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고양이를 묻어주다
2005년 9월 어느 날,
체험학교에 놀러 온 동요작곡가 겸 가수 이00 씨가
“송쌤 체험학교에 경사가 났습니다.”
“무슨 경사요!”
“일단 따라 와 보이소”
체험학교에 일하는 나도 모르는 경사를 체험학교에 놀러 온 손님이 났다며 따라오라 하니 이럴 때 주객전도라는 말을 사용하나 보다.
도대체 어떤 경사가 났길래 나보고 따라 오라는 것일까! 궁금해 하며 따라갔더니 체험학교 서편 창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창고에서 나도 모르는 금덩어리라도 나온 것일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창고에서 금덩어리라도 나 왔나요?”
“송쌤 경사는 이겁니다”
이00씨가 손으로 가르키는 창고 바닥에는 짚단더미가 있었다.
짚단을 가르키며 경사라고 하니 나는 황당했다.
“이기 뭔 경사란 말입니꺼?”
“짚단더미 안을 자세히 보이소”
짚단더미 속을 자세히 보니 아직도 눈을 뜨지 않은 호랑이 무늬의 새끼 고양이 네 마리가 올망졸망 붙어있었다.
촌에서 자주 보는 고양이 새끼라 그리 반갑지는 않았지만 이00씨의 감동에 재를 뿌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고 요놈들 귀엽네요”
이00씨는 어미 고양이에게 미역국을 끓여 주자고까지 했지만 난 얼버무렸다.
다음날,
비행기나 기차 안에서도 아기를 낳으면 재수가 좋다며 산모에게 선물을 준다는데 하물며 체험학교 창고 안에서 새끼를 낳은 어미 고양이를 그냥 지나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어제 본 새끼고양이도 눈에 계속 밟혀 냉장고 안에 있는 멸치를 꺼내들고 창고로 갔다.
어미고양이가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보고 있는데 어미 고양이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내 쪽으로 눈을 돌렸다.
어미 고양이가 나를 보자마자 몸을 움찔하며 깜짝 놀라더니 토끼눈이 되었다.
어미고양이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새끼들을 지켜야 할지 도망을 쳐야할지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멈칫 멈칫 하다가 결정을 내렸는지 어미 고양이가 벌떡 일어섰다.
젖을 물고 있던 새끼 고양들의 몸이 딸려 올라 가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미는 잽싸게 도망을 쳤다.
어미가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하여 새끼고양이에게 다가가 잠깐 구경했다.
새끼 때 귀엽지 않은 동물이 없다.
주변에서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어미 고양이 생각에 귀요미들을 오래 구경 할 수는 없었다.
어미를 위해 가져 온 멸치를 바닥에 내려놓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다음날 다시 멸치를 들고 창고에 갔지만 짚단더미 속의 새끼고양이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를 않았다.
어미가 새끼들의 안전을 위해 어디론가 옮겨간 것이 분명했다.
어미고양이를 생각해서 어제 갖다놓은 멸치는 바닥에 그대로 있었다.
나의 성의를 몰라주는 어미고양이가 야속했지만 어미고양이 입장에서는 내가 새끼들을 해칠 수 있는 위험인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사를 멀리 갔나보다 생각하고 새끼고양이들의 잔상이 거의 사라지려고 하는 어느 날, 체험학교 동편 황토집 옆 장작더미 창고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을 살펴보니 제법 자란 고양이 새끼들이 장작더미 속을 들락거리며 놀고 있는 것이 아닌가.
2주 정도 만에 다시 만난 새끼 고양이들이 너무나 반가웠다.
‘요놈들 멀리 이사 간 줄 알았더니 여기에 있었네!’
반가움도 잠시 어미와 다시 눈이 마주치면 새끼고양이들을 체험학교 밖으로 옮길 것 같은 불안감에 그날부터 황토방 창고 근처에는 아예 접근하지 않았다.
며칠 후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며칠간 계속 들려와도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일주일 계속 반복적으로 들려 오길래 가만히 귀를 기우려 보았다.
엄마를 찾는 새끼 고양이의 애절함이 느껴졌다.
‘이건 그냥 울음소리가 아니라 상태가 심각한 울음소리다. 내가 빨리 알아챘어야 했는데...’
빨리 알아채지 못한 나의 무심함에 미안함에 마음이 무거워 졌다.
고양이의 다급한 울음소리!
중 1때 였다.
작은 방에 군불을 넣기 시작했는데 아궁이 안에서 고양이의 다급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야~옹, 이야~옹”
고양이 말을 배운 적은 없지만 ‘살려줘, 살려줘’라고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음속에서는 ‘종대야 장작들을 빨리 끌어내라’라고 말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나의 손은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난 무서웠다.
비록 살아있다 하더라도 털이 다 타서 벌겋게 익은 흉물스러운 고양이를 두 눈으로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더욱 다급해 졌다.
길게 울었던 조금 전과 달리 짧게 계속 반복을 했다.
“야앙! 야앙! 야앙!”
고양이의 구조 요청 소리가 커질수록 나의 두려움도 커져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몸을 떨고 있는 그때, 불을 뚫고 고양이가 밖으로 튀어 나왔다.
“엄마야!”
난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정신을 차려서 고양이를 살펴보니 수염이 몇 가닥 타고 털은 연기에 그을린 흔적만 있을 뿐 별다른 화상은 없었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옆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 고양이를 끌어안았다.
두려움 때문에 패닉 상태가 되어 재빨리 조치를 취하지 못한 내 자신이 미워졌다.
그리고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중학교 때의 어리석음을 되풀이 할 수 없어 뛰어나갔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따라 가보니 황토집 가운데 장독 뒤였다.
기척을 느낀 새끼 고양이가 어미가 찾아 온 줄 알고 숨어있던 장독 뒤에서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사람을 보면 본능적으로 도망을 가야 하는데 새끼 고양이는 도망 칠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어미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하며 다시 장독 뒤로 비틀 거리며 들어갔다.
‘울음소리가 들려 온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그럼 일주일 동안이나 굶었단 말인가!’
마음이 쓰려왔다.
나는 식당으로 달려가 냉장고 안에 있는 멸치와 우유를 가져 와 새끼 고양이 앞에 차려주고 나 때문에 먹지 못할 까봐 자리를 피해 주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는데 새끼고양이는 입에도 대지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미를 계속 찾을 뿐이었다.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아 우유 접시를 입 가까이 가져다주어도 먹지를 않았다.
새끼 고양이의 상태가 심각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서 있지도 못하고 바닥에 드러누워 거친 숨을 내 쉬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도 어미를 찾는 마지막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미안했다.
하루만 일찍 왔더라도 이지경은 되지 않았을 텐데...
나의 때늦은 후회도 새끼고양이의 생명을 붙잡을 수 없었다.
새끼 고양이가 숨을 멈추었다.
눈 앞에서 숨을 거둔 고양이를 뒷산에 그냥 버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처리하지 작년에는 죽은 새도 무덤을 만들어 주었는데 새끼 고양이도 무덤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러나 일주일간 굶어 죽은 새끼고양이에게 측은지심이 생겨 그냥 무덤만이 아니라 장례식을 치루어 주고 싶었다.
예를 갖추려면 그냥 땅에 묻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사무실에 가서 새끼 고양이를 감쌀 천을 찾기 시작했는데 마침 고양이 그림이 있는 타올이 눈에 들어왔다.
‘이놈이 살아서는 복이 없었는데 죽어서는 복이 있네!’
고양이 그림이 있는 타올로 죽은 새끼 고양이 염을 했다.
장지로 체험학교 동편 동산 꼭대기로 정하고 땅을 팠다.
그리고 나무 합판을 상여로 삼아 장지로 운구하여 새끼 고양이를 땅에 묻고 다른 동물들이 파해치지 못하도록 제법 큰 덮개돌을 올려놓았다.
무덤을 다 만들고 나서 명복을 빌어 주었다.
‘새끼 고양이야 좋은 곳으로 가라! 다음 생에서는 어미에게 버림받는 고양이로 태어나지 말고 인간으로 태어나 행복하게 살아라!’
명복을 빌고 나서 고양이 무덤가에 앉아 있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에게 키우라고 남겨 둔 것이 아닐까!’
어미가 새끼를 버린 것으로 만 생각했었는데 남겨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머리 속이 복잡해 졌다.
새끼 고양이 장례식 이후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동안 나를 만나면 도망을 쳤던 교촌마을 들고양이 들이 나와 눈이 마주쳐도 도망을 치지 않고 눈을 깜박거리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아마도 죽은 새끼 고양이를 버리지 않고 장례까지 치루어 준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들고양이들을 만날 때 마다
‘송국장 아저씨 새끼고양이 무덤 만들어 주어 고마워요~’라는 인사를 듣는 것 같았다.
첫댓글 저도 그런 일이 작년에 있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그런일이 있으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