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1월 말이 되면 설산 아래 첫 마을, 옥호촌에서도 서서히 '사주커(殺猪客)'가 시작된다.
<오랜시간 직접 키운 돼지를 잡아 손질하고 있는 나시족 아버지와 아들>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나시족의 전통이고 350 여 옥호촌 모든 가구가 여는 '잔치'이다보니,
사주커는 약 두 달간 진행이 되며 12월은 그 절정을 이룬다.
매년 겨울 진행되는 이 사주커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한 해 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함으로써 그 보답을 하는 것이며,
둘째는 이렇게 그 해를 정리하며 남에게 베풀어야만 내년에도 더 많은 복과 풍요로움이 더할 것이라는
소박한 소망인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사주커는 운남지역의 음식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운남 지역 특산 중에 '나시 훠투이(火腿)라는 것이 있다. 스페인의 '하몽'과 비슷하며 살짝 치즈 맛이 나는 것이 정말
일품이다! 잡은 돼지의 다리만을 모아 염장을 하여 보관하는 것인데, 그렇게 한 번 염장한 돼지 다리는
처마 밑 서늘하고 바람 잘 통하는 곳에서 1~2년 동안 숙성을 시킨다.
산간 지방에서 구하기 힘든 고기를, 오랫동안 보관하며 먹을 수 있도록 발전시킨 '생활의 지혜'가
하나의 전통과 풍습으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1,2 년 전 사주커 때 미리 염장해 놓은 훠투이'가 처마 아래 걸려 있다.>
사주커 날자가 결정되면 주인 내외는 부지런히 친지들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린다.
옥호촌 혹은 이웃 마을에 사는 친지들뿐만 아니라 리장 시내, 저 멀리 샹그릴라, 호도협, 대리에 나가 있는
친구들도 초대를 한다. 초대를 많이 하고 그 사람들이 많이 올수록 더 많은 복을 받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초대를 하고 나면 주인은 며칠 동안 공들여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1년에 한 번 치르는 사주커는 나시족들에게 있어서
'흥행'과 '접대'에 모두 성공해야 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설산 아래서 나시 훠궈 국물을 준비하는 '사주커'의 주인>
사주커 당일,
<쌓여 있는 맥주가 아직은 적다. 손님들이 다 오기에는 이른 시각이간 보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인 주인 내외의 집에 점심부터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바깥주인은 문 앞에 서서 들어오는 손님들 모두에게 담배를 권하고,
안주인은 사탕과 호두, 해바라기씨, 호박씨 등이 담긴 광주리를 내밀며 손님들을 맞이한다.
초대받은 손님들은 절대 봉투를 준비하지 않는다. 친한 사이일 경우 그저 맥주 한 박스(중국은 맥주 값이 싸다.
한 박스에 약 8,500원 정도)를 들고 가 집안 마당에 쌓아 놓는다.
집에서 기르는 닭이 낳은 계란 한 판을 들고 가는 경우도 있다.
(오래전 한국의 시골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인데…….)
<빈손으로 혹은 맥주와 계란을 들고 친구 혹은 친지의 집을 방문하는 '사주커'의 손님들>
그렇게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들어가면 잘 피어오른 숯불이 잘 썰어진 돼지고기와 함께
마당 곳곳에 준비되어 있다. 비록 서로 모르는 사이일지라도 손님들은 숯불 주변에 자연스럽게 둘러앉아
돼지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돼지고기에서 떨어지는 기름이 큰 불꽃을 일으키는 사이,
사주커에 제법 많이 참석해 본 어느 손님은 쇠집게도 아닌 그저 평범한 나무젓가락으로
고기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지상 최고의 '직화 돼지고기'를 구워낸다.
서로에게 권한 그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씹는 순간....
강렬한 맛의 충격과 함께 또 하나의 강한 의구심이 머릿속에서 일어나게 된다.
'아, 내가 그동안 먹었던 돼지 바베큐라는 것들은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정말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최고의 맛이었다!!
정신없이 몇 점을 더 집어 먹다보면 자연스럽게 술 한 잔 생각이 나게 된다. 술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주인이 어느새 들어와 잘 익은 '오미자주' 혹은 '칭커주' 따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담근 술의 맛 또한 일품이다.
작은 잔 두세 잔에 살짝 취기가 오르며, 기분과 고기 맛은 점점 더 좋아진다. 그렇게 술과 고기에 취해 먹다가...
보통 이쯤에서 사주커에 초대된 '초짜'들의 첫 번째 실수가 시작된다.
(내가 저지른 두 번째 실수는 이후에 다시 언급한다.ㅋ)
그 실수는 바로 이렇게 바베큐만 먹는 것이 사주커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즉, 숯불 바베큐는 애피타이저에 불과했던 것이다.
<옥호촌의 흔한 애피타이저 바베큐>
이미 어느 정도 배가 부른 손님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주인은 정식이 차려진 곳으로 그들을 '몰고' 간다.
<또 다른 사주커 정식이 차려진 곳>
그곳에는 아무리 배가 불러도 먹지 않을 수 없는 또 다른 나시족의 정찬이 준비되어 있다.
나시 훠궈(納西 火鍋,나시 샤브샤브)와 8가지의 나시 특선 요리!
하나씩만 맛을 보아도 일반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요리다.
이미 배가 부른 사람이라면 .... 음식을 많이 남기거나 사양할 수는 없으니...
술의 힘을 빌려 안주 삼아 요리를 먹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물론 밥과 국은 빼 놓고 말한 것이다.
정말로 배가 부르다면 밥은 적당히 사양하도록 하자. 이것만큼은 주인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 ㅋ
<나시 훠궈와 함께 차려진 8가지 요리의 나시 특별 요리... 일일이 재료와 이름을 기억 못하는 것이 아쉽다.>
그렇게 잘 먹고, 잘 마신 후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면...
멀리 보이는 설산의 풍경에, 포만감 가득한 배에, 살짝 오른 취기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항상 마을 잔치집에 다녀오시면 노래를 흥얼거리시고, 트림을 하시며 막걸리 냄새를 풍기셨던 큰외삼촌 생각이 났다.)
그러나 내게 행복한 순간은 잠깐 뿐이었다.
나를 '사주커'로 초대한, 리장에서 사업을 하는 동생이 말했다.
"자, 다음 집으로 가시죠!"
어?, 어! 하며 바로 사주커를 하는 다른 집으로 나는 끌려갔고 첫 집의 과정을 되풀이 했다.
힘들었지만 주인의 호의를 생각해서 최대한 위장을 늘려 성의껏 먹었다. 이것이 위에서 말한 두 번째 실수이다.
왜냐하면 그 두 번째 사주커 이후로 또 한 집이 더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헐~이다.)
<300가구 정도가 12월 한 달에 몰아서 사주커를 진행하니 하루에 약 열 집이다.
그 중에 초대를 받은 집은 보통 두세 집. 많으면 다섯 집. 동생은 내게 이 사실을 내게 말해주지 않았고
나를 '술상무'-여기서는 '음식상무'가 맞을 것 같다-로 데려간 것이다.>
'세 번째' 사주커 집에서는...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엄청난 체력을 소모시킬 수도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벌써 하루 두 번 이상의 사주커에 참여한 손님들은 음식을 보는 것조차 두렵다.ㅋ>
나시족 식생활 문화와 더불어 오랜 전통으로 내려온 ‘사주커’, 그 본질은 우리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던,
‘나눔과 감사의 정(情)’이다.
세계 많은 나라를 떠돌다 이곳 여강의 옥호촌이란 곳에 정착하여 사는 나, 따슝에게
나시족 원주민들이 보여준 ‘사주커의 깊은 정’을 한국에서 있는 많은 사람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다.
'나시족 사주커 문화탐방'이라는 이름의 여행 프로그램으로도 만들어 볼 생각이니...
12월, 옥호촌 사주커에 직접 한 번 와 보시라!
고기맛과 술맛이 맘에 들지 않으면 여행 경비는 따슝이 다 책임진다~.
(단, 3차까지는 가보는 것으로 하자.^^)
* 인연따라, 여강따라~ 따슝.
첫댓글 이 카페에 실린 사진과 글만 갖고도 다큐 한 편 충분히 나올 듯. 사주커를 메인으로 두고 리장~옥호촌을 잇는 산책 같은 다큐멘터리 한 번 만들어보기를... 배부른 다큐
다큐든 뭐든 배부르면 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