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소설은 악한소설(Picaresque novel)의 부류에 속한다. 주인공 허크(Huck)는 미국 남부사회의 무식한 백인 태생이다. 주정뱅이 아버지가 있을 뿐 관습적인 의미의 배경이나 교양도 없고 함부로 담배피우고 멋대로 학교를 빼먹는 불량 소년이다. 그러나 그는 신선하고 현실적인 면도 지니고 있으며 작가의 희망을 대변하고 있다. 왜냐하면 허크는 그가 사는 사회의 문화로부터 격리되어서 물질주의 사회에 휩싸이기보다는 심원한 실재를 찾아 헤매는 방랑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허크는 단순한 악동이 아니라 미국의 아담(Adam)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자기 시대의 이중성에 고민했던 작가 마아크 트웨인이 허크를 통해 새로운 비젼의 제시를 시도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아담이라는 개념은 미국의 꿈(The American Dream)이라는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의 꿈은 낙원(Eden)에 대한 가능성의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신화는 시공을 초월해서가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현란한 신세계에서 두 번째의 낙원을 이룩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함으로써 세계를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며 이것은 초기 이주민들로부터 계속되어 온 이상이었다. 미국의 아담(American Adam)이란 낙원 복귀의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인물을 뜻하는데 이런 인간의 유형을 루이스(R.W.B. Lewis)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새로운 개성을 가진 새로운 모험의 주인공은 가족과 종족의 유산에 손상되지 않고 다행히도 선조를 여읨으로써 역사에서 해방된 개인이다. 그자신의 독특하고 타고 난 지략을 가지고 그가 만나게 되는 무엇에든지 기꺼이 직면하는 자립하고 독립독행하며 자제하는 개인이다.”
허크 역시 이러한 유형에 속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허크의 실제적인 원형은 트웨인의 어린 시절 친구인 톰 블란켄쉽(Tom Blankenship)이었다. 그리고 하니발의 주정뱅이였던 지미 핀(Jimmy Finn)을 허크 아버지의 모델로 삼았다. 허크의 아버지는 포오크너 소설의 스노프 (Snope)일가의 유형을 연상케 한다. 타락하고 무식하고 고집불통이고 도둑질하는, 오직 한 가지에만 비열하게 확신을 갖는, 즉 백인으로서의 우월감만을 믿는 유형에 속한다. 사실 이 소설에는 온갖 유형의 인물이 모두 등장한다. 초오서의 『켄터베리 이야기』처럼 한 시대의 초상화 진열실을 연상케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귀족사회는 그랜저퍼드 집안과 세퍼어드슨 집안 그리고 셔번 대령이 대표한다. 부지런하고 존경받고 질서에 순응하는 중산층 계급으로는 과부댁 다글라스, 흑인 노예 짐의 주인인 미스 와트슨, 피터 윌크스 가족 등이다. 하급계급에 속하는 부수적 인물들 가운데는 천연두를 두려워하는 뱃사공들, 밤의 고요함 속의 농담을 멀리서 엿듣는 뗏목 타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갖가지 유형의 이런 인물들 가운데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허크와 흑인 노예 짐이다.
허크는 검둥이 노예 짐과 함께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따라가며 다양한 모험을 한다. 그들이 타고 있는 뗏목은 도금사회의 이중성을 상징한다. 백인 소년과 흑인 노예. 노예제도는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이중적인 삶 가운데서도 그 시작이며 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모두 마을로부터 도피, 즉 현대 문명과 도덕률과 질서로부터 도피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선택한 뗏목은 그들의 변신을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의 현장이 된다. 뗏목은 그들 사이의 관계에 따라 그들이 탈출한 마을보다 더 좋게 변할 수도 있고 더 나쁘게 변할 수도 있다. 육지의 속박과는 달리 뗏목은 그들의 안식처처럼 보이기도 한다. 허크는 “다른 곳은 아주 사람을 구속하고 질식시키지만 뗏목만큼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들은 뗏목 위에서는 아주 자유를 느끼고 평안하고 안락에 젖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뗏목은 고정의 상태가 아니라 유동의 상태다. 언제나 위험과 불안을 동반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짐을 찾으러 올지도 모른다. 허크와 짐이 새로운 관계를 이루기 전에 우선은 그들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이 일어난다. 파선된 기선 월터 스코트호를 만나 양식을 구하려고 그 배에 올라갔을 때 그 배는 이미 살인 음모자들이 점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의 뗏목이 강물에 떠내려갔기 때문에 그들은 살인 음모자들의 보트를 훔쳐 타고 달아난다. 마을의 대안으로 선택했던 뗏목은 일시적이나마 유실의 수난까지 겪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뗏목에는 공작을 자칭하고 망명 중인 프랑스 왕을 자칭하는 사기꾼까지 등장하게 되어 마침내 허크는 인간 되는 것이 수치스럽다는 경험까지 하기에 이른다.
허크와 짐의 관계가 중요한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그들이 카이로 가까이 왔을 때였다. 짐은 이제야 노예지역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자(사실은 더 남쪽으로 간 것이었지만)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본 허크는 자기가 불법 도망자의 도피를 도와주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현재 상태의 허크는 마을에서 보고 배운 노예라는 개념으로 짐을 보고 있는 것이다. 허크는 몰래 빠져나가 짐을 고발하려다가 단념한다. 이것은 허크의 도덕적인 변신을 나타내는 중요한 사건이며 이로 인해 허크는 진실로 마을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는 원래 역사적이고 전기적인 다수의 예들이 있는데 이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허크의 실제 원형이었던 톰 블란켄쉽의 형인 벤슨 블란켄쉽(Benson Blankenship)은 1847년 여름에 어떤 노예를 도와주었다. 하니발의 강 건너 섬에 있는 벤슨의 은신처에 도피 중인 노예를 숨겨주고 비밀히 도와주었던 것이다. 벤슨은 여러 주일 그렇게 하면서도 그 노예의 체포를 위한 현상금 때문에 불쌍한 노예를 배반하는 유혹을 단호히 물리쳤다. 의심할 바 없이 이것이야말로 허크가 짐을 고발하기보다는 법률과 사회와 종교를 개의치 않고 차라리 지옥에 가기를 선택하는 소설 속 사건의 역사적인 출처인 것이다.
허크는 뗏목의 모험을 통해 무지와 순진성에서 정신적 성숙으로 나아가는 일련의 고통스러운 체험을 겪는다. 그가 짐을 고발하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에 그는 비로소 어른스럽게 되고 도덕적으로 재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허크를 상징적인 미국의 주인공으로 생각한다면 그의 이야기는 미국인의 역사의 비유담 일 수가 있다. 허크가 정신적 성숙을 향해 가면서 겪는 통과의례(Initiation)는, 역사가 짧고 미숙하지만 무지에서 깨어나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는 국민적 각성을 상징할 수 있다. 무지에서 깨어 난다는 것은 자유에의 희망과 낙원에의 가능성을 지니지만 한편으로는 신세계가 구세계의 부정적인 요소들, 즉 탐욕과 위선과 굴종 등을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허크가 겪는 갖가지 사건들은 미국의 꿈을 위협하는 어두운 그림자들을 반영하고 있지만 희망이 있음은 분명하다. 이 희망은 허크의 도덕적 각성에서, 또 물질주의와 편견 그리고 위선으로 얼룩진 문명을 그가 등진 데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허크와 짐의 관계에서는 짐의 태도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허크와 짐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을 때, 허크와 짐에게 모든 것이 꿈을 꾼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허크는 단순히 짐을 놀려주려고 한 것이었지만 허크의 거짓말을 알아차린 짐의 태도는 사뭇 진지하다.
짐은 허크에게 신의를 배반하는 자들은 쓰레기와 같은 자들이라고 의연히 꾸짖는다. 이로 인해 허크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노예인 짐에게 사과를 하게 된다. 백인들의 눈을 피해 도망가는 짐은 노예의 비굴한 태도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당당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여기서 트웨인은 짐의 주장을 통해 짐은 물론 허크도 인간다운 인간의 위치를 되찾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소설의 끝 부분에서 샐리 아주머니는 허크를 문명화하려고 하지만 허크 자신은 다시 방랑의 길에 오를 계획을 세운다. 짐과 형성된 새로운 관계가 마을에서는 지속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미 인간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각성한 허크가 변화 없는 사회에 안주한다는 것은 이상사회를 상징하던 뗏목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면에서 이 소설의 중요한 특징은 시점(point of view)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톰 소여의 모험』은 3인칭 소설이지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1인칭 소설이다. 허크의 어법은 반어적이며 방언의 특색을 멋지게 구사하고 있다. 허크는 독자의 반응을 조절할 수 있는 화술을 가지고 있다. “당신을 나를 모르실 겁니다. 『톰 소여의 모험』을 읽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상관없답니다. 그 책은 마크 트웨인씨가 만든 건데 대체로 진실을 말하고 있지요. 잡아당겨서 늘여놓은 것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요.”
『톰 소여의 모험』은 톰과 톰의 친구들을 살펴보는 어른에 의해 이야기되지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위 예문에서 보듯이 처음부터 허크 자신에 의해 이야기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겉보기와는 달리, 1인칭 소설의 특징적인 실감성이나 직접성만 강조하는 것도 아니고 허크의 어휘가 소년의 감성과 통찰력에 제한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허크는 객관적인 화자이다. 그 객관성이 허크 자신에게 창피함을 수반할 때까지도 허크는 스스로를 객관화시킨다. 그는 자신이 마주치는 사회에 대해서도 객관적이다. 허크는 자신이 추방당한 사람임을 알고 있지만 자신을 추방시킨 사회를 탓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그의 특징인 온화한 방법으로 비난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의 속임수와 회피와 부지중에 일어나는 잘못은 일정한 상황의 요청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다. 그는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만 자기 자신과 독자에 대해서는 결코 거짓말하지 않는다. 톰이 비실제적이고 낭만적인데 비해 허크는 실제적이고 빈틈없는 경험주의자이며 정직한 실용주의자이다. 작가 트웨인이 주의 깊게 설정한 허크의 시점은 독자가 이야기의 사건들을 심사숙고할 수 있는 위치를 제공해 준다. 그 결과 소년 허크의 정직하고 총명하게 응시하는 시점을 통해 미시시피 강변의 사회를 올바로 심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허크의 모험만큼이나 자유분방한 데가 있다. 모티프들은 다양하며 많은 주제의 실마리들이 복합적으로 짜여 있다. 양심, 선과 악의 문제, 종교 문제, 귀족주의와 왕권의 본성, 노예제도 및 계급제도에 대한 비판, 그리고 문명에 대한 비판이 있다. 또한 허크의 성숙과 성인생활의 시작, 아버지에 대한 반항, 죽음과 폭력으로 인한 허크의 정신적 외상(traumas), 죽고 싶어하는 마음, 풍부한 유머, 재생의 수단으로서의 미시시피강 등이 있다. 그러나 이중에서도 가장 강조되는 것은 순진성에 대한 배반일 것이다. 이 소설의 1장에서 허크는 “다글라스 과부댁이 나를 양자로 삼아 교화시키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6장에서는 “과부댁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날 전율하게 만들어. 왜냐하면 더 이상 그 집으로 돌아가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문명인이 되어 속박 받기는 싫거든”이라는 말이 나온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의 끝에 가서도 비슷한 관념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 하지만 난 저 쪽 땅으로 도망쳐야겠어. 왜냐하면 샐리 아줌마가 날 입양시켜 교화하려고 하는데 그걸 견딜 재간이 없단 말야. 저 곳은 전에 가본 적이 있지.”
외형상 문명에 대한 비판을 나타내고 있는 이러한 관념들은, 미국의 꿈을 방해하는 순진성의 배반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의 꿈을 더럽히는 여러 문제들이, 미국 문학에 있어서 가장 풍부한 유머,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고발도 되고 치료도 되는 유머 가운데서 지적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소설의 종결부가 미흡하다던가 진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모든 현대문학은 마아크 트웨인의 『허클리베리 핀의 모험』에서 나왔다. (All modern American literature comes from one book by Mark Twain called Huckleberry Finn.)"는 헤밍웨이의 찬사는 여전히 진리로 남을 것이다.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해설 (Ⅱ)
Mark Twain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1885)에서 미국 소설은 시작되고 있으며, 허크 핀(Huck Finn)의 이야기는 곧 미국인의 생생한 생활 경험을 대표하는 것이며, 현대 미국문학에서도 끊임없이 그 문학사상은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허크 핀은 남북전쟁 이전의 남부의 부랑아로서 성장한 14세의 소년이었는데, 그는 미시시피 강변의 작은 마을에서 떠나 본 적이 없다. 그는 친구인 톰 소오여(Tom Sawyer)를 도와 도둑놈 조오의 뒤를 추적하여 그를 사로잡은 행위로 마을 주민들에게는 영웅 비슷한 존재가 된다.
그 결과 그는 더글라스 아주머니의 양육을 받는 신세가 되어 날마다 세수도 하고, 깨끗한 새 옷도 입고, 학교에도 가게 된다. 그러나 더글라스 과부댁을 위시하여 그 마을 사람들의 선의의 노력과 규범적 생활, 나아가 문명 개화를 거부하고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방랑과 도피의 길에 오른다.
허크는 처음 잭슨 섬까지 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미스 와트슨의 노예인 짐(Jim)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짐은 그의 주인이 자기를 팔려고 했기 때문에 거기까지 도망쳐 나온 것이다.
둘은 뗏목으로 미시시피강을 따라 이동한다. 새로운 풍경을 즐기며 강위, 혹은 강둑에서 여러 종류의 기묘한 사람들, 그 대부분은 살인자·학살자·사기꾼·거짓말쟁이·엉터리· 노예잡이들이었는데, 그런 사람들과 만나면서 미지의 위험이 가득찬데다 부단히 변화하는 파노라마 속을 천 마일 이상이나 강을 따라 떠내려간다. 그 동안 노예잡이들에게 들키지 않을까 하고 짐과 함께 공포에 싸였던 잭슨 섬의 생활, 일단의 도적 떼와 살인자를 만났던 강 한가운데서의 난파선 월터 스커트호의 체험 그리고 그랜저퍼드 농장에서 폭력과 유혈로부터의 도피가 계속된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바보들을 속여 등쳐 먹고사는 직업적인 사기꾼과 함께 살기도 하며, 어느 대령이 사형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혹은 추악한 배우의 생활을 보기도 하고, 자기를 희생하여 세 명의 순결한 처녀들의 상속을 도와주기도 한다.
이 여행은 힘에 넘치고 깊은 신비에 쌓인 미시시피강을 통해 겪는 일련의 탈출이다. 이 이상스럽고 암시적인 모험은 암흑과 미지의 세계로 향한다. 공포에 의해 고통을 겪고 상처를 입는 허크 핀은 때로는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리며, 그가 성장해 온 사회를 등지게 된다. 그러면서도 감수성이 강한 허크 핀은 모험을 통해 여러 가지 것을 스스로 배운다. 그는 경험에 의해 진리라는 것은 대개 약한 것이며, 고생은 될 수 있는 한 피해야 하는 것이고, 악은 피치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경험에서 그는 미를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게 되면, 이를 부지중에 추구하게 된다.
그러던 중 짐이 사기꾼들에 의해 팔린 것을 알게 되자 허크 핀은 때마침 등장한 톰과 함께 선을 위해 자발적으로 단호히 행동하여 짐을 구출한다. 그러나 미스 와트슨은 벌써 짐에게 자유를 허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허크 핀의 부친은 이 세상에 살아 있지 않음으로써 허크 핀의 자유에 대한 한 가지 위험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지만, 아직 한 가지 위험은 남아 있었으니, 그것은 선량한 사람들이 허크 핀을 불쌍히 여겨 그를 다시 양자로 삼겠다고 제의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크 핀은「톰이나 짐보다 먼저 인디언 부락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샐리 아주머니가 그를 양자로 삼아 사람구실을 시켜주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전에도 그런 경험이란 한 번 맛본 적이 있었으니까” 하고는 그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허크는 인디언 부락으로 향하려고 마음먹는다.
허크 핀의 이야기는 이동(movement)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탈출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 나오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의 종말은 새로운 탈출을 가져오며, 따라서 이동이 되풀이된다. 그는 폭력과 죽음에 대결하여 상처를 입을 때마다 이동하며, 이동할 때마다 상처를 입는다. 그리하여 상처를 주는 사외에 반항하며 탈출을 거듭한다.
허크 핀은 가족의 배경이 없는 고아와도 같은 고독한 자연아이다. 그러나 아주 순진하고도 건전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으며, 교양은 없어도 예리한 지성을 지니고 있다. 기민하고, 주의 깊고, 사고의 과정이 명석하다. 그리고 발작적으로 의기소침하거나 신경질적이 되기 쉬우나 본질적으로는 부동의 굳건한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어떠한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오만한 점이라곤 전혀 없다.
허크 핀은 남성적이며 적극적이다. 그리고 사물의 판단은 직감적이며 충동에 의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일에는 매우 정직하다. 그리고 자기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치면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그가 당면하는 문제는 언제나 새로운 문제이기 때문에 행동의 지침으로써 경험에서 배운 것에 의뢰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는 이성보다 직감에 의뢰한다. 즉, 선입견적인 계획에 따른다기보다는 충동에 따라 행동한다. 허크 핀은 짐과 함께 강 흐름에 따라 뗏목이 오하이오강 하구에 이르렀을 때, 자기는 노예의 도망을 실제로 돕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가 자라 온 사회에서 형성된 양심에 자극을 받아 짐을 밀고할 것을 결심한다.
그리하여 배를 빌어 타고 강가로 저어 나가자 그 연안의 농장에서 도망간 5명의 흑인을 찾는 두 백인을 태운 배를 만난다. 그들은 허크 핀에게 뗏목에 탄 남자가 흑인이냐 백인이냐 하고 묻는다. 그러자 허크 핀은 백인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그들이 직접 확인하려 들자 뗏목에는 천연두 환자가 있다고 다시 거짓말을 하여 위기를 면한다.
허크 핀은 판단력이 있고, 성실과 지식을 존중한다. 그리고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진위와 선악을 가려낸다. 스스로의 힘으로 사랑보다 선(善)을 탐구한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평화를 찾는다.
허크 핀은 순진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남에게 관대하며 남의 장점을 인정해 준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는 그다지 관대하지 않다. 그리고 동정심이 많으며, 남을 이해하고, 남들 즐거이 도와주려고 한다. 허크 핀은 야밤중 언덕 위에서 불빛이 보이자, “혹시 앓는 사람이라도…‥”하고 생각하는가 하면 어느 날 짐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그를 무한히 동정하기도 한다.
허크 핀은 이 사회의 선을 탐구하며, 평화를 희구하며, 정직과 용기와 충성심을 확인한다. 그는 순진무구한 지각에서 그 사회에 혐오를 느끼며, 비관적인 비판을 내린다.
그는 문명에 대해서도 신속한 비판을 내린다. 그리고 인간을 완전히 만들지 않는 사회 형태나, 폭력과 악(惡), 가식과 기만이 충만해 있는 사회현상을 저주한다. 그리고 참다운 인간성이 결핍된 인간관계를 슬퍼한다.
허크 핀은 선천적으로 착하고, 순결하고, 단호하고, 정열적이며, 욕망 없는 소년상을 이루고 있다. 매력적이며 착한 소년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