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지 : 경상북도 칠곡군의 황학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1년 12월 02일 (목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부터 점심때까지 강한 바람에 무척 추웠으나 오후부터 바람이 잦아들고 하루 종일 맑았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4도에서 영상 08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모래재(가산로 1차선 포장도로, 팔각정, 공사중)-전망대 방향 나무계단-묘지1기-팔공산 조망-가산산성 이정표(서문 0.3 Km, 북문 0.4 Km)-황학지맥 분기점(846.5미터)-현위치번호판 팔공03.04-
이정표(모래재 2.2 Km, 가산바위 1.1 Km)-현위치번호판 팔공03.02-현위치번호판 팔공03.01-비포장임도 이정표(모래재 1.7 Km, 가산바위 1.6 Km)-입산통제 플랭카드-금화지 조망-580.2봉-
568.4 고사목 무명봉-536.5봉-424.6 붉은띠지 무명봉-무명안부-448.4 J3무명봉-6.25전사자 유해발국지역 안내판-6.25전사자 유해발굴 기념지역 안내판-오계산(466.3봉, 이정판, 인식불가
삼각점)-무명묘지2기-394.9봉-79번 송전탑-시멘트 구조물 무명봉-길주의 갈림삼거리(좌측)-길주의 갈림삼거리(좌측)-해주최공 묘지들-해주최씨 영묘단-시멘트 포장도로(대나무)-
소야고개(245미터, 다부원휴게소, 5번 경북대로 4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비어있는 철망)-밭경작지 농막-전기줄-경주이공 묘지들-실봉산(457.5봉, 이정판2)-멧돼지 목욕탕-달성배공 묘지들-
현대공원묘원(관문정)-시멘트 포장도로(다부거문1길)-능선진입-비포장임도-절개지 진입-482.3봉-무명안부-공터 무명봉-잡목 무명봉-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너럭바위-참나무와 잡목등로-
참나무와 바위 무명봉-잡목등로-백운산(713.4봉, 이정판2, 군위312 삼각점, 헬기장)-바위 무명봉-폐헬기장(잡목 무명봉)-굵은 참나무 잡목 무명봉-시멘트 포장도로 안부-능선진입-바위암릉
등로-바위암벽-무명안부-바위암릉-왜관 조망-바위 무명봉-황학산(757.8봉, 이정판, 산불김시초소)-바위 무명봉-무명안부-706.7봉-비포장임도 벤취쉼터2-700.5봉-무명안부-급경사 내리막
잡목등로-33번 송전탑-자작나무 가시잡목등로-비포장임도-능선진입-키 작은 소나무와 잡목등로-공터 무명봉-무명안부-잡목 무명봉-590.3봉(유학산 갈림삼거리봉)-그물망 등로-잡목 무명봉(J3)-
559.5봉(무명묘지)-길주의 갈림삼거리(좌측)-밭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버등재(923번 지천로 2차선 포장도로)-바위암릉-452.5봉-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 안부-큰 소나무 무명봉-바위등로-
이정표(정상 0.72 Km, 황학지 0.78 Km, 도개온천 1.2 Km)-458.4봉(사각탁자와 벤취들 및 바위)-32번 송전탑-사각탁자와 벤취들-사각계단-통나무계단2-사각계단-소학산(624.2봉, 정상목,
육각정)-급경사 내리막 참나무등로-안동권공 묘지2-안동권공 묘지2-요술의고개(소학로 2차선 포장도로)-급경사 오루막 자갈등로-441.5봉 갈림삼거리-441.5봉(밀양박씨 묘지)-갈림삼거리 복귀-
무명묘지2-무명묘지-한골재-442.1봉(돌탑과 띠지들)-무명묘지 안부-이장된 묘지-무명묘지-무명안부-24번 송전탑-자봉산(406.2봉, 이정판, 인식불가 삼각점)-좌봉산(427.3봉, 이정판2)-칠곡조양
공원묘원-406.8봉-능선진입-364.9봉-가시잡목 등로-비포장임도-공사중인 비포장임도-능선진입-굵은 소나무 무명봉-장원봉(370.2봉, 이정판, 왜관305 삼각점)-길주의 갈림삼거리(우측)-잡목
등로(일몰)-비포장임도(칠곡군 산악자전거길 안내도, 한티가는길 안내판, 벤취쉼터)-벌목 후 조림지-사각탁자와 쉼터 무명봉-갈림삼거리(한티가는길 이정판)-무명안부-원주이공 묘지2-피난고개
안부-송전탑-굵은 소나무와 고사목 무명봉-28번 송전탑-송정제2터널(경부고속철도) 위 통과-201.1봉-무명묘지-무명안부-비포장임도-지천지 조망-벤취쉼터1-칠곡 지천면 등산안내도-경부고속
철로 철망등로-경부고속철로와 이별-밀양박공묘지-철망 통과-밭경작지-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1차선 포장도로(신동로5길)-2차선 포장도로(신동로8길)-지천면사무소-산행종료
산행거리 : 29.19 Km (모래재에서 분기점 찍고 지천면사무소 앞까지)
지맥산행 - 27.79 Km (황학지맥 분기점에서 지천면사무소 앞까지)
접속거리 - 01.22 Km (모래재에서 황학지맥 분기점까지)
산행트랙 :
산행시간 : 12시간 28분 (06시 13분부터 18시 41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1시 30분 황학지맥 첫구간 산행 날머리인 지천면사무소 앞으로 애마를 몰고 출발
05시 00분 지천면사무소 앞 주차장에 도착해 준비한 빵과 과일로 아침 해결
05시 30분 카카오택시 호출하여 산행 들머리인 모래재를 향햐ㅐ 출발(29,300.-원)
06시 13분 공사중인 모래재에 도착해 산행 준비 후 곧바로 나무계단을 타고 산행 시작
올때 - 18시 41분 지천면사무소 앞 애마에 도착 해 산행 종료
19시 10분 ㄷ구시 달서구 터치모텔 도착(50,000.-원)
20시 30분 모텔 근처 감자탕집에서 저녁식사 후 일찍 취침 (11,000.-원)
황학지맥이란 ???
팔공지맥 상 가산(901.6m)의 북서쪽으로 1.2 Km 지점인 846.5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칠곡군 가산면과 동명면 경계를 따라 오계산(466.3m). 소야고개, 실봉산(457.5m), 백운산(713.4m), 황학산(757.8m), 버등재, 소학산(624.2m), 요술의고개, 좌봉산(427.3m), 칠곡조양공원묘원, 장원봉(370.2m), 지천면사무소, 매복산(161.8m), 노비재, 용재산(253.8m), 용산(244.0m), 마천산(274.4m), 하빈고개, 죽곡산(195.8m)과 디아크 방향으로 남진하다가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달성군 다사면 죽곡리 강정마을에서 그 맥을 다하는 48 Km 산줄기를 말한다.
팔공지맥과 더불어 대구시민의 젖줄기라 할 수 있는 금호강의 북쪽 울타리가 되며 합수점에서 낙동강 건너 청룡지맥의 끝점과 마주보며 마무리 된다.
개별 산마다 고도차이가 심하고 수북히 쌓여있는 활엽수 낙엽 위에 눈까지 살짝 내려 너무 미끄러운 등로를 따라 오랫만에 두 다리에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며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추운 날씨에 환상의 조망을 즐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황학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북 칠곡군과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 그리고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이제 날씨가 추워지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니 새벽 운전으로 산행지까지 내려가는 것도 걱정과 고민이 시작되는데 남아 있는 지맥이 모두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산행지 선택에도 어려움을 느낀다.
이번에는 칠곡군과 대구시에 걸쳐 있는 황학지맥으로 내려가는데 해가 짧은 계절이기에 구간나누기가 애매하고 또한 각 봉우리마다 올랐다가 오른만큼 다시 내려가야 하며 고도 차이가 큰 그 등로에는 미끄러운 활엽수 낙엽이 두껍게 깔려있어 속도가 나지 않기 때문에 요술의고개까지 끊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끊으면 다음날 부담이 되기에 첫날 조금은 무리가 되더라도 지천면사무소까지 진행을 해 보기로 한다.
어둠속에 모래재에서 출발해 가산산성으로 올랐다 오계산(466.3m)과 실봉산(457.5m), 백운산(713.4m), 황학산(757.8m), 소학산(624.2m) 지나 좌봉산(427.3m)과 장원봉(370.2m)을 지나다 보니 선답자들이 기술한 내용대로 올랐다 내려가고 내려가면 다시 오르는데 낙엽으로 두발 오르면 한발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지천면사무소까지 도착을 해 가까운 대구시 달서구로 가 하룻밤 묵을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은 후 잠자리에 드니 생각보다 몸 상태가 좋아 내일이 기대되는 시간이다.
어둠속에 모래재에서 가산산성으로 오르는데 찬바람이 얼마나 강하게 불던지 몸도 가누기 힘들고 방풍의를 뚫고 들어 오는 황소바람이 몸을 움추리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황학지맥 분기점으로 오르니 여명이 밝아오고 내려갔다 오계산과 실봉산 및 백운산을 차례로 만나다 보니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 언급된 내용처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낙엽이 두껍게 깔려있는 위에 약간의 눈이 쌓여 있어 더욱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진행하니 드디어 이 산줄기의 이름을 부여받게 한 황학산에 올라 산불감시초소 위에서 제일 먼저 동쪽과 남동동 방향을 살펴보니 오늘 새벽에 올랐던 가산산성과 가산이 좌측으로 보이고 현대공원묘지 지나 우측으로 백운산 오름길 뒤로 매봉산이 보이는데 가산 우측 뒤 저 멀리 팔공산 주능선이 전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팔공산 우측 앞으로는 도덕산도 솟아 있는 모습이 환상으로 다가 온다.
날씨가 춥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진행에는 어려움이 잇었지만 펼쳐진 산그리메과 조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홀하기만 하다.
이제 눈을 서쪽으로 돌리니 바로 눈 앞으로 칠곡황학산휴양림과 달서지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잠시 후 만나야 할 소학산이 생각보다 뾰족한 모습으로 벌써 이 산객의 마음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직접 서쪽으로 내려가 만날 수 있으면 금방 내려가겠는데 우측으로 빙 돌아 능선을 타고 내려가 만나야 되니 저 소학산을 만나기 위해서는 잠시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이고 그 소학산 뒤 저 멀리 얼마 전 걸었던 우측의 구미시를 내려다 보고 솟아 있는 우측 뒤로 금오산과 소학산 뒤로 영암지맥의 영암산과 선석산 좌측 아래로 비룡산까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영암지맥 뒷쪽으로는 빌무산과 염속산 방향으로 흐르는 금오지맥 마루금도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고 있어 한동안 많은 사진에 담으며 잠시 옛 추억이 되어 버린 시간들을 회상해 본다.
이제 눈을 북쪽으로 돌리니 동서로 길게 아름답게 펼쳐진 유학산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는데 보기와는 달리 저 유학산으로 가는 길목인 다부리엔 한국전쟁 때의 승리를 기리는 다부동전적기념관이 있는데 다부리는 대구로 밀려오는 북한군을 막기 위한 최후의 격전지였다.
유학산이 처음 기록된 사료는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이 책에는 유학산이 아닌 유악산(流嶽山)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인동현의 동쪽 10리에 있으며 인동현의 진산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 산이기도 하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산이기에 지맥 산행이 무무리되면 꼭 한번 올라 오늘 걸었던 황학지맥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볼 시간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산행 날머리로 계획하 지천면사무소 옆 주차장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카카오택시를 부르니 금새 잡혀 10여분만에 택시로 갈아 타고 모래재로 오르니 걱정했던 바리게이트도 없이 정상까지 무탈하게 올라 택시에서 내리니 한겨울 찬바람이 강하게 불고 눈이 내렸는지 도롯가에는 잔설들이 흩어져 있다.
산행 준비 후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도 공사중인지 팔각정은 폐쇄되어 있고 도롯가에는 공사를 위한 자재들과 트럭 그리고 포크레인들이 보이는 곳에서 남쪽 방향으로 보이는 전망대란 이정판 옆으로 보이는 나무계단을 따라 새로운 황학지맥을 만나러 가는 길은 시작부터 쉽지 않은 길이었다.
모래재(포장된 도로가 지나는 고개로 지금은 공사중)는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금화리에서 가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높이는 약 575m이고 이제는 정상까지 모두 포장되어 편안하게 오를 수 있었는데 그 유래를 찾아보니 옛날부터 모래가 많아 모래재라고 하였다.
남쪽으로 4.3 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축 산성인 가산산성(架山山城)의 방어벽이 고개 아래 갈림길까지 이어지고 동쪽에 금화계곡과 서쪽에 저수지 가산지(架山池)가 형성되어 있으며 주변에 신라시대 사찰 대둔사(大屯寺)와 금곡사(金谷寺)가 있다.
아직도 세상은 완전한 어둠속에 잠겨있지만 황학지맥 분기점으로 오르면 여명이 밝아 올 시간이기에 초반부터 마음은 급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조심하며 새로운 산줄기를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나무계단을 지나니 그 끝자락에 전망대가 나타나지만 아직 보이는 것이 없으니 계속 이어지는 일반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등로는 갑자기 완만하게 내려가는데 우측으로 높은 절개지가 나타나 불빛으로 확인해 보니 방금 전 택시를 타고 오른 구절양장의 모래재로 오르는 도로가 지척으로 내려다 보인다.
다시 서서히 고도를 높혀 오르니 바람에 실려 온 활엽수가 발목지나 무릎까지 빠지며 그 위에 하얀 눈까지 살짝 내려 여간 미끄럽지 않는데 두발 오르면 한발이 미끄러울 정도로 초반부터 힘든 산행이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묘지 한기 지나 계속 이어지는 미끄러운 활엽수가 수북히 쌓여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높은 산줄기 위로 하늘이 붉게 변하기 시작하고 의식하지 못하고 한동안 더 올라 어둠이 어느 정도 엷어진 시간에 다시 좌측을 보니 군부대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팔공산 줄기가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또 새로운 일출이 시작되려는지 하늘은 온통 붉게 물들어 오며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몇번인가 올랐던 팔공산은 경상북도 군위군의 부계면 동산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193미터이고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의흥)에 공산석성(公山石城)은 부계현 남쪽 10리에 있는데 본현(本縣)과의 거리는 40리이다 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며 당시의 지명은 공산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유사한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의흥)에 나타나고 여지도서(의흥)에는 공산(公山)은 부계현 남쪽 42리에 있으며 화산에서 뻗어 나와 칠곡부 가산의 으뜸 줄기를 이룬다란 기록과 동일 문헌의 고적조에 공산성(公山城)은 돌로 쌓았다 (중략) 이제는 못쓰게 되었다 라고 기재되어 있어 산줄기의 근원과 함께 산 정상에 산성이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표기자의 변화 없이 해동지도(의흥)의 주기에 공산성(公山城)과 공산(公山)이 표기되어 있고 대동여지도에는 현재의 산 지명인 팔공산(八公山)이 기록되기 시작했으며 1872년지방지도(의흥)에는 팔공산구산성(八公山舊山城)으로 기재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의흥)의 부동면에 팔공산(八公山)은 황청동(黃淸洞)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동일 문헌의 하천명에는 공산천(公山川)이 표기되고 있어 팔공산 지명의 존속과 함께 하천지명으로서의 공산천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의 팔공산(八公山, 公山, 父岳, 中岳)은 신라 때 부악(父岳) 또는 중악(中岳)이라 하여 제천단(祭天壇)을 두고 중사(中祀)로 제사를 지냈으며 처음에는 공산(公山)이라 하였는데 신라 제42대 덕흥왕 7년(832)에 심지(心地)가 동화사(桐華寺)를 중창하고 팔공산(八公山)으로 고쳤다 라는 기록을 통해 이칭인 공산과 부악 및 중악과 함께 팔공산으로의 지명 변경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팔공산이 잘 보이는 곳에서 일출까지 보고 출발을 했으면 좋겠지만 아직도 일출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강한 찬바람이 불어 오는 능선에서 기다릴 수 없어 오늘도 일출을 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등로 좌측인 동쪽으로 팔공산 줄기 위로 붉게 물들어 오는 하늘과 팔공산 라인을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수북히 쌓여 있는 활엽수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이 왜 이곳을 그렇게도 쉽지 않은 등로라 했는지 조금은 이해도 되는 시간이다.
이제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며 헤드렌턴을 끄고 계속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낙엽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드디어 아직 정비되지 못한 가산산성 흔적들이 보이는 곳으로 오르고 한쪽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를 확인해 보니 서문과 북문으로 오를 수 있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이다.
이제 세번째 오르는 가산산성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 있는 조선후기 방어용으로 축성된 성곽이자 산성이고 사적으로 산골짜기를 이용하여 쌓은 석성(石城)으로 조선 인조 18년(1640)에 축조되었다.
가산산성이 있는 곳은 신라시대 오악신앙(五岳信仰)의 중심인 명산 팔공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약 10 Km 떨어진 해발 901m의 가산은 일곱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일명 칠봉산으로 불리는 명산이다.
산정에 나지막한 7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인 평지가 있고 여기서 사방으로 7개의 골짜기가 뻗어나가고 있으며 임진과 병자 양란을 겪고 난 후 조선 중기에 전략적 방어를 위하여 약 100여 년간에 걸쳐 축성했다.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성을 쌓는 선 후기 건축기법을 잘 보여주는 산성으로 내, 외, 중성 구조로 이루어진 국내 유일의 3중성이고 성내에는 칠곡도호부가 존재했으며 객사와 인화관(人和館)을 비롯한 관아와 군관청 및 군기고, 보루, 포루(砲樓), 장대(將臺) 등이 설치되었다.
정상에는 백여명이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대구시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휴식처인 가산바위가 있는데 가산바위는 일명 가암(架巖)이라고도 하며 사면이 깎아지른 듯이 우뚝 솟아 있는 바위이다.
상면에 80평 정도의 넓은 평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평지 동쪽에 큰 구멍이 뚫려 있고 사방이 트여 있어 바위 위에 서면 남쪽으로 대구광역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통일신라시대의 고승 도선(道詵)이 지기(地氣)를 잡으려고 바위 위 구멍 안에 쇠로 만든 소와 말의 형상을 묻었는데 조선시대 관찰사 이명웅이 성을 쌓으면서 없애버렸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제 가산산성을 따라 황학지맥 분기점이 바로 머리 위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좌측인 동쪽으로는 여전히 팔공산 주능선 위로 조금 더 붉게 변해가는 하늘빛이 아름답고 지나 온 방향인 북쪽을 살펴보니 방금 전 산행을 시작한 모래재 넘어 팔공지맥 줄기가 이어지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무명봉으로서 최정상인 741.5봉과 740.6봉은 들리지 않고 그 우측 뒤로 급격하게 산세를 낮추며 이어지는 팔공지맥에 대한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저 무명의 산줄기 앞 계곡인 광산골에는 팔공산금화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는데 팔공산금화자연휴양림은 삼국 시대부터 영남 지역의 명산으로 알려진 산 좋고 물 맑은 팔공산 자락에 있다.
다양한 수종의 활엽수가 울창하게 우거져 여름에는 녹음이 짙고 가을에는 단풍이 장관을 이루는데 휴양림의 전경을 한눈에 담고 느낄 수 있는 산림문화교육관과 휴양관 및 숲을 벗 삼아 마련된 숲속의 집, 카라반, 야영장을 갖추고 있는 시민의 휴식공간이다.
지나 온 모래재 넘어 무명산줄기로 이어지는 팔공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다시 분기점 방향으로 이어지는 가산산성을 따라 오르는데 찬바람이 얼마나 강하게 불어대는지 가파른 오르막을 타고 30여분 이상 올랐는데도 땀이 흐르지 않고 얼굴이 붉게 얼어버리는 느낌이다.
팔공산과 남쪽의 효령재로 이어지는 팔공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잠시 옛추억에 젖었다 다시 오르니 굵은 낙엽송들이 보이고 그 아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황학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하는데 바람이 얼마나 강하게 불어대는지 이정판 주위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쉴새없이 흔들리며 이정판을 가릴 정도이다.
몇 년전 홀로 한티재에서 오로고개까지 길게 걸었던 추억을 되살리며 기억을 소환해 보니 이곳 황학지맥 분기점도 조금은 지형이 변해있는 듯 보이고 황학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의 위치도 변해 있어 잠시 헷깔리는 시간이다.
이제 완전무장하고 어렵게 사진 한장 남기는데 완전히 날이 밝으면서 불빛의 도움없이도 진행이 가능한 시간이다.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3구간으로 나눠 진행을 했다면 가산바위와 가산까지 들렸다 와도 좋겠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으며 잠시 머무는 시간동안 약간 흘렸던 땀방울이 식으며 한기가 밀려 와 잠시 가산바위와 가산 방향인 남쪽과 남동 방향을 살펴보지만 나뭇가지들에 막혀 잘 보이지 않는다.
가산은 경상북도 칠곡군의 가산면 가산리와 동명면 남원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902m이고 서쪽으로 오계산과 연결되며 동쪽으로 한티재를 지나 팔공산과 이어진다.
산의 골짜기 곳곳에 암괴류가 분포하고 남쪽 사면에서 남원천이 발원하며 팔공산도립공원에 속하는데 가산바위 등 관광명소들이 있고 산 정상부에는 1640년(인조 18)에 축성된 가산산성(사적 제216호)이 있다.
가산산성이 완성되자 칠곡도호부가 이곳에 설치되었고 1819년까지 읍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현재도 성벽과 사대문지와 암문, 수구문, 건물지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가산은 여지도서에 처음 기록되어 있는데 부성(府城)의 주산(主山)이다 라고 쓰여 있고 해동지도에는 가산산성이 내부의 시설까지 상세하게 그려져 있으나 가산이라는 명칭은 기재되어 있지 않으며 조선지도에는 성곽을 묘사하고 가산성이라고 기재하였다.
가산이라는 명칭은 팔공산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끝자락에 위치하여 갓(가장자리)산이라 하였고 이를 한자로 가산이라 표기한 것이라 전해지며 가산은 7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칠봉산(七峰山)이라고도 한다.
아쉬운 마음을 남기고 우측인 서쪽 방향으로 허물어진 산성터를 지나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낙엽 아래 바위들이 쌓여 있어 주의가 필요하고 그렇게 조금 더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 등로 아래 활엽수 낙엽이 보이고 그 위로 하얀 눈이 보여 더욱 긴장시키는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한동안 더 주의하며 몇전인가 미끄러지며 내려가니 이정목이 나타나고 모래재와 가산바위로 갈 수 있다는 이정표 지나 평이한 참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진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나는 이정목을 연속으로 사진에 담고 등로 좌우측과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나뭇가지들에 막혀 제대로 된 조망은 전혀 열리지 않아 조금은 답답한 느낌이지만 등로 자체는 넓은 능선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생각보다 좋다는 느낌으로 진행된다.
잠시 후 긴급신고 및 구조요청 안내판과 이정표가 서 있는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1.7 Km 를 이동하면 오늘 어둠속에 산행을 시작한 모래재로 갈 수 있다는 이정표의 거리와 방향 표시가 보인다.
우측으로 다시 모래재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11월 1일부터 내년 5월 15일까지 입산통제 구간이라는 플랭카드가 걸려있어 마음이 불편하며 미필적계속 이어지는 범법자가 되어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 안타깝기만 하다.
계속 이어지는 참나무 아래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낙엽 아래 잔돌들이 깔려있어 겉보기와는 달리 진행에도 주의가 필요한 등로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등로 우측 앞으로 금화리의 금화지라는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우측으로는 무명봉인 팔공지맥 산줄기가 좌측으로는 오늘 산행동안 바라봤던 유학산 줄기가 드높게 올려다 보인다.
금화저수지가 있는 금화리는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 있는 리로서 가산을 뒤로 한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소규모의 경지가 분포하며 왼편에 작은 하천이 흐르는데 사금과 중석이 많이 났으므로 금화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금화, 절골, 수청거리, 새뜸마을 등이 있는데 금화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금화리의 그것과 같고 절골마을은 신라 성덕왕 때 창건한 금곡사라는 절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청거리마을은 금화리에서 중심되는 마을이며 새뜸마을은 수청거리 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우측으로 금화지와 팔공지맥 그리고 유학산 줄기를 나뭇가지 사이로 살펴보고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르니 완만하게 내려가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에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위지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다 뒤돟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황학지맥 분기점과 그 우측으로 가산바위 지나 가산으로 이어지는 팔공지맥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다.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굵은 참나무 두그루가 보이는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남양주 금곡님과 법광님이 산행 띠지에 이곳을 580.2봉으로 표기를 해 봤다.
그 봉우리 지나 남서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능선 낙엽 등로로 길게 펼쳐져 있어 편안하게 걸어가지만 낙엽 아래 깔려있는 자갈들이 신경을 쓰게 만든다.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석축이 보이는데 그 용도는 알 수 없고 다시 평이한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눈 위에 쌓여 있던 엷은 눈들이 녹으면서 물방울들이 비산하고 등산복 바지와 등산화를 적시기 시작한다.
등로는 생각보다 좋고 잡목들의 저항도 심하지 않아 속도를 내는데 다만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오르고 내리는 등로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까가 고민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후 등로 좌측 앞 나뭇가지 사이로 산줄기들이 보여 살펴보니 잠시 후 올라 만나야 할 실봉산 넘어 백운산과 황학산으로 이어지는 황학지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다.
사진에 담고 계속 완만하게 이어지는 낙엽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벌써 일출이 시작되었는지 좌측 황학산의 높은 산줄기 위로 따스한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고 곧이어 잡목들이 정상을 지키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에 고도표시가 되어 있는 536.5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그 536.5봉 지나 계속 이어지는 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니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실봉산 지나 백운산과 황학산으로 이어지는 황학지맥 마루금에 아침 햇살이 퍼지며 조금은 따스한 기분으로 진행되지만 이곳은 등뒤로 솟아 있는 가산과 가산바위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막혀 햇살은 보이지 않는다.
등로 좌측 진행 방향으로 황학지맥을 살펴보고 계속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르니 붉은 띠지가 바람에 휘날리는 무명봉 넘어 진행 방향으로 오계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완만하게 내려가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미끄러운 활엽수 낙엽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등뒤 가산방향 위로 늦은 일출이 시작되고 몇장의 사진에 담은 후 오르니 6.25전사자 유해발굴 지역이라는 안내판들이 나뭇가지에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관목의 참나무들과 작은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장상에도 역시 6.25전사자 유해발굴 지역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 무명봉에서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6.25전사자 유해발굴 기념 지역이라는 커다란 안내판이 서 잇어 읽어 보니 6.25당시 치열했던 우계산 전투와 그 전투에서 사망한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게 된 내용들이 적혀 있다.
이곳 466고지(우계산)는 6.25전쟁 당시 5번과 25번 도로를 통해 대구로 들어갈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1950년 8월 15일부터 21일까지 6일간 국군 제1사단 11연대와 북한군 제15사단이 혈전을 벌인 다부동 지구 전투의 최대 격전지(激戰地)로써 1사단 주 저항선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지역이었다는 내용으로 2000년 4월 6.25 전사자 유해발굴이 처음 시작된 이후 40여구를 발굴하였다는 소식이 눈에 들어 오는데 이 또한 2015년에 새운 안내판이니 지금은 훨씬 많은 전사자 유해가 발굴되었으리란 생각이다.
내일 산행이 일찍 마무리되면 다부동전투전적비를 잠시 둘러 보고 올라 갈 수 있기를 바래보지만 결국 사고로 산행도 늦게 끝나고 서울로 복귀도 많이 늦어져 힘든 산행이 되었다.
6.25전사자 유해발굴 기념 지역 안내판을 지나 평이한 능선 등로를 따르니 금새 이정판과 말뚝 삼각점이 박혀있는 오계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겨본다.
오계산(午鷄山.466.3m, 인식불가 삼각점)은 경상북도 칠곡군의 가산면 금화리와 동명면 학명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66.3m이고 팔공산에서 가산으로 뻗은 산줄기가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중간 부분에 있다.
완만한 토산을 이루고 있고 북쪽 산기슭에는 금화계곡과 금화저수지가 있으며 동남쪽 사면에는 공원묘지가 있고 산의 서쪽으로는 중앙고속도로와 5번 국도가 지난다.
5번 국도가 지나가는 산 서쪽의 소야고개는 조선시대의 영남대로가 지나가는 곳이었고 오계산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사료에 기록이 없으며 오계산이라는 이름은 산 모양이 닭이 앉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봉우리같지 않은 능선 상 우계산 정상으로 이곳은 또한 6.25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다부동 전투의 일부 지역으로 지금도 주위에 전투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자료들이 있다는 자료들이 보인다.
오계산 지나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 능선 낙엽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다부리 지나 유학산이 드높게 솟아 있는데 좌우측으로 길게 펼쳐진 산줄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오고 그 아래 다부리에는 6.25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한곳으로 남아 있는 다부동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현재는 다부동 전적비가 있는 곳이다.
낙동강방어선 가운데 대구 북방 22 Km에 위치한 다부동(현재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은 대구방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술적 요충지로서 만일 다부동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면 지형상 아군은 10 Km 남쪽으로의 철수가 불가피하고 대구가 적 지상화포의 사정권내에 들어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북한군은 다부동 일대에 증강된 3개 사단을 투입해 약 21,500명의 병력과 T-34 전차 약 20대(후에 14대 증원) 및 각종 화기 약 670문으로 필사적인 공격을 해왔다.
이에 반해 이 지역 방어를 담당한 국군 제1사단은 보충받은 학도병 500여 명을 포함해 7,600여 명의 병력과 172문의 화포 등 열세한 전투력을 극복하면서 공산군의 이른바 8월 총공세를 저지하여 대구를 고수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미 제1기병사단과 임무를 교대하였다.
미 제1기병사단은 공산군의 9월 공세로 한때 국군 제1사단이 사수했던 다부동일대의 주저항선을 적에게 붕괴당하였으나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개시된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총반격으로 다부동을 탈환하였다.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架山面) 다부리 유학산(遊鶴山) 기슭에는 국군 제1사단의 전공을 기린 다부동전적비가 있다.
저 유학산도 미답지이고 다부동 전적비가 있는 곳도 들려보지 못했기에 내일 산행이 조금 일찍 마무리되면 잠시 들렸다 귀가하기로 한다.
능선 등로에는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지만 잡목들이 별로 없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낙엽 밑에 숨어 있는 자갈들이 주의를 요하는 구간들이 나타난다.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굵은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곳에서 등로는 서쪽에서 좌측인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고 등로 우측으로 조금 더 선명한 유학산 전경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무명묘지 2기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는 다시 북서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우측의 유학산 줄기 좌측으로 오후에 만나야 할 소학산이 생각보다 뾰족한 모습으로 산객의 마음을 압도하고 있다.
잠시 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굵은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는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잠시 더 전진하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에 394.9봉임을 알리는 고도 표시가 되어 있는 참나무 봉우리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겨본다.
그 봉우리 지나 여전히 평이함 낙엽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다부리 금화계곡 방향으로 민가들과 도로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썩어가는 고사목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등로는 다시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79번 송전탑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웅덩이 한가운데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묻혀있는 곳에 도착을 하는데 그 용도를 전혀 알 수가 없는 구조물이다.
그 구조물이 보이는 무명봉 넘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유학산이 여전히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무명안부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소나무 등로를 따고 무명봉 넘어 다시 소나무 등로로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로 진행한다.
잠시 후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자세히 확인하고 지도를 보니 길주의 지점으로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급격하게 꺽어 남쪽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를 찾아 진행을 해야 할 지점이었다.
길주의 지점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어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잡목들이 사라진 소나무 내리막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어렵게 등로를 찾아 진행하니 부러진 관목의 참나무 가지가 보이는 갈림삼거리에서 다시 직진의 우 측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휘어져 완만하게 내려간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입산통제라는 플랭카드가 다시 걸려있어 재빨리 통과하니 해주최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위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잠시 후 가파르게 올라 어렵게 만나야 할 실봉산 정상이 바로 눈 앞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어 사진에 담고 내려간다.
해주최공 묘지2기를 지나 내려가니 다시 비석3개가 세워져 있고 그 비석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민가 한채가 나타나 조용히 내려가니 민가는 비어있고 어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보여 살펴보니 해주최공을 위한 단소처럼 보이는 곳이다.
진행 방향으로는 올라야 할 실봉산이 우뚝 솟아 있고 뒤돌아 보니 영모단 지나 내려 온 해주최공 묘지들과 비석들이 올려다 보인다.
해주최공 영모단을 지나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좌우측으로 대나무밭이 보이는데 그 대나무 밭을 통과하자마자 좌측으로 편의점과 식당이 보이는 소야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표지판에는 다부원앞이란 글씨가 보인다.
소야고개(5번과 25번 국도, 다부원앞)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가산면 다부리와 동명면 학명리를 잇는 고개로서 가산에서 뻗어온 오계산과 백운산 사이의 안부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 5번 경북대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이 고개는 예로부터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어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동래를 잇는 영남대로가 통과하는 곳이었으며 고개 아래에는 다부원(多富院)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인동현조에는 소야원(所也院)은 현의 동쪽 41리에 있다 라는 기록이 있어 당시 소야고개 인근에 소야원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고 소야고개에 대한 기록은 여지도서에 처음 등장하며 소야현(所也峴)은 칠곡도호부 관아의 서북쪽 10리에 있고 가산에서 떨어져 나와 뻗어 가서 소학산(巢鶴山)을 이룬다 라고 쓰여 있다.
해동지도에는 칠곡도호부와 인동도호부 지도 모두에 소야고개가 그려져 있으며 소야치(所也峙)라고 표기되어 있고 소야고개는 쐐고개 또는 쐬고개라고도 부르는데 쐐기 모양을 띠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경북대로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려고 주위를 살펴보니 횡단보도도 없고 지하통로도 보이지 않아 우측으로 한참을 돌아 횡단보도를 통해 통과해야 하기에 위험하지만 차량 통행이 뜸한 시간에 무단횡단으로 무사히 통과를 하니 실봉산 방향으로 다시 튼튼한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 어짜피 우측으로 내려가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우측인 다부동전적기념관이 있는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높고 튼튼한 철망이 잠시 사라진 곳이 보이고 그곳으로 올라 능선으로 올라 진행을 하는데 능선으로 오르기 전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다부리 지나 저 멀리 유학산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이곳 소야고개 또는 다부원 앞 경북대로는 삼국시대부터 왕건과 견훤이 대권의 길목에서 혈투를 벌인 요충지였고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및 6.25전쟁을 거치면서 매 고비마다 치열한 전투를 겪은 곳이다.
또한 이 고개는 조선시대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던 옛길 영남대로 길목이었으며 많은 역과 관원 행상들이 묵어가는 주막촌이 형성되고 돈 많은 거상들이 몰려들면서 부자가 많은 곳이라 하여 다부원(多富院)이란 이름이 생겼는데 산경표(蘇耶峙)와 대동여지도에도 지명이 표기된 곳이다.
지도에는 대부분 소야고개로 표기되어 있다만 현지 주민들에게는 다부고개로 더 잘 알려져 있고 유래도 정확하게 나타나 있고 교통량도 많으며 최근에는 편의점과 식당까지 들어 서 있어 산객들에게는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는 고갯마루가 되어 있다.
철망 한쪽이 트여 있는 곳을 통해 능선으로 오르니 가시덤불이 앞을 가로막지만 진행에 어려움이 있을 정도는 아니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우측에서 올라오는 뚜렷한 등로가 나타난다.
그 뚜렷한 등로를 따라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밭경작지와 농막이 나타나는데 밭경작지 옆으로는 전기줄도 나타난다.
그곳을 지나 대나무 밭을 통과하니 다시 과실수가 식재된 과수원 지나 뒤돌아 보니 바로 아래 파란 지붕을 한 농막 넘어 다부원휴게소가 있는 학명리 좌측으로 방금 전 내려 온 황학지맥 마루금이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그 황학지맥 마루금 우측으로도 멋진 산줄기 하나가 펼쳐져 있어 살펴보니 그 산줄기 역시 황학지맥 분기점에서 좌측으로 보이지 않는 오계산으로 이어지는 황학지맥 마루금이 이어지고 있는 풍경이다.
지나 온 방향으로 황학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방금 전 지나 온 오계산 좌측 뒤로 유학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아직은 선명하지는 않다.
다시 희미해지는 등로를 찾아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에너지바로 허기를 달래고 그 묘지 뒤로 이어지는 등로를 찾아 오르니 다시 굵은 참나무 사이로 약간의 잡목들이 보인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다부리 방향의 동네와 공장 건물들 넘어 유학산이 생각보다 가깝게 다가 와 있는데 다만 그 사이로 참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굵은 참나무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유학산이 가깝게 다가 와 있어 지도를 꺼내 확인해 보니 맞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키 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된 듯한 등로 지나 6.25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이라 생각되는 웅덩이들이 보이고 곧이어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에 각기 다른 이정판이 붙어 있는 457.5미터의 실봉산에 도착을 하는데 이 실봉산에 관한 자료는 보이는 것이 없아 아쉽다.
이곳 칠곡군에 있는 실봉산은 가산면 다부리와 동명면 가천리 및 학명리의 3면 경계에 솟아 있는 봉우리로서 우계산에서 내려오며 올려다 봤던 모습과는 달리 정상은 능선 상 봉우리처럼 보이는 부드러운 실봉산이다.
실봉산 정상에서 추억을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물이 얼어있는 물 웅덩이가 나타나는데 주변의 소나무에는 멧돼지들이 목욕 후 몸을 문지른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이는데 이제 날씨가 추워 목욕을 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정상을 지나 진행하니 다시 잡목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등로가 열리고 그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다 진행 방향을 보니 바로 앞으로 현대공원 묘지 지나 올라 만나야 할 482.3봉이 바로 앞으로 솟아 있고 그 우측 뒤저 멀리 부드러운 마루금을 따라 백운산이 둥그런 모습의 부드러운 모습으로 솟아 있는데 그 우측에 있는 황학산 정상은 우측 능선과 나뭇가지들에 막혀 아직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다.
진행 방향으로 482.3봉 우측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백운산 능선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경주배씨 평장들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드넓은 현대공원묘지가 펼쳐지고 그 묘지 뒤로 올라야 할 482.3봉으로 오르는 중간까지도 공원묘지가 펼쳐져 있다.
현대공원묘원을 통과한 후 오를 수 있는 등로를 다시 한번 더 확인하며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이제 등로 우측으로 다부리 지나 유학산이 올려다 보이고 좌측으로는 동명면 마을이 아련하게 펼쳐져 있다.
묘지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도로 건너편에 관문정이란 육각정과 우측 뒤로 현대공원 관리건물도 보이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보인다.
그 앞 도로를 건너 반대편 공원묘원 방향으로 오르다 첫번째 우측 묘지 방향으로 보이는 계단을 타고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넘어 온 현대공원묘원 건물 뒤로 실봉산과 그 우측으로 무명봉이 보이는데 전망대도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 펼쳐져 있다.
계속 이어지는 현대공원 묘지를 좌측에 두고 계속 걸어 오르니 드디어 묘원이 끝이 나고 우측에서 올라오는 비포장임도가 보이는 곳 우측 능선 방향으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를 확인하며 능선으로 오르니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최근에 새로 생긴듯한 넓은 비포장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오르니 아직도 파란 초지가 임도를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곳에서 우측으로 보이는 절개지를 타고 어렵게 오르니 등로 좌측인 동쪽으로 현대공원묘원 뒤 무명봉 넘어 오늘 산행을 시작한 황학지맥 분기점이 있는 가산산성이 보이고 그 우측 뒤로 가산과 우측 가장자리 끝자락으로 살짝 팔공산도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한번 더 방금 전 만나고 내려 온 실봉산과 현대공원묘원을 뒤돌아 보고 우측인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다부리와 학산리 마을 뒤로 유학산이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따스한 햇살이 비추며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늘 나뭇가지 사이로 봤던 모습과는 달리 생각보다 거칠고 길게 펼쳐진 모습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다부리는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 있는 리로서 우계산, 황학산, 유학산 등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작은 두 하천이 합쳐지는 곳이며 조선 때 다부원이 있었으므로 다부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다부, 진목, 샛골, 큰마마을 등이 있는데 다부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다부리의 그것과 같고 진목마을은 다부원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며 샛골마을은 다부와 진목의 사이가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큰마마을은 다부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비포장임도 위 절개지 앞에서 동쪽부터 북쪽 지나 서쪽까지 조망을 즐기고 다시 오르니 굵은 참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힘겹게 오르니 낙엽 위에 하얀 눈과 성애가 내려 앉아 주르륵 미끌어지기 일쑤이다.
미끌어지지 않으려고 힘주어 오르니 체력 소모는 많은데 속도는 전혀 나지 않는 어려운 오르막 진행이 이어지고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오르니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관목의 나뭇가지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다가 가 살펴보니 이곳 역시 남양주 금곡님과 법광님이 각자 산행 띠지에 이곳이 482.3미터봉임을 알리고 있어 사진 한장 남긴다.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482.3봉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어 서쪽으로 이어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진행 방향의 잡목 사이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등로가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백운산 우측으로는 잘록한 다부리의 안부 지나 황학산이 드디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그 풍경을 사진에 담고 조금 더 내려가니 굵은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무명안부도 통과한다.
좌측으로 동명면 가천리와 우측의 가산면 다부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등로 좌우측을 살펴보니 사람이나 동물들이 다닌 흔적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 안부 지나 다시 참나무 등로를 타고 오르니 공터 무명봉을 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잡풀들과 키 작은 소나무가 보이는 무명봉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 서서 살펴보니 마루금은 그 시멘트 포장도로 우측으로 나란히 달려가는데 높이도 큭 차이가 나지 않는데 원 마루금에는 가시잡목들이 보여 한동안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시멘트 포장도로 뒤 저 멀리 황학지맥 분기점과 가산이 보이고 그 우측 뒤로는 팔공산이 조금 더 넓게 펼쳐진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628미터의 매봉산이 우뚝 솟아 있고 진행 방향으로는 백운산 정상처럼 보이는 봉우리는 보이지 않고 부드러운 능선이 넘어가는 듯한 풍경들만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오르니 비포장임도가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는 좌측으로 바위가 보이는 곳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 잡목 사이로 나 있는 능선등로를 따라 백운산으로 향한다.
바위 뒷쪽으로 오르니 굵은 참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데 이곳부터 다시 미끄러운 등로의 진수를 맛보며 힘들게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 앞으로 황학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조금 더 많아진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너럭바위 지나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기 시작한다.
관목의 참나무 사이로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어렵게 오르니 어느 순간 등로가 희미해지기 시작하고 방향만 잡고 오르니 굵은 참나무 옆으로 많은 바위들이 모여 있는 무명봉도 통과한다.
그 바위들이 보이는 무명봉 지나 여전히 굵은 참나무 아래 잡목들이 우거진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 옆으로 바위암릉이 보이고 곧이어 좁은 헬기장이 보이고 그 한쪽으로 두개의 이정판과 군위312란 삼각점이 박혀있는 713.4미터의 백운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주위를 살펴보니 나뭇가지에 막혀 조망은 전혀 없다.
백운산(白雲山. 713.4m, 헬기장과 군위312 삼각점)은 경상북도 칠곡군의 지천면 백운리와 가산면 학산리 및 동명면 가천리와 송산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713.4m이고 팔공산에서 가산을 거쳐 이어지던 산줄기가 백운산에 이르러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다.
북쪽에 황학산과 동남쪽에 매봉산이 있고 백운산의 서쪽에서 발원한 계류들은 이언천으로 흘러가는데 이언천의 골짜기로 923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산의 남쪽 사면에는 백운사와 공원묘지가 있으며 북쪽 산록에는 대구예술대학교가 있다.
백운산은 조선시대 사료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조선지지자료에 처음 기재되어 있으며 상지면(上枝面) 수정리(水晶里)에 있는 산으로 쓰여 있고 백운산이란 이름은 산이 높아 흰 구름 위에 솟아 있다는 뜻으로 붙였다고 한다.
이곳 백운산에서 직진은 청구공원묘지 지나 건영산으로 이어지기에 방향을 남서 방향에서 우측인 북서 방향으로 크게 꺽어 이어가야 할 길주의 지점이기도 하다.
우측인 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니 큰 고도 차이없는 능선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관목의 소나무와 잡목들 그리고 바위들이 보이는 무명봉 지나 키 작은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폐헬기장도 통과하는데 선답자의 산행 띠지도 보인다.
그 폐헬기장 지나 계속 이어지는 잡목 등로를 따르니 다시 굵은 참나무 한그루와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통과하고 우측 아래를 보니 빼곡한 나뭇가지 사이로 다부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공장 건물들도 많이 보이는 듯 하다.
지나 온 방향으로 가산과 우계산 및 실봉산도 살펴보고 계속 전진하니 이제 진행 방향으로 잠시 후 만나야 할 황학산과 그 좌측 아래로 뾰족한 송곳처럼 솟아 있는 소학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해 사진에 담으며 진행을 이어간다.
그렇게 진행 방향인 북서쪽으로 황학산과 소학산을 살펴보고 그 황학산 우측을 보니 저 멀리 유학산 능서도 살짝 얼굴을 내밀며 존재감을 알려온다
잠시 후 바위 지나 굵은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넘으니 활엽수가 다시 발목까지 빠지는 내리막 등로가 가파르게 이어지고 곧이어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 지천면 황학리롸 우측의 가산면 다부리를 이어주는 안부이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무명안부 지나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 역시 활엽수 낙엽이 바짝 말라 여간 미끄럽지 않아 속도를 낼 수가 없다.
관목의 참나무 오르막 등로에 제법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마루금을 헤치며 오르니 등줄기와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리기 시작하고 배낭 내려 옷 정리하고 물한모금 마신 후 다시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만나고 내려 온 백운산 정상부가 멀어지며 이별의 손을 흔들어 주는 듯 하다.
높이에 비해 등로는 부드럽기에 생각보다 잘 진행되지만 역시나 활엽수 낙엽들로 인한 미끄러운 등로 때문에 속도도 나지 않고 체력은 다른 마루금보다 더 심한 듯 느껴지는 산행이다.
진행 방향과 지나온 백운산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에 제법 굵은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바위암릉을 따라 조심하며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인 동쪽으로 여전히 아름다운 가산과 팔공산 주능선이 눈에 들어오고 등로 좌측인 남서 방향으로는 몇번 머물렀던 칠곡군 왜관읍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데 강한 바람이 멈추며 박무가 생겼는지 흐릿하기만 하다.
왜관읍은 경상북도 칠곡군의 남부에 위치한 읍으로 북쪽으로 석적읍과 남쪽으로 대구광역시 달성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북쪽과 동쪽이 작오산, 기반산, 자봉산, 장원봉 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막혀 있고 서쪽에는 낙동강이 흐른다. 서북쪽 산지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유입하는 하천 유역에는 평야가 형성되어 있고 이곳에 시가지와 공단이 조성되어 있다.
왜관은 과거에 낙동강 수운의 항구였으며 현재는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 그리고 여러 개의 국도와 지방도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일본인을 위한 왜관이 설치되었고 현재는 미군 보급기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칠곡군청이 자리한 칠곡군의 중심지이다.
읍 소재지는 왜관리이며 석전리·매원리 등 9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왜관읍은 조선시대 파며방(巴旀坊)이었으며 여지도서에 관아에서 60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파며라는 이름은 왜관읍 중부에 있는 파산(巴山)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조선지지자료에도 파며면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신구대조는 파미면(巴彌面)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며 1914년에 파미면에 노곡면(蘆谷面)을 합쳐 왜관면이 되었다.
왜관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이곳에 있었던 왜관(倭館)에서 유래하였으며 1905년 경부선철도를 부설하고 이곳에 역을 설치하면서 왜관역이라 이름붙인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왜관면은 1949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왜관읍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다시 눈 앞으로 나타난 바위암릉을 타고 오르니 제일 먼저 동쪽으로 다부리와 현대공원묘원 우측으로 482.3봉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모래재에서 황학지맥 분기점 뒤로 가산바위 및 가산이 펼쳐져 있으며 그 뒤로 팔공산 주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팔공산 우측으로는 가팔환초로 이어지는 종주 능선이 살짝 보이는데 곧이어 걸어야 할 유봉지맥을 찾아 보지만 그곳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남동 방향으로는 잠시 전 만나고 올라 온 백운산이 보이고 백운산 우측 뒤 저 멀리로는 오늘 산행 날머리인 지천면 신동역 근처도 보일듯 말듯 다가 와 있어 사진에 담고 북쪽을 살펴보니 황학산 정상의 산불감시초소가 키 작은 참나무 위로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몇장의 사진에 담고 그 바위암릉을 넘어 내려 가 안부 넘어 다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산불감시초소가 보이고 그 철제 다리에 백운산이란 정상판과 준희님이 걸어 둔 757.8봉이란 이정판이 보이는 황학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겨본다.
황학산(757.8m)은 경상북도 칠곡군의 지천면 황학리와 가산면 학산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팔공산에서 가산(架山)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네 갈래로 분기되는 지점에 위치한다.
황학산의 서쪽으로는 소학산이 남쪽으로는 백운산이 북쪽으로는 유학산이 있고 황학산 서쪽 사면 아래에는 계곡을 가로막은 황학저수지가 있으며 그 주변에 황학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황학산에는 아카시아나무가 많고 산기슭의 황학리는 이를 이용한 꿀 생산지로 유명하며 황학산은 조선시대 문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조선지도와 1872년지방지도 등 고지도에 기재되어 있는데 산의 이름은 누런 학이 살아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감시원을 찾으니 아저씨가 반겨주고 잠시 산불감시초소 위로 올라 환상으로 펼쳐진 풍경과 조망을 즐겨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제일 먼저 북쪽을 살펴보니 6.25전쟁 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였던 다부동 전투가 일어났던 다부리 지나 유학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살펴보는데 지도를 보니 동서 방향으로 길게 펼쳐져 있어 지맥 산행이 마무리되면 꼭 한번 올라보고 싶은 산으로 남겨본다.
유학산은 경상북도 칠곡군의 가산면 다부리와 학산리 및 석적읍 성곡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839m이고 정상 부분은 대체로 완만한 억새밭을 이루지만 남쪽과 북쪽의 사면은 경사가 매우 급하여 단애를 이루고 있다.
유학산은 팔공산에서 가산으로 이어진 산줄기로부터 서쪽으로 갈라진 곳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천생산과 남쪽으로 황학산과 연결된다.
유학산 남쪽의 다부리 고갯길에는 한국전쟁 때의 승리를 기리는 다부동전적기념관이 있는데 다부리는 대구로 밀려오는 북한군을 막기 위한 최후의 격전지였으며 유학산 남사면 중턱에는 도봉사(道奉寺)가 있다.
유학산이 처음 기록된 사료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인데 이 책에는 유학산이 아닌 유악산(流嶽山)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인동현의 동쪽 10리에 있고 인동현의 진산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도에도 유악(流岳)이라 표기되어 있으나 해동지도에는 유학산(留鶴山)이라고 기재되어 있고 현재 쓰고 있는 유학산(遊鶴山)이라는 이름은 1872년지방지도에 처음 기록되어 있는데 학이 놀던 산이라고 붙여졌다고 한다.
유학산 앞으로는 잠시 후 소학산으로 가기 위해 우측으로 빙 돌아 가야 하는 황학지맥 마루금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유학산을 살펴보고 눈을 서쪽으로 돌리니 바로 눈 앞으로 잠시 후 만나야 할 소학산이 내려다 보이는데 그 앞에는 칠곡황학산휴양림과 달서저수지가 보이고 그 소학산 뒤로는 낙동강 지나 악목면 들판 넘어 우측 가장자리로 구미시에서 좌측으로 금오지맥의 금오산과 영암지맥의 영암산 그리고 선석산 지나 비룡산까지 보이고 그 뒤로 금오지맥이 희미하게 펼쳐져 있다.
이제 소학산 우측으로 보니 지천면 황학리에 있는 버등재도 보이는데 저 버등재는 선답자들 일부가 첫 구간 산행 날머리로 이용했던 안부이다.
이제 눈을 남서 방향으로 돌리니 소학산에서 좌측으로 큰 고도 차이없이 능선 등로로 이어지는 황학지맥 상 자봉산과 좌봉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길게 이어지고 그 뒤로 희미하게 왜관읍이 펼쳐져 있다.
그 좌측 아래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죽곡산 방향을 살펴보지만 그곳은 좌측 능선에 막혀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만 왜관읍 뒤 저 멀리 희미학게 금오지맥 마루금과 좌측 아래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수도지맥 마루금도 살짝 보이는데 워낙 거리가 있어 높은 봉우리로만 그 방향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렇게 황학지맥 마루금을 모두 살펴보고 이제 눈을 동쪽으로 돌리니 바로 아래 다부리와 현대공원묘원을 가운데 두고 좌측으로 실봉산이 우측으로는 482.3봉이 보이고 그 뒤로 모래재에서 황학지맥 분기점 지나 가산바위와 가산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도덕산 줄기가 이어지는데 우측 가장자리의 중앙부로는 백운산 뒤로 보였던 매봉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저 멀리 가산과 도덕산 중앙 뒤로는 팔공산 주능선이 모두 펼쳐져 있고 도덕산 뒤로는 가팔환초로 이어지는 종주 능선 상 환성산에서 초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도 확실하게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눈을 남동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눈 앞으로 방금 전 만나고 지나 온 백운산과 그 좌측 아래로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매봉산이 내려다 보이고 백운산 우측으로는 건령산과 황학지맥 날머리와 대구시 지나 저 멀리 하늘금과 맞닿아 있는 희미한 비슬산 능선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사진 우측 뒤 하얗게 보아는 부분이 바로 금오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황학지맥 날머리 근처로서 그 끝자락에 디아크가 있겠지만 눈으로 확인까지는 되지 않아 아쉬움만 남긴다.
그렇게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그 산불감시초소를 내려 와 감시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다시 북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북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타고 황학산을 출발하며 뒤돌아 산불감시초소를 다시 한번 더 사진에 담고 천천히 진행하니 이곳 역시 참나무와 잡목들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열리는데 그 위에 수북히 쌓여 있는 활엽수 낙엽들로 인해 진행에 상당히 어려움을 느낀다.
잠시 후 관목의 가지가 많은 참나무와 바위들이 보이는 무명봉 지나 다시 미끄러지며 활엽수 낙엽이 무릎까지 빠지는 무명안부를 지나니 지도 상 706.7봉에 도착을 하고 주위를 둘러 보지만 이정판은 물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한장 보이지 않아 굵은 참나무 한그루를 사진에 담고 곧바로 출발한다.
아무 표식도 없는 706.7봉 지나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며 등로 우측 뒤를 보니 방금 전 환상적인 조망을 즐겼던 황학산 정상이 벌써 멀어지며 희미하게 잡목 사이로 숨어버린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남동 방향을 살펴보니 백운산과 매봉산이 차례로 나란히 서 있고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남서 방향으로는 방금 전 지나 온 황학산 정상이 올려다 보인다.
다시 굵은 참나무들이 보이는 평이한 능선 등로를 따르니 이곳 역시 활엽수 낙엽이 발목을 덮고 바스락거리는 음악소리에 발 맞춰 빠르게 전진하니 넓은 비포장임도에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임도 건너 능선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그 비포장임도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특이할 것 없는 참나무 아래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평이한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잡목도 많이 사라진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르니 굵은 참나무 가지에 남양주 금곡님과 법광님의 산행 띠지에 700.5봉임을 알리는 고도 표시가 보여 지돌ㄹ 보니 맞는 고도로 표기된 봉우리이다.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700.5봉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무명안부 지나 지독한 잡목 등로가 펼쳐지는데 황학지맥 마루금에서 가장 진행하기 어려운 등로처럼 보이는 모습이다.
진행 방향 좌측 앞으로는 유학산이 여전히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바위암반 위로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이번에는 가시잡목들이 앞을 가로막아 진행 자체가 난감하기만 한데 주위를 살펴보니 등로 바로 좌측 아래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따라오고 있어 지독한 가시잡목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가고픈 유혹이 강한데 그곳으로 내려가는 등로도 쉽지 않아 조금 더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걸어갈만 하다.
그 가시잡목 등로를 지나니 다시 굵은 참나무 등로가 열리고 33번 송전탑을 통과하니 자작나무가 식재된 등로에 키 작은 소나무와 키가 큰 잡풀들이 보이는 등로가 이어진다.
초반에는 진행에 큰 어려움이 없다가 진행할수록 가시잡목들이 우거져 한발자국 더 전진하기도 힘들어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좌측으로 가시잡목들 뚫고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 좌측으로는 관목의 자작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
그 임도를 따라 걸어가다 좌측을 보니 이제부터 타고 걸어가야 할 황학지맥 마루금이 우측에서 좌측 저 아래 뾰족하게 솟아 있는 소학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한동안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전진하니 임도 좌측으로 소학산이 여전히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영암지맥과 금오지맥의 산줄기가 펼쳐져 있는데 얼마 전 걸었던 산줄기들이다 보니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하기만 하다.
한동안 더 진행하다 이제는 지나 온 방향으로 뒤돌아 보니 자작나무 뒤로 황학산과 그곳에서 이곳으로 내려 온 황학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후 등로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좌측으로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키 작은 소나무들이 조림되어 있는 사이로 키 작은 참나무들과 잡초들이 자라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잠시 후 주능선으로 올라 등로 우측인 동쪽을 보니 실봉산 지나 가산에서 효령재 방향으로 이어지는 팔공지맥 마루금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잘려진 밑둥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뒤돌아 보니 황학산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지맥 마루금과는 관계없는 산줄기가 이어지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굵은 나무 밑둥이 썩어가고 빛바랜 억새와 잡풀들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무명봉에서 등로는 좌측인 서쪽으로 크게 휘어져 이어지고 키 작은 소나무와 잡풀들이 우거진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무명안부 지나 다시 오르는데 진행 방향으로 계속 소학산이 송곳차럼 뾰족하게 솟아 있어 진행하는 산객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다.
약간의 바위 등로를 지나 음료수 캑이 거꾸로 걸려있는 무명봉을 통과하니 등로 좌측으로 황학산이 계속 아름답게 올려다 보이고 사진에 담고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자라면서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는데 세월이 지나 더 커지면 진행 자체가 힘들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한동안 더 소나무 가지들을 헤치며 힘들게 능선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파란 그물망이 따라오고 잠시 소나무가 사라진 등로를 키 작은 참나무들이 대신하고 있다.
무명봉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굵은 참나무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확인해 보니 남양주 금곡님과 법광님이 이곳을 590.3봉으로 고도표시를 했는데 지도를 보니 우측으로 유학산 갈림삼거리이기도 하다.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유학산 갈림삼거리인 590.3봉 지나 진행 방향 좌측 앞을 보니 달서저수지와 소학산이 살짝 보이고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는 유학산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는데 나뭇가지들에 막혀 아쉬움을 남긴다.
조금 더 전진하니 키 작은 잡목들과 잡풀들이 보이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그곳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잦아든 곳에 자리잡고 준비한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물 한모금으로 목마름까지 달랜 후 출발하려는데 고라니 두마리가 이 산객을 발견하지 못하고 바로 눈 앞까지 달려왔다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 달아나고 있어 헛웃음만 나온다.
그곳을 지나 안부를 통과하고 더시 올라 선답자의 산행 띠지 하나가 걸려있는 무명봉에서 남서 방향으로 크게 꺽어 진행하니 다시 자작나무들이 식재된 듯한 무명안부 지나 무명묘지와 선답자의 산행 띠지 2장이 걸려있는 559.5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는 고도표시를 한 어떠힌 표식도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무명묘지가 보이는 559.5봉 지나 잠시 평이하게 진행하니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가 보이는 곳에서 등로는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가야 할 길주의 지점에 도착을 하고 선답자들 산행 띠지를 확인하며 내려가니 수북히 쌓여 있는 활엽수 낙엽들로 인해 최대 난코스로 생각되는 지점이기도 하였다.
너무 힘들게 뚜렷하지 않은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깨를 심었던 밭경작지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금새 923번 지천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버등재에 도착을 해 그 도로를 따라 고갯마루를 넘는다.
버등재(923번도로)는 경북 칠곡군 지천면 황학리와 석적읍 도개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도개리는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에 있는 리이고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경지가 넓게 분포하는 곳이다.
자연마을로는 매남, 반송, 땅재, 용수마을 등이 있는데 매남마을은 도개리에서 중심되는 마을이고 반송마을은 소나무가 무성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땅재마을은 서낭당이 있는 고개 밑이 된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용수마을은 도개 동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산에 있는 못에서 용이 승천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버등재 양쪽으로는 높은 철망이 설치되어 있고 그 철망이 시작되며 콘크리트 옹벽이 낮아진 지점에서 도로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바위들과 잡목등로가 이어지고 희미한 등로를 찾아 이리저리 잡목들을 피해 어렵게 오르니 굵은 소나무들과 작은 참나무가 보이는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 작은 참나무 가지에는 금곡님이 452.5봉임을 알리는 산행 띠지 한장이 걸려있어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한다.
봉우리에서 출발하며 북쪽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유학산이 펼쳐져 있는데 이제 조금씩 멀어진다는 느낌으로 다가 온다.
그 봉우리를 지나니 등로는 다시 좌측인 남쪽으로 크게 휘어져 진행되고 선답자의 산행 띠지를 확인하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절개지가 나타나고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의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우측을 보니 낙석과 붕괴위험으로 차량통행을 제한한다는 안내판과 플라스틱 봉 2개가 설치되어 있다.
어느 선답자는 이곳을 작은 버등재(비등재)라 하였는데 작은 버등재에 관한 자료 역시 보이지 않는데 좌측의 지천면 황학리와 우측의 석적읍 도개리의 경계지점이다.
작은 버등재라고 하는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 안부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공터에 관목의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서쪽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오르니 활엽수 낙엽이 덮혀 있어 무척 미끄럽기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굵은 소나무가 보이는 무명봉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에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진행 방향 저 멀리 잠시 후 어렵게 올라야 할 소학산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소나무 등로에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모습 뒤 저 멀리 잠시 후 힘들게 올라야 할 소학산을 살펴보고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참나무에 소학산등산로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그곳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우측으로 도개리 도개온천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진행 방향으로 정상까지 0.72 Km 거리란 방향과 거리 표시가 보인다.
그곳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사각탁자와 벤취가 설치되어 있고 그 뒤로 바위가 보이는 458.4봉에 도착을 하는데 바위 위 벗나무에 선답자의 산행 띠지 한장 이외에는 아무 표식도 없어 아쉬움만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사각탁자와 벤취가 보이는 458.4봉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32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다시 사각탁자와 벤취들이 보이는 장소를 지나 비포장임도 같은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사각계단이 나타나며 경사도가 심해지는 등로에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깔려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계속 이어지는 사각계단을 따라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황학리 지나 황학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황학산 좌측으로 휘돌아 이곳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나뭇가지 사이로 확인하고 다시 이어지는 사각계단을 따라 급경사 오르막 낙엽 등로를 따르니 나무계단이 끝이나고 우측으로 통나무 계단 2개가 설치된 주능선에 도착을 해 좌측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더욱 가파라지기 시작하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에는 다시 바위암릉이 이어지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 뒤를 살펴보니 좌우측으로 길게 펼쳐진 유학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바위암릉과 계단을 교대로 바꿔 타며 오르니 등로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달서저수지 넘어 잠시 전 만나고 내려 온 황학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그 황학산 우측 뒤로는 백운사도 살짝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사진에 담으며 힘들게 오르니 사각나무계단 지나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다 보니 바위 위에 소학봉이란 작은 정상목과 그 뒤로 육각정이 서 있는 소학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몇장 남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소학산등산로 안내도와 소학산 설명판이 보이는데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소학산(巢鶴山.624.2m)은 경상북도 칠곡군의 석적읍 도개리와 지천면 황학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624m이고 동쪽으로 황학산이 있으며 서쪽으로 기반산과 이어지고 북쪽에는 유학산이 있다.
소학산과 황학산 및 유학산을 3학(鶴)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소학산의 북쪽 산기슭에는 도개온천이 있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요술고개가 있다.
소학산의 북사면을 흐르는 물은 반지천으로 동사면을 흐르는 물은 이언천으로 흘러드는데 소학산은 여지도서에 처음 기록이 등장하며 관아의 서쪽 30리에 있고 북쪽으로 인동 경계에 닿아있으며 가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와 건령산을 이룬다 라고 쓰여 있다.
해동지도에는 북쪽으로 유학산과 동쪽으로 소야치(所也峙)와 연결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고 조선지도에는 소학산이 아닌 소작산(巢雀山)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소학산은 학이 서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소학산 정상에서 등로는 다시 서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크게 꺽여 가파르게 니ㅐ려가며 이어지고 있어 길찾기에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소학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진행하니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방향만 잡고 좌측으로 사면치기하듯 조심해 내려가니 주능선 등로에 도착을 하고 한동안 미끄러운 활엽수가 수북히 쌓여 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힘들게 내려간다.
내려가다 진행 방향을 보니 이제부터 진행을 해야 할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황학지맥 마루금이 길게 펼쳐진 모습이 보이고 다시 나타나는 바위등로를 타고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황학산과 백운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인다.
한동안 더 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지점에서 등로는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인 남서 방향으로 꺽여 내려가니 굵은 참나무 한그루와 잡목들이 나타난다.
우측인 남서 방향으로 내려가니 안동권공 묘지 2기가 차례로 나타나고 다시 약간의 잡목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다시 안동권공 묘지2기가 나타나는데 묘비가 오래되어 글씨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묘지들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소학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요술의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칠곡군 산악자전거길 안내도와 도로 건너편으로 요술의고개 설명판과 도로표지판들이 보인다.
요술의 고개(요술고개, 소학로 2차선 포장도로, 석적읍과 지천면 경계판)는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과 지천면의 경계지점에 있는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도로로서 칠곡군 군도 5호선은 1999년에 개설된 도로이다.
이 도로 구간 중 두 면(面)의 경계지점인 한골재 정상 부근의 180m 구간을 요술의고개 또는 요술고개라 하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실제 경사도가 낮은 곳이 경사도가 높은 곳보다 시각적으로 높게 보이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즉 육안으로 보기에 내리막길인 곳이 실제로는 오르막길인 것인데 이런 착시현상은 주변 지형과 지물로 인해 생기는 것이다.
도로의 내리막이라 생각되는 곳에 승용차를 세우고 기어를 중립에 둔 후 시동을 끄면 차가 서서히 오르막으로 올라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으며 요술의고개 경사도는 2.388%이다.
산 중턱 고갯길에 있어 경치가 뛰어나고 차량소통도 뜸한 편이며 주변 관광지로 유학산, 황학산, 지천저수지 등이 있는데 제주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도 도깨비도로 또는 신비의 도로라 불리는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도로들이 있다.
요술의고개에서 착시현상에 관한 설명판만 간단히 읽어 보고 실험은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2시 50여분이 지나고 있어 목적지인 지천면사무소까지는 아직도 4시간 여가 더 걸리기에 곧바로 요술의고개 설명판 뒤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이곳 역시 자갈 너덜 위에 활엽수 낙엽들이 덮혀 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은데 자갈까지 깔려있어 몇번이나 위험한 순간도 만난다.
희미하거나 보이지 않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어렵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백운산과 황학산 지나 좌측으로 이어지는 황학지맥 마루금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고 사진에 담으며 계속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전진하니 드디어 441.5봉 갈림삼거리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그 옆에 배낭 내려 놓고 편안하게 서쪽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밀양박씨 묘지가 보이고 굵은 참나무 가지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441.5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뒤돌아 갈림삼거리로 내려간다.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내려가 벗어 둔 배낭 둘러메고 남동 방향으로 가파르게 걸어 내려가니 참나무 가지 사이로 진행 방향의 올망졸망한 황학지맥 마루금이 길게 이어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그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백운산과 황학산이 보인다.
이제 뚜렷하게 나 있는 참나무 아래 두껍게 깔려있는 활엽수 등로를 타고 가파르게 내려가니 미끄러지기를 몇번이나 반복하고 어렵게 내려가니 무명묘지 지나 또 다른 묘지들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관목의 잣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멧돼지들이 몸을 문질러 죽어가는 관목의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데 그 나뭇가지에 남양주 금곡님이 이곳을 한골재란 띠지 한장을 걸어 놨다.
한골재는 경북 칠곡군 왜관읍 봉계리와 지천면 황학리를 이어주는 고개 안부인데 자료를 ㅊ자아봐도 나타나는 자료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그 한골재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관목의 참나무와 약간의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변하고 점점 더 활엽수 낙엽의 두께가 깊어지며 다시 오르다 미끄러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오르다 등로 좌측을 보니 백운산과 황학산 좌측으로 황학리의 칠곡황학산휴양림과 달서지 넘어 나즈막하게 이어지는 황학지맥 마루금을 따라 좌측으로 소학산이 보이는데 황학리 넘어 저 멀리로는 유학산이 여전히 좌우측으로 길게 펼쳐진 아름다운 모습으로 올려다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 지나 온 황학지맥 마루금과 유학산을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오르막 등로를 힘들게 따르니 북쪽으로 너무나 가파르게 내려 온 소학산 등로가 보기에도 아찌하게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많은 사진을 남기고 다시 오르니 경사도가 완만해지기 시작하고 곧이어 작은 돌탑 하나가 서 있고 그 옆으로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에 이곳을 442.1봉이라고 적어 놓은 고도 표시가 보이는 정상에 도착을 해 지도를 확인해 보니 442.1봉이 맞다.
그 돌탑봉 지나 참나무 아래 수북히 쌓여 있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르니 거대한 참나무 한그루를 통과하고 봉분이 사라진 듯한 무명묘지가 보이는 무명안부 넘어 다시 오르니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보니 잠시 후 만나야 할 406.2미터의 삼각점이 박혀있는 자봉산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송전탑이 지나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 자봉산 좌측 뒤로는 건령산과 그 줄기들이 보이고 그 사이 저 멀리로는 대구 지나 비슬산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 오는데 사진으로는 더욱 흐릿하기만 하다.
무명봉에서 진행 방향으로 자봉산을 살펴보고 전진하니 이장된 듯한 묘지터 지나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가끔 나타나는 띠지를 확인해 보니 한전에서 송전탑에 이상이 있을 경우 연락을 달라는 띠지들이다.
잠시 후 비포장임도 같은 드넓은 소나무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관목의 소나무가 서 있는 무명봉 지나 다시 드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내리막 등로 지나 빛바랜 억새풀이 자라고 있는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나타나는 잡풀묘지를 지나 넓은 비포장임도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잠시 후 임도는 우측으로 달아나고 좌측 잡목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가 24번 송전탑에 도착을 한다.
그곳 철탑 아래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442.1봉 지나 중앙부 저 멀리 우학산 그리고 우측으로 황학산이 보이는데 442.1봉 뒤로 보여야 할 소학산은 앞 능선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그 24번 송전탑 지나 약간의 잡목들과 잡풀들이 혼재되어 있는 고도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우측으로 멋진 풍경들이 펼쳐져 있어 바쁜 발걸음이지만 잠시 작은 바위로 올라 살펴보니 바로 앞으로 왜관과 낙동강 직전 펼쳐진 작오산 산줄기 넘어 저 멀리 우측으로 금오지맥의 금오산과 그 좌측으로 영암지맥의 영암산과 선석산 그리고 비룡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보이고 그 좌측 뒤로는 다시 금오산의 빌무산 방향의 산줄기들이 하늘금과 맞닿아 있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금오지맥과 영암지맥 마루금을 확인하고 눈을 남서 방향으로 돌리니 성주읍 방향의 작은 들판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희미하게 가야산이 솟아 있는데 그 가야산 우측으로는 수도지맥과 수도산 지나 대덕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도 살짝 보이고 있다.
가야산 좌측으로는 우두산과 오두산 방향으로 산줄기가 이어지는 듯 보이는데 거리가 워낙 멀고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나뭇가지에 막혀 정확한 이름을 불러주기엔 어려움도 느낀다.
전혀 기대를 하지 못했던 등로 우측인 서쪽과 남서 방향으로 환상의 금오지맥과 영암지맥 그리고 수도지맥과 백두대간을 확인하고 그 사이에 있을 칠봉지맥을 찾아 보지만 산세가 낮아 분간하기 어려워 아쉬움도 남기고 다시 잡풀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고 준희님이 406.2미터란 이정판을 걸어둔 자봉산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지도에는 자봉산이란 이름없이 406.2 삼각점봉이란 표시만 보인다.
지도에는 406.2 삼각점봉으로만 표기되어 있지만 현지에는 준희님이 황학지맥 자봉산 406.2 m 봉임을 알리는 이정판이 걸려있는 봉우리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다 우측 앞을 보니 사진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수도산이 보이고 태양 아래 우측으로 가야산이 솟아 있으며 그 좌측으로 우두산과 비계산 및 오도산으로 이어지는 수도지맥 산줄기가 희미하게 이어져 있는 모습이 눈길을 잡는다.
이제 좌측 중앙부 뒤로 황매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거리감이 있어서 그런지 연봉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아닌 하나의 둥그런 모습으로 다가와 있다.
사진 정중앙부로는 골프장 사이에 있는 매원저수지가 생각보다 넓은 모습으로 태양에 빛나고 그 바로 뒤로 왜관읍 시가지와 유통단지 및 농경지들이 살짝 드러나 있다.
기대하지 못했던 환상의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황학지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는 남쪽 방향을 살펴보니 소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고 낙엽진 활엽수 나뭇가지 아래 부드러운 모습으로 좌봉산 지나 저 멀리 장원봉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환상을 노래하고 있는데 보기와는 달리 그 속살은 또 어떤 모습으로 반겨줄지 궁금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진행해 온 마루금보다는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높지 않아 조금은 마음이 놓이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산줄기이기에 어둡기 전 하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멋진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많은 사진에 담은 후 다시 관목의 참나무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부드러운 능선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가니 여러갈래 가지를 가지고 있는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봉 넘어 눈 앞으로 올라야 할 좌봉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관목의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에는 자갈들이 깔려있어 주의가 필요하고 다시 이어지는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깔려있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조금은 어렵게 오르니 준희님의 이정판은 보이지 않고 지역 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이정판에 427.3미터의 좌봉산이란 이정판이 두개나 걸려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해 지도를 확인해 보니 분명 좌봉산에 높이도 427.3봉이 맞게 표시되어 있다.
좌봉산(427.3m, 자봉산)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봉계리와 지천면 백운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406.2m이고 서북쪽에 소학산(622m)과 황학산(761m) 및 백운산(713.4m) 등의 황학지맥(黃鶴枝脈)이 이어지며 동쪽에 중앙고속도로가 남쪽에 경부고속철도가 지나간다.
북쪽 석적읍과의 경계 지점인 군도(郡道) 5호선에 요술고개 구간이 있으며 산 아래쪽에 골프장과 공원묘지 등이 조성되어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 좌봉산과 방금 전 지나 온 406.2 삼각점봉을 혼용해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루 빨리 정확한 고증과 이름 표기가 되어야 할 곳으로 생각된다.
좌봉산이란 427.3봉 지나 여전히 보이는 관목의 참나무 능선 등로를 따르니 등로 주변으로 약간의 가시나무와 잡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오늘 이 산객이 만나고 지나 온 백운산과 황학산 그리고 그 좌측 뒤로 유학산 지나 소학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황학지맥 마루금이 원형을 그리며 펼쳐진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후 작은 참나무 한그루와 자갈들이 보이는 무명봉 지나 다시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골프장들과 저수지 그리고 왜관읍과 그 뒤로 이어지는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수도지맥과 그 우측으로 백두대간과 금오지맥 산줄기를 확인하고 사진 우측을 살펴보니 가까운 쪽으로 금오지맥의 염속산에서 빌무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그 뒤로 백두대간의 민주지산 방향에서 대덕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산줄기가 하늘금과 맞닿아 있는 모습으로 이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다시 몇장의 사진에 남기고 관목의 참나무 아래 수북히 쌓여있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갑자기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눈 앞으로 콘테이너 박스 좌측으로 묘지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칠곡조양공원묘원으로 표기된 공동묘지이다.
칠곡조양공원묘지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달서리에 있는 사설 공동묘지로서 1974년 5월 15일에 재단법인 조양공원묘지를 설립하고 1993년 1월 30일에 납골당 설치를 분양하였으며 조양공원묘지는 관리사업소(99㎡), 주차장(300대), 식당 (99㎡), 휴게시설 3개소(50㎡), 납골당(165㎡)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칠곡군의 학명공원묘지, 청구공원묘지, 조양공원묘지, 현대공원묘지, 현대2공원묘지 등 5개 공원묘지의 하나로 월방산(月坊山)의 사면에 위치하고 신동초등학교에서 북쪽으로 6 Km 지점에 위치한 조양공원묘지는 국도 4호선에서 벗어나 신동초등학교를 끼고 웃갓마을을 통과하면 지천지(枝川池)가 나오며 달서리 서원골 북쪽의 좁은 계곡을 따라 산길을 오르면 공원묘지에 이른다.
공원묘지의 입구에 있는 서원골과 동원골 사이의 도로로 북향하면 백운리에서 석적읍으로 연결되고 황학리에서 가산리 및 중앙고속국도로 연결된다.
이제부터 한동안 좌측으로 칠곡조양공원묘원을 두고 우측 가장자리 능선을 따라 편안하게 진행을 하는데 등로 좌측 조양공원묘원 넘어로 멋진 풍경들과 조망들이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고 그 이름들을 불러주는 시간도 가져 본다.
바로 앞으로 청구공원을 가르는 나즈막한 산줄기 넘어 저 멀리 팔공산이 살짝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고 우측 가까운 아래 방향으로는 건령산 줄기가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몸매를 자랑하듯 펼쳐져 있다.
지나 온 방향도 한번 더 뒤돌아 보고 팔공산을 줌으로 당겨 확인해 보니 하늘정원과 정상부의 인공 구조물들이 확실하게 드러나 있고 우측 갓바위 방향으로 이어지는 연봉들도 옛 추억을 더듬게 만들고 있다.
이제 다시 눈을 동쪽에서 남동쪽과 남쪽으로 돌리니 드넓게 펼쳐진 조양공원묘원 지나 오늘 저녁에 만나게 될 지천면 지천지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그 바로 옆으로 비산비야처럼 흐르는 황학지맥 마루금이 살짝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 지천면 좌측 뒤로 거대한 도시가 보이는데 바로 대구시로서 그 뒤로도 높은 산줄기 하나가 평이한 일자를 그리며 길게 펼쳐져 있는데 청룡지맥과 최정산 라인으로 그 우측으로 비슬산이 거대한 산군을 거느리며 봄으로도 당당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와 많은 사진으로 남겨 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슬산 우측으로 가야산을 찾아 보지만 임도 우측 위로 흐르는 원 황학지맥 마루금에 막혀 전혀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겨진다.
계속 이어지는 조양공원묘원 우측 위 비포장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펼쳐진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 임도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지도 상 406.8봉이 임도 우측 위로 올려다 보여 잠시 올라가 보려고 노력해 보지만 절개지를 오를 수 없어 아래 임도에서 장상부에 서 있는 작은 참나무 한그루만 사진에 담아 보는데 선답자들도 오르지 않았는지 띠지 한장 보이지 않는다.
비포장임도에서 406.8봉을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전진하니 등로 좌측 앞으로 가야할 지맥 산줄기와 지천면 그리고 그 좌측 뒤로 대구시가지가 자꾸만 눈 앞에 어른거리고 그 대구시를 감싸 듯 둘러치고 있는 청룡지맥과 최정산 그리고 비슬지맥의 비슬산이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아 이후로도 많은 사진으로 남겨 본다.
동쪽으로는 여전히 건령산 줄기 넘어 좌측 뒤 저 멀리 팔공산 주능선이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나 있고 다시 상단부로 걸어 올라 이제 지나 온 방향으로 북쪽을 살펴보니 조양공원묘원 좌측 위로 이어지는 임도 마루금 뒤 저 멀리 우측 북동 방향으로 백운리 지나 백운산과 황학산이 우뚝하고 사진 정가운데 가장 먼 곳으로 유학산이 이제 머리만 살짝 내밀며 멀어지고 있다.
지나 온 방향까지 살펴보고 조금 더 전진하니 비포장임도는 끝이나고 이제부터 묘지 위 능선을 따라 진행되는데 시간을 보니 오후 4시 20여분을 지나고 있어 어둡기 전 하산하기에는 조금 시간적으로 부족할 것 같아 서둘러 보지만 서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에 조금 늦더라고 여유를 가지고 안전하게 진행하기로 한다.
계속 이어지는 묘원 우측 위 능선을 따라 진행하니 드디어 안정나공 묘지를 지나 조양공원묘원은 끝이나고 등로는 다시 우측 잡목들과 관목의 참나무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능선으로 들어가자마자 좌측으로 내려가는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잡목 등로를 찾아 진행을 해야 하는 길주의 지점에 선답자인 대전홀산아님의 산행 띠지 한장이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어 손쉽게 정상 등로를 찾아 진행을 이어간다.
우측 능선으로 들어가니 관목의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바위 등로가 나타나고 조심하며 미끄러지지 않토록 그 바위낙엽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무명안부 지나 다시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평이하게 걸어 오르니 관목의 참나무 가지에 믾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364.9봉으로서 독도님이 산행 띠지에 고도 표시를 해 놔 쉽게 지점을 확인하고 출발한다.
그 364.9봉을 지나니 남서 방향으로 진행되던 등로는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점점 더 저항이 심해지는 잡목등로를 따라 방향만 보고 내려가니 다시 관목의 소나무들도 잡목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좌측에서 내려오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만나고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니 다시 비포장도로 같은 공사중인 임도를 만나는데 그 우측으로 멋진 풍경들이 펼쳐져 있어 잠시 사진에 담고 살펴본다.
지도로 확인해 보니 바로 자봉산과 좌봉산 줄기에서 내려 다 봤던 골프장 사이의 매원저수지가 바로 지척으로 다가 와 있고 그 뒤로 왜관읍이 빤히 보이기 시작하며 그 왜관읍 우측 뒤로 영암지맥의 선석산과 영암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금오산이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 금오지맥과 영암지맥 그리고 칠봉지맥을 살펴보고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 진행하니 원 황학지맥 마루금은 임도 바로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큰 차이없이 같이 진행되기에 멀어지기 전까지 임도를 따르기로 한다.
혹시나 하고 진행하면서 좌측을 살펴보지만 나뭇가지에 막혀 풍경이나 조망을 전혀 볼 수 없으니 그냥 의미없이 비포장임도를 따라 속도만 높혀보는데 시간적으로 마지막 한시간 정도는 어둠속에 진행을 해야 될 것 같아 마음 편히 여유를 가지고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후 비포장임도가 좌측으로 휘어져 가는 우측 능선 방향으로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살펴보니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올라 원 마루금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 지점이다.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가시잡목들이 발목을 잡기 시작하고 하루 해가 짧아 빛이 부족한지 사진 한장 남기는데도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잠시 더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드디어 정상 마루금에 접속을 하고 좌측으로 낙엽 등로를 타고 가파르게 오르니 이곳 역시 미끄러운 낙엽으로 인해 체력 소모가 극심해 잠시 배낭 내려 남아 있는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시원한 물 한모금으로 갈증까지 달랜 후 굵은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굵은 소나무가 보이는 무명봉 넘어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곧이어 왜관305란 삼각점이 박혀있고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370.2미터의 장원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장원봉(壯元峰.370.2m, 왜관305 삼각점)은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달서리와 왜관읍 매원리 및 봉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371.8m이고 예로부터 인물을 배출하는 명당으로 알려졌으며 6·25전쟁 때 낙동강 방어선을 둘러싸고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을 지나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하빈천(河濱川)의 발원지로 골짜기 곳곳마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샘이 있고 정상에 서면 동남쪽으로 대구광역시가 눈에 들어오며 남쪽에 경부고속철도가 지나고 산 아래 죽곡지와 달서지 및 송정지 등의 저수지가 형성되어 있다.
장원봉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고 진행에 약간의 방해를 주는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 한장이 걸려있는 무명봉에서 다시 우측인 남쪽 방향으로 진행이 바뀌고 있다.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에는 이제 잡목과 함께 키 작은 소나무들이 진행을 방해하기 시작하고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오늘 하루동안 세상을 밝혀 줬던 햇살이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며 그 빛을 잃고 있어 사진에 담으려고 노력해 보지만 나뭇가지들로 인해 제대로 된 일몰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도 진행을 이어간다.
다시 만나는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곳에서 등로는 좌측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고 조금 더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바로 좌측 옆으로 드넓은 비포장임도가 보여 그곳으로 내려가고 픈 유혹이 강하지만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아 조금 더 전진하니 노간주가시나무가 있는 무명봉 넘어 금새 비포장임도로 내려가는데 그곳에는 칠곡군산악자전거길 안내도와 화장실 및 한티가는 길이란 시설물들이 보이는 공터이다.
그 공터를 지나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펼쳐지고 잡목이 사라진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니 갑자기 눈 앞으로 벌목 후 나무들을 식재한 조림지가 펼쳐져 편안하게 걸어가니 등로 좌측 위로 사각쉼터가 설치되어 있어 올라가 살펴보니 사각쉼터 뒤 저 멀리 북동 방향으로 우측에 건령산이 보이고 가운데 뒤로 팔공산이 머리만 내밀고 있으며 그 좌측으로 뾰족한 매봉산 좌측으로 둥그런 백운산이 그 모습들을 자랑하듯 펼쳐져 있다.
그 사각쉼터에서 북동 방향을 살펴보고 내려오며 남쪽 방향을 살펴보니 자천면 송정리와 신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좁고 긴 마을과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이제부터 걸어 내려가야 할 황학지맥 마루금 뒤 저 멀리 청룡지맥과 최정산 줄기 우측으로 거대한 비슬산 줄기가 노을지는 하늘 아래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더 남기고 출발한다.
이제 서서히 어둠이 짙어지며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오늘은 산행 후 특별할 것이 없기 때문에 머리는 자꾸만 여유롭게 진행하자고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 사각쉼터봉에서 잠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뒤돌아 내려 와 억새마대가 깔려있는 내리막 등로로 진행하니 다시 멋진 서ㅗ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한티가는길이란 화살표가 보이는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굵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안부도 통과한다.
안부 지나 한동안 완만하게 올라 무명봉을 지나 다시 내려가니 원주이공 묘지2기를 통과하고 곧이어 좌우측으로 등로가 뚜렷한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신동천주교회에서 이곳을 피난고개라 하였다.
좌측의 지천면 달서리와 우측의 송정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 안부로서 피난고개란 교회에서 아기예수와 이집트로 피난가는 성모님의 마음이란 안내판이 보여 그곳에서 차용한 이름처럼 보이는데 공식적인 이름은 아닌 듯 보인다.
그 피난고개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 하나를 통과하고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조금은 가파르게 걸어 오르니 이제 산속은 어둠이 짙게 내려 앉아 더 이상 불빛 없이 진행이 어려울 것 같아 헤드렌턴을 꺼내 불을 밝히며 오르니 굵은 소나무 한그루와 꺽인 고사목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우측으로 편안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28번 송전탑을 만나고 경부고속철도가 지나는 송정제2터널을 통과해 오르니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에 201.1봉임을 알리는 고도표시가 되어 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201.1봉에서 등로는 다시 남쪽에서 남동 방향으로 바뀌어 진행되고 조금 더 전진하니 지축을 뒤흔드는 고속철도가 지나는 소음이 귓전에 크게 들리기 시작하며 무명묘지들을 차례로 지나 내려간다.
잠시 후 무명안부를 지나 둔덕과 안부를 차례로 통과하며 완만하게 내려가니 드디어 등로 좌측으로 지천저수지 불빛들이 저수지 물에 비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전진해 굵은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언덕 넘어 내려가니 드디어 좌측으로 달서에서 지천으로 이름이 변경된 저수지가 조금 더 뚜렷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그 지천저수지와 황학지맥 마루금 사이로 경부고속철로가 놓여있어 철도가 지날때마다 고막을 찟을 듯한 소음이 귓전을 때리고 있다.
이제 좌측에 지천지를 두고 우측으로는 커다란 공장건물들의 불빛을 받으며 걸어 내려가니 좁은 공터에 벤취쉼터 하나가 보이고 곧이어 칠곡 지천면 등산로 안내도가 나타나는데 지맥 마루금과는 관계없는 안내도이다.
그 안내도를 지나 등로는 좌측 철도 옆 철망을 따라 진행되고 한동안 좌측으로 경부고속철도 철망을 두고 계단을 타고 걸어 오르니 우측 바로 옆으로는 공장 건물들이 바짝 다가 와 있는데 생각보다 등로는 잘 나 있어 진행에 어려움은 없다.
그 철망을 따라 진행하는 짧은 시간동안에도 몇대의 고속철도가 지나가며 굉음을 울리고 있어 주변 주민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그렇게 자주 고속철도가 운행되고 있음도 피부로 느낀 시간이다.
잠시 더 철망을 따라 언덕을 넘어 진행하니 철도의 철망은 좌측의 직진으로 이어가고 등로는 굵은 참나무가 보이는 곳에서 철로와 우측으로 멀어지며 이어지고 있다.
잠시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르니 밀양박공 묘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밭경작지를 보호하기 위한 그물망을 만나 그 그물망을 넘으니 깨를 심었던 넓은 밭경작지가 나타나고 그 경작지 지나 만나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진행하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드디어 지천면 마을의 야경이 발 아래 펼쳐지고 이제부터 진행을 해야 할 도로와 날머리인 지천면사무소 건물이 빤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지천면은 경상북도 칠곡군의 중부에 위치하고 있는 면으로 군에서 가장 면적이 넓고 북쪽은 석적면 및 가산면과 남쪽은 대구광역시와 접하고 있다.
면의 북쪽으로 소학산과 황학산 및 백운산 등 높은 산들이 솟아 있고 여기에서 발원한 이언천과 창평천 등이 남쪽으로 흘러 금호강으로 합류하는데 이언천 변의 충적지를 제외하면 평지가 드물어 농경지 면적이 넓지 않다.
지천면 전역에 자라는 아카시아나무를 이용한 양봉이 성하고 조선시대 칠곡도호부의 상지면(上枝面)이었으며 1914년에 인근의 이언면(伊彦面)과 도촌면(道村面) 및 노곡면(蘆谷面)의 일부를 병합하여 지천면이라 하고 칠곡군에 편입되었다.
지천면은 현재 송정리와 금호리 등 15개 리를 관할하고 있고 면 소재지는 신리이며 상지면과 이언면 등에 대한 기록은 여지도서에 처음 실려 있다.
상지방과 이언방 모두 칠곡도호부 관아에서 40리 떨어져 있다고 쓰여 있고 지천이라는 이름은 1914년 지천면을 만들 때 중심이 되었던 상지면과 면의 주요 하천인 이언천(伊彦川)의 끝 글자를 따서 지천(枝川)이라 하였다고 한다.
산행이 아니라면 이곳 지천면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냈을 곳인데 이렇게 직접 두발로 걸으며 그 지천면에 대한 자료까지 찾아봐야 하는 시간이니 또 다른 추억으로 남겨지는 시간이다.
지천면 야경을 사진에 담고 밭경작지 지나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금새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곧이어 도로 좌우측으로 거대한 공장 건물들이 보이는데 신동로6길이라 표기된 도로이다.
그 공장 건물 사이로 내려가니 퇴비를 이용한 비료를 만드는 듯한 매쾌한 냄새들이 코를 자극하고 곧이어 갈림사거리에서 동쪽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더 걸어가니 우측으로 금형 전문인 해인산업 입간판이 보이고 다시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남쪽으로 이어지는 신동로8길이란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마지막 산행을 이어간다.
이곳 지천면 행정부서들이 모여있는 신리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에 있는 리로서 경지가 넓게 분포하는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왼편에 작은 하천이 흐르며 새로 된 마을이므로 신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신동, 서원, 웃점, 땅골마을 등이 있는데 신동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지명유래 또한 신리의 그것과 같으며 서원마을은 사양서원이 자리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웃점마을은 옹기점이 있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고 땅골마을은 서낭당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계속 이어지는 신동로8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남쪽 방향으로 걸어가니 갈림사거리를 만나는데 좌우측으로는 신동로9길이란 도로 표지판도 보이는 곳이다.
그 사거리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드디어 도로 좌측으로 지천면보건지소 건물과 우측으로 지천면사무소 건물이 보이고 그 가운데 등로 상 도롯가에 새벽에 주차시킨 애마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 칠곡군은 군 단위 아래 칠곡면이나 읍이 없는 전국에서 몇 안되는 군으로서 이곳 지천면의 중심지 역시 읍내리가 아닌 신동이란 지명으로 불렸다가 신리로 변경된 마을이 중심지로서 마을 이름의 대부분이 신동과 관련이 있어 조금은 특이한 지명이름이다.
하산하기 한시간 전부터 헤드렌턴 불빛에 의존해 내려왔지만 특별할 것 없는 비산비야에 마을길을 따라 진행한 구간이기에 특별한 아쉬움 없이 배낭 정리하고 왜관으로 갈까 잠시 고민하다 내일 아침에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날머리인 강정보 옆 디아크로 갈 수 있는 대구시 달서구에 있는 모텔을 검색해 달서로 가 하룻밤 묵기로 한다.
산행 길이만 봐서는 무리한 산행은 아니였지만 해가 가장 짧은 계절에 독립된 산들처럼 오르고 내림이 심하고 수북히 쌓여 있는 활엽수 낙엽과 그 위에 약간 쌓여 있는 눈으로 인해 무척 미끄럽기에 산행 속도는 전혀 낼 수 없는 힘든 산행이 되었다.그래도 무탈하게 지천면사무소까지 진행을 했기에 내일은 부담없이 편안하게 진행 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지고 달서로 가 하룻 밤 편안하게 쉬었지만 예기치 못한 고속화도로 중앙분리대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한쪽 얼굴과 눈에 큰 상처를 입고 산행 역사에 가장 비참하고 힘든 하루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던 하루가 지나고 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
첫댓글 칠갑산선배님!
황학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이번 모임에 꼭 참석하시리라고 보았는데 갑자기 불참소식을 듣고 적지않게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쩌셨길래... 하고 트랭글 트랙을 확인하니 평속 2.7로 마무릴 잘 지으셨는데 어쩐 일이실까 그렇잖아도 궁금했답니다.
황학지맥의 갈림지점인 가산봉에서 6.25에 대구로 포를 날려 혼비백산 대구에 있던 피난정부가 부산으로 옮겨갔다지요.
황학지맥이 대구를 방어하는 최후의 보루, 낙동강 방어선이 된 모양입니다.
낙동강 방어선 하면, 학도병, 왜관 폭격과, 유학산 그리고 다부동 전투를 떠올립니다.
황학지맥을 하며 이보다 더 역사적 유래가 있는데 6.25에 묻혀버린 그 윗대의 과거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네요.
가산산성만 해도 역사와 유래가 있는데 말이죠.
황학지맥 2구간에 불의에 부상을 당하고도 끝까지 지맥을 마무리지으신 모양이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 퐁라라 운영자님,
저도 오랫만에 홀대모 모임에 참석해 선배님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아쉬움만 남겼네요
올려주신 산행기를 보니 많은 선답자님들께서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시기도 했구요
황학지맥 마루금 근처로는 6.25 전쟁 시 낙동강 방어를 위해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다부동 전투가 있는데 말씀처럼 황학산과 유학산 사이에 있는 마을이지요
진행하다 보니 6.25전사자 유해발굴 현장들도 많아 많은 생각을 하며 진행한 지맥 산행이기도 하였네요
내년 봄 좋은 날씨에 뵐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모임 진행하고 손님 맞이하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황학지맥 1구간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팔공지맥 당시 어두울 때 분기점 지났던 추억이 소환됩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그러셨군요 세르파님,
저도 팔공지맥을 진행하면서 다시 이곳 황학지맥 분기점에 방문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결국 다시 찾았네요
세르파님도 홀산하는 시간이 많으니 늘 안전하게 즐거운 지맥길 이어가시기 바람니다.
하이고~
황학지맥의 지천면에서 마치셨다면,
신리양조장에서 지천막걸리 한사발 하시고 지천면부근에서 숙박해야 했는디
대구로 가시는길에 무리하셨나? 무탈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지천면 신리양조장의 막걸리는 유명세가 대단한 곳인디~~
사전에 선배님에게 연락해 알아보고 내려갔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나 봅니다.
그렇게 유명한 막걸리였다면 구매해서 서울에서라도 맛을 봤으면 좋았겠다 생각해 봤답니다.
아마 선배님 구역인데 연락도 없이 조용히 통과하려다 벌을 받은 듯 하기도 싶고요
산행을 하면서 촘촘히 걸어 둔 선배님의 산행 띠지에 늘 감사한 마음이었는데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더 감사한 마음 전해 드림니다.
늘 장모님 잘 모시고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람니다.
항상 느끼지만 홀산의 매력이 무언지 생각해보며 산행기를 읽게 됩니다.
계절이 계절인만큼 등로상태가 좋지 않아
힘든 발걸음이시던데 수고 많으셨습니다.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시간이기에 등로가 좋든 나쁘든 상관은 없는데 도로를 통과하며 무단횡단해야 하는 시간이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시간이지요
어짜피 다른 누군가 도와 줄 수 있는 산행이 아니기에 가능하면 긍정적인 생각으로 알바를 하면서도 운동을 조금 더 했으니 멀리 내려 온 본전은 뽑았다는 마음으로 걷고 있기도 하구요
늘 성원과 응원을 해 주시니 감사 드리며 아드님과 이어가는 낙동정맥 산행길도 늘 행운이 깃들길 바람니다.
황학지맥을 진행하셨군요.
우리도 계획를짜 놓고 실핼직전에 사정이 생겨서 미루고 미루길 몇차레 요술고개에서 끈을까 지천까지 가볼까 고민을많이 했습니다.
칠갑산님 기록를보니 내 걸음에 지천까지는 무리일거 같아 고민을 더 해바야 되겠습니다.
황학지맥 한구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러셨군요 부뜰이 운영자님,
진행해 보니 등로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봉우리마다 오르내림이 심하고 그 등로 위에 활엽수 낙엽들이 많이 깔려 있어 미끄러워 그것이 잘목을 잡더군요
또한 하루해가 워낙 짧아 오후 5시가 넘어가면 어두워지기 때문에 밝은 시간에 마무리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이번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답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황학지맥을 출밠하셨네요.
29km가 넘는 거리를 12시간 반걸려 진행하셨군요.
댁에서 거리도 먼 여정인데 빠듯한 일박이일 여정으로 변함없이 진행되는 느낌입니다.
오늘도 수고많으셨고, 남은 구간도 잘 마무리하시길 기대합니다.
화이팅!입니다.^^
네 방장님
홀대모 모임 참석을 위해 주중에 내려 갔는데 다음날 사고로 아쉬움만 남겼네요
생각보다 높낮이가 심하고 낙엽이 많아 어렵게 진행한 기억이네요
늘 많은 성원과 응원에 감사 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