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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엊그제는 둘째 누나로부터 연락이 왔고, 오늘은 꿈에 예주도 보고 아내도 보았는데 왜 더 외로운 걸까요? 외로워 외로워서 못 살겠습니다. 구찌 지갑을 눈 뜨고 쓰리 당했고 현장에서 '동작 그만'을 시켜 일일이 몸수색을 했는데 범인을 색출하지 못했어요. 출동한 경찰이 고무다리만 긁어서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우 씨! 도대체 니들은 제대로 하는 게 뭐냐! 등심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끝내 못 먹었고, 교회 사람들이 우리 집을 아내와 에예공 없을 때에도 교회처럼 사용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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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집 2층에 있는데 때마침 메주가 와줘서 끌어안고 엉엉 울다가 깨습니다. 나는 왜 이런 꿈을 꾼 걸까. 외로움은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가, 닿지 못해서 생기는가? 그리운 사람의 소식도 듣고 꿈속에서 가족까지 만났는데 왜 외로움은 오히려 더 짙어지는가? 그리고 꿈속에서 지갑을 잃고, 아무도 내 억울함을 해결해 주지 못하고, 마침내 딸을 끌어안고 울었던 것은 내 마음이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일까? 엊그제는 둘째 누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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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는 예주도 보고 아내도 보았습니다. 만나고 싶었던 얼굴들이 하나둘 나타났는데 이상합니다. 사람을 만났으니 외로움이 덜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더 외롭습니다. 어쩌면 외로움은 사람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마음이 닿고 싶은 곳에 닿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리운 사람을 만나면 외로움이 사라지기는커녕 더 또렷해질 때가 있습니다. 만나기 전에는 막연했던 빈자리가 얼굴을 보는 순간 정확한 모양을 갖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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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바로 이것을 그리워하고 있었구나.” 꿈도 그런 일을 합니다. 꿈을 예언이나 암호처럼 단정해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프로이트 이후 우리는 꿈에 낮 동안 눌러두었던 욕망과 불안, 기억의 파편들이 뒤섞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꿈속 사물 하나하나에 고정된 뜻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 꿈 전체에 어떤 감정이 흐르고 있었느냐를 보는 것입니다. 이번 꿈을 관통하는 감정은 아무래도 하나입니다. 빼앗김과 무력함, 그리고 끝내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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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은 돈을 담는 물건이지만 동시에 신분증과 카드와 개인적인 흔적을 담는 아주 사적인 물건입니다. 그래서 꿈속에서 지갑을 잃는 장면은 꼭 재산에 대한 불안이라기보다, 내가 소중하게 지키던 무엇인가를 눈앞에서 빼앗기는데도 막을 수 없다는 감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모두를 세워놓고 수색까지 했는데 범인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책임질 사람은 없습니다. 억울함은 있는데 책임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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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고를 받고 온 경찰마저 엉뚱하게 고무다리만 긁고 있습니다. 꿈속의 나는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도는 내 답답함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결국 꿈속에서도 “내 문제는 왜 아무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가”라는 감정이 반복됩니다. 철학적으로 외로움의 핵심은 혼자 있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내가 겪고 있는 일을 타인이 정확하게 알아주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레비나스는 인간이 타자와 관계를 맺지만, 타자를 완전히 소유하거나 이해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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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가까워지지만 마지막 한 겹의 고독은 남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내 고통을 내가 느끼는 방식 그대로 느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이상한 역설이 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외로울 수 있고, 반대로 홀로 산책하면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외로움의 반대말은 ‘사람 많음’이 아니라 어쩌면 "이해받음’"입니다. 등심이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끝내 못 먹은 장면도 작지만 의미심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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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다는 것은 매우 원초적인 욕망입니다.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쉬고, 그리우면 만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꿈에서는 그 단순한 욕구조차 충족되지 않습니다. 지갑도 빼앗기고, 범인도 찾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도 먹지 못합니다. 계속해서 내 욕망이 중간에서 좌절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집에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교회 사람들이 아내와 딸이 없는 집을 교회처럼 사용합니다. ‘집’은 매우 특별한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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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식으로 말하면 인간에게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돌아와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거주의 장소입니다. 그런데 꿈속에서는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조차 다른 사람들이 점유합니다. 밖에서는 지갑을 빼앗기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집조차 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묻습니다. 나는 도대체 어디에서 쉴 수 있는가? 바로 그 순간 메주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범인도 잡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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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을 찾아주지도 않습니다. 등심도 사주지 않습니다. 교회 사람들을 쫓아내지도 않습니다. 그냥 끌어안습니다. 그리고 웁니다. 나는 이 장면이 이번 꿈의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정말 원했던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안길 곳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어른이 되면 점점 울기가 어려워집니다. 해결해야 할 일이 있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으며, 웬만한 것은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낮의 자아는 버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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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내가 알아서 한다.”
“별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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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꿈에서는 체면을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꿈은 낮 동안 단단히 잠가놓았던 문을 슬쩍 엽니다. 그리고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어린아이가 나옵니다. “나도 좀 안아줘.” 그래서 딸을 끌어안고 엉엉 운 것입니다. 이것을 약함이라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역할에 가려졌던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꿈이 잠시 보여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이기 전에 사람이고, 누군가를 책임지는 사람이기 전에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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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둘째 누나에게 연락이 왔는데도, 꿈에서 가족을 만났는데도 외로운 것이 모순은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가 다시 마음 가까이 들어오면서 그동안 눌러두었던 그리움까지 함께 깨어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래 가문 땅에 비가 오면 흙이 곧바로 평평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갈라진 틈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외로움의 터널을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 때문에 외로웠는지를 이제 조금 정확하게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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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꿈의 마지막에 답도 있습니다. 지갑이 아니었습니다. 등심도 아니었습니다. 경찰이 범인을 잡아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사람의 품이었습니다. 외로움은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가, 닿지 못해서 생기는가? <화려한 휴가 6>입니다. 러닝타임 125분짜리 영화를 5부로 늘렸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빠진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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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에서 ‘삼청교육대’를 다루는 것을 보고 뭔가 써야 할 것 같아 러닝과 맞바꿔 40년을 타이머 시 해봅니다. 17살 고1 광주 민주화 항쟁 무렵이니 날짜로는 5월 21일경으로 기억합니다. 우리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었고 각자 몸을 사리고 있었는데 절친 일도가 담양 공고 앞 임시 검문소에서 불심 검문에 달렸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현행범은 아니었고 몸에 문신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손에 담배 빵이나 장발만으로도 허다하게 잡혀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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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위가 17일에 발 촉 되었으니까 시범 케이스에 달려간 것 같아요. 한 3개월가량 친구를 볼 수 없었고 우리들도 각개전투를 하며 1학년 2학기가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해 겨울 방학 때부터 일도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우리들은 고2가 되어 폼 나게 질풍노도를 타기 시작했어요. 둘리스의 펑크스타일 탓인지, 외화 맥가이버 때문인지 몰라도 뒷머리를 길렀고 폴리에스테르 80% 면 20% 제일 합섬 밑단에 12인치 통바지로 간지를 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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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 발동과 함께 국보위가 설치되었어요. 이미 대통령 생각이 있었던 전통이 자신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정의 사회 실현‘이라는 어젠다를 가지고 “폭력범과 사회풍토 문란 사범을 소탕한다"라는 명분 아래 '사회악 일소 특별 조치'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삼청 5호 계획'입니다. 삼청교육대는 서울 삼청동과는 관련이 없고 ‘맑게 하는 교육 부대’라는 뜻입니다. 사회를 정화시키겠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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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옆에 있던 리틀 삼청교육대‘선감학원’은 제가 가보지 못했습니다만 처가가 화성 쪽이라 대략 위치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삼청교육대의 장소와 위치는 102 보충대(21사단)의 신병교육대와 2사단, 12사단, 21사단 등의 예하 산악 군단 등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02보충대는 배 타고 소양강을 거슬러 가는 곳인데 출소하고 전출 올 때 해 저문 소양강을 건넜고, 훗날 근무자가 되어 신병을 인도하다 선착장--2사단-12사단-휴양소를 경유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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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사단은 홍천과 신남 사이에 있었는데 두촌 '철정검문소'시절 홍천강에서 멱을 감고, 가끔 권총(38구경) 차고 술 마시러 나갔던 곳으로 야수교(운전병 교육소)가 유명합니다. 그 11사단 유격장이 여자 삼청교육대로 사용되었다고 하더이다. 삼청교육대 하면, 300kg 짜리 전봇대 목봉으로 유격 훈련을 받는 모습이 떠오를 것입니다. 내가 이곳에서 유격을 받아보았어요(I-5 번 올빼미). 물론 무늬만 이지 말입니다. 조교들 복장이 눈에 익어서 살펴봤더니만 가리산(703) 특공연대 유격 조교 복장이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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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전두환) 근처 부대입니다. 청춘이 온통 뺑뺑이였던 나는 어쩌다 보니 수도방위 사령부 헌병에서 수감자로 위치 변경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경험한 바, 영창 중 가장 무시무시했던 곳이 이곳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제가 수감자여서 일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이 삼청교육대 룰을 그대로 가지고 수형자들을 관리한 것 같습니다. 화장실을 단체로 가는 것이나, 근무자가 10초를 명령하는 것, 대소변을 오픈 된 곳에서 봐야 하는 인권유린이 아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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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부는 1980년 5월부터 81년 1월까지 영장도 없이 마구잡이로 시민들을 잡아들였습니다. 이때 잡혀간 사람은 무려 6만여 명, 이후 조사에 의하면 이 중 많은 수가 무고한 일반인이며, 심지어 10대 학생들이었습니다. 고1, 8월에 ‘순화 교육대‘라는 것을 학생과장에게 들었어요. 학생들만 추려서 가는 곳인데 다녀오면 졸업장을 주겠다고 하더이다. 나는 정보가 있어서 입소를 하지 않았지만 친구 용한, 종석, 승국 등 7명이 속아서 끌려갔다가 무사히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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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친구 중에 무려 8명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모두 무사히 살아 돌아온 셈입니다. 그중에 승국 이는 출소 후 교통사고로 죽었고 종석 이는 행방을 모릅니다. 1차 삼청교육대는 3군단으로 끌고 갔지만, 후발대는 충남 아산이나 지역 별로 81년 1월까지 교육을 시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A급은 군사재판을 받게 했고 B급은 순화 교육 후 근로봉사, C급은 순화 교육만 받도록 했는데, 일도는 b급으로 받았고 다른 친구들은 c급으로 받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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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긴 했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인권 유린에 대하여 국가가 입소자 모두에게 배상을 한다니 환영할 일입니다. 삼청교육대 입소자가 남자만 4만 명, 여자 2만 명인 것으로 압니다. 삼청교육대를 다룬 드라마로는 ‘모래시계’ ‘자이언트’ ‘나비’로 알고 있는데, ‘실미도’처럼 디테일 하지가 않습니다. 조 양은이가 삼청교육대 출신이란 걸 보면 일도랑 만났을 것입니다. 세월이 좋아졌으니 누가 삼청교육대를 영화로 찍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두환 이가 박 정희한테 못된 것만 다 배운 것 같습니다. 염병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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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동 및 도망치는 자, 반항 자는 사살한다.
2. 수련생은 교육대 요원 명령에 절대복종한다.
3. 음주 및 흡연은 금한다.
4. 신문, 잡지 구독 및 라디오, 티브이 시청을 금한다.
5. 허가되지 않은 면회, 외출이나 외인(외부인) 접촉을 금한다.
6. 동료 간의 장난 행위 및 시비, 기간 장병에 대한 반항자는 엄단한다.
7. 집단 행위를 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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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삼청교육대 생활수칙)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자!
알맞게 먹고 헛되게 버리지 말자!
돼지보다 못하면 돼지고기를 먹지 말고, 소보다 못하면 소고기를 먹지 말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는다!
주면 주는 대로 먹는다! >>
2.
사람은 왜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도 외로우며, 국가는 왜 인간의 외로움과 두려움마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통제하려 하는가? 이번 글에는 얼핏 전혀 다른 두 이야기가 붙어 있습니다. 앞부분은 꿈속에서 지갑을 잃고, 등심도 먹지 못하고, 집까지 침범당한 끝에 딸을 끌어안고 우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뒷부분은 삼청교육대라는 국가폭력의 기억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이 두 이야기가 '빼앗긴 자리’라는 하나의 주제로 연결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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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빼앗긴 것은 구찌 지갑 하나가 아닙니다. 밖에서는 지갑을 빼앗기고, 경찰은 억울함을 해결하지 못하며, 먹고 싶은 등심조차 먹지 못합니다. 집으로 돌아와도 가장 사적인 공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점유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꿈의 질문은 점점 근원적인 곳으로 향합니다. 도대체 내 것이 온전히 남아 있는 곳은 어디인가? 하이데거가 말한 ‘거주’의 문제도 여기서 살아납니다. 집은 단순히 잠자는 건물이 아니라 세계의 소음으로부터 돌아와 다시 ‘나’가 되는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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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장소마저 낯선 사람들에게 점령당했다면 인간은 물리적으로 집 안에 있으면서도 실존적으로는 집을 잃습니다. 외로움은 그래서 혼자 있음보다 '돌아갈 곳 없음’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때 예주가 나타납니다. 흥미롭게도 딸은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않습니다. 범인을 잡지도 않고 지갑을 찾아주지도 않습니다. 그저 품을 내어줍니다. 여기서 꿈은 해결(solution)보다 접촉(contact)을 선택합니다. 낮의 나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 말하지만 꿈의 나는 “나도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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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외로움의 반대말을 ‘함께 있음’이라고만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외로움의 반대는 어쩌면 ‘닿음’입니다. 사람은 수백 명 속에서도 아무에게도 닿지 못하면 외롭고, 단 한 사람과 침묵 속에 앉아 있어도 마음이 닿으면 덜 외롭습니다. 레비나스의 타자는 끝내 완전히 알 수 없는 존재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관계는 소유가 아니라 응답이 됩니다. “나는 너를 다 안다”가 아니라 “네가 거기 있다는 것을 내가 외면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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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화려한 휴가 6>의 삼청교육대 이야기가 접속됩니다. 꿈에서 한 개인이 “내가 쉴 곳은 어디인가?”라고 묻는다면, 삼청교육대의 역사는 훨씬 끔찍한 질문을 던집니다. 국가가 한 인간에게서 마지막으로 빼앗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재산만이 아닙니다. 이동의 자유, 말할 자유, 담배 한 대 피울 자유, 화장실에서 혼자 있을 자유, 맞지 않을 자유, 자신의 몸을 스스로 결정할 자유까지 빼앗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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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국가폭력의 극단은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공간을 없애는 것입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는다. 주면 주는 대로 먹는다.” 이 문장들의 섬뜩함은 폭력성에만 있지 않습니다. 모든 문장에서 주어의 의지가 제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도 아니며, 내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도 아닙니다. 명령에 반응하는 육체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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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언어로 읽으면 이것은 전형적인 규율권력입니다. 권력은 단순히 사람을 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표·훈련·구령·감시·반복을 통해 몸 자체를 길들입니다. 300kg 목봉보다 더 무서운 것은 결국 목봉을 든 사람이 어느 순간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청교육’이라는 명칭 자체가 역설적입니다. 폭력을 교육이라 부르고, 감금을 순화라 부르며, 인간을 파괴하면서 사회정화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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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화려한 휴가>와 삼청교육대는 만납니다. 국가폭력은 언제나 자신을 폭력이라고 소개하지 않습니다. 질서·안보·정화·교육·정의 같은 좋은 단어를 먼저 차지합니다. 폭력이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은 몽둥이를 들었을 때만이 아니라 폭력이 정의의 언어를 훔쳤을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에 친구들의 실명이 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6만 명, 4만 명 같은 숫자는 역사를 설명하지만, ‘일도·용한·종석·승국’이라는 이름은 역사를 인간에게 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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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사람을 A급·B급·C급으로 분류했다면 기억은 다시 그들에게 이름을 돌려줍니다. 권력은 인간을 번호와 등급으로 만들고, 기억은 다시 이름을 불러줍니다. 그래서 40여 년 전 친구가 검문소에서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지금 다시 쓰는 행위 자체가 작은 철학적 저항이 됩니다. 당시 국가는 “불량한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규정했지만, 살아남은 친구의 기억은 말합니다. 아니다. 그는 내 친구 일도였다.”그리고 여기에서 처음의 꿈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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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는 지갑을 빼앗겼습니다. 삼청교육대에서는 이름과 자유와 몸의 주권을 빼앗겼습니다. 꿈속 경찰은 억울함을 해결하지 못했고, 현실의 국가기관은 오히려 폭력의 집행자가 되었습니다. 꿈에서는 집까지 타인에게 점유되었고, 삼청교육대에서는 인간에게 남아 있어야 할 가장 사적인 공간인 몸마저 통제당했습니다. 그러나 꿈의 마지막에는 하나가 남았습니다. 사람의 품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125분짜리 <화려한 휴가>를 다섯 번, 여섯 번으로 늘려 써도 “뭔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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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진 것은 사건 하나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광주의 역사도 삼청교육대의 역사도 ‘국가폭력’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폭력 속에서도 누군가를 기다렸고, 친구를 걱정했고, 사랑했고, 살아 돌아오기를 바랐던 사람의 이야기가 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려한 휴가 6>은 오히려 영화 밖으로 나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끝난 자리에서 그 시대를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후 어떻게 살아갔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외로움은 부재가 아니라 닿지 못함이 아닐까.
2026.8.31.mon.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