는 방향으로 조금 후회하며 힘들게 진행하여 1번 송전탑을 통과하니 오늘 산행 중 가장 난해한 가시잡목 등로가 거의 당고개 가까이 이어지고 있어 온 몸이 빗방울에 흥건이 젖어들며 약간의 한기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때로는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더니 또 때로는 등로 옆 키가 큰 잡목들이 등로 방향으로 휘어져 등로 자체를 사라지게 만드는 난해한 등로가 연속으로 번갈아 나타나다 보니 스틱으로 물방울을 털어내는 것도 한계에 봉착하고 그냥 편안하게 나뭇가지에 쌓여있는 빗방울을 전신에 맞으며 가파르게 내려가니 가끔씩 나뭇가지 사이로 정수사가 있는 당고개 넘어 올라야 할 121.1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과 송전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동안 그렇게 내려가니 잘 정리된 뚜렷한 등로를 만나 조금은 편안하게 전진하니 남목초등학교장이 경작금지라는 경고판이 보이고 곧이어 넓은 공터 지나 1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몇명의 주민들이 도토리 수확을 하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내려가니 방어진순환도로 6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당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중앙분리대가 높게 설치되어 있고 차량 통행량도 제법 보여 무단횡단은 포기하고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정수장 버스정류장 옆으로 횡단보도가 나타난다.
그 횡단보도에서 진행 방향을 보니 도로 건너 정수장으로 오르는 시멘트 포장도로 넘어 저 멀리 바위암릉과 121.1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그리고 송전탑이 보여 사진에 담고 당고개 횡단보도를 건너 어렵게 산행을 이어간다.
이곳 당고개에 관한 자료는 잘 보이지 않는데 다만 염포동의 설명에서 언급된 내용을 보면 염포동(鹽浦洞)은 울산광역시 북구의 법정동 및 행정동으로 북쪽으로는 심청골을 사이에 두고 양정동과 접하고 동쪽은 염포산과 당고개를 경계로 동남쪽은 정자지골 및 지개골을 경계로 동구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염포만을 경계로 남구와 접하고 있으며 울산만을 끼고 있는 임해공업지역으로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및 현대하이스코 등 3개 업체가 있다라는 내용중에 보인다.
방어진순환 6차선 포장도로를 횡단보도를 통해 통과한 후 정수장 방향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며 진행을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지도를 보니 정수장 지난 지점으로 올라 우회하며 오를 수 있는 등로가 보여 도로를 따라 정수장 가까이 진행해 보지만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 빗줄기 속에 빗물을 흥건히 머금고 있는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기에 부담을 느껴 다시 정수장 진입 시멘트 포장도로로 뒤돌아 가 정수장 건물 직전 우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오르며 먼 발치에서 작은 암자처럼 보이는 정수장을 사진에 담고 산행을 이어간다.
작은 정수장 암자를 지나자마자 멈췄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고 우산을 쓰고 우측 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작은 텃밭과 대추나무들이 보이는데 이제 막 익어가는 대추들이 보이면서 등로는 좌측 대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우산까지 쓰고 대나무 밭을 통과하려니 어쩔 수 없이 다시 비를 맞으며 통과하고 물통 2개 지나 비닐로 포장된 탁자가 보이는 곳을 넘으니 야자매트가 깔린 바위암릉이 나타나는데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우산까지 쓰고 진행하는 것 치고는 견딜만 하다.
그렇게 잠시 더 야자매트를 따라 바위들을 구경하며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현대자동차 공장과 태화강 넘어 울산시내가 뿌옇게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등 뒤로는 방금 전 잡목들을 헤치며 어렵게 내려온 송전탑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보이더니 바로 눈 앞으로 거대한 바위암릉 앞에 불공을 드린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바위암릉 앞 불공을 드린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지나 우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해 오르니 방금 전 우회한 바위암릉 정상부의 좁은 공터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잠시 지나 온 방향인 북쪽을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 울산시 동부 서부동마을과 방어진순환도로의 당고개 지나 8번과 22번의 송전탑이 서 있는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삼태지맥 등로가 펼쳐져 있는데 가랑비가 내리면서 안개가 드리워져 시야는 많이 흐릿해져 있다.
송전탑 우측 뒤로 솟아 있는 봉우리 하나가 드러나 있어 지도로 확인해 보니 저 봉우리는 삼태지맥에서 동쪽으로 벗어 나 있는 278.7봉 쯤 되어 보이는 무명봉으로서 염포정이 이는 전망대 방향은 바로 앞 송전탑 능선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지나 온 방향인 북쪽으로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뒤돌아 내려오며 이제는 등로 좌측인 동쪽을 보니 서부동의 당고개에서 동쪽의 동부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방어진순환도로를 따라 마을이 형상되어 있는 모습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동쪽으로 서부동과 동부동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군락을 이루며 분지처럼 내려다 보인다.
서부동과 동부동의 행정동인 남목동으로서 남목동(南牧洞)의 옛 지명인 남목천(南木川)을 1986년 발간된 울산지명사에는 앞블내라고 풀어 놓았고 한편 1527년(중종 22) 최세진(崔世珍)이 지은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의 훈(訓)대로 남목천을 풀어 보면 남(南)은 훈(訓)이 앏이고 목(木)은 훈이 나모이다.
천(川)은 냇가라는 의미보다는 마을의 의미인 향(鄕, 곡-谷)으로 굳어져 왔으며 이를 조합하면 남목천은 앏나모골이 되는데 발음상 암나모골로 읽히는데 암나모골에서 암(雌)과 엄(母)의 뿌리말은 여신(女神)을 상징하는 감이며 따라서 암나모골은 감나모골이 뿌리말이 된다.
남목마을(南木-)에는 옛날부터 감나무골(柿木谷)과 남목천이라는 두 지명이 함께 존재하고 있는데 하나는 순우리말 이름인 감나무골로 또 하나는 이두로 된 남목천으로 따로 존재하여 왔지만 어원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지명으로 즉 감나무골이 오랜 세월 음운이 변하면서 암나골이 되고 이것을 이두로 쓴 것이 남목천이다.
남목이라는 이름의 흔적은 1425년(세종 7)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의 남목봉화(南木烽火), 1469년(예종 1)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의 남목천봉수대(南木川烽燧台), 1530년(중종 25)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남목천봉수대에서 찾을 수 있다.
울산목장과 그 관아가 남목에 있었는데 1897년(고종 34) 울산목장이 폐지되었으나 목장의 관아 건물이 밀집한 곳이라 면사무소를 두어 동면의 중심지로 기능하였고 이후 면사무소는 1925년 12월 방어리로 이전하였으며 동면은 1931년 4월 1일 방어진면으로 개칭되었다가 1937년 7월 1일 방어진읍으로 승격되었다.
1972년 10월 울산시 방어진출장소 관할의 법정동인 동부동과 서부동을 합하여 울산시 직할 행정동인 남목동으로 개칭되었고 방어진출장소는 남구와 중구에 구제가 실시된 1985년 7월 15일자로 중구에 잠시 편입되었다가 같은 해 8월 10일 울산시 직할 출장소로 승격되었다.
1979년 1월 1일 남목동이 남목1동과 남목2동으로 분동되었다가 1988년 1월 1일 방어진출장소가 동구로 승격되며 동구의 남목1동과 남목2동으로 편제되었고 1995년 3월 남목1동은 인구 과다로 남목1동과 남목3동으로 분동되었으며 1997년 7월 울산광역시 승격과 함께 동구가 자치구로 승격되면서 울산광역시 동구 남목1동, 남목2동, 남목3동으로 편제되어 현재에 이른다.
남목1동은 마골산 아래(동쪽)에 옛 마을들이 자리하던 서부동의 북부 일대와 동부동의 일부를 포함하여 옛날부터 내려온 토박이 마을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남목1동에는 남목초등학교 서편 일대의 큰골새, 남목1동행정복지센터 부근인 불당골과 감나무골 일부, 남목에서 가장 큰 들이 있던 원안계, 당고개(비석골, 무지골, 장치이), 마골산의 동축사(東竺寺), 옥류천의 도린재기, 제기천과 들, 마애여래불 유적, 안산, 사기쟁이집골(요지 가마 터), 새밭재 등이 있다.
남목2동에는 서부동의 남부인 명덕골과 서부아파트 지역, 상떼빌아파트 단지, 명덕저수지와 큰마을저수지, 염포산이 있고 수리지골과 돌안골, 잔치골, 새납골, 동부도서관, 서부구장, 삼밭골, 길마재, 청운고등학교 등이 있다.
남목3동에는 남목시장이 있는 쟁골과 남목 동부 패밀리아파트 단지의 돌안골과 장승배기, 도룡골, 미포동 주민들의 이주지인 새마을과 쇠평마을, 산야, 주전동 전체, 주전봉수대(朱田烽燧臺,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 남목마성(南木馬城,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8호), 성골, 토재이산, 금평산, 범밭재, 머리진바위, 톳재 등이 있다.
가랑비가 내리는 시간에 바위암릉 정상의 좁은 공터에서 지나온 방향인 북쪽으로 삼태지맥 마루금과 좌측인 동쪽으로 서부동과 동부동의 남목동 방향을 살펴보고 역사 공부를 한 다음 다시 뒤돌아 나와 동쪽으로 잠시 더 평이하게 능선 등로를 따르니 솔갈비가 푹신하게 깔려있는 짧은 소나무 등로 지나 약간의 사초들과 관목의 참나무 및 소나무들이 보이는 봉우리에 도착을 해 지도를 확인해 보니 도상 121.1봉인데 청음에는 이정판을 찾지 못하고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만 보여 왜 고도 표시도 없을까 궁금해 하며 사진에 담고 우측으로 출발하려는데 가지가 많은 관목의 참나무에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 있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남동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간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121.1봉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우측으로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그곳 지나 약간의 잡목들이 우거진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갑자기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는데 진행 방향인 우측의 남서 방향으로는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고 좌측인 동쪽 방향으로는 그냥 평범한 황톳빛 비포장임도이다.
이곳부터 한동안 더 비포장임도를 따라 우산을 쓰고 진행하게 되어 다행이지만 비가 그쳤으면 하는 바램으로 우측인 남서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비포장임도를 따라 우측인 남서 방향으로 걸어가니 잠시 후 임도 한가운데에 야자매트가 깔려있어 더욱 걷기 좋은 산책로로 변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은 주민들이 가랑비가 내리는 시간인데도 산책을 즐기고 있다.
별 특징없이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임도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울산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고 살펴보지만 가랑비와 박무로 인해 동구의 서부동과 동부동 방향의 아파트 단지라는 사실만 확인이 될 뿐이다.
울산시 동구의 서부동과 동부동 방향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을 조망하고 사진에 담으며 계속 편안하게 야자매트를 따라 전진하니 2022년 염포지구 제선충 예방 주사구역임을 알리는 안내판도 보이고 곧이어 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면서 도로 좌우측으로 짧게 능선으로 올랐다 내려와야 하는 원 마루금이 보이지만 의미가 없기에 그냥 마음 편히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잠시 후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 주의하며 걸어가니 진행 방향 저 멀리 사각탁자에 아주머니 세분이 앉아 점심식사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있어 조심스럽게 통과하니 우측 원마루금에서 내려오는 지점 한쪽으로 커다란 돌탑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임도 좌측으로 작은 돌탑 하나와 이정표가 서 있는데 좌측으로 현대고등학교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이다.
현대고등학교 갈림삼거리를 지나 여전히 부드럽게 이어지는 드넓은 황톳빛 비포장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언덕을 넘으니 작은 돌탑과 우측으로 염포약수터 갈림삼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제 염포산 정상까지는 0.3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약수터 갈림삼거리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임도 좌측으로 등로가 보이고 그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오승정이란 팔각정자와 많은 운동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는 203.4미터의 염포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중앙부에는 울산18이라는 지적삼각점도 박혀 있고 가랑비가 내리는 시간인데도 많은 주민들이 올라 와 운동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염포산(203봉, 오승정 정자)은 울산광역시 동구 전하동과 북구 염포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명칭 유래를 보면 염포산(鹽浦山)은 소금을 생산하는 포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울산광역시 동구의 서부와 북구의 남부의 경계를 이루며 높이는 해발 203.4m이고 동쪽으로 동구와 접하고 서쪽은 울산만을 따라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하이스코 등의 업체가 임해공업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서쪽으로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太和江)이 흐르고 남쪽으로 술바위산과 방어진항, 대왕암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북쪽으로는 새바지산과 작은무룡산 및 무룡산(舞龍山), 동화산(東華山), 동대산(東大山)에 이어 경주의 토암산까지 산맥이 이어져 있는데 바로 삼태지맥 마루금이다.
염포산은 마을 뒷동산 같은 작고 아담한 산으로 높이는 낮아도 바닷가 산의 특성 때문에 주변 조망이 매우 뛰어나다.
전형적이 노년 산지로 최근에 산림 조성을 하여 규모는 작지만 편백나무 숲길도 있고 벚꽃 길이 있어 꽃이 피는 봄이 되면 꽃 축제를 즐기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아래에 주차장 시설을 갖추고 있고 산길 포장이 잘 되어 있어 특히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으로 언제 어디서든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편안한 산이다.
잠시 염포산 정상에 세워진 오승정이라는 팔각정으로 올라 동쪽 방향을 살펴보니 가랑비와 안개로 흐릿한 명덕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전하동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펼쳐져 있으며 중앙부로는 서부동의 공사중인 현장 지나 좌측으로 또 다시 남목2동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펼쳐져 있어 생각보다 거대하고 활기 넘치는 울산임을 실감해 보는 시간이다.
그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 뒤로 보여야 할 동해바다는 안개속에 분간하기 어려워 몇번인가 찾아보다 포기하고 몇장의 사진만 더 남기고 팔각정을 내려 와 산행을 이어간다.
염포산 오승정 정자에서 조망을 즐기고 내려오니 가랑비도 그쳐 배낭 커버를 벗긴 후 우산을 접고 스틱을 잡고 우측인 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니 방어진공원안내도와 임도 우측 옆으로 또 다른 팔각정이 보이고 벤취쉼터에는 마을 주민들이 쉬고 있어 들리지도 못하고 좌측인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야자매트 등로를 따라 길게 내려간다.
도로 좌우측으로 벤취쉼터들이 설치된 모습들을 살펴보며 내려가다 보니 염포산 산악자전거 대회코스라는 작은 이정판들이 세워져 있어 이곳 역시 산악자전거의 메카임을 알리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더 평이하게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진행하니 우측으로 원각사와 성내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을 이어간다.
원각사와 성내 갈림삼거리를 지나자마자 등로는 좌측인 남쪽으로 방향을 크게 바꿔 진행되는데 이곳에서 비포장임도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 능선 방향으로 나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동백나무들이 식재된 듯 보이는 우측 언덕으로 오르니 염포산 산악자전거 대회코스를 알리는 이정판이 다시 서 있고 남쪽 방향으로 조금 더 편안하게 걸어가니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174.2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삼각점을 찾아 보지만 전혀 보이지 않아 아마도 이곳 삼각점도 소실된 듯 보이는 지점이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174.2 삼각점봉에서 소실된 삼각점을 찾지 못하고 출발하니 간간히 보이는 관목의 참나무 아래 키 작은 잡목들과 잡풀들이 무성한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나 있어 진행하다 보니 이곳 역시 풀섶에 내려 앉은 빗방울들이 이 산객이 지나며 스칠 때마다 빗방울들이 비산하며 다시 등산바지와 등산화를 적시기 시작한다.
잠시 후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 보니 등로와 자꾸만 멀어지는 느낌이라 좌측 잡목들을 헤치며 원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와 접속하다 보니 온 등산복이 다시 흥건히 젖어 버렸다.
그렇게 평이하게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나무전망대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올라 등로 우측 방향을 살펴보니 남서 방향으로 거대한 미포조선의 크래인 타워들이 보이고 그 앞으로는 태화강이 흐르는 모습만 제한적으로 보일 뿐이다.
생각보다 풍경과 조망이 재한적이라 태화강 옆 미포조선의 거대한 공장들과 타워 크래인만 사진에 담고 내려 와 계속 이어지는 남쪽 방향으로 걸어가니 갑자기 소로의 뚜렷한 등로가 넓은 비포장임도로 바뀌고 그 임도를 따라 우측인 남쪽 방향으로 진행하니 동네 주민들이 상수리나무 아래 떨어진 상수리들을 수확하고 있는데 그 옆으로 임산물 채취 금지라는 경고판은 있으나마나 한 상황이다.
잠시 후 사각쉼터와 벤취쉼터들을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미포조선소(예진부두)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잠시 후 미포조선소와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의 경계 지점에서 만난 현대중공업 직원 한분으로부터 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현재 두 회사는 관계회사로서 처음 미포조선은 배를 수리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가 이제는 중소형 조선을 건조하는 회사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였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미포조선소도 결코 작은 회사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조선업이 세계 최강을 자랑하다 보니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는 회사가 되어 버린 상황이 웃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시 조업업황이 좋아져 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고 하니 이런 호황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래본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 미포조선소 하산 갈림삼거리 지나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 높은 송전탑이 보이고 지도를 확인해 보니 그 송전탑 옆으로 도상 131.6봉이 보여 도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가지에 준희 선생님이 걸어 둔 이정표가 보이는 도상 131.6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이곳에서 지도를 보니 근처에 구장태고개가 있다는데 다음지도를 확인해 보니 구장태고개는 잠시 후 대교터널을 통과한 지점으로 표기가 되었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131.6봉 지나 잡목들을 헤치며 좌측 비포장임도로 내려가니 멋진 벗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ㅟ는 무명안부 좌측 옆으로 성골삼거리 갈림 이정표가 서 있어 사진 한장 남긴다.
성골삼거리는 울산시 동구 화정동에 있는 교차로를 말하는데 왜 이런곳까지 올라 와 이정표에 표기가 되어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성골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임도 양쪽으로 잎이 푸르른 동백나무들이 보이고 곧이어 별 특징없는 임도와 도로가 길게 이어져 따르니 언덕으로 올라 좌측으로 다시 화정동의 성골삼거리로 내려갈 수 있는 이정표가 보인다.
두번째 성골삼거리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 편백나무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 잘 보지 못하던 띠지들이 걸려있어 확인해 보니 해파랑길이란 띠지들로서 이곳이 바로 해파랑길에 속한 구간으로 보인다.
다시 임도 좌우측으로는 굵은 벗나무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계절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잎들이 모두 누렇게 변해 떨어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별 특징 없는 넓은 비포장이도를 따라 도로 좌우측으로 보이는 벗나무들을 살펴보며 걷다 보니 화정산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는 벤취쉼터들이 보이고 우측 진행 방향으로는 넓은 1차선 포장도로 지나 능선 넘어로 높은 울산대교 전망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화정산을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도 화장산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아 여러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확인한 결과 바로 잠시 후 만나야 할 146.7 삼각점봉이 아닐까 추측만 해 볼 뿐이다.
화정산삼거리에서 우측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갑자기 미니 시내버스가 올라와 살펴보니 울산 932번으로 아마도 잠시 후 만나 풍경과 조망을 즐기게 될 울산대교 전망대까지 손님들을 태워 나르는 시내버스처럼 보인다.
그 도로를 따라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1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비포장임도로 오르니 등로는 다시 언덕에서 좌측 잡목 숲을 뚫고 송전탑 아래로 이어지는데 그곳에서 서쪽을 보니 바로 발 아래 거대한 현대미포조선 공장과 타워 크래인들이 보이고 태화강 넘어 우측 뒤로 울산대교의 주탑이 드높게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이어지는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어렵게 정상부로 오르니 비에 젖은 울산456이란 삼각점이 박혀있고 그 위 굵은 소나무에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146.7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겨 보는데 지도에는 표기가 없지만 정황상 이곳을 화정산이라 부르는 듯 보인다.
그곳에서 남아 있는 음료수 한병을 마시고 이어지는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울산대교 전망대 방향으로 빠져 나가니 어린왕자의 꿈이란 조형물이 나타난다.
도상 146.7 삼각점봉인 화정산을 내려 와 바로 눈 앞으로 다가 온 울산대교 전망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안으로 들어가니 약간의 한기를 느꼈던 몸이 풀리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아 본다.
처음에는 3층 내부 전망대로 가 살펴보지만 방금전까지 내린 빗방울들이 통유리에 부착되어 풍경과 조망이 깨끗하지 못하고 유리에 얼비춘 그림자까지 더해 제대로 된 사진 한장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아 4층 야외 전망대로 이동하니 비가 그치면서 바람이 강하게 불어 주의가 필요해 보이지만 막힘 없이 펼쳐진 풍경과 조망은 산객의 마음을 빼앗아 한동안 그 야외 전망대에 머물게 되었다.
울산대교 전망대는 높이 63미터(해발203미터)로 화정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2015년 5월 개통한 국내 최장이자 동양에서 3번째로 긴 단경간 현수교인 울산대교와 울산의 3대 산업인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산업 단지 및 울산 7대 명산을 조망할 수 있다.
주간에 바라보는 울산의 전경과 야간에 바라보는 공단과 도심의 야경은 색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전망대에는 동구 관광기념품 기프트샵과 카페 등을 운영하고 있어 볼거리와 머물거리 모두 제공하고 있다.
야외 전망대로 올라 왔으니 시원하게 펼쳐진 풍경과 조망을 사진에 담으며 많은 추억을 남겨보는데 제일 먼저 서쪽을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 거대한 현대미포조선사 공장과 타워 크래인들이 펼쳐져 있고 그 바로 앞으로는 태화강이 유유히 흐르며 우측 제일 위쪽으로는 울산대교 주탑이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 정중앙 위쪽으로는 장생포고래마을 좌측 옆으로 장생포항으로 들어가는 태화강 줄기가 살짝 보이고 그 뒤로 펼쳐진 울산시내 지나 남암지맥과 낙동정맥 산줄기를 찾아 보지만 박무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으니 그저 상상만으로 그 풍경들을 그려보며 아쉬움을 토해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제 장소를 옮겨 북서쪽을 살펴보니 태화강이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흐르다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어지는 모습이 펼쳐져 있고 그 태화강 위에 건설된 울산대교의 양쪽 주탑이 시원스럽게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태화강 건너 울산대교 주탑 뒤로는 울산시내의 중심부가 펼쳐지고 그 뒤로 역시나 찾아 보는 산줄기는 안개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어 다음을 기약해 본다.
울산대교는 울산광역시 남구 매암동과 동구 방어동을 잇는 다리로서 명칭유래를 보면 울산만을 잇는 울산의 가장 긴 교량으로 울산을 대표하는 교량이라는 의미에서 울산대교(蔚山大橋)라고 불리고 있다.
울산대교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긴 도로 교량으로 길이는 1,150m이고 총 폭은 25.6m이며 유효 폭은 16.5m에 높이는 64.9m로 양방향의 왕복 4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량의 상부 구조는 현수교이고 하부 구조는 기타식으로 되어 있으며 설계 하중은 표준 트럭 하중인 DB-24이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등 우리나라 대표적인 기업들의 물류를 원활하게 이동시키고 대왕암공원 등 아름다운 해안 지형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동구 지역과의 교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2015년에 준공되었다.
울산대교는 신여천사거리에서 산안사거리, 매암사거리, 부두입구교차로, 염포부두교차로를 걸쳐 동구청삼거리까지 이어지는 도로인 장생포로의 한 부분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울산만을 이어 남구와 동구를 연결하고 있다.
태화강 위에 건설된 울산대교를 살펴보고 이제 눈을 북쪽으로 돌리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올망졸망한 삼태지맥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는데 계속 보였던 무룡산 정상부의 방송국 송신탑들은 이제 안개속에 숨어 보일듯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다만 사진 우측 중간 부분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어 지도를 확인해 보니 염포산과 마골산 사이의 울산시 동구 남목동의 아파트 단지들로 정수장 위 바위암릉에서 조금은 자세히 살펴 봤던 풍경들이기에 잠시 그때의 모습을 되살려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 걸어 온 방향인 북쪽으로 제한된 삼태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무룡산을 확인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채 이제 발걸음과 눈을 동쪽 방향으로 돌리니 울산시 동구 대송동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져 있고 우측 뒤로는 대왕암과 대왕암공원이 있는 곶이 동해바다 방향으로 튀어 나온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오늘 산행 후 저 대와암을 잠시 들려 구경하고 귀가하려고 생각을 했었는데 비가 내려 등산복과 등산화가 축축히 젖어 있어 그럴 기분이 생길지 아직은 확신하지 못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대왕암공원은 우리나라에서 울주군 간절곶과 함께 해가 가장 빨리 뜨는 대왕암이 있는 곳으로 산책로에는 숲 그늘과 벚꽃, 동백, 개나리, 목련이 어우러져 있으며 28만평에 달하는 산뜻한 공간을 가진 이 공원 옆에는 일산해수욕장의 모래밭이 펼쳐져 있다.
우리나라 동남단에서 동해 쪽으로 가장 뾰족하게 나온 부분의 끝 지점에 해당하는 대왕암공원은 동해의 길잡이를 하는 울기항로표지소로도 유명한데 이곳 항로 표지소는 1906년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세워졌으며 이곳 송죽원에서는 무료로 방을 빌려주어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민박을 제공하고 있다.
공원입구에서 등대까지 가는 길은 600m 송림이 우거진 길로 1백여 년 아름드리 자란 키 큰 소나무 그늘이 시원함과 아늑함을 선사하고 송림을 벗어나면 탁 트인 해안절벽으로 마치 선사시대의 공룡화석들이 푸른 바닷물에 엎드려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바위덩어리들의 집합소이다.
불그스레한 바위색이 짙푸른 동해 바다색과 대비되어 아주 선명한데 마주 보이는 대왕암은 하늘로 용솟음치는 용의 모습 그대로다.
점점이 이어진 바위를 기둥삼아 가로놓인 철교를 건너면 대왕암에 발을 딛게 되는데 대왕암으로 향하는 길에 위치한 대왕교는 1995년 현대중공업에서 건립기증한 다리이다.
댕바위 혹은 용이 승천하다 떨어졌다 하여 용추암이라고도 하는 이 바위는 신라 문무왕의 호국룡 전설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는데 왕의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난 문무대왕비가 남편처럼 동해의 호국룡이 되고자 이 바위로 바다에 잠겼다는 것이다.
대왕암 외에도 괴이하게 생겼다 하여 쓰러뜨리려다 변을 당할 뻔 했다는 남근바위 그리고 탕건바위와 자살바위, 해변 가까이 떠 있는 바위섬, 처녀봉 등이 시야를 꽉 채운다.
기암 해변의 오른쪽으로는 고 이종산 선생이 세웠다는 구 방어진 수산중학교가 있고 그 아래에 500m 가량의 몽돌 밭이 펼쳐져 바위해안의 운치를 더해 주며 북쪽에서 바라보면 현대중공업의 공장 전경이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 아름다운 아파단 단지들과 동해바다 및 대왕암공원을 확인하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 남동쪽 방향으로 살펴보니 좌측 가장 먼곳 방향으로 여전히 울산시 동구 화정동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 뒤로 대왕암공원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방어진과 남진항이 펼쳐져 있으며 우측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내려가야 할 삼태지맥 마지막 마루금이 우측의 태화강과 함께 길게 내려가는 거대한 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을 따라 이어지는 모습도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는데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보여야 할 삼태지맥 마지막 화암추등대는 아직까지 보여주지 않고 있다.
남동에서 남쪽 방향을 살펴보고 이제 다시 발길을 돌려 남쪽과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도도히 흐르는 태화강 가장자리로 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의 해양사업부가 길게 펼쳐져 있고 그 공장지대를 따라 바로 좌측으로 삼태지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는데 우측 뒤 거대한 크래인 넘어 숨어 있는 화암추등대는 아직도 정확한 모습을 숨기고 보여주지 않고 있다.
다시 한번 더 이제부터 화암추등대까지 이어지는 삼태지맥의 마지막 마루금을 확인하고 몇장의 사진에 남기고 추억속으로 담은 후 전망대에서의 시간을 정리해 본다.
이제 울산대교 야외전망대에서 360도 돌아가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출발하기 앞서 마지막으로 서쪽을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 거대한 배들이 태화강에 떠 있고 그 배들을 건조한 미포조선 지나 저 멀리 울산시 남구 마을과 공장들이 보여 마지막 사진을 남긴다.
사진 우측 가장 높은 곳으로는 여전히 장생포항과 잔생포고래마을이 보이는데 아직 공식적으로 고래고기를 먹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한번쯤 저 장생포에 들려 고래고기 맛을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2015년 조성된 고래문화마을에서는 예전 장생포 고래잡이 어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으며 고래광장, 장생포 옛마을, 선사시대 고래마당, 고래조각정원, 수생 식물원 등 다양한 테마와 이야기를 담은 공원을 둘러 볼 수 있다.
생각보다 더 오래 그 울산대교 야외전망대인 4층에서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으로 내려 와 스틱을 회수해 주차장과 버스정류장을 지나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염포산정상에서 3.3 Km 진행해 왔다는 이정표 지나 도로 좌측으로 우거진 대나무 숲도 통과한다.
잠시 후 평이하게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좌측으로 녹슨 철조망이 따라오고 계속 이어지는 남쪽 방향으로 진행하니 도로는 점점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휘어지더니 좌측으로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 갈림삼거리 이정표에 도착을 하는데 울산대교 전망대에서 0.5 Km 지나온 지점이다.
산불감시초소와 이정표가 보이는 갈림삼거리를 지나 우측인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걸어 내려가니 도로가 임도로 바뀌고 곧이어 임도 좌측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잔디가 푸르른 축구장이 나타나 사진에 담고 지도를 확인해 보니 방어진 체육공원이다.
방어진체육공원은 현대미포조선(주)과 현대중공업(주), 울산과학대학이 공동으로 조성한 체육공원으로 2000년 5월 공사에 착공하여 2001년 7월 15일 개장하였다.
울산과학대학 동부캠퍼스 주변의 염포산 중턱에 자리 잡아 숲이 울창하고 멀리 동해가 바라다 보이는 등 주민들의 체육활동공간과 휴식공간으로서 훌륭한 입지조건을 갖추었다.
방어진 체육공원의 축구장은 미포구장이라 불리는데 2008년 현재 실업축구단 중 최강팀으로 꼽히는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축구단의 전용구장으로 사용된다.
2002년 5월 26일부터 6월 12일까지 미포구장은 2002 한일월드컵의 우승국인 브라질 대표팀의 훈련캠프로 이용되기도 하였는데 당시 브라질팀은 미포구장 근처의 울산과학대학 동부캠퍼스에 미디어센터를 설치하여 자국 대표팀의 동향을 보도하기도 하였다.
방어진체육공원의 잘 관리되고 있는 파란 축구장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 녹색 철망이 설치되어 있고 그 넘어로는 조릿대가 보인다.
잠시 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화정천내 숲속길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구들장이 깔린듯한 등로를 따르니 천내봉수대라는 구조물이 세워져 있어 사진에 담고 진행을 이어간다.
봉수는 과거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대의 군사통신제도로서 조망이 양호한 산정에서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국경과 해안의 안위를 중앙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봉수제가 성립된 것은 1149년(고려 의종 3)으로 1급에서 4급의 봉수 거화수(炬火數)를 규정하고 봉수군의 생활대책을 마련해 주었으며 조선 세종대에 이르러 그 체제가 정비되었다.
5거 거화수 등 관계 규식 마련, 각 도 연변의 연대(烟臺) 축조, 봉수선로 획정 등을 통해 그 면모를 새롭게 하였는데 각 봉수에는 오장(伍長)과 봉수군(烽燧軍)이 교대로 근무하면서 평상시에는 한 홰(烽), 적이 나타나면 두 홰,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세 홰, 적이 국경을 넘어오면 네 홰, 적과 접전하면 다섯 홰의 봉수를 올리도록 하였다.
1894년(고종 31)에 전보통신이 보급되면서 폐지가 결정되었고 다음해 각처 봉대와 봉수군을 폐지함으로서 모든 봉수제는 폐지되었다.
봉수는 성격에 따라 경봉수(京烽燧)와 내지봉수(內地烽燧), 연변봉수(沿邊烽燧)로 구분되는데 경봉수는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였던 중앙봉수로서 서울 목멱산(木覓山)에 위치하여 목멱산봉수 또는 남산봉수라고 불렀다.
연변봉수는 해륙 변경(海陸邊境)의 제1선에 설치하여 연대라 하였으며 내지봉수는 연변봉수와 경봉수를 연결하는 중간봉수로서 수적으로 다수였다.
해발 120m 봉화산 정상에 위치한 천내봉수대는 울산만의 관문을 지키는 봉수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가리산(加里山)에서 봉수를 받아 남목(南木 : 현재 주전봉수)으로 전해주는 연변봉수이다.
대응봉수의 거리는 남서쪽의 가리봉수와 3.64㎞, 북쪽의 남목봉수(주전봉수)와는 6.54㎞ 거리에 있다.
잔존하고 있는 연대의 규모는 상부의 경우 직경이 약 5m정도이고 하단의 둘레는 55m 가량이며 높이는 약 2m정도이다.
천내봉수의 호(濠)는 연대를 중심으로 동쪽을 제외하고 서,남,북 3면에 마련되어 있으며 그 자체가 방호벽 역할을 하기도 하며 인근의 서생 이길봉수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천내봉수대란 인공구조물을 지나 구들장을 깔아 놓은듯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특이하게 꾸며 놓은 등로가 눈길을 사로잡고 그렇게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으로 봉수대의 비치물목을 설명한 설명판이 보여 읽어보며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굵은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또 다른 봉수대의 비치물목이라는 설명판이 보이는데 물목들이 조금씩 다르게 설명되어 있다.
천천히 봉수대의 비치물목들을 확인하며 걸어 오르니 정상부에 봉수대의 비치물목 중 봉수군 거주시설과 비품 및 그 바로 옆으로 주전(남목)봉수대 관련 고문서 설명판을 확인하고 걸어 오르니 원형을 완전히 복원하지 못하고 하단부의 원형만 복원한 봉수대터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는데 도상 117.7봉이기도 하다.
화정천내봉수대(華亭川內烽燧臺)는 울산광역시 동구 화정동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로서 부산 간비오 봉수(干飛烏烽燧)에서 시작하여 서울 목멱산(남산) 봉수로 전달하던 노선의 일곱 번째 봉수이다.
조선 전기에 신설된 후 노선의 변동 없이 유지되었는데 남서쪽 남구 남화동에 있는 가리 봉수(加里烽燧)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아 북쪽 동구 주전동의 남목 봉수(南木烽燧, 현 주전 봉수대)로 보내는 역할을 하였다.
1998년 10월 19일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동해안의 방어를 위해 설치된 통신 시설인 천내봉수가 문헌에 나타난 것은 1425년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부터이며 이후 각종 지지서(地誌書)에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어서 조선 전기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1895년(고종 32) 전국 봉수 제도가 철폐되면서 폐지되었다.
경상도지리지에는 경상도 울산군 소속의 천내 봉화(川內烽火)가 북쪽으로 남목 봉화(南木烽火)와 21리 305보의 거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530)에는 경상도 울산군 소속의 천내봉수가 방어진(方魚津) 서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가리산 봉수(加里山烽燧)가 동쪽으로 남목천 봉수(南木川烽燧)와 연결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화정천내봉수대를 구성하는 유구가 대부분 보존되어 있어서 구체적인 형태와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데 전체 배치 형태는 구릉 능선상에 원형의 연대(煙臺)를 두고 남과 서 및 북 3면으로 방어 시설인 호(壕)를 둘렀다. 봉수대를 두르고 있는 호의 둘레는 79.5m이고 호를 따라 두둑이 둘러 있으며 그 안에 연대가 놓여 있다.
연대의 동편 중간 지점에서 U자 형태로 끊어져 있으며 이를 통해 연대 내부로의 출입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봉수군들이 머물렀을 건물지와 봉수군이 불을 지필 때 사용한 재료나 비품을 보관하던 창고(고사, 庫舍) 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2017년 화정천내봉수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화정천내봉수대는 조선 전기에 축조되어 1895년 전국 봉수 제도 철폐 때까지 운영되었던 울산 지역 봉수로 유구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조선시대 연변 봉수(沿邊烽燧, 변경지대에 설치한 봉수)의 전체적인 구조와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최근 발굴 조사를 통하여 2동의 건물지가 확인되어 봉수군 주거용 건물의 구성과 배치, 생활상을 규명할 수 있는 연구 자료로 가치가 있다.
화정 천내봉수대터를 확인하고 뒤돌아 내려오니 화정천내봉수대 건물지 전경 설명판과 방호용 투석도구(무릉석과 무우석) 설명판이 서 있어 읽어보고 진행을 이어가니 갈림삼거리에 봉수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설명해 놓은 설명판 3개가 더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등로 좌우측으로 우거진 조릿대 군락지를 통과하니 화천천내봉수대로 올라갈 수 있는 방향표시가 보이는 이정목이 서 있고 그곳에서 뚜렷한 구들장 같은 등로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의 굵은 활엽수 아래 잡풀들이 우거진 등로를 찾아 진행하는 길주의 지점에 도착을 한다.
화정 천내봉수대터 정상에서 소개했던 주전(남목)봉수대 관련 문서가 떠올라 찾아보니 봉대산에 있는 이 봉수대는 조선 세조(재위 1455∼1468) 때 쌓은 것으로 둘레 5m와 높이 6m의 원통형으로 되어 있다.
세종 때 일반적으로 만들었던 사각형의 봉수대와는 형식상 차이가 있는 특이한 구조로서 남으로 화정의 천내 봉수대에서 봉수를 받아 북의 우가산 유포봉수대에 전하였는데 뒤에 유포 봉수대가 폐지되면서 경주의 하서지에 전달하였다.
그렇게 화정천내봉수대터를 완전히 빠져 나와 월봉사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통과하니 벤취쉼터 2개가 나타나고 잠시 소로의 잡풀 등로를 따르니 텃밭같은 밭 경작지들이 나타나는데 주인장이 농작물들을 잘 키우고 있는지 튼실하기만 하다.
잠시 잡풀 등로를 따라 고사목을 통과하니 다시 그물망으로 구획된 작은 텃밭 같은 밭경작지들이 펼쳐져 있는데 김장 배추와 무우인지 버러 속이 찰 것 같이 커져 있어 사진에 담으며 진행하니 가면 갈수록 더욱 튼튼한 목책과 그물망들이 설치되어 있는 텃밭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등로 이외에 밭으로 진입은 불가능해 보인다.
텃밭에서 재배되고 있는 농작물들을 살펴보며 사진에 담다 보니 텃밭이 끝이나고 갑자기 등로가 끊기는데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해 보여 주위를 살펴보니 텃밭 좌측으로 건물들이 보여 내려가니 그곳 역시 작은 밭경작지에 배추들이 자라고 그곳으로 진행하려고 걸어가니 철조망과 간벌된 나무더미들이 쌓여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다시 배추밭 가장자리를 따라 좌측 능선으로 들어다 우측으로 내려가니 그물망만 설치된 지점을 발견하고 어렵게 또 다른 밭경작지 방향으로 내려간다.
힘들게 아래 텃밭으로 내려가 등로 찾아 텃밭 가장자리로 이동하니 목책이 설치되어 있고 철문이 굳게 닫혀있어 넘기가 너무 어려운데 그 철문 위로 힘들게 통과해 넘으니 잘 정리된 등로가 나타난다.
너무나 힘들게 텃밭을 완전히 통과한 후 뚜렷한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공터 지나 다시 잘 정리된 듯한 능선 등로로 이어지더니 금새 봉수로 6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해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내려가니 방어진순환도로 4차선 도로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에는 문현삼거리로 표기된 지점이다.
방어동은 울산광역시 동구의 남부에 위치한 동으로 울산의 주요 어항인 방어진항을 중심으로 성장하였고 현대미포조선소가 동의 서부해안에 자리잡고 있다.
방어동(方魚洞)은 방어(魴魚)의 생산지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울산)에는 방어진(魴魚津)은 고을 동쪽 33리에 있으며 목장(牧場)이 있다 라는 기록에서 유래가 오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호구총수(울산)에는 동면 방어진리로 기록하고 있는데 영남읍지(울산)에는 방어리(方魚里)로 현재 사용하는 지명이 나타나고 있고 울산목장지도에는 방어진동(方魚津洞)으로 표기하고 있다.
1914년 화잠동(化岑洞)과 방어동이 통합되어 방어동이 되었으며 화암(花岩)은 이곳 바닷가에 매화꽃 무늬의 바위들이 많아 꽃바위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문현(門峴)은 방어진목장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던 고개에서 유래하였다.
문현삼거리에서 방어진순환도로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인 북서 방향으로 걸어가다 횡단보도를 통해 도로를 건너 계속 진행하니 오일뱅크와 SK주유소 지나 우측 도로 건너 어렵게 고생한 텃밭 경작지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살펴보니 텃밭 아래 건물을 감싼 철판들이 보였던 건물은 바로 폐기물과 고물상 건물로서 진입이 어려웠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곳을 지나 다시 나타나는 오일뱅크 주유소를 지나니 좌측으로 꽃바위로 2차선 포장도로가 분기되고 그 도로 건너편으로는 현대미포조선기술교육원 건물이 보이는데 외국 연구원들이 많이 보인다.
그곳에서 방어진순환도로를 우측 직진으로 보내고 좌측 꽃바위로 2차선 포장도로 방향으로 꺽어 남서 방향으로 꺽어 진행하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봉화재로 표기된 갈림삼거리이다.
봉화재는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에 있는 고개로서 명칭 유래를 보면 봉화재는 봉수대(烽燧臺)로 이어지는 고개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현지 주민들은 봉화재가 변한 보호재로도 발음하고 있는 곳으로 봉화재의 해발은 85m 높이에 위치한다.
방어진 해안에서 북쪽으로 염포산(鹽浦山)으로 이어지는 산지에서 해발 120m 고지에 화정 천내봉수대(華亭川內烽燧臺)가 축조되어 있던 자리가 있다.
봉화재 남서쪽으로는 울산만이 자리 잡고 있으며 동쪽과 북쪽으로는 산지 내부로 울산과학대학교 동부캠퍼스와 방어진체육공원 시설이 들어왔고 조금 더 북쪽의 산지는 울산대교 개통과 함께 연결 도로 공사로 염포산요금소가 가설되면서 자연환경이 크게 변화하였다.
봉화재는 봉수대가 있는 산의 정상에 위치한 화정 천내봉수대에 오르는 고개로 봉화재를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염포만 건너 남화동의 가리봉수대와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남목천 봉수대(주전봉수대)와 각각 연결되어 있다.
과거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하던 시대에 군사 통신 기지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도로망을 제공하였다.
꽃바위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남서 방향으로 걸어가니 좌측으로 정림 아파트가 보이고 도로 건너편으로는 주차장에 차량들이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는데 살펴보니 주차장 뒷쪽으로 녹색 철망들이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그 녹색 철망을 따라 걸어가니 녹색철망 우측으로 무너진 구간이 나타나고 그곳을 통해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지독한 잡목 등로가 펼쳐진다.
나중에 고생하며 진행하다 살펴보니 계속 도로를 타고 진행하여 망계산 진입로에서 능선으로 진입해 진행했으면 좋았을 것을 괜시리 고생만 하였다.
무너진 녹색철망을 넘어 능선으로 진입하니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들이 진행을 막고 거미줄은 왜 그리 많은지 괜시리 올라 왔다고 후회해 보지만 다시 뒤돌아 내려가기는 더욱 싫어 조심하며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묵은 등로가 희미하게 나타나고 그 사라진 등로를 찾아 조금씩 전진하니 등로 옆으로 송전탑이 올려다 보인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우거진 잡목들로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자세히 살펴보니 등로는 좌측 우거진 관목의 헐엽수 사이로 좁게 나 있어 그곳을 찾아 들어가며 사진에 담아 보니 몸이 크면 진행도 못할 것 같은 지독한 잡목 등로가 참으로 난해한 시간을 선물하고 있다.
그래도 급하지 않게 조심하며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지대를 빠져 나가니 이제는 키 작은 삼나무 조림지가 펼쳐지는데 그 사이마다 지독하게 우거진 키가 큰 잡풀들이 앞을 가로막으며 또 다른 고통을 전해주고 있다.
이리저리 거미줄을 헤치며 굴게 웃자란 억새들을 피해 천천히 전진하니 드디어 지독하게 우거진 가시잡목과 잡풀지대를 완전히 빠져 나와 관목의 삼나무 조림지에 도착을 하고 잘 정리된 뚜렷한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만나 걸어가니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만나는 접속지점에 도착을 한다.
도로를 따라 왔으면 고생없이 편안하게 도로를 타고 이곳까지 진행한 후 비포장임도를 따라 오르며 망계산으로 올랐으면 좋았겠다 생각도 해 보지만 고생을 대신 원 마루금에 충실하게 걸었다는 희열도 느껴지는 시간이다.
그곳을 지나 오르니 키 작은 삼나무 조림지가 나타나는데 등로에도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 지옥에서 천국으로 변한 기분으로 오르니 굵은 소나무에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과 봉 따먹기 대가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83.9미터의 망계산(망개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다만 망계산 또는 망개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자료가 보이지 않는데 망개는 청다래가시나무의 경상도 방언으로 망개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추측만 해 본다.
망계산(망개산) 정상을 지나니 굵은 소나무 사이로 삼나무들이 식재되어 있어 사진에 담으며 걸어가니 끝자락에 벤취쉼터 2개가 놓여 있어 잠시 배낭 내려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출발하니 17번 송전탑 지나 내리막 야자매트 등로가 이어지더니 통나무 계단이 나타난다.
그 통나무 계단을 지나 내려가니 다시 꽃바위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은 후 그 도로를 따라 우측인 나목 방향으로 걸어가며 마지막 힘을 내 본다.
잠시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녹색철망이 나타나는데 그 철망넘어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의 거대한 골리앗 크래인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꽃바위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는 아파트와 빌라단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우측으로는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가 있는데 우측 현대중공업 방향으로는 드높은 철판이 가로막아 공장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좌측으로 ㅗㅊ바위 아파트들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산객의 허리만큼 높은 철망들이 보이는데 그 철망위로는 덩굴식물들이 자라면서 파란 벽처럼 변해 있다.
다시 나즈막한 안부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도로 건너 화암자율방범대라는 콘테이너 박스 뒤로 삼태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58.9봉이 보이는데 그곳으로 오르는 등로 역시 철망으로 막혀 들어갈 수 없으니 사진으로만 만나고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현대중공업 회사 내부에 있기 때문에 철망으로 가로막혀 만나지 못한 삼태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58.9봉은 사진으로만 만나고 내려가는 마음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렇게라도 만나고 진행할 수 있어 감사한 생각으로 내려가다 보니 도로 건너 우측으로 거대한 골리앗 크래인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공장 후문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아저씨 한분이 도로를 쓸고 있어 궁금한 몇가지를 문의하니 너무나 친절하게 잘 알려 줘 개인적으로 많은 궁금증이 해결된 시간이기도 하였다.
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은 계열사로서 원래 미포조선은 배를 수리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가 현대중공업이 세계 제일의 조선회사로 성장하면서 중소형 조선을 제작하는 회사로 탈바꿈 했다는 이야기이다.
현대중공업 후문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꽃바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보이고 그 바로 앞에서 좌측으로 분기하는 화잠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남동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일반 도시의 평범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두어번의 갈림사거리를 지나 방어동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니 직진 방향으로 드디어 동해바다가 살짝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방어동은 울산광역시 동구의 남부에 위치한 동으로 울산의 주요 어항인 방어진항을 중심으로 성장하였고 현대미포조선소가 동의 서부해안에 자리잡고 있다.
방어동(方魚洞)은 방어(魴魚)의 생산지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울산)에는 방어진(魴魚津)은 고을 동쪽 33리에 있으며 목장(牧場)이 있다 라는 기록에서 유래가 오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호구총수(울산)에는 동면 방어진리로 기록하고 있는데 영남읍지(울산)에는 방어리(方魚里)로 현재 사용하는 지명이 나타나고 있으며 울산목장지도에는 방어진동(方魚津洞)으로 표기하고 있다.
1914년 화잠동(化岑洞)과 방어동이 통합되어 방어동이 되었으며 화암(花岩)은 이곳 바닷가에 매화꽃 무늬의 바위들이 많아 꽃바위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문현(門峴)은 방어진목장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던 고개에서 유래하였다.
방어동 갈림사거리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드디어 화잠로 2차선 포장도로 건너 화암추 등대로 갈 수 있는 화암추등대 전망데크산책로 입구가 나타나고 그 산책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진행 방향 좌측으로는 동해바다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우측으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공장이 드널고 길게 펼쳐져 있어 그 사이로 걸어간다.
진행 방향 저 먼 동해바다 방향으로는 많은 배들이 떠 있고 우측 현대중공업 사업부 내에는 거대한 크래인도 보이기 시작한다.
전망데크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다 등로 좌측을 보니 해안도로를 따라 고층 아파트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바다 건너 저 반대편으로는 남진항과 방어진항 그리고 방어진등대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방어진항은 울산시 동구 방어동에 딸린 작은 항구로서 1914년 울산군 동면(東面) 방어리(方魚里)에 속했는데 1931년에 면으로 1936년에 읍으로 승격한 후 1962년에 울산시 동구에 편입되어 방어동이 되었다.
시의 동남부 울산만(蔚山灣) 밖에 위치하고 남쪽을 향하여 터져 피난항(避難港)으로서의 구실도 한다.
부근해역에는 멸치와 방어, 상어, 대구, 갈치, 청어 등 각종 고기떼가 모여들며 매년 9∼4월에는 각처의 어선들이 운집하여 근해어업의 근거지가 된다.
서쪽으로는 장생포(長生浦)가 있고 남동쪽 해상에는 슬도(瑟島)가 있다.
이제부터 온전히 동해바다와 현대중공업 공장을 살펴보며 화암추등대를 향해 걸어가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며 약간의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화암추등대로 가는 산책로가 길고 멀게만 느껴진다.
걸어가며 살펴보니 산책로 우측 아래로는 넓은 콘크리트 도로가 내려다 보이는데 많은 승용차들이 왕래를 하고 있어 산책로 입구에 주차된 애마를 끌고 등대까지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지만 이미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걸어가니 드디어 화암추등대에 도착을 하는데 내부나 바로 옆 태화강 합수점은 갈 수 없어 이곳에서도 아쉬움을 남긴다.
드디어 화암추등대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그 바로 앞 방파제로 올라 화암추등대를 사진에 담으니 드디어 이틀간 걸어던 삼태지맥이란 이름으로 진행한 산행이 마무리되고 있다.
화암추등대가 있는 방어진 서쪽 해안마을의 바다에 돌출된 검회색 바위 위에는 이상하리 만큼 하얗게 꽃문양을 연상시키는 무늬가 박혀 있다고 하여 꽃바위(花岩)라 불렀고 주변 마을을 꽃방마을이라 불렀다.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바닷물이 만조를 이루었을 때 출렁이는 물결에 드리워진 꽃무늬는 더할 나위 없이 절경을 이루었고 저녁 무렵 바닷물이 썰물로 빠져 나가면서 바다 속에 잠겨 있던 온갖 바위형상들이 만물상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는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시인묵객들은 화암만조(花岩晩潮)라 부르며 방어진 12경중 제1경으로 꼽기도 하였으나 1989년 항만축조 및 매립사업으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
1961년 이후 울산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부터 산업의 대동맥인 석유화학제품들이 쏟아졌고 울산항에는 이를 실어 나르는 배들의 왕래가 잦아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해양오염사고 방지 및 선박의 안전항해를 위한 항로표지 설치가 절실히 요구됐고 울산항 관문에 위치한 꽃방마을 끝단에는 천년동안 안전하게 항해하기를 기원하는 거북이 모양의 등대가 세워졌다.
이후 조선산업의 발달로 항만 축조 및 매립이 이루어져 바다 쪽으로 등대를 옮겨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낮아진 등고를 보완하고 울산항을 출입하는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높은 등대 설치가 요구되었다.
마침내 1994년 12월 동양최대 규모의 등대가 건립되어 머나먼 여정을 헤쳐온 선박들을 안전하게 울산항으로 인도하게 되었다.
특히 해상교통의 요충지인 이곳 화암추등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전망대에 오르면 생동감 넘치는 울산항과 24시간 불빛을 내뿜는 산업단지의 역동성을 한 몸에 느낄 수 있으며 등대 앞 방파제의 강태공들이 계절에 따라 색다른 손맛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삼태지맥의 마지막 지점인 화암추등대에서 마지막 산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화암추등대 전망데크 산책로와 현대중공업 공장 철망 사이로 나 있는 넓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산책로 입구로 돌아 가 애마에서 배낭 정리하고 간단히 젖어 있는 등산복과 등산화를 갈아 입고 신은 후 곧바로 귀가길에 드니 운전시간만 6시간 가까이 걸려 가족들에게 늦으면 저녁 먹고 휴게소에서 잠을 자고 천천히 올라간다고 안심시킨 후 출발하니 생각보다 막히지 않는 도로를 따라 약 5시간 정도 걸린 저녁 9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무사히 귀가해 가족들과 소맥 몇잔으로 자축하며 멀고도 길었던 이틀간의 울산 여행과 삼태지맥 산행을 마무리 한다.
다음주에는 거제도로 내려가 마무리하고 올라왔으면 좋겠지만 토요일 저녁에 천안에서 친구들 모임이 있고 일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비 소식이 있어 마무리가 되지 못하면 그대로 귀가했다 평일날 하루 내려가 간단히 마무리하고 올라오기로 하니 마음은 편안해 진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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