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진원 문단 50년사
[5]
내 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교자 문원(文苑)」이 준 선물, ‘여름밤’
1976년의 2월은 한가한 시간이었다. 1년 동안의 학기가 모두 끝나고 봄 방학이 시작되기도 한다. 공부가 끝나고 한가한 시간이면 교무실에 내려와 TV를 보곤 한다. 그 당시 텔레비전은 흑백이었지만 TV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웠다.
내가 사는 집은 학교의 꽌사였다. 관사는 학교 바로 옆 쪽 산 밑이어서 교무실까지는 5분도 안 걸렸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할 일도 없고 하여 교무실에 나갔다. 그런데 내 책상 위에 A4 용지 보다 큰 두툼한 봉투가 놓여 있었다.
보내온 곳을 보니 [한국교육출판사]였다. ‘이게 무엇이지, 왜 내게 온 걸까?“ 하고 조심스럽게 뜯어보았다. 1976년도 『 교육자료』3월호였다. ’내게 이 책이 개인적으로는 올 리가 없는데…‘ 통상적으로 교육자료지나 새교실지는 학교에 한꺼번에 오기 때문에 담당 계원이 선생님들에게 난어주곤 하였다. 그런 책이 내게 우편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책을 들춰 보던 나는 그야말로 기절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내 이름 석자와 작품이 <1회 추천>이란 글씨 아래 실려 있었던 것이다. ’ 내 이름 석자가 책에 나오는 것을 꿈꾸던 일이 어제 오늘의 일이었던가.‘ 날마다 누워 있으면 꿈을 꾸던 일이었다. 그 일이 사실로 나타났던 것이다.
1975년에 수 많은 작품을 써서 매월 교육자료지와 새교실지에 응모 작품으로 보냈다. 그리고 다음 달엔 분명히 추천이 될 거라 믿고 막연한 희망에 잠을 설치던 일이 얼마였던가. 어느 날 부터인가 심사평에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는 걸 보고 크게 절망을 하였다. ’나는 재능이 없는 놈이었구나!‘ 이렇세 탄식을 하고는 까맣게 지워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내 작품이 추천이 되어 채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하면 되는구나!“ 내 입에서 터져나온 첫 말이었다.
추천 1회
여 름 밤
남진원
할머니 이야기
아가 귀에
풀어놓는 밤
아가는
하나 둘
별을
손가락에 걸으며
이야기 듣는다
눈꺼풀 사르르
꿈나라 찾아
벌써 꼬옥 쥔 손바닥
할머니 이야기가
한 웅쿰
별이
한 웅쿰
나는 내 작품이 실린 이 책을 가지고 방에 들어가 밤 내가슴에 품고 잠을 잤다. 어릴 때 고향집에서 설날 전날 새 양말을 할머니로부터 선물로 받았다. 그 양말을 가슴에 품고 잠이 들 때처럼 그렇게 잠들곤 하였던 것이다.
자다가 깨어나면 또 열어보고 또 열어보고 하였다. 갓 찍어내 상큼한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도 나를 설레게 했다.
나는 그 후로 수월찮은 문학상과 추천을 받았지만 이날처럼 내 마음을 노라게 만든 적은 없었다. 내 일생에서 가장 기쁘고 찬란한 날이었던 것이다.
나의 시 창작은 고향집과 무관하지 않다. 사람들에겐 누구나 고향이 있다. 고향엔 고향집이 있고 고향집에는 어릴 때의 가족, 소꿉친구, 산 , 들, 바다가 있다. 정겨움이 흐른던 고향집도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이제는 그 모습을 찾기 힘들게 되었다. 하지만 지치고 힘들 땐 유년의 고향집을 떠올리면 위로가 되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사람들이 고향을 생각하는 이유는 각각 다르겠지만 내게는 때묻지 않은 원형이 그대로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내 고향에는 친구들의 해맑은 얼굴이 있고 순박한 농부의 마음이 담긴 감자꽃이 피고 진다.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물들이는 날엔 매미소리도 날아와 푸른 노래를 날려보냈다. 그래서 유년의 고향집 여름은 생동하는 기운으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처음 시를 만날 때에 마음은 고향 마을에 가 있었다. 그곳에서 내게로 온 것이 ’여름밤‘이다. 이 작품은 1976년 교육자료 3월호에 박경용 선생님이 추천을 한 작품이다. 표현 기법이 미숙하다는 이야기도 선평에 하셨지만 순박함과 그 가능성을 믿으셨던 모양이다.
1975년 가을, 나는 이 작품을 쓰면서 수많은 글을 휴지통에 넣었는지 모른다. 소위 추고라는 것을 엄청나게 했다. 우선 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얻은 것이 마지막 구절인 ’할머니 이야기가 한웅쿰, 별이 한웅쿰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재미있고 그 작품을 읽으며 기쁨을 느꼈다. 이 시구를 얻고 스스로 얼마나 기쁨에 들떴는지 모른다.
나는 지금 다시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 아름다운 시골 마을이 없었고 초가집인 고향집이 없었고 할머니가 계시지 않았다면 시를 쓰고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내 마음 속에 살아있는 고향집과 고향 마을은 아직까지 내 마음속에서는 하나도 오염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오염될 일이 없다. 이런 나의 고형집이 있는 한 나의 시 쓰기는 한웅쿰 손에 쥔 별처럼 놓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