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문학공간> 2010년 4월호에 실었습니다 *
헤어스타일 혁명
심양섭
지난 학기에 내 강의를 들었던 주리가 복도에서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교수님, 로맨틱해지셨어요.”
나의 달라진 머리모양을 두고 하는 인사말이다. 머리를 기르고 파마까지 했더니 새로운 느낌을 준 것 같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접어드는 내가 여대생에게서 “로맨틱”(romantic)하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나쁠 리 없다.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은 회춘(回春) 욕구는 남자의 본능이다. 1960년대에 제작된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그레이>(Romance Grey)는 중년남성의 일탈심리를 잘 보여준다.
조금씩 바꾸는 것을 개혁이라고 하고 확 바꾸는 것을 혁명이라고 치자. 그런 구분을 내 머리에 적용한다면 내 머리는 확실히 혁명을 했다. 무릇 혁명에는 원인이 있다. 내 ‘머리 혁명’의 이유는? 여대생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나름의 두 가지 동기가 있다. 하나는 내 큰 얼굴을 ‘위장’(camouflage)하고, 오른쪽 귀 뒤쪽에 생긴 혹도 가리기 위해 머리를 기르다 보니 관리하기가 어려워 파마를 한 것이다. 혹이 생긴 내력은 이러하다. 붉은 점이 십 년 전에 사마귀로 변한 것을 레이저 수술로 제거해도 또 생기기에 성형외과를 찾아가 도려냈더니 그만 덧나서 혹이 되고 말았다. 용감한(?) 성형외과 의사가 아무 설명도 없이 칼질을 하는데도 가만있었던 내가 잘못이었다.
팔 년 전, 미국에 연수 갔을 때 혹시나 하고 미국 병원을 찾았더니 또 도려내 주었지만 혹은 다시 돋아났다. 피부암이 아니라는 조직검사 결과 외에는 소득이 없었다. 피부에 칼을 대면 그 반작용으로 혹이 생긴다. 혹을 드러내놓고(coming out) 사는 것도 방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흉터나 점, 혹 같은 것을 노출한 채 산다. 나는 약점을 가리는 쪽을 선택했다. 머리칼이 성해서 덮을 수 있을 때까지는 덮어보기로 했다.
그 때 헤어스타일 혁명의 두 번째 동기가 발동했다. 무언가 나를 얽매고 있는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수염을 기르거나 머리 모양을 특이하게 해도 조직생활에 별 지장이 없다. 한국에서는 다르다. 장발에 파마를 요란하게 한 남자, 수염이나 구레나룻을 보란 듯이 기른 남자를 부하로 반기는 조직은 없다. 일례로 삼성전자에서는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사과 직원이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사원들의 두발상태를 검사하여 인사고과에 반영했다. ‘튀는 것’은 조직생활에서 모험이다. 개성과 창의가 필요한 일부 자유 직종, 혹은 벤처기업에서나 그런 용모가 받아들여진다. 한국 남자가 머리를 기르고 파마를 하고 다니면 예술가나 작가 아니냐는 질문을 곧잘 받는다. 나도 여러 번 그런 말을 들었다.
조직은 사람을 구속하는 대신에 응분의 보상을 한다. 보상을 바라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고는 조직에서의 자유를 추구하기 어렵다. 나는 헤어스타일 혁명으로 무언가를 과감히 잘라내고 싶었다. 그것은 권력욕일 수도 있고 재물욕일 수도 있다. ‘머리 혁명’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내 맘 한 구석에는 분명히 그 비슷한 심리가 작용했다. 여자들이 머리모양 바꾸기로 기분전환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미국 부통령 앨 고어(Al Gore)가 대통령선거에서 떨어진 다음에 한동안 수염을 기른 것에도 비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머리 혁명’을 내 맘대로 단행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최소한 아내의 묵인, 아들의 이해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갑작스런 변화로 충격을 주지 않으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몇 달 전부터 나는 머리 혁명의 운을 떼 놓고,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했다. 아내는 당초 “나는 머리 기른 남자가 제일 싫다”며 반혁명선언(?)을 했으나, 나의 지연전략과 반복전술에 따라 그 태도가 점차 누그러졌다. 아들은 처음부터 “그래? 아빠가 굳이 하고 싶다면 뭐……”라는 반응이었다. 엄마를 닮아 곱슬머리인 아들에게 “너도 파마해서 머리를 펴 봐”라며 스트레이트파마를 권하기도 했다. 결국 나는 아들을 내 ‘머리 혁명’의 동맹군으로 끌어들였다.
마침내 헤어스타일 혁명은 성공을 거두었고, 내가 새로운 머리 모양을 한 지도 어느 덧 삼년 반이 지났다. 염색 이력은 파마보다 약간 더 오래다. 염색에 파마까지? 아내는 그 두 가지가 머리에 얼마나 나쁜지 아느냐면서, 횟수라도 줄이라고 말한다. 나도 그 말에는 동의하여 파마도, 염색도 일 년에 두 번씩만 하려고 한다.
나는 한동안 고급미용실을 출입하며 전담 미용사에게만 머리 손질을 맡겼다. 파마도, 염색도 최고급수준을 고집했다. 아내가 동네 아파트 상가에서 염가로 머리를 자르는 데 비하면 사치였다. 요즘은 나도 집에서 가까운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고, 커트도 하고, 염색은 숫제 집에서 한다.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되는 고급미용실이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리는데다가 그만한 질의 차이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염색을 하고 파마를 하면 확실히 젊어 보인다. “젊어 보인다,” “동안(童顔)이다”는 말을 들으면 우쭐해진다. 내가 젊은 인상을 강렬하게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내 스타일을 지향한다. 좀 더 낭만적인 머리 모양에 편한 복장을 하고 싶다. 고지식하게 늙어가지 않고, 시대와 더불어 호흡하며 여생을 보냈으면 좋겠다. 성공을 향해 돌진하는 인생이 아니라 여백과 여유, 맛과 멋이 어우러진 삶을 살려고 한다.
요즘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중년 남성을 ‘꽃중년’ 혹은 ‘미중년’이라고 부른다. 어느 여기자는 칼럼에서 “나이 든 남자도 여자들을 열광시킬 만큼 매력적일 수 있다”면서, 중년 남성을 향해 “보수적이고 닫혀있는 태도”를 버리고 “자기계발에 투자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하”라고 권했다. “성적인 긴장감이라곤 없는” “전혀 구애활동이 일어날 대상이 아”닌 아저씨로 전락하지 말라는 것이다.
서양미술사 책에서 중세 유럽 귀족들이 가발로 멋을 한껏 부렸다는 이야기를 읽는 순간, 나는 야릇한 희열감을 느꼈다. 더 늙어 머리숱이 현격하게 줄었을 때의 대안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수염은 어떨까? 수염 기르는 것은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 인상에 수염이 어울릴지도 알 수 없다. 구레나룻은 긴 편인데 일부러 기른 게 아니라 머리를 기르다 보니 덩달아 길어진 것이다. 파마나 염색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 비하면, 날마다 머리 손질하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매일 샴푸로 감고 린스로 헹구어 드라이어로 말린 뒤 영양제를 발라주는 게 고작이다. 파마를 했기 때문에 따로 머리를 세우거나 하지 않아도 된다. 발모제나 탈모방지제는 쓰지 않았는데 얼마 전에 약국을 경영하는 처형이 권해, 지금은 발모용 샴푸도 쓰고 탈모증 치료제도 뿌린다. 대머리가 되고 나서 머리카락을 심는다고 거금을 들여 아프기 짝이 없는 머리카락 이식 시술을 받는 것을 보면 평소에 투자와 노력을 해 둘 가치는 충분히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사물의 가치보다 외형을 중시하는 시대다. 치아교정, 성형과 함께 미용산업이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다. 병원 중에도 성형외과와 피부과, 안과, 치과가 인기다. 유행을 지나치게 좇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시대에 맞게 어느 정도 멋과 낭만을 추구하는 것은 무방하지 않겠는가. 너무 꾸며도 안 되지만, 너무 꾸미지 않아도 민폐(?)를 끼칠 수 있다. 늙을수록 더 화사해질 필요가 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고 말한다(창세기 1장 27절). 변조는 안 되지만, ‘하나님의 형상’에 걸맞은 아름다움과 품격을 갖추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