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타령 딸타령
-딸에게 보내는 독립선언-
한힘 심현섭
아들은 없고 딸만 셋이다. 그러나 너희들 키우면서 단 한번도 아들 타령한 적 없다. 첫째 딸을 낳았을 때는 길을 가는 데 양장점이 눈에 띠었다. 두 번째는 은근히 아들이기를 바랬다. 왜냐하면 사람은 여자도 있지만 남자도 있기 때문이었다.
분만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간호사가 이쁜 공주님을 보셨다고 외치고는 문을 닫았다. 졸고 있던 눈이 별 감각이 없이 다시 감기기 시작했다. 마음 한 구석에 아들이면 괜찮았을 텐데 하는 미련이 도사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신생아실에 가서 면회를 하려는데 앞선 할머니가 "이를 어쩌나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하며 혀를 찬다. 자세히 넘겨다보니 아이의 귀 바퀴가 없이 구멍만 덩그러이 뚫려있다. 내 딸아이를 데리러간 간호사가 돌아오는 동안 이번에는 어디가 잘못된 아이를 안고 오는 거 아닌가 조마조마 하였다. 그러나 건강하고 부족한 데 없는 온전한 아이를 보여주며 함께 기뻐했다. 잠시나마 섭한 마음을 가졌던 것을 하늘이 여지없이 질책하는 듯하여 부끄러웠다.
둘째를 낳은 지 9년 만에 셋째가 생겨났다. 더 낳으려니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늘의 뜻이라고 여기고 낳기로 했다. 아이가 생겼다고 하니 모두가 이번에는 아들 낳기로 작정을 했다고 수군댔다. 틀림없이 양수검사를 해서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낳기로 한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검사결과에 따라서 아들이면 낳고 딸이면 지우겠다는 세간의 모진 잣대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일이었다.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하지 않고 낳기로 했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믿질 않았다. 그래도 아들 욕심이 있으니까 혹시 아들 아닐까해서 낳는 거라는 결론이다. 나하고 아들하고 무슨 상관이 있기에 진정 내가 아들을 바라고 있다고 이다지도 지레 짐작을 하는 것인가 원망스러웠다.
어린이날 두 딸아이들을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선물을 하나씩 사주고 남산 국립극장에 어린이극을 보러갔다가 진통이 시작되어 곧바로 동네 산부인과 병원으로 달려갔다. 집에 침구를 가지러 갔다 병원에 돌아오니 간호사가 대뜸 하는 말이 "아주 예쁜 따님을 낳으셨어요. 아들이 아니면 어때요 지금은 딸이 제일이에요."
뒤이어 장모님께서 내 팔을 붙잡고 "너무 서운해하지 말게 딸이면 어떤가 잘만 키우면 되지." 나를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이 내게는 도무지 동문서답 같은 황당한 말로 들렸다. 아니 누가 뭐랬나. 아들이기를 바란 것도 아니고 딸이라고 서운하다는 말이나 표정을 지은 적이 없는 데 나는 아들을 바래서 아이를 낳았다고 세상이 결정한 것이 못내 마땅하질 못했다.
내 앞을 가로막는 모든 이들을 밀치고 우리 앞에 태어나 준 셋째 딸아이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너는 아들을 바라다 나온 아이가 아니고 바로 너를 기다리던 부모 앞에 꽃처럼 피어난 아이라고 목청껏 외치고 싶었다.
아들을 낳던 딸을 낳던 그것은 내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다. 나는 우리를 찾아준 보석 같은 아이들과 함께 삶의 길을 같이 간다는 생각이다. 딸아이들을 키운다는 생각조차도 부담이 된다. 자라 가는 아이들에게 내가 영향 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가하면 키운다는 말조차 오만한 기분이 든다.
아들만 둔 친구들은 언젠가부터 딸들이 있어서 좋겠다는 소리를 했다. 나는 아들만 있어서 좋겠다는 소리는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아들만 있어서 좋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들만 둘을 둔 친구는 지금이라도 딸만 낳을 수 있다면 낳겠다고 했다. 딸이 많은 집은 화기애애해 보이는 모양이다. 아이들과 유원지나 야외에 나가면 여기 저기 딸들을 데리고 지나가는 부모들을 보게 된다. 우리 입장이 그래서 그런지 딸이 있는 집은 가족이 함께 밖으로 나다니기를 즐긴다고 여겼다.
어쩌다 사내아이들이 오면 소란스럽고 장난이 심해서 도통 우리 집 아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광경에 입이 벌어지곤 했다.
남성이 우월한 시대로 인류는 오랜 세월을 보내왔다. 한때 모계사회를 이루기도 하였으나 역시 여성은 남성에 종속되어 존재해 왔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정치 사회 문화 경제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에 대등한 객체로 인정되고 또 그 자질이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여권의 신장은 여성에 대한 광범위한 교육기회 제공과 함께 남녀평등 의식의 확장, 여성의 경제적인 독립, 출산 및 육아와 가사에서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시간적으로 노동부담을 덜 갖게 된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너희는 아들 대신 태어난 아이들이 아니다. 아들이 부러워서 애를 태우다가 아들을 낳으려고 태어난 딸이 아니란 말이다. 내 마음 속에도 결코 없었지만 너희들 앞에서 아들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아들이 귀한 것 이상으로 너희들은 딸로서도 더할 수 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런 아이들이다.
세상이 너희들을 기다린 듯이 이제 여성들도 얼마든지 자신의 꿈을 펼쳐나갈 수 있는 여권시대가 되었다. 그렇게 될 줄 알고 딸을 낳은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런 저런 예단 자체가 불경스럽다. 다만 너희와 나와의 인연으로 만난 것일 뿐이다.
신랑 잘 만나서 시집 잘 가는 것이 여자의 삶의 목표인양 이야기하는 것이 나는 제일 싫다. 어떤 총각이 너희를 잘 만나서 장가 잘 가게 되었다고 싱글벙글하도록 만들어라. 잘 된 결혼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마라. 그런 결혼은 네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자신의 삶의 키를 맡기는 것과 같다.
스스로 걸어가라. 남자는, 남편은 함께 길을 가는 동반자일 뿐이다. 그 어깨에 너희들의 모든 것을 걸치고 매달려 가는 대상이 아니다.
나로부터 비롯하지 않는 행복은 범람하는 강가에 매어놓은 나룻배와 같은 것이다. 언제 떠내려 갈런지 모른다.
너희들이 딸이기에 더욱 사랑스럽게 여기는 아빠가 이 시대에 여성으로서 한 가정의 딸로서 멋진 삶을 가꿔가기 바라며 너희들에게 자랑스런 독립을 선언한다.
- 이 글은 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던 한 남자의 고백이다.
첫댓글 더러는 잘못 생각하고있는 여성들의 입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글입니다. 심선생님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