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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김정숙 / 수필가
2019년 5월부터, 나는 대전 서구 도마동에 작은 논술교습소를 차렸다. 뭔가 큰 성공을 해보겠다고 교습소를 차린 것은 아니었다. 많이 아팠던 아들을 근거리에서 돌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곳 도마동은 다양한 학원이나 교습소가 거의 없는 불모지 같은 곳이었기에, 소외된 듯한 아이들에게 다소나마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서였다.
솔직히 교습소를 처음 차릴 때에는, 내가 이곳을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낙후된 오래된 동네인데다가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미 아이들을 다 키우신 어르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심리적인 면에서 이곳에 큰 애착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헌데, 지금은 이곳이 많이 좋아졌다. 이유는 함께하는 주민과 아이들이 애착이 가기 때문이리라.
이곳 초등학교는 규모도 작고 소박하다. 초등학생들의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 공간이 부족하다. 야구부 특성화 학교이기 때문이다. 야구부가 육성됨으로 인해서 갖는 장점들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70%가 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거의 운동장에서 뛰어 놀 수가 없다.
이와 같은 취약점이 있는데도 나는 이 동네를 좋아한다. 이곳 엄마들의 따뜻한 마음씨 때문이리라.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이곳 주민들의 온정 있는 모습을 소개하고 싶다. 사람 냄새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글로 옮길 수 있다면, 내게는 더없는 영광이리라. 그중에서 오늘은, 마음도 모습도 전천후 미녀인 ‘현성엄마’에 대해 소개해 보겠다.
2019년 겨울 저녁 5시 30분 전후되는 시각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나는 다음날 해야 할 논술수업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평소 알고 지내던 현성엄마가 어떤 낯선 아이를 데리고 교습소로 들어왔다.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한 마디로 <봤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아이를 데려왔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 물었다. 현성엄마는, 지금 집에 어린 자녀들만 있기 때문에 급히 잠시 나온 터라 다시 집으로 바쁘게 되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길 건너편 저만치에서 초등학교 2~3학년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5~6학년 정도 돼 보이는 또 다른 여자아이(언니)에게 맞고 있더라는 것이다.
본인도 바쁜 마음이기는 했지만, 너무 놀라서 바로 쫓아가서 왜 때리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그 언니는 어디론가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고, 이 아이에게 <왜 맞고 있니?>라고 물었는데, 도대체 대답을 안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몹시 고민하다가 교습소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대로 놔두면 이 아이가 그 언니(?)에게 또 맞을 수도 있고, 이미 어둑어둑해진 저녁때라 무슨 사고를 당할지 몰라서 여기로 데려왔다는 것이다.
나는 우선 현성엄마의 마음 씀씀이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급하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고, 가까이도 아니고 저만치 멀리 있었던 일이었는데, 그냥 지나치지 않은 마음이 너무 곱게 느껴졌다. 그런 행동에 존경의 마음도 생겼다. 그래서 현성엄마에게 아이 걱정은 하지 말고, 어서 귀가하라고 했다. 현성엄마는 연신 나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얘기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집을 향해 바쁘게 귀가했다.
교습소로 들어 온 아이의 눈빛을 보니 나를 경계하는 눈빛이 가득했다. 어쩌면 두려움의 눈빛 같기도 했다. 우선 나는 아이에게 무거운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옆에 내려놓기를 권면했다. 이름을 물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왠지 배고파하는 것 같아서, <뭐 좀 먹을래?> 라고 물었더니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여전히 경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여기가 교습소라서 밥은 없고, 컵라면과 초코파이와 과자가 좀 있는데, 그거라도 먹을래?>라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컵라면을 조리해 줬더니, 의외로 잘 먹었다. 그리고 초코파이나 다른 과자들도 잘 먹었다.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뭔가를 먹고 나니 좀 살 것 같은지 눈동자도 좀 더 밝아지고 편안해진 것 같았다. 이름은 말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그냥 어디서 살고, 누구랑 사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는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물었다. 무슨 일인지 알아야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내가 말했다.
그랬더니, 자기를 때린 사람은 친언니란다. 언니가 자기를 때린 이유는 예전에 자기가 언니에게 빌려줬던 만원을 되돌려 달라고 했기 때문이란다. 그 돈은 한 달에 3,000원씩 받는 용돈중의 일부를 힘들게 모아서 언니에게 빌려 준 돈이었다는 것이다. 언니가 그걸 빌려가서 아직까지 갚지 않았다는 거다. 자기도 꼭 사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 돈을 돌려 달라 했더니 때렸다는 거였다.
나는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 아이의 가정상황을 자세하게 물어보았다. <혹시 엄마는 지금 집에 계시니? 아빠는 몇 시에 퇴근하시니? 집은 어디니?> 같은 질문으로 가정상황을 물어보았다. 대답을 안 할 줄로 짐작했는데, 먹을 거를 주어서인지 술술 대답을 했다. 엄마는 안계시고, 아빠는 밤 10시쯤 퇴근을 하신다고 했다. 아빠는 술도 자주 드신다고 했다. 자기 집은 여기서 걸어서 한 시간쯤 걸어가는 거리에 있다고 했다.
게다가 더 충격적이었던 것이, 식사는 점심 한 끼만 먹는다고 했다. 아침과 저녁은 못 먹고 굶는다고 했다. 오직 학교에서 먹는 급식이 하루 먹는 식사의 전부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저녁때에도 학교 근처에서 배회하다가 저녁 9시쯤부터 걸어서 집으로 걸어간다는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밤 10시쯤 된다고 했다. 왜 그렇게 늦게 집에 들어가는지를 물었더니, 일찍 들어가면 집에서 언니가 자꾸 자기를 때린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적잖게 충격을 받은 나는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상황을 학교 담임선생님에게라도 말씀을 드려서, 지역아동센터 등으로 연결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다면, 저녁식사와 일정한 보충교육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생각한 것을 얘기했더니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왜 안 되는지를 물었더니 아빠가 절대 가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곳에서도 딸을 괴롭히는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빠가 그곳에는 절대 안 보낸다고 했다는 것이다. 말은 안 했지만 아마도 그 아이는 그런 비슷한 상황의 경험들을 이미 겪어 본 듯했다.
솔직히 나는 그 상황들을 알게 된 후 조금 당황했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지금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그날 저녁때 아파트 부녀회 회의가 있었고 내가 직접 회의진행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서둘러 10~20분 내로 아파트에 도착해야 했다.
그런데, 현재 나의 판단으로는 그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물었다. <그러면 지금 무엇을 하고 싶니?>라고 물었더니,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지금 집에 가면 언니한테 또 맞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겠어?>라고 물었더니 이젠 괜찮다고 했다. <평상시에는 집에 어떻게 가니?>라고 물었더니 돈이 있으면 버스를 타고 돈이 없을 때는 걸어 다닌다고 했다. 거의 대부분 걸어 다닌다고 했다. 돈만 있다면 혼자서도 교습소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회의 때문에 집까지 바래다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서는 그 아이에게 버스 탈 차비를 주었다. 그리고 나서 <혹시 앞으로도 학교생활을 하다가 어딘가 피할 곳이 필요하면 우선 교습소로 와도 된단다.>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차비도 조금 더 챙겨주고 싶었지만 지나친 금액은 오히려 그 아이에게 독이 될 것도 같아, 버스승차요금보다 조금 더 챙겨 주었다. 그 아이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버스를 타러 씩씩하게 걸어갔다.
그 이후, 그 아이가 가끔씩 생각났다. 그리고 현성엄마의 따뜻한 마음씨도 종종 생각났다. 2020년 정월부터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하자, 교습소 역시 몇 달 동안 휴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조금 진정되자, 학부모님들의 요청에 의해 2020년 5월부터 다시 교습소 문을 열었다. 그래서 또다시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왠지 눈에 익숙한 아이가 교습소 건너편에서 교습소를 빤히 쳐다보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창밖을 바라보니 그 아이였다. 내가 아는 체하며 손을 흔들자, 그 아이가 갑자기 반가운 표정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나에게로 달려왔다. 나는 잠깐 당황한 나머지 통화 중이던 전화를 끊고, 그 아이와 대화를 했다.
<잘 지냈니?>라고 말하니까, <물 좀 먹어도 되죠?>라면서 정수기 쪽으로 서둘러 다가갔다. 물을 먹더니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래도 간식을 찾는 눈치였다. 그래서 과자 몇 종류를 집어 주었더니, 표정이 더욱 밝아진다. <어디 가는 길이니?>라고 물었더니, 지역아동센터를 가는 길이라 한다. <아빠가 반대하신다더니, 어떻게 갈 수 있게 되었니?>라고 물었더니, 아빠가 다시 허락해 주셨다는 것이다. 나는 중간에 끊겼던 통화를 다시 해야 해서 <그거 정말 잘 됐구나!>라고 말하면서 그 아이를 보내 주었다. 아마도 그 아이는 아빠께 말씀을 드려 지역아동센터를 다시 다니기로 협의를 한 것 같았다.
그 후에도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수업중이어서 손인사만 했더니, 그 친구도 어설프게 손을 흔들며 지나갔다. 아이의 정서는 처음보다 훨씬 더 안정돼 보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봤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라고 말하며 그 아이를 데려왔던 현성엄마의 행동이 결국에는 이런 좋은 결과로까지 이어진 듯해서, 새삼 내 마음에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다. 무엇이든지 처음부터 큰 행동을 꿈꾸지 말고,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에 관심을 갖는다면, 거기서부터 더 큰 변화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른들의 용기와 관심들이 더 많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라는 미명하에,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 대해 더 많은 무관심과 냉랭함으로 익숙해져 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 아이에게 손을 내민 현성엄마의 모습이 예사롭게 해석되지 않았다. 평소에도 현성엄마는 의협심과 정의감이 강한 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게다가 현성엄마는 겉모습 나이까지 10년~15년은 더 어려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실제로 주변 엄마들이 현성엄마의 나이를 한참 잘못 짐작하여 종종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도 현성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실수 할 뻔했다. 그나마 천만 다행이었던 것은 나보다는 조금 더 어린 나이라는 점이었다. 아가씨 같은 모습에 마음까지 착하니,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닐 수 없었다
숨겨져 있는 보석들이 많은 동네이니, 어찌 이 동네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랴 ! 열악한 환경의 동네이지만 진정 사람 냄새 풍기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마음이 끌릴 수밖에 없었다.
< 봤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그 말의 깊은 여운이 오랫동안 내 곁을 맴돌았다.
첫댓글 글제만 보아도 주인공이 따뜻한 가슴과 선한 마음, 측은지심으로 살아가시는
분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좋은글 쓰도록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마음이 정말 따뜻한 분이시네요!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