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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풍물의 개념
풍물風物이란 풍악風樂에 쓰이는 기물器物을 뜻한다. 풍물의 ‘풍風’에는 ‘풍류’·‘풍장’에서와 같이 음악이라는 뜻이 있다. 따라서 풍물은 음악 하는 물건, 즉 꽹과리․징․장구·북을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풍물은 본래 남사당놀이 6종목 가운데 첫 번째 놀이의 명칭으로, 오늘날 농악農樂으로 통하는 우리 민족 음악의 본래 이름이기도 하다. 중부지방에서는 풍물, 호남에서는 풍장, 영남에서는 매구라 하기도 한다. 이를 농악이라 부르는 것은 일본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풍물은 꽹과리․징․장구․북의 주요 타악기를 치며, 소고를 들고 춤을 추기도 하고, 태평소라는 선율악기가 소리와 소리 사이에서 놀이의 흥을 돋워 주기도 한다. 또한 가장행렬적인 기능과 극적 구성을 담당하는 잡색 놀이 등이 모두 포함되어 공동체적 종합 연희 형태라 할 수 있다.
2. 한국 풍물의 기원과 역사
1) 풍물의 기원
풍물의 기원은 풍농안택설, 불교관계설, 군악설 세 가지 학설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풍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풍물이 현재의 모습을 갖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첫째, 풍농안택설豐農安宅說은 농경사회에서 집단적인 염원은 당연히 풍농과 안택을 바라는 집단적인 신명을 통해 이루어졌을 것이며, 그 행위를 위해 필요했던 음악과 춤을 바로 풍물의 원시적인 형태로 보는 것이다.
둘째, 불교관계설佛敎關係說은 고려시대에는 호국불교가 번성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중과 함께 했고 조선시대부터는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한 불교의 탄압으로 각 사찰의 물적 기반이 약화되자 절의 유지책으로 화주승 이하 수십 명의 중들이 집단을 이루어 머리에 불두화를 단 화관(고깔)을 쓰고 꽹과리, 징, 북, 바라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민가를 찾아 걸립하던 ‘굿중패’가 생기게 되었다. 이것을 보고 민가에서도 ‘걸궁’ 또는 ‘마당밟이’라 하여 마을의 공익사업에 쓰일 자원을 염출할 목적으로 대개 음력 정월의 초순에 마을의 풍장 치는 사람을 모아 굿중패와 함께 집들이를 하며 굿을 치던 풍습이 오늘의 풍물굿으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다. 연희를 한다든지 악기로서 바라를 사용하는 것 등은 이러한 불교의 영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셋째, 군악설軍樂說은 전통시대에 변방을 수비하거나 기타 군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농민이었고 일종의 예비군과도 같은 성격을 지녔다. 풍물패의 복색이나 지휘체계 등은 군대의 습성을 많이 반영하고 있는데 이를 농민들이 놀이 속에서 군악의 체계를 도입했으리라는 것이다. 한 예로 쾌자를 입는다던지 ‘상모’라 일컫는 전립이란 것은 군물자로서 발전하여 연희물로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풍물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과 힘을 가지는 것도 이러한 영향에 있으며, ‘진법이다’ ‘진굿이다’하는 용어도 군에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풍물의 역사
풍물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원시사회에서 하늘에 기원을 하고 감사드리던 제천의식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추측할 수 있다. 한민족은 예로부터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하며 한 해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하는데 지금과 같은 음악으로서의 풍물이 아니라 제의식 음악에서 발전하여 오늘날과 같은 풍물의 형태가 되지 않았나 추측된다. 풍물악기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사냥을 하고 남은 동물 가죽을 북으로 만들어 신호를 하거나 기타 용도로 사용했고 농경문화가 정착되면서 쇠붙이 종류인 징, 꽹과리 등이 만들어졌다.
이렇듯 그 형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이조 시대이후로 추측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연등회와 팔관회라는 행사 속에서 풍물 겨루기를 하였으며, 특히 이앙법이 도입된 조선 중기이후부터는 공동체노동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두레의 형성과 함께 ‘마을굿’ 또는 ‘두레굿’ 형태로 발전했다.
19세기 상품 경제의 발달로 농민들이 품을 팔거나 상업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한 지역의 두레풍물꾼이 다른 마을이나 장터에 불려가 걸립을 하거나, 마을의 기금을 모으기 위해 풍물을 연행하는 ‘걸립패’가 조직됨으로써 ‘판굿’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세기 말에는 마을의 근거를 떠나 기량이 뛰어난 풍물패들이 ‘사당패’를 결성하여 돈을 받고 풍물을 연행하는 전문예능인으로 나서게 되면서 두레풍물의 생산 현장에서 노동의식으로서 풍물의 성격을 상실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풍물은 문화말살정책으로 단절되었다. 농악이 글로 처음 나타난 것은 1936년 총독부에서 펴낸 『부락제』라는 책으로 이로 미루어볼 때 농악이라는 말은 일본제국주의 시대부터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제국주의는 우리의 민속신앙을 말살하고 농업장려의 목적에 한해서만 풍물굿을 허용했다. ‘농악’이라는 이름으로 신청을 해야만 굿판을 열 수 있었기 때문에 굿하는 단체나 마을들이 농악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신청을 한 데서 일반화되다가, 해방 이후 많은 학자들이 국악이론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농악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결과 민중문화가 가지고 있었던 대동굿의 요소와 내용이 상실되고 기능과 놀이의 성격만을 띤 풍물로 전락했다.
해방 이후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에 기초한 대동大同의 전통문화로서 풍물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식은 점점 퇴색되어 갔다. 1970년대 군사독재 시절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권력자들을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탈춤부흥운동’을 시작으로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풍물은 대학가의 문화패(풍물패)를 중심으로 부활하게 된다. 한편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는 70년대 초반 농촌에 잔존하던 풍물은 전근대적 미신이라는 낙인을 받고 민중에게서 분리되어 그 정신이 쇠퇴해 놀이화된다. 그 대표적인 예는 풍물의 악기 중 꽹과리, 징, 장구, 북을 네 사람이 무대 위에 앉아서 연주함으로써 연주자와 관객이 분리된 채 상업성을 추구하는 ‘사물놀이’라 할 수 있다. 사물놀이는 풍물의 대중화에 기여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의 과정에서 풍물은 선동매체로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투쟁의 현장 곳곳에서 풍물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결과 전국 각 지역의 노동조합에 풍물패가 광범위하게 조직된다.
1990년대에 들어서 풍물은 각 지역별로 이루어지는 지방자치시대에 맞춘 지역축제와 축제행사 내에서의 각 읍․면 단위의 행사 등을 통해 쓰임이 빈번해지게 되었고, 농촌지역내의 여성조직인 부녀회의 성장과 활동으로 인해 농촌 현장에서의 풍물은 부녀회의 여성들에 의해 등장하게 되었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풍물은 예상 밖의 호응을 얻으면서 새로운 민족놀이문화로 부활하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창조했을 때 전 국민은 풍물을 응용한 응원전으로 민족의 대동단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계를 놀라게 한 경기장, 광장, 그리고 길거리 응원전에서 쇠(꽹과리)․징․장구․북의 가락에 맞추어 벌어진 춤의 축제는 세시풍속에 맞추어 벌어졌던 대동굿과 마을굿의 차원을 넘어서 국민적 놀이문화 또는 집단문화로 변화되고 있다.
3. 한국 풍물의 특징
1) 풍물의 악기
풍물에 쓰이는 악기는 타악기인 꽹과리·징·장구·북·소고와 관악기인 태평소이 있다. 악기는 지방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나기도 한다.
(1) 꽹과리
꽹과리는 풍물이나 무속음악 등에서 변화무쌍한 장단의 전개를 주도하는 금속 타악기이다. 꽹쇠, 꽝쇠, 꽹매기, 소금, 동고 쟁 등의 별칭이 있다. 풍물에서 꽹과리 장단을 쇠가락이라고 부르며, 꽹과리를 치는 사람을 쇠치는 사람이라 하고, 특히 제일 앞에서 쇠를 치며 풍물패를 이끄는 사람을 상쇠라 하는데, 상쇠의 위치는 풍물패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음색에 따라서 숫꽹과리는 소리가 야물고 높으나 암꽹과리는 소리가 유하고 얕다. 숫쇠와 암쇠가 서로 받아치며 하는 놀이는 마치 암새와 숫새가 서로 화답하듯 화음이 잘 어울려 리듬악기로서 으뜸인데 예전에는 군악이나 제례악에서도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풍물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다.
(2) 징
놋쇠로 만드는 타악기의 하나로 원음은 ‘정釘’이나 징이라는 명칭으로 굳어진 징은 옛군악인 고취악에 사용된 연유로 해서 고취징이라는 별명도 있고 그 밖에 나, 금라, 금등의 호칭도 있다. 사용범위는 넓어서 취타를 비롯한 무악과 풍물 등에 사용되며 절에서도 사용된다. 풍물에서 드문드문 별다른 기교 없이 주로 가락의 원점(原點)마다 한 번씩 울리는 징의 역할은, 웬만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무엇보다 중요하다. 꽹과리가 구사하는 현란한 가락, 장구와 북이 만들어 가는 가락의 골격들을 감싸 안으며 하나의 완성된 단락을 지어 주는 것이 징이기 때문이다.
(3) 장구
장구는 사물악기 중에서 유일하게 음양성을 낼 수 있는 악기이다. 가죽으로 된 타악기의 일종으로 양편 머리가 크고 그 허리가 가늘다 하여 세요고라고도 한다. 오른편 가죽은 ‘채편’이라 하여 가죽이 얇고 높은 소리가 나며, 왼쪽 가죽은 ‘북편’이라 하며 가죽이 좀 두껍고 낮은 소리가 난다. 축수를 좌우로 움직여 소리를 조절하며 처음엔 궁중음악에 사용되었으나 그 후 정악, 산조, 잡가, 민요, 풍물, 무악 등 거의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의 한국의 대표적인 악기가 되었다.
(4) 북
북은 그 구조가 간단한 관계로 그 역사가 오래되고 또 세계 모든 지역에서 그 발생을 볼 수 있으며 각각 그 민족의 특색을 지닌 것으로 발달했다. 한국에서는 고장에 따라서 여러 가지 변종이 전해져 왔는데, 풍물악기 중에서 북은 최고의 악기로 추측되며, 그 이유로는 청동기 시대 이전의 목축시대에 짐승의 가죽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구조로 된 악기이기 때문이다
(5) 태평소
태평소는 호적胡笛, 새납, 날라리라고도 한다. 태평소의 혀는 아주 작아 넓이가 5밀리, 길이가 2.5센티 정도밖에 안 되지만, 총 길이는 35센티나 되기 때문에 혀는 작지만 거기서 낸 소리는 관대를 지날 때 증폭되어 무척 큰 소리가 난다. 먼 동네서 농악을 할 때도 다른 소리는 안 들려도 태평소 소리는 들린다. 손가락으로 막는 구멍이나 부는 법 등은 향피리와 거의 같으나 음정이 좀 다를 뿐이다. 태평소는 고려시대 말부터 연주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군대나 공식 행렬 및 종묘제례악의 정대업 연주, 그리고 불교의식과 민간의 풍물패에서도 연주되었다. 현재는 구군악舊軍樂, 농악, 종묘제례악 등에서 연주된다.
(6) 소고
풍물굿에 쓰이는 작은 북을 소고라 하며 다른 이름으로는 법고, 버꾸, 매구북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소고는 대부분 손잡이가 달려 있지만, 옛날에는 손잡이가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지방에 따라서는 오늘날의 것보다 훨씬 커서 소고잡이들이 치는 소리가 다른 풍물굿 악기들에 못지않았다고 한다.
2) 풍물의 유형
(1) 연희 목적에 따른 분류
① 동제洞祭와 결부된 축원祝願풍물
동제는 한 해 네 번에 걸쳐 정기적으로 하는 계절제인데, 이 중에서 가장 주된 제사는 봄․가을에 한다. 동제는 일단 재앙을 막고 복을 불러들이기 위해 거행되지만, 본래는 농경생산과 깊은 관계가 있다. 따라서 봄의 제사는 그 해의 농사가 하등의 재해 없이 잘 이루어지도록 축원하는 것이고, 가을에 행하는 제사는 그 해의 농산물이 별 탈 없이 풍년들게 해 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행하는 것이다.
② 농경생활과 직결된 두레(노작)풍물
풍물의 발달요인 중에서 두레패들의 농경생활과 풍물은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풍물은 두레로 노동을 할 때 노동의 고통을 풀어줄 뿐만 아니라 일의 능률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두레의 뜻에는 공동체 성원 모두를 포함하고 외부세계와 경계를 긋는다는 의미가 있다. 풍물은 두레에 부속된 필수적인 것이었으므로 원칙적으로 풍물이 없는 두레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풍물은 두레가 발달한 곳에서 성행하였으므로 풍물은 농경이 발달한 평야지대에서 현저하게 발달한 흔적이 보인다.
③ 걸립풍물
조선조에 이르러 불교가 유교에 밀려 쇠퇴함에 따라 사찰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승려들이 민가에 내려가 걸립하거나, 인근 풍물단을 고용하여 절걸립으로 민가를 돌아다니면서 집돌이를 하게 되어 절걸립풍물이 성행하게 되었다. 걸립풍물에는 마을풍물꾼(두레풍물꾼)으로 조직된 낭걸립패도 있었는데 이들의 목적은 마을의 공익사업 기금을 거출하기 위하여 구정 때나 아니면 특별히 날을 잡아서 집집을 돌아다니면서 풍물을 치기도 하였다. 걸립굿은 주로 집돌이로서 지신밟기(마당밟이)를 하는 것과, 그 후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행하는 판굿으로 갈라서 한다.
④ 연희풍물
연희 형태의 풍물굿은 세련된 기예를 가진 전문 예인에 의해 행해진 것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다. 마을 사람들의 축제 속에 뛰어난 연희자들에 의해 그 마을의 친목과 단합을 도모하고 예술적이고 기능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생계유지의 수단을 갖기 위해 행해지는 풍물이다.
(2) 지역에 따른 분류
풍물을 민중들의 생활권별로 편의상 구분하면 호남(우도. 좌도)풍물, 영남풍물, 경기․충청풍물, 강원(영동. 영서)풍물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이처럼 지역에 따라 풍물의 형태가 다른 것은 단순하게 오락적 기능을 넘어서 그 지역의 공동체적인 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에 따라 중부이북 지역의 풍물을 웃다리 풍물, 중부 이남 지역의 풍물은 아랫다리 풍물로 크게 나누기도 한다.
① 호남우도풍물
가락과 놀이 형태가 다양하고 여성스러우며 부드럽고 쇠가락과 장구 가락이 잘 발달되어 있고 특히 설장구 놀이가 뛰어나다. 이리, 부안, 김제, 고창, 정읍, 장성, 영광 등의 지역이다.
② 호남좌도풍물
지리산을 중심으로 산간 지역에서 발전되었고, 남성적인 가락으로 되어 있다. 전주, 완산, 진안, 무주, 장수, 임실, 남원, 순창, 구례, 곡성, 화순, 순천 등의 지역으로 개인놀이 보다 단체 놀이를 중요시하며, 전원이 전립을 쓰고 상모를 돌리는 웃놀음이 발달하였다.
③ 경기, 충청풍물
가락의 경쾌함이 짙게 보이며 안성, 평택, 이천, 용인, 화성, 부천, 김포, 서천, 공주, 논산, 부여, 홍성 등의 지역으로 두레굿과 걸립풍물이 발달하였고 비교적 빠른 가락과 느린 가락을 고루 사용하여 경쾌함을 느낄 수 있다.
④ 강원(영동)풍물
가락이 단조롭고 전투적이며 강릉, 삼척, 울진, 정선, 평창, 동해등 동해안 지역으로 굿과 관련된 축원과 농사풀이가 발달하여 여러 동작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⑤ 영남풍물
가락이 남성적이고 씩씩한 대구, 달성, 김천, 서산, 영천, 청도 등의 지역과 놀이적 성격이 다른 밀양, 삼천포, 진주, 마산, 부산 등의 지역으로 쇠가락의 섬세함이 발달하였고 북소리가 중요시되고 웅장한 소리를 느낄 수 있으며 비교적 빠른 가락이 많다.
4. 한국 풍물과 일본 민속축제음악 祭囃子まつりばやし(마쯔리)의 비교
한국 풍물과 비슷한 일본의 음악으로 신사의 제례 때 장식한 수레나 포장마차 위에서 연주되는 전통예능의 하나로 매년 전국 각지에서 행해지고 있다. 貫井囃子(누쿠이마쯔리)는 에도시대, 무사시의 나라, 누쿠이 마을의 불꽃 직공이 신사의 제례로 주납한 것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매년 가을축제에 장식한 수레 위에 다섯 명의 연주자가 연주하며 히야와이 가면을 쓴 ‘인우’라고 불리는 사람이 춤을 추며 쉬지 않고 연기한다.
한국 풍물과 일본 貫井囃子(누쿠이마쯔리)는 연주 형태, 편성 악기, 편성 인원 등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이 나타난다.
한국 풍물은 마당 또는 무대 위에서 서 있는 상태로 연주하여 선반이라고 불린다. 반면 일본 貫井囃子(누쿠이마쯔리)는 앉아서 연주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편성 악기를 살펴보면 한국은 꽹과리, 징, 장구, 북, 태평소 등이 사용되는 반면 일본 貫井囃子(누쿠이마쯔리)는 鉦(카네) 징, 篠笛(시노부에), 大胴(오오도우), つけ太鼓(추케다이꼬) 이렇게 4개의 악기로 구성되어있다. 두 나라의 음악에 사용된 악기를 살펴보면 징이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연주 방법이 다르게 나타난다.
한국 풍물과 일본 祭囃子まつりばやし(마쯔리)의 편성 인원을 살펴보면 한국 풍물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각각의 악기 별로 2~3명 많게는 10~30명 정도의 인원으로 편성되기도 한다. 일본은 5명의 인원으로 연주된다.
5. 결론 및 요약
이 글에서는 풍물의 개념, 풍물의 역사, 풍물의 특징을 살펴보고, 일본의 민속축제음악 祭囃子まつりばやし(마쯔리)와 연주 형태, 편성 악기, 편성 인원 등에서 비교·분석하였다.
풍물風物이란 풍악風樂에 쓰이는 기물器物을 뜻하며, ‘풍風’에는 음악이라는 뜻이 있다. 따라서 풍물은 음악 하는 물건 4가지로 꽹과리·징·장구·북을 말한다. 풍물은 음악과 춤과 놀이를 함께 하는 공동체적이고 종합적인 예술형태이다. 또한 풍물은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농사일을 할 때는 물론 마을의 동제나 각종 의식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여 왔다. 그래서 개인의 소망이 아닌 마을 공동체의 염원을 담고 있으며,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집단에 필요한 품성이나 덕목을 갖게 하는 사회교육적인 기능을 지닌다.
풍물은 이앙법이 도입된 조선시대 때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문화말살정책으로 단절되었고 민족성을 없애려는 의도로 풍물의 이름을 농민들이 하는 음악이라는 뜻인 ‘농악農樂’으로 바꾸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종합예술인 풍물은 단순히 악기만 연주하는 놀이의 기능만 남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네 명이 무대 위에 앉아서 연주하는 사물놀이로 발전하였다. 쇠퇴하였던 풍물은 21세기에 다시 부활하여 지역 축제나 월드컵에서의 풍물 응원전 등을 통해 부활하였다.
이와 같이 풍물은 농경사회의 유물로서 우리 조상들이 꽹과리, 징, 장구, 북 등의 타악기를 치면서 노래와 춤을 곁들여 그들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공동체적 ‘놀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 민족의 공동체적 염원을 신명(흥겨운 신과 멋)으로 풀어내려는 집단의식에서 싹튼 농경생활의 공동 노동과 결부되어 발달한 진취적 문화양식으로서 ‘예술’이라고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풍물의 전통성을 유지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하며 앞으로 한국인뿐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하는 풍물이 되기 위해 더욱 확대, 보급,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6. 외국문 요약 (중국어)
‘风物’就是演奏民乐的时候用的东西。‘风物’的‘风’就是音乐的意思。‘风物’由京锣,锣,长鼓,鼓4个乐器组成。‘风物’是音乐,跳舞和游戏组成的共同体的综合艺术。村子有祭祀的时候,或者种地的时候,为了村子人们营造热闹气氛而演奏。所以 ‘风物’包含着的不是个人的愿望,而是村子共同的意愿。还有它不是简单的游戏,含有集体文化,具有教育的机能。
‘风物’在朝鲜时代的时候有了很大的发展。但是在日本统治时代的时候因为文化扼杀政策被禁止了。然后它改变了名字,叫做 ‘农乐’。农乐就是农民的音乐。这样不仅是为了消磨韩民族的民族性而且是为了统治韩民族。所以它只剩下了简单演奏乐游戏的机能。1970年发展了四个人在舞台上坐着演奏的 ‘四物游戏’。但 ‘四物游戏’跟有共同体的技能的风物不一样,着演奏者和观众是分开的。21世纪的时候,风物再次复活了。世界杯足球赛的时候人们用风物来给球队加油,使风物的民族性再次展现。所以努力保持风物的传统性的同事要发向展现代的民族文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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