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풍경소리음악회가 광주시내 궁동의 원불교 교당에서 있어서 갔는데, 원불교 합창단이 성탄 캐롤을 불러주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를...” [펠리스 나비닷]을 번역한 노래였죠.
몇 년 전에는 그 음악회를 우리교회당에서 했었는데, 증심사 합창단이 와서 아담스의 [오 거룩한 밤]을 불렀습니다. “오 거룩한 밤 별빛이 반짝이는, 거룩하신 우리 주 나신 밤, 오랫동안 죄악에 얽매여서 헤매던 죄인 위해 오셨네...” 직접 들으신 교우들도 많을 것입니다. 저는 내심 놀랐습니다. 이런 노래를 불자들이 부르다니...
끝나고 나오는데 풍경소리음악회 관계자가 내게 묻습니다. 내년 석가탄신일에 혹시 고백교회 찬양대가 증심사에 올라와서 부처님 오심을 축하하는 노래 불러주실 수 있냐고 물어요. 찬양대원들에게 물어보겠다고만 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보니까, 이 불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자기들 신앙의 대상은 아니지만 세상을 이롭게 하신 분이라고는 생각하는 듯합니다.
우리도 부처님을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고다마 싯달타 석가모니불은 헛된 것들에 사로잡혀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어서 세상을 이롭게 하신 분이예요. 그런 분이 세상에 계셨던 것은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일이지요.
세상은 부처님에게 은혜를 입었습니다. 부처님에게 은혜를 입었다니까 놀랍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세상은 여러분에게도 은혜를 입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 가운데 누가 병들고 죽어가는 형제를 돌보아서 회생시켰다면 세상은 그에게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가 파괴되어가는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했다면 세상은 그에게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세상은 선한 사람에게는 은혜를 입고 악한 사람에게는 피해를 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도 은혜를 입는다면 피타고라스나 에디슨이나 마호멛이나 공자, 맹자, 부처님이나 훌륭하신 성현들에게는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겠습니까?
영향이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누가 더 크냐 하는 것으로 싸울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 갖고 싸우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피해를 입습니다.
다른 종교는 무조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듯한데, 제가 알기로는 부처님이 자기를 섬기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후세 종교인들이 혹세무민하느라고 위대한 스승들을 왜곡해서 우상화한 것이죠.
기독교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얼마나 아전인수하고 우상화했는지 모릅니다. 예컨대 “십자군 전쟁”이라고, 중세 때 성지를 회복한다고 엄청난 병력을 동원해서 전쟁을 일으킨 것은 예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셨고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창칼로 전쟁을 일으켜서 이웃나라 이웃민족을 살상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악한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당시 교회의 권력욕에서 비롯된 죄악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랑을 세상에 전파하고 싶다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방식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보내면서 어느 마을에 들어가든지 평화를 빌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받아들이면 그 마을에 평화가 임할 것이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니 그냥 발에 먼지만 털어버리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돈이나 여벌옷이나 지팡이도 갖고 가지 말고, 병자들을 고쳐주고 하늘나라를 선포하라고 하십니다.(마태복음 10장 5-15) 땅끝까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원주민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수백 수천만이라도 총으로 다 죽이고 교회를 세우라고 하신 적은 없습니다.
다른 종교인들에 대하여 적대감을 갖는 사람은 뭔가 오해를 하고 있거나 잘못 배운 까닭이라고 봅니다. 이스라엘의 배타적이고 민족주의적 요소가 많은 구약성경의 말씀들을 잘못 해석한 영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요한복음 13장)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생활이나 문화에 대하여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처럼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아듣고 실천한다면 서로 사랑하면서 평화와 정의와 진리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봅니다.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니 없니 논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구원은 기독교에만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무식해서 불교를 잘 모르지만, 불교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불교에는 하늘나라도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열반이 있고 해탈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바르게 갖고 살아가면 구원에 이를 것이고 불교 신앙을 바르게 갖고 살아가면 열반에 이를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고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왜 외래종교를 믿느냐고 은근히 공격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교도 외래종교입니다. 불교도 외래종교입니다. 불교는 본래 인도에서 시작되었는데 중국으로 건너가서 융성했지요? 그러다 우리나라에도 들어온 것입니다. 들어온 지 오래 되었으니 소위 “전입고참”일 뿐입니다.
진리는 받아들이는 곳으로 갑니다.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양식이 되고 거기서 빛을 냅니다. 사람들은 필요한 것을 받아들여서 유익을 얻고 양식을 삼습니다. 전기를 미국 사람이 발명했지만 전 세계가 다 씁니다. 양복은 서양 문명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우리도 다 입고 삽니다. 몸에 필요하면 몸에 쓰면 되고, 영에 필요한 것은 영에 쓰면 됩니다.
예수님이 열어주신 하늘나라 가르침도 진리라면 사람들이 길이길이 전승하며 세상의 빛이 되고 살맛을 내는 소금이 될 것이고, 아니면 버려지거나 잊혀지고 말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바르게 전해지면 세상 누구에게나 탐욕과 고통에서 벗어날 복된 소식이 되고,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특효약이 된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하늘나라의 진리는 영원할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계속 어리석음과 탐욕에 빠지기 때문이며, 그들을 구할 길은 오직 사랑과 진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