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한미관계 응축된 미군범죄
<칼럼> 유영재, 평통사 미군문제팀장
유영재 tongil@tongilnew.com
미군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3월의 경우에만 하더라도 지난 2일 서울 이태원에서 도심 난동 사건이 일어났고, 지난 8일에는 경기도 평택에서 미군 소속 항공정비사가 차량 접촉 사고를 낼 뻔한 한국인 운전자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위협한 사건이 발생했다. 15일 경기도 평택에서는 한 미군이 엘리베이터에서 20대 여성에게 음란동영상을 보여주는 등 성추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16일 경기도 동두천에서는 한국인이 미군에게 집단구타를 당하다 흉기를 빼앗아 미군들을 찌르는 사건도 벌어졌다. 17일 새벽 3시경에는 서울 홍대 앞 한 호프집에서 주한미군이 화장실 집기를 부수며 난동을 부리다 출동한 경찰의 얼굴을 때렸고, 그 2시간여 뒤에는 한국인과 시비가 붙어 서교치안센터에 온 미군이 경찰을 밀치고 출입문 문고리를 파손했다.
미군 가두는 건 하늘의 별따기
왜 미군범죄가 이렇게 빈발하는가. 그 이유는 첫째로 한미SOFA가 불평등하여 미군 범죄자들을 제대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군들은 처벌받을 염려없이 제맘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우선 문제되는 것은 한국 경찰이 미군 범죄자들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하여 초동수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경찰이 미군 범죄자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는 경우는 살인과 죄질이 나쁜 강간을 저지른 현행범뿐이다. 한국인에 대한 나머지 모든 범죄에 대해서는 신병을 확보할 수 없다. 12개 중대범죄에 대해서도 기소와 동시에 미군 범죄자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군 범죄자가 현행범으로 체포돼도 한국 경찰은 간단한 조사만 하고 풀어줄 수 밖에 없다. 한국인의 경우 경미한 사건이 아니면 구속영장 없이도 48시간 구금이 가능하고 이 기간 동안 초동수사를 통해 증거와 증언을 확보할 수 있다. 바꿔 말해 미군 범죄자는 신병을 확보할 수 없는 기간 동안 증거를 인멸`조작하고 증언을 왜곡하고 수사를 회피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을 제외하고는 수사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미군 헌병의 한국인 수갑 연행사건의 경우처럼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잦아들면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미당국은 지난 해 5월, 고시원 여학생 성폭행 사건 등 미군범죄가 기승을 부리자 ‘피의자 신병인도 절차’ 등 SOFA 형사재판권 운영개선을 위한 ‘합동위 합의사항(AR)’에 합의한 바 있다. 외교부는 “우리측은 기소 전이라도 한미간 협의를 통해 미측으로부터 피의자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게 되었고, 우리측이 체포한 미측 피의자에 대해서는 미정부대표 출석 후 초동수사를 완료할 때까지 신병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그러나 최근의 잇단 범죄에 대해 이런 합의사항은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다.
미군측도 미군범죄가 빈발하여 여론이 악화되자 “전적인 협조” 등을 운운하면서 ‘전 장병 음주`휴가 금지’, ‘범죄 미군 불명예 제대 검토’ 등을 대책이라고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책은 한국민의 반미감정을 무마하기 위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대책으로서 전혀 실효성 없는 조치일 뿐이다.
따라서 미군범죄 근절을 위한 가장 우선해야할 조치는 불평등한 한미SOFA 본 협정을 전면 개정하는 것이다. 미군범죄를 다루는 형사재판관할권 규정만 하더라도 불평등한 조항이 매우 많지만 우선은 미군범죄자에 대해 한국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48시간 구금권을 확보하여 초동수사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이 1차적 재판권을 갖는 사건의 경우에도 미국이 재판권 포기를 요구하면 이를 수용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규정도 삭제해야 한다. 형사재판관할권 적용대상도 군인뿐만 아니라 군인 가족과 기타 친척, 초청계약자까지로 지나치게 넓게 규정되어 있는 SOFA 적용 대상을 미군으로 좁혀 한국의 사법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민 안전보다 미국 심기가 더 중요
미군범죄가 빈발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한국 사법당국이 한국인의 권리 보호를 기본으로 사안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눈치를 보면서 미군 범죄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 7월에 일어났던 평택 미군 헌병의 한국인 수갑연행 사건의 경우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미군을 제지하는 등의 조치를 전혀 취하지 못했다. 또 사건 발생 9개월이 다 되도록 평택 검찰은 미군 범죄자들의 기소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출국을 허용해 버렸다. 이태원 도심 난동사건의 경우 미군범죄자들이 서울 도심을 상당 시간 동안 고속으로 질주하면서 도주했는데도 순경 한 사람이 이들을 추적했을 뿐 경찰은 도주로 차단 등의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작년 ‘SOFA 형사재판권 운영개선’을 위한 ‘합동위 합의사항(AR)’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외교안보 관련 사안이고, 공개의 경우 미국과 합의해야 한다는 이유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에 공개 요구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민의 알권리나 방어권 보장보다는 미국의 입장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다.
한국 사법당국이 자신의 기본 책무인 한국인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군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사건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미군 범죄 피해자들은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이 화병만 키우고 피해배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제멋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미군
덧붙여 미군의 한국인 무시 행태도 지적하고자 한다. 미군의 이태원 도심 난동사건의 경우 미군범죄자들이 심야에 비비탄을 난사하여 시민을 공포에 빠트리고 경찰을 수 차례 차량으로 들이받기 까지 했다. 17일 새벽에는 미군이 경찰을 폭행하는 사건이 두 시간 간격으로 벌어졌다. 이처럼 미군들은 한국인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존중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공권력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또한, 한국 경찰을 고의적으로 차량으로 들이받은 이태원 도심 난동사건에 대해 준장(별 하나)에 불과한 미8군 부사령관이 ‘유감’을 표명했다. 만약 일본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면 과연 미군이 이런 태도를 보였을까. 이는 1995년 오키나와 여중생 성폭행 사건에 대해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일본식 예를 갖춰 정식으로 사과한 반면, 2002년 효순`미선 압사사건에 대해서는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김대중 당시 대통령에게 전화로 유감을 표명한 사례를 연상시킨다.
최근 빈발하는 미군범죄는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응축하여 보여준다. 한미SOFA라는 법제도가 불평등하고, 한국 관료들은 미국 눈치보면서 한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하고, 미군들은 한국인과 한국의 법제도를 업신여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인은 미군범죄 피해를 당하고도 그에 합당한 처리를 보지 못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불평등한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가.
한미정상회담이 5월 초 미국에서 열린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기본 책무로 여긴다면 우리나라를 위험과 질곡에 빠트릴 한일군사협정 체결, 방위비분담금 대폭 증액, MD(미사일방어) 참여, 미국산 무기도입 등 미국의 수많은 요구를 뿌리치고 불평등한 한미SOFA 전면 개정 약속을 받아와야 할 것이다.
유영재(평통사 미군문제팀장)
전 애국크리스챤청년연합 부의장
전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사무처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
전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