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할 때였습니다. 한 아이가 일기 숙제를 도통 해오질 않았어요.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학원에 갔다 집에 오면 밤 9시가 넘는다고 했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학원 숙제 하다보면 자정이라 하더군요.
그날부터 저는 하고 싶은 사람만 일기 숙제를 해오게 했습니다.
학생은 겨우 열 살이었는데도 피아노, 태권도, 영어, 수학, 컴퓨터 등 제 고등학교 때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버거워 보였습니다. 부모님 두 분 다 고학력자였죠. 부모는 아이가 잘 해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거든요.
요즘 그리 사는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중고등학생은 더 합니다. 미래 사회를 살아갈 인재를 기른다면서, 우리 어른들이 했던 그 방식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미래 사회는 창의성, 문제해결력, 디지털 리터러시 등이 중요해진다고 하고 있죠. 그런데도 결국 어려서부터 입시 경쟁입니다.
전쟁 후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폐허였습니다. 가진 자원도 하나 없었죠.
더글러스 맥아더가 '이 나라가 재건하는 데에는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교육에 힘썼습니다. 국민 개개인이 성실하게 경쟁했어요. 우리에게 여유 같은 건 사치였습니다. 그 결과‘한강의 기적’을 이뤄내고, 24시간 잠들지 않는 다이내믹 코리아로 거듭났습니다. 이 피땀 어린 노력 덕분에 지금은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가올 미래 사회를 준비해야 할 시기입니다. 시대가 많이도 달라졌어요. 숨 막히는 학원 뺑뺑이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창의성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교육학자 이범은 '최소 하루 3시간, 누구의 개입이 없는 자유시간이 확보되어야 창의성이 계발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충분한 자유시간을 주고 있나요?
장 자크 루소는 ‘에밀’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교육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하고 유익한 규칙’이라고 했습니다. 시간을 낭비하라. 이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표현일 겁니다. 하지만, 다이내믹 코리아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시간의 낭비’가 아닐까 합니다. 역설적이죠.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낭비하려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바로 부모의 불호령이 떨어지죠. 공부해라, 학원가라, 책 읽어라, 숙제는 다 했니, 사당오락(四當五落) 혹은 삼당사락(三當四落) 이다, 하면서요.
아이 입장에서는 생각해 보면 매일이 전력질주인데도 말입니다. 학교 수행평가 끝나고 한 숨 좀 돌리려 하면 바로 기말고사 준비해야합니다. 쉴 틈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멍때리기 대회’까지 열릴까요.
뇌과학의 권위자 박문호 박사는 인간이 잠을 자면서 모든 것을 리허설하면서 낮에 학습한 것을 기억하게 된다고 합니다. 즉, 충분한 휴식 시간이 있어야 기억도 잘하고 학습 효율도 높아진다는 것이죠. 아이들에게 무조건 배울 것을 집어넣기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머릿속에서 재구성할 시간적인 여유를 충분히 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루소의 말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시간을 낭비하게끔 해줘야 합니다. 어린 시절의 시간 낭비는 결코 낭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 PISA의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공부를 재미없어하면서도 가장 많이 하는 걸로 나옵니다. 불행하죠. 숨 돌릴 틈도 없이 자라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이 지금 불행해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제 부모는 욕심을 버리고, 아이가 스스로 시간을 갖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성할 수 있도록 여유를 줘야 합니다.
아이들이 시간을 조금 더 낭비하면, 우리 아이들은 조금 더 행복해할 겁니다.
더이상 주입식 인간 기계를 만드는 식으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교육은 안 됩니다. 거기에서 아이들의 창의성 계발도, 학습효과도, 행복도 없기 때문입니다. 작은 걸 잘 해보려다 큰 것을 그르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해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하는 근시안 교육으로는 교육의 백년대계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행복, 그를 위한 시간낭비!’
충분한 휴식!
이것이 당장은 시간 낭비 같지만
결국 높은 학습 효율과 창의성 계발로 이어져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게끔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