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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의 국보와 보물 원문보기 글쓴이: 광나루
보물 1976호(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 written by 한국의 국보와 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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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종대왕 태실 전경 |
태실은 왕이나 왕실 자손의 태를 모셔두는 작은 돌방으로, 이것은 조선 제 13대 왕인 명종의 태를 묻었던 곳이다. 그 앞에는 태를 모신 것을 기념하기 위한 비 3기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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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장 안으로 올라오면 우측에 보이는 봉우리가 태봉입니다. |
▲ 태봉 아래서 돌아 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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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우리로 바로 올가가도 되고 우측으로 돌아서 올라가도 됩니다. 처음에는 이 곳에 있는 줄 모르고 목장 안쪽만 헤매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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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종태실 바로 밑에 안내판이 있으며, 계단을 오르면 바로 명종대왕 태실이 보입니다. |
명종은 중종의 둘째 아들이면서 인종의 아우로, 불교를 중흥하고, 비변사를 다시 설치했으며, 권문세가의 토지를 몰수하여 재분배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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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종대왕 태실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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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봉 정상에 오르면 바로 태실이 보입니다. |
▲ 태봉에서 내려다 본 모습 |
태실은 받침돌 위에 태를 넣은 둥근 몸돌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으로, 바깥에는 난간을 둘러놓았다. 비는 3기인데, 오른쪽의 비는 태실을 만들면서 함께 세운 것으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운 간단한 형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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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종대왕 태실 |
태실은 32개의 부채꼴로 된 화강석 판석을 깔아 8각 지대를 만들고 그 위 외곽에 8각 돌난간을 세우고 그 중앙에 종형(鐘形)의 태실과
태실 위에 팔각 옥개석을 올려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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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실 안쪽의 태함과 바닥 모습 |
왼쪽의 비는 왕자 전하의 태실비로, 받침돌 위에 비몸과 용을 새긴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가운데의 가장 크고 화려한 비는 주상전하의 태실비로, 거북받침 위에 비몸을 올리고 용을 새긴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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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실 앞에는 3기의 태실비가 있습니다. |
태실과 오른쪽의 비는 중종 33년(1538)에 세웠고, 왼쪽의 비는 명종 1년(1546)에 세운 것이다. 가운데 비는 숙종 31년(1711)에 세운 것으로, 3기 중 가장 늦게 만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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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 태실비의 모습 |
태실의 서북편에 비석이 3기가 설치 되었는데 남쪽에 설치된 비가 태실을 표시한 비로 '대군춘령아지씨태실' 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연대는 명종이 태어난 4년 후인 중종 33년(1538) 2월 2일이며, 북쪽에 설치된 비는 '왕자전하태실'로 숙종37년(1711)에 건립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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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실비 전면에서 바라 본 모습 |
이 비는 등이 4엽화문으로 장식된 귀부 대좌 위에 용과 구름 무늬로 새긴 이수로 조성되었다. 명종대왕의 태실은 일제
강점기에 훼손된 채 방치되었던 것을 1975년에 복원하였다. 태실 전체 높이는 273㎝(태실높이90㎝)이고 주상전하태실비는
64×26×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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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종대왕 가봉태실의 구조(고궁박물관 모형 전시물 안내판) |
충남도 서산, ‘명종대왕 태실’ 보물 반열에 올라..보존 우수 2018.03.26 충남도와 서산시는 ‘명종대왕 태실(胎室) 및 비’가 최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과, 26일자로 ‘보물 제1976호’로 지정·고시됐다고 밝혔다. 충남도와 서산시가 지난 2016년 12월 문화재청에 승격을 신청한 뒤 15개월 만에 거둔 결실이다. 태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하는 곳으로, 명종대왕 태실은 조선 13대 왕 명종이 태어난 1538년(중종 33년) 왕실의 의례에 따라 서산시 운산면에 건립됐다. 비는 태실과 함께 세운 ‘대군춘령아기씨태실비’, 명종 즉위 이듬해인 1546년 세운 ‘주상전하태실비’, 1711년 추가로 세운 ‘주상전하태실비’ 등 모두 3기다. |
서산 명종대왕 태실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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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남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산1 화살표 ↑ 위의 지도 중앙에 보이는 것이 명종대왕 태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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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중앙 하단의 A 위치에 명종대왕 태실이 있습니다. 서산IC를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