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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 유업 3세 황하나 씨가 마약을 상습 투약했다고 2015년 전 일인데 어제 일처럼
긴급 체포를 했습니다. 오렌지 후드에 마스크를 쓰고 매스컴을 탔고, sk, hd 3세는
아직 포토 존에 올라오진 않았습니다. 세계 최초 5G 출시와 수소 차 프로젝트가
아무래도 영향이 있을 것입니다. 로이 킴이 버닝 썬 관련해서 소환되면 연예인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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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명은 더 나올 것으로 봅니다. 계곡에서 떨어진 중오는 죽었을까요? 물론 쇼
입니다. 그래도 친구들이 모두 중오를 도와주고 있으니 속아줍시다. 동수 준석이가
중오를 건져다가 바위 위에 내려놨습니다. 다음 각본은 인공호흡입니다.
"내는 못한다." '그러다가 죽으면?" 다급해진 성애가 코 막고 입 벌려 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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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를 실행합니다. 저는 보이스카우트 할 때 다 배웠지만 남자는 절대 안
합니다. 뒈지든지 말든지. "내 물고기 먹었나 봐?(성)" 중오 녀석 시나리오가 기가
막힙니다. 내게는 왜 기회가 안 오는 것이여? 나도 한 번 써먹을 텐데 아쉽네요.
성애가 로렌소, 중오가 돈키호테입니다. 진숙, 동수 요것들도 달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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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들의 사랑 만들기 오브제는 사과입니다. 사과가 물에 떠내려가고 동수가 진숙을
물속에서 안았습니다. 제 솜털이 찌르르하네요. 뭐래? 친구니 판 소나기인가요?
동수랑 중오만 건수를 올리고 나머지는 머저리들입니다. 캠핑 후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고3, 진호가 고1, 명희가 중2,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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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비 집에 이사 온 지도 벌서 3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3년 동안 하숙 같은 생활
을 한 것입니다. 진호가 내 친구 일도랑 광고로 통학을 했고, 막내는 남 초등학교
후문으로 다니면 되는데 명희가 향교리까지 뚜벅 이로 통학을 해야 하니 소년 가장인,
제 마음이 늘 걸렸습니다. 진호는 학교를 파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읍 교회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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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과 어울렸고 명희나 막내는 아직 존재감이 없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중2인 명희는 내성적이어서 말이 별로 없었고 살림을 야무지게 했을
것입니다. 막내는 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은 물론 구구단 까지 마스터를 한 대다가
춤까지 잘 춰서 신동 소리를 들었는데 제가 그때 너무 어려서 재능을 키워주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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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한이 됩니다. 여동생들은 그 나이 때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내 친구들
심부름을 하거나 가끔 봉숭아물들이기, 공기놀이 같은 놀이를 하면서 지냈던 시골뜨기
이었습니다. 80년 가을입니다. 제가 어 레인지 해서 5;5로 놀러 가기로 한 날입니다.
순옥이, 미숙이, 영미, 현숙이, 종석, 영주, 일도, 타곤, 효석 총 열 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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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친구 한 명 이름이 생각이 안 납니다. 40년 전이라서. 여자 쪽은 담양여고
마이너들이고 남자는 저랑 탁자 곤이 빼고 현역입니다. 영주는 1년 후배로 일도
가 추천을 해서 조인트 미팅을 했습니다. 지역사회 눈퉁이를 의식해서 담양에서
각자 출발해 광주 공용터미널이 집결지입니다. 제가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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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을 경유하지 않고 논스톱으로 김제행 티켓 팅을 했습니다. 물론 그레이하운드
대신 광주 고속을 타고 말입니다. "빠 빠빠빠~ 우리 둘이 숨바꼭질 할까요~"
2시간쯤 지나 도착한 곳은 우리 네 '반도 여관'입니다. 어린놈들이 여자들이랑
같이 왔느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아버지가 우리들은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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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비가 넉넉지가 못해서 5000원 하는 숙박비를 내지 않았고, 여자 숙소와 남자
숙소 두 개를 얻으면서 친구들의 야유가 빗발쳤습니다. 허울 좋은 매너 남으로
별일 없이 한 밤 자고 우리는 다음 날 내장산을 가기로 의기투합을 했습니다.
정읍에 어머니가 여인숙을 하고 있었지만 혼날까 봐 들리지 않았고 논스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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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을 갔습니다. 10월이라 아침에는 쌀쌀했는데 갑자기 걸어서 백양사로
넘어간 이유를 아시나요? 빨치산도 아니고 세 네 시간을 걸어서 도착한 '약수리'
그나마 가지고 있던 회비가 바닥이 나버렸습니다. 제가 파발마를 차 처하고
담양으로 내려갔습니다. 화장품 외판을 하셨던 종석이 어머니께서 별 잡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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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을 주셨는데 칠칠 상회하는 일도 어머니는 어째 찬바람이 쌩쌩 붑니다.
'내 그놈 자식 삼청교육대 갔을 때 아들 하나 없는 셈 친다고 생각했다. 너도
알다시피 일도가 얼마나 내 속을 썩혔냐?" "죄송합니다" 귀밑에 김일성 혹이
달려있던 아버지께서 오시더니 식사를 하랍니다. 에고 이 게 웬 떡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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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에 어머니가 준 20,000원을 받으면서 절대 나쁜 짓은 안 할 것이라고
일도 대신에 착하고 불쌍한 표정으로 받아왔습니다. 그때는 휴대폰도 삐삐도
없었기 때문에 5시간의 외출을 보고할 수단이 없었습니다. 임무를 완수한 제가
친구들이 있는 장성 약수리로 오는데 터미널에서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가다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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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초리가 살벌합니다. 우리 때는 살벌하다는 단어를 많이 써먹었습니다.
"아이들아, 나가 우리 학교 짱이여!" 그냥 조용히 오면 될 것인데 그때는 왜 못 참고
신경전을 벌였는지 아시나요? 내가 더 세다 이거지요. 그날 각개 전투는 치르지
않았고 친구들이 전국구들이라 패싸움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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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가 언제냐고 묻는 여자 친구들에게 막차를 놓치게 하기 위한 수컷들의 거짓말이
일단 성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걸어서
담양 집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차로 백양사에서 광주까지 40분, 광주에서 담양까지
40분 도합 80분인데 와, 밤새 걷고 또 걸었습니다. 뭐 빨치산이 산 넘고 물 건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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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생활입니다. 내 짝은 빨강 머리 앤 미숙이입니다. 누나 친구 노랑머리 동생
인데 언니 보다 더 예뻤습니다. 그녀는 자연 빨강 머리이었고 말 수가 별로 없었어요.
밤새 걸어오면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하나도 생각이 안 납니다. 그날 후로 수컷들은
실패로 돌아간 우리들의 거사를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고 저도 그 일에 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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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가담하였습니다. 그리고 멀지 않은 어느 날 남 초등 하교 교실에서 그녀와
거사를 치렀습니다. 고1 때 말입니다. 그녀는 핫도그 집에서 내게 핫도그를 사
주겠다고 했는데 왠지 쪽팔려서 먹지 않았고 나는 그녀가 싫지 않았는데 여자를
어떻게 리드하는지 몰라서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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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종도 교실입니다. 상택이가 성적이 떨어졌다고 꼰대한테 잔소리를 바가지로
듣고 있습니다. "네는 아까운 놈이다. 네가 그런 놈들이랑 어울릴 때가 아니다"
등등을 저도 미술과 관련해 종종 듣던 잔소리입니다. 문제풀이 시간입니다.
문제풀이 수준이 그다지 높아 보이지가 않네요. 우리 시대는 시험문제를 다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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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시험을 보았는데도 성적이 형편없었던 것은 아예 신경을 안 쓴 것입니다.
지금 다시 고교로 복귀한다면 공부처럼 쉬운 것도 없을 것입니다. 88올림픽 개최지가
어디긴 어디야 서울이지 병신들아. 진숙이 아버지가 배 타고 돌아오는 길에
금덩어리 밀수로 세관에 걸려버렸습니다. 재수 없는 놈은 엎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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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딱 맞습니다. 제가 공매한 물건을 사서 되파는 일을 몇 번 해보았는데요,
금괴 같은 것은 다 세관에 관 작업을 하고 밀수를 합니다. 동수 엄마가 꽤나 미인
입니다. 놈 씨 바람피웠다고 난리 법석입니다. 첩이 첩 꼴 못 본다지요. 지나가는
바람이려니 하고 잊겠답니다(엄). 내가 동수 엄마가 놈 씨랑 헤어지면 손에 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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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겠습니다. 성애가 떡볶이 집 오빠야에게 중오를 혼내 주라고 앙탈을 떨고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 머리 나쁜 은지가 동수를 찾아와 열심히 어필을 합니다.
"네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피아노 치는 그림 멋지지 않나?" 네 혹시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은지) 놀고들 있네요. "은지야, 미안하다 나 급한 일이 생겨갖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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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는 은지한테 관심이 없는데 은지 혼자서 헛물을 켜고 있습니다.
중오가 떡볶이 집에 왔고 떡볶이집 사장이랑 골목으로 나갔습니다. 무슨 세기의
혈투를 벌일 모양입니다. 중오가 왜 운동화 끈을 묶는지 아시나요? "너 성애가
좋아?(사)" "와? 그게 아씨하고 무슨 상관이냐고(중)" "너 여자 처음이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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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며칠 있다가 꼭 한번 들리겠습니다(중)." "오빠야, 혼내주기로 해놓고
와 그라는데?(성)" 우 씨. 나도 몰라 곽 감독에게 물어봐 중오가 엄마한테 할 말이
있는 모양입니다. 엄마 어깨를 주무르면서 동생 중기 너무 혼내지 말랍니다.
너나 잘해 세 끼야. "엄마, 남자들 사이에서 여자가 말이 많으면 어떻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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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자들 때문에 멀어지려고 해? 친구보다 여자가 좋으면 여자한테 가야지(엄)"
정답입니다. 장고 끝에 중오가 동수 준석을 학교로 돌아오게 하려고 엄마한테 부탁을
했답니다. '인자 딸 아들 그만 만나고 공부하자(중)" "중오야 너 뭔 일 있나?"
"딸 아들 때문에 친구들끼리 눈치 보는 건 아니다 싶어서......, 아직은 여자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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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더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 내 말에 동의하면 우리 사진 한판 찍자 어이 포토
그랜트!(중)" "인상파들이가 한번 웃어봐라(사진)" 혜화여고 교실입니다. 롤 마는 폼이
잡힌 성애, 훈장을 가져다가 아버지를 꺼내겠다는 진숙 둘 다 예쁩니다.
"여가 우리 반 맞나? 성 성애 소지품 검사 한번 할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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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 졸업사진을 찍습니다. 여자들은 왜 졸업사진에 목숨을 거는지 아시나요?
학교로 돌아온 준석과 동수는 상택과 함께 극장까지 달리기 시합을 합니다.
친구 원판에서는 'BAD CASE OF LOVING YOU'가 나오는데 이 노래는 뭔지
모르겠네. "꽁지가 영화표 사기다. 조 다시" 이 대목이 가장 인상 깊은 시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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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상택이랑 중오가 화장실을 갔는데 하필 하이에나를 만나버렸습니다.
뒈지기 싫으면 응원군을 불러야 하니 중오가 0빠져라고 동수와 준석을 부릅니다.
이제 부종도 4명과 하이에나가 속한 부산 상고와 학교 대 학교의 대결입니다.
오늘 일진이 더럽습니다, 간신히 정학 처분을 무마 해놓았는데 이 일로 완전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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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퇴출되었습니다. 퇴학입니다. 저도 패싸움을 몇 번 해보았습니다. 오늘은
제가 일생에 딱 한 번 맞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8세 무렵 저는 우리 학교 통이
단연코 저라고 믿었습니다. 하루는 장성 사는 친구 창건이가 대인동 애들 때문에
통학하기가 불편하다면서 중오처럼 제게 도움을 요청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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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얘기로 대인동 놈들이 백양사에 캠핑을 왔었고 구역 관리 차원에서 제 친구가
낀 장성 애들이 집단 린치(다구리)를 가한 모양입니다. 치기가 발동한 저는 다음날
바로 친구와 함께 표를 끊고 장 성행 버스 부스로 들어갈 참인데 교복 단추를 두
개쯤 내린 고 삐리들이 길을 막더니 우리한테 볼일이 있답니다."뭐야,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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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겁이 나지만 3:2 정도야 하고서 저들보다 보폭에 힘을 싣고 스낵 코너 뒤편
계단으로 따라 올라갔습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공용 터미널은 행락객들과 통학생들로
많이 붐볐습니다. 계단을 두 블록쯤 올라간 것 같은데 "형님, 다음은 옥상입니다."
어쩐지 쌔 하더니 갑자기 사람들의 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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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함정입니다. 삼면이 담 벽이고 20명쯤 되는 아들이 입구를 막아섰으니 시라소니
형님이라도 꼼짝 마라입니다. 수많은 눈빛 사이로 급 사인을 보냈지만 친구는 포기한
표정입니다. 여기서 쫄면 질 것 같았습니다. "G랄, 죽여, 만약에 지금 못 죽이면 니
들은 다 죽는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멋있었습니다. 그동안 정읍을 오가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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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많이 야물어졌다고 생각은 했지만 내가 이렇듯 실전을 연습처럼 폼 나게
하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30분 이상 죽도록 쇠 파이프 다구리를 쳐 맞았는데도
저는 죽지 않았고 니주구리씹빱빠가 되어 막걸리를 얻어먹었습니다. 그 이후로
한 달 동안 창피해서 학교를 결석했습니다. 덕분에 그 바닥에서 훈장 하나를 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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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국구 생활은 물 만난 고기처럼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였습니다.
다시 극장가입니다. 싸움도 해본 놈이 한다고 준석이가 벽 거울을 들고 돌파구를
찾습니다. 진숙이가 엄마랑 월남훈장을 들고 유치장에 아버지 면회를 왔습니다.
"아빠 기쁜 소식? 은행에 나 취업 나간다." '그럼 대학은?(아)" '진숙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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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면 얘기하자(엄)" 동수네 부자가 염을 합니다. 동수가 마스크를 집어던지고
아버지에게 대듭니다. 도저히 더 이상은 못하겠나 봅니다. "동수야, 네 어디 가나?(아)"
동수가 분풀이를 엄마 놈 씨에게 합니다. "엄마, 제발 아버지에게 나타나지
마라(동)" "이빨 빠졌어(놈 씨)" 차별된 학교의 조치에(동, 준 퇴학) 화가 난 상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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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마음에 집에 있는 돈다발을 훔쳐 준석을 찾아 서울로 도망가자고 하지만
준석은 그런 상택을 말립니다. "네 혹시 눈칫밥이란 거 먹어봤나? 어디 가서 일을
해도 밥은 눈치 밥을 먹어야 한다(준)." "일은 다 내 땜에 벌어졌는데 차라리 나도
잘리고 검정고시 봤으면 좋겠다(상)." "착각하지 마라. 와, 상택아 잘했다 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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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건달 해서 인생 개판 치자 할 줄 알았나? 인자부터 네는 너처럼 살아라. 나는
내처럼 살게(준)" 동수는 그간 참아온 분을 삭이지 못해 기어이 사고를 쳤습니다.
쇠 파이프를 들고 학교에서 교무실 앞 트로피 진열장까지 다 때려 부수고 교복을
벗어던지는 것이 학교를 그만 다닐 작정인 것 같습니다. " 길에서 나하고 만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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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소(동)" 사실 유리창을 방망이로 깨든 손으로 깨든 쾌감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손으로 유리창을 몇 번 깨보았는데 잽처럼 치지 않고 훅을 날리면 손목이 다 나갈
수 있으니 조심하시라. 몇 개월 후 고교 졸업식입니다. 두 놈은 퇴학을 했고, 중오가
혜화여고 졸업식에 왔습니다. "상택 이는 상도 타야하고 나는 지루해서 그냥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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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돌 아이 맞다. 여기를 보세요. 하나 둘, 성애가 젤 예쁘네(중)"
중오가 성애랑 만났습니다. "세상에 입시 제도를 나랑 상의도 없이 바꾸는 법이
어디 있나?(중)" 결국 중오는 눈치작전으로 전문대학을 가겠답니다. 자식아,
전문대는 무시험으로 간다. 분위기 좋은데 은지랑 진숙이가 조인트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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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택 이는 법대 떨어지고 서울 대 신방과 갔다.(중)" 한편 준석 이는 도루코와
파친코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손님 살살하지요. 그러다 기계가 부서지면
어떡하려고요? 뒈지게 쳐 막기 전에 가라. 신고하든지? 약국 옆에 전화 있다(준)."
'도루코, 우리 양아치가?(준)" "건달이지 멋있고 조직도 있다 아이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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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 가지고 다니면서 건달 하면 먹어주나?(준)"
제게는 월출산의 추억이 있습니다. 고일 2학기니까 10월 쯤 일 것입니다.
학교 친구4-5명이 1박2일 코스로 녹음 카세트를 들고서 야영을 갔던 걸로 기억합니다.
월출산은 산이 좀 험하긴 하지만 내장산 보다 더 경관이 좋았지 싶은데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까 동의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이트브라운 반 폴-라에 보라색 바지, 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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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모로 한껏 멋을 냈지만 지금 생각하면 영락없는 촌놈이 아닙니까? 불빛하나 없는
이런 풍경은 낯설고 어째 으스스 합니다. 땅거미가 시작될 무렵 우리는 서둘러 야영을
준비했습니다. 가지고간 휴대용 라디오엔 보니 엠의 Rivers Of Babylon 이 한참 흥을
돋우고 있을 무렵 사고가 터졌습니다. 친구 중에 한 놈이 다른 일행과 시비가 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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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입니다. “비켜라 아들아! 키 175Cm, 몸무게58k g. 중 딩 같은 고삐리가 바지 깊숙이
양손을 찌르고 오만상을 썼더니 웬 이 봉걸 같은 청년들이 나와서 웃습니다. "에고, 잘못
건드렸나봐"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집히는 대로 잡아서 던지고 닥치는 대로 부셨어도
상황이 좀처럼 끝나질 않습니다. 낮선 곳에선 선방이 최고라고 배웠는데 선방도, 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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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도 안 먹히고 에라, 모르겠다. 이럴 땐 36계 닷, 산 넘고 물 건너 산등성을 어떻게
내려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망 내려오면서 필시 나는 타잔 아니면 빨치산의 후예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작정 내려와 지서로 들어왔는데 어린 나이에도 쪽팔렸는지 자칫했으면
간첩신고 할 뻔 했습니다. 워, 워, 석아, 제발 뜰 뜨지 말라고 안 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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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제가 외박을 하고 들어왔는데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어떤 간 큰 놈이 용궁에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그 날 우리 동네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동생들 말을 들어보니까
도둑이 들어와서 자나 안 자나 확인하기 위해 손사래 짓을 했는데 다들 자느라고 몰랐고
진호가 자는 척 했고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답니다. 애들 진술을 듣는데 심 쿵해져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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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빨라집니다. “얼굴 봤냐? 누구야? 어떤 세킨데? “ 이건 분명 면식범의 소행입니다.
잃어버린 것은 제 바지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현금 조금하고 명희가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서 갔다고 했습니다. "어휴, 이런 호로세끼가 있나."당시에 우리 동네는 담양 공고로
유학을 온 타 지역(고흥, 해남, 광주)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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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이 잡듯이 뒤져 잡 들이를 했는데 도저히 범인 색출이 어렵습니다.
어느새 수사 시작한지 하루가 지나가는 모양입니다. 저녁이 되어서 철 규 후배 승 철 이를
잡아왔습니다. 남초등학교 뒤편으로 데리고 가서 빨간 벽돌로 가슴팍을 3번 후려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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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자신은 범인이 아니랍니다. 미치고 팔딱 뛰겠습니다. 수사관들이 조서 쓸 때
가혹행위를 왜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왕방울만한 눈물을 뚝뚝 흘리던 피의자에게
담배 한가치를 주고 잘 마무리했습니다. 이 일이 있고난 후부터 저는 가급적 외박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내가 외박을 해서 불쌍한 동생들이 놀랐을 거라는 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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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꽤 오래 제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요새 우리는 일도가 가져온 LP를 가지고 며칠을
노느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담양 남초등학교 앞 핫도그 집에 주로 다녔지요. 착한 주인
부부가 그때 저희들 때문에 애를 좀 먹었을 것입니다. 학교 끝나고 돌아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핫도그 집에 모여들었지요. 순옥, 현숙, 미숙, 담양여고 3인방이 크고 긴 핫도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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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케찹을 발라 먹다가 우리가 오면 결재를 패스했습니다. 얄미운 년들.
돈은 주로 부잣집 아들 일도가 냈고, 우리는 여기저기 싸돌아 다녔습니다.
일도네 턴테이블을 아예 우리 집에 갖다 놓고 조용필의 "단발머리" "길 잃은 철새"를
수 백 번도 넘게 들었습니다. “사랑은 철부지 그 사람은 이름은 꽃바람 이제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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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짝은 미숙 이였는데 장계현의 "너"를 순옥 이가 아주 잘 불러서 뒤늦게 짝 만들기를
후회했습니다. "사랑이 무언지 미움이 무언지 모르던 나에게 나의 모든 마음 앗아 가버린
너를 알고부터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슬픔도 모르던 나에게 나의 모든 마음 남기고 가버린
너를 알고부터 이젠 서로 남이 되어버린 너의 모습을 미워 할 수도 없었던 지난 추억이지
어쩔 수 없었던 이별이었다고 생각을 해보며 잊어야지 해도 다시 생각나는 너, 너,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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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쯤 지나서 ‘용담 회‘ 모임에 갔다가 일도 녀석이 미숙이가 광주 공원에서 국밥 장사를
한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는데 아쉽게도 이혼한 후 가게를 팔았다고 합니다. 치기로 얼룩진
나의 20대도 눈 깜박할 새 흘러가버렸습니다. 저는 내 동생 진호랑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지만 모험심은 제가 많았고 뭐든 생각한 것을 바로 실행에 옮기는 반면, 진호는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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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했던 것 같습니다. 진호는 내 비서면서 친구였는데 고등학생이 되면서 어째 거꾸로
내가 진호의 꼬붕이 된 느낌입니다. 어느 날 진호가 나를 교회 수련회에 데리고 갔다 오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고, 그 후로 진호의 존재감은 내 장자 방을 넘어 형 같은 아우가 되어
있었습니다. 함께 자위를 한 것 같은데 그 짓은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고 동생 놈이 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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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줬습니다.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1981 여름 수련회로 기억합니다. 오다가다 교회
관계자들을 만나면 꼭 수련회에 오랍니다. 특히나 진호 친구 갑수, 성환, 광수, 상묵이가
하도 강청을 하는 바람에 못이기는 척 갔습니다. 제 생각에 3000원인가 하는 회비를 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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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광호 형이 내줬을 것입니다. 교회 청소년 수련회는 누군가가 대신 회비를 내주는
수련회가 전도차원에서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리엔테이션 할 때 전도사님인지
누난지 하는 분이 저더러 잘생긴 형제님이라고 불러줘서 약간은 부끄럽기도 하고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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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야겠다는 마음에 담배를 나만 아는 장소에다 감춰두고 “내게 강 같은 평화”를 열라
따라 불렀습니다. 라면 땅 받아먹으러 다닐 때의 동심과 부흥회 스타일이 묘한 케미를
일으키면서 율동을 따라하게 합니다. 확실히 오순절이나 경배와 찬양 같은 뉴 에이지
음악은 중독성이 있습니다. '1981' 입 암 산상 수련회'의 기억은 이후 내 신앙스타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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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성석교회가 대한예수교 장로교인데 거의 담양 읍 교회와
분위기가 별반 다르지 않은 걸보면 담양 읍 교회도 통합 측 교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기도회하면 내 동생 진호, 영숙이 누나, 용석이 형네 형수, 혜란이 그리고 "우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여 주를 찬양합니다."가 자동으로 세팅됩니다. 고 삐리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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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대회가 먹히는데 느닷없이 밥줄을 외우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얻었으니 누구든지 이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요3:16)
“아-싸 제가 유일하게 지금까지 외우는 성경구절입니다. 밥 먹고 점심시간에 가마솥
누룽지를 긁어서 먹는데 어찌나 꼬들꼬들하고 파삭파삭한지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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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을 갔는데 마지막 날 기대했던 캠프파이어 대신에 촛불 집회를 한다고 했습니다.
동생들 무리들에 끼어 들판에 앉아 있는데 노 상채 장로님이 특강을 한 걸로 기억합니다.
저 양반이 우리 학교 문 광 례 선생님 남편이란 말은 들었지만 직접 대면하긴 처음입니다.
무슨 애기를 하나 하고 잘 들어봤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걸보면 내 친구 안 홍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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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하는 강의처럼 들렸습니다. 나는 촛불이 꺼질까봐 조심조심하고 있었고 만 다들
통성기도를 하는 모양입니다. 갑자기 회중이 초상집에서 깽판 치는 목소리를 하고
울부짖는 것입니다. 원 매, 이것이 뭐다냐? 갑수는 자기 아버지가 죽었고, 상묵 이는 지
누나 연옥 이가 집을 나간 모양입니다. 동생친구들이 다 미쳤으니 믿을 놈은 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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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입니다. 진호에게 가야겠습니다. 근데 진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자식은 어데 갔어?”
사방 천지에 내가 숨을 곳도 갈 곳도 없습니다. 나는 그만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기도회가 끝나고 몇 분 동안 움직일 수가 없어서 꼼짝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데 동생
친구들이 내 주위로 몰려왔습니다. 당시엔 창피하고 쪽팔린 상황 속에서 내게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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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는지 궁금했습니다. 성령파인 갑수가 내 안에 자아가 깨지는 체험이라고 해석해
주었습니다. 바울은 삼층 천을 경험했다고 하고, 입신에 방언을 한 사람을 수없이 보았고
만났지만, 저는 지금도 그때 왜 내 다리가 풀렸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저는 신앙생활3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방언을 못합니다. 그리고 성경신학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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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을 비롯한 빈야드 식 신 사도운동을 기겁하지만, 개별적으로 임한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사건이 제게는 바울의 다메섹 체험이었습니다.
제가 복음을 받기까지 10년 정도의 시간이 더 걸렸는데 수련회를 다녀온 후로 3-4년 선배인
광호 형이 지속적으로 내게 이웃사랑을 베풀려고 애를 쓴 것 같습니다. 이후로 저는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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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 픽업되어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일도가 교도소에 들어가면서 강호 형과 면회
실에서 한 번 만났습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걸어서 귀가를 하였는데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냐고”물어봅니다. 나도 모르게 은혜 받았다고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진호친구들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내려오는데 이런 기분이 뭐지 했습니다. 야구 모자를 쓴 복순이 자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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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게 웃습니다. 당시 제가 담양여고 칠 공주들하고 어울렸기 때문에 객사리 위쪽 여자들은
거의 다 압니다. 복순 이는 3남1녀의 외동딸입니다. 용곤이 용만이 성만이 복순 이가 그 집
족보입니다. 용곤이 형은 담양의 기춘이 형 같은 존재입니다. 진흥 고를 다녔던 기춘이 형의
존재감은 태촌 이 형을 능가했습니다. 저는 아직 메이저급이어서 늘 깡패는 영곤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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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아야 한다고 믿고 그의 비주얼 따라 하기를 군대 가기 전까지 벤치마킹했습니다.
항상 삐 카 번쩍한 깃도 신발에, 검정색 일자 통바지의 용곤이 형은 나의 우상입니다.
수련회를 기점으로 해서 복순 이가 우리 집을 들락거렸습니다. 담양 태권도장 근처
어딘가에 6개월 정도 산 적이 있었는데 애들끼리만 사는 우리가 불쌍했는지 밥도 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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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도 만들어 주고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보로 덮여진 단초한 밥상위에 메모지가
예쁘게 접혀있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나랑 사귀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도 그 애가 싫지 않았지만 왠지 그 애를 건드리면 죄받을 것 같았습니다. “꼬맹이
아가씨,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요. 조금 더 크면 사귀자” 18살 촌놈이 이런 생각을 하다니
너무 멋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필시 수련회 때 내 다리가 후들 린 이후 내가 착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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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ㅠ 이후로 10년 정도가 지나서 나는 진짜 성령체험을 하는
사건을 만납니다. 돈키호테 성향이 강한 난 18세부터(고2) 유원지 장사를 하고, 사춘기에
가장이 되어 식구들을 지키고 살았습니다. 내 뜻과 상관없이 광주항쟁, 순화 교육대를
거치다보니 환경에 떠밀려 학생 깡패를 하다가 지방대 응용미술과 한 학기를 채 끝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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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한 체 국가의 부름에 응했고 헌병대로 차출되었습니다. 남들도 다 하는 군 생활이 제겐
얼마나 긴지 전출에, 영창에, 나라 지키려 간 것이 아니라 사고 치러 군대 온 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나이 스물 셋에 만기 전역을 하고 악의 경쟁력을 거의 다
갖춘 나는 범 단(범죄조직단체)에 적을 두진 않았지만 독고다이로 전국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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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이대로 무엇이 될 것인가?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총이 내게 임하였던지 여자도
깡패 짓도 시들해졌고 27살 무렵 동생의 권유로 교회 수련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발톱을
감춘 악동을 형제로 받아준 공동체 덕에 큰 거부반응 없이 교회 생활을 하였는데 어느 날
지금껏 나 한사람을 성도로 만들기 위해 참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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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회 등록한 날 부터 시작한 성경공부와 큐 티 생활은
25년 내 내 나의 훌륭한 몽학선생이 되어주었습니다. 회개란 내 삶을 유턴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내 삶을 전면 수정하라는 요구 앞에 멘 탈 붕괴가 일어났지요. 2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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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 길들여진 나를 바꾸라니 코흘리개 찐빵은 충격 속에 상심하고 절망하였습니다.
어떻게 27년 동안 내 몸 깊숙이 배인 습관이며 이성들을 한방에 반전시킨단 말인가,
그렇지만 어쩔 것인가? 남들 하는 대로 해보니 솔직히 잘 모르는 예수가 싫지는 않지만
어떻게 내가 없어지고 나를 또 다른 누가 조종한단 말인가? 성격상 뭘 하면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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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하는 스타일이라 대우 자동차 영등포점에 다니던 난 음란의 죄를 줄이겠다고 서둘러
신 결혼을 하였고(속도위반,) 청년공동체에 깊숙이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가족 찬양대회,
청년부G B S, 큐 티, 경찰병원 찬양선교, 떼쓰기 철야기도까지 싹쓸이한 나의 참여 식
신앙에도 불구하고 내 속은 허전했고, 주말이면 한방에 무너지는 묻지 마 인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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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현실과 내속의 양심이 서로 견제구를 던지는 생활 가운데 스스로의 올무에 묶여
갈등하다가 번번이 무너졌던 인생에 대 반전이 시작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무렵
동계수련회를 가게 되었고 고 윤 종하 총무님과의 만남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 분의 큐 티 강의는 이성과 합리성을 주장하는 내 요구에 큰 공감대를 주었고 호기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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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동한 나는 그분의 묘한 스피치에 이끌려 27년 동안 신봉해온 자아의 껍질을 처음 한
겹을 벗게 됩니다. 내 나이 56세까지 단 한 번도 큐 티를 거른 적이 없고 하루 평균 5
시간을 성경책을 붙들고 살았으니 죄지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질색하던 공부가 취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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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버렸고 사색하는 훈련 덕에 내 육감적인 성향이 이성으로 컨트롤 되고 있었는데 몇
번의 큰 사건을 만나면서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나는 돌파구를 찾으려 했고
사단의 나와바리로 들어가는 돌 직구를 감행하였습니다. 아, 지난 5년은 지옥생활이었습니다.
상택이가 진학, 중오가 전문대, 은지는 유학, 진숙 성애는 재수생입니다. 이제 친구들의 운명은
저마다 각자의 길로.
2019.4.4.thu.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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