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 작가 노릇을 하다보면, 명작을 ‘어린이가 읽기 좋게 만들기 위해’라는 명분으로든, 생계를 위한 것으로든, 전집출판사의 청탁으로든, 고전을 트렌드에 맞게 현대화한다는 명분으로든, 아니, 정체성의 발견을 위한 것으로든, 내가 안하면 누군가는 내 맘에 들지 않게 일을 해내고야 말겠기야든, 하여튼 Rewrite라 하든, 윤문(潤文)-윤색(潤色)이라든, 세상에는 어린이가 읽기 좋게 만든 해외 명작이 엄청 많다. 필요...는 수요를 낳는 거겠지! 내가 몇 년 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조사했을 때, 우리나라에 <어린 왕자> 타이틀을 붙인 책이 380종이 넘게 있다는 사실!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 세상에 무슨 대수일까만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허나 그런 노릇에 발을 담근 내가 무슨 말을 하리오! 그런 노릇할 때는 최대한 정성을 기울여 좋은 책이 되도록 하려 했다는 군말만 덧붙일 뿐이지! 요즘 ‘애오라지 창작’, 그냥 창작이란 말로는 부족하겠지! ‘순수창작’만 하는 선후배가 많이 늘어나는 건 진실로 기뻐할 일이다. 명작의 윤문만으로는 한국 문학, 더 크게 잡아 인류 문화유산으로서의 자원 생산에 기여할 수 없는 건 너무나 자명하다. 상상력을 원석으로 하는 문학광산의 자원 증식은 오직 창작뿐이다. 이 문제(?)도 아주 길게 쓸거리가 있지만 얼숲에서는 참아야 하느니라. 하하.
하나 덧붙이자면, 출판계 18년, 작가계 17년, 양서류 축에 드는 나는 중립이다. 물론 겹치는 기간도 8~9년 있으니까 완벽한 양서류의 조건 충족이다. 중립파들의 장점은, 순수혈통이 모르는 남다른 스펙이 있다. 단점은 조금만 느슨해져도 박쥐 신세일 수 있다. 박쥐는 동굴에서는 독수리보다 용맹하지만, 창공에 나서면 말똥가리한테도 잡아먹힌다.
그건 그렇고, 첨부한 사진은, <로빈슨 크루소>! 뜨인돌출판사는 로빈슨, 아니 노빈손(빈 손이 아니라는 뜻, 하하)으로 서울의 종이값을 올려논 바로 그 <로빈슨 크루소>이다. 이 책은, 아마도 원서를 제대로 번역했다면 그림 없이도 300쪽 넘는 책이 될 것이다. 300쪽이면 적어도 13,000개쯤 되는 낱말을 써야 한다. 그런데 나는, 사진 속 이 책에, 단 24문장으로 ‘로빈슨 크루소’에 빨대를 꽂았다. <로빈슨 크루소>를 단 24문장으로 드러낸 책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하하. 웃어야할지 말지, 아니 웃을까? 그래 울지는 말자, 이게 울 일은 아니지!
<팔만대장경> 52,330,152 글자인 내용도 단 열 세 글자, 아니 단 두 글자로 축약할 수 있는 나다. 뭣이라! 팔만대장경을? 정답을 공개한다. 팔만대장경 내용을 열 세 글자로 줄이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이다. 열 세 글자 맞지요! 단 두 글자로 줄이면? “윤회” 바로 輪廻다.
내가 읽은 모든 책을 다 빨대 꽂아 축약하기에는 이제 물리적으로 시간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건 잊지 말아야겠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如是我聞)”으로 시작되는 부처 진리 말씀! “나는 이와 같이 보았다(如是我觀)”하는 게 작가겠지.
(바쁜 분들을 위해 보너스. <로빈슨 크루소> 외형적 요약! 1719년 작. 원제는 《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 The Life and Strange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이다. 작가가 60세 가까운 나이에 처음 쓴 이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겨 주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요크 태생인 크루소는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모험 항해에 나선다. 바다에서 난파, 홀로 무인도에 표착하여 창의와 연구, 그리고 근면과 노력으로 착실한 무인도 생활을 설계해 나간다. 우선 배에서 식량 ·의류 ·무기, 그리고 개 ·고양이를 운반하여 오두막집을 짓고 불을 지피며 염소를 길러 고기와 양젖을 얻고 곡식을 재배하는 한편 배를 만들어 탈출을 꾀한다. 또 무인도에 상륙한 식인종의 포로 프라이데이를 구출하여 충실한 하인으로 삼고, 마지막에는 무인도에 기착한 영국의 반란선을 진압하여 선장을 구출, 28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다는 이야기이다. 허식 없이 사실적으로 쓴 이 작품은 스코틀랜드의 선원 알렉산더 셀커크(Alexander Selkirk)의 <무인도표류기>를 소재로 삼았다고 하나, 오히려 그 내용은 디포 자신의 상상을 구사한 우화소설(寓話小說)이며 J.버니언의 《천로역정(天路歷程) The Pilgrim’s Progress》 이래 영국 대중의 감정구조에 숨겨진 종교적 ·도덕적 우의문학(寓意文學)의 전통에 속한다는 주장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