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단락 / 8-10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요나
첫 번째 단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림으로 내려가고 내려가 스올까지 내려간 요나가..
그때서야 비로서 기도의 자리로 돌아와 부르짖게 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요나를 하나님께서는 버려두심이 아니라
두 번째 단락에서 7절에 산의 뿌리 까지 내려간 자신...땅이 빗장으로 막아
그 깊고 깊은 구덩이에서 자력구원이 불가능한 자기를 주께서 구덩이에서 건져주셨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제 3번째 단락에서는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무엇에 대한 감사입니까? 당연히 구원에 대한 감사입니다.
누가 구원받음에 대한 감사입니까? 요나 자신을 구원해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렇다면 요나 자신만 구원받음에 대한 감사인가? 그것만 아님을 성경이 다시 말씀합니다.
그것이 8절입니다...8절을 봅시다.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여기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누구를 말할까요?
물론 1차적으로는 요나자신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모든 자라고 함으로 요나 자신만을 향한 말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나 자신만 아니라면...여기 모든 자는 누구를 말합니까?
이들은 남북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합니다..
실제로 남북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엇을 버렸다...받은 은혜를 버렸다는 겁니다...
그 은혜의 보좌...그 은혜의 좌소가 어딥니까?
이 은혜의 보좌를 알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말씀이..
4절입니다..4절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즉 자신이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함으로...주의 목전에서 쫓겨 났을 때...
자신은 다시 무엇을 바라보겠다...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는 겁니다.
은혜의 보좌가 어디냐...주의 성전입니다...성전이 은혜의 보좌입니다.
그러므로 히4:16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합니다.
여기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라고 하는데...그 은혜의 보좌가 어디다? 성전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막을 공부해보면...성막 안에 있는 자에게 뭐가 있다? 구원이 있고..
성막 밖에 있는 자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실제로 이것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노아 방주입니다.
노아 방주는 성막의 예표입니다...방주안에 있는 자에게는 구원이 있지만...
방주 밖에 있는 자는 그가 세상에 아무리 선한 자라고 할지라도...구원이 없다는 겁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표가...도피성입니다...도피성도 방주입니다..
부지중에 오살한 자...부지중에 죄를 지은 자가 피해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은혜의 장소...긍휼하심을 받을 수 있는 장소가 도피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을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인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성전으로 담대히 나아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성전이 은혜의 보좌입니다.
물론 성전 안에 모인 성도된 우리들이...천성적으로 죄인들이라...완전하지는 못하고 문제도 많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떠나서는 세상의 어떤 것도 은혜의 보좌가 될 수 없습니다.
왜 성전의 모든 것이...예수그리스도의 모형이요..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떠나서 죄인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고..거듭나는 길이 있고...영생의 길이 있을까요?....
아니요...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그러니까 구약에 성전은 다 예수를 예표하는 겁니다.
성경7절에서 요나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 났을지라도...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는 것은
결국 요나는 성전의 주 되신 예수를 바라본다는 뜻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성도는 예수를 생각만해도...은혜가 되고...
예수를 바라만 보아도 은혜가 임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8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주께서 베푸신 은혜를 버렸지만...
이제 자신은 다시 주의 성전...언약의 주 되신 예수를 바라봄으로
하나님께서 죄 용서와 구원의 은혜 회복케 하심으로
이제 자기 자신이 어떻게 살겠다고 서원하는 내용이 9절입니다.
9.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9절이 여러 가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 같지만...사실은 단 하나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겠다는 서원을 하고 그 서원을 갚겠다는 겁니까?
범사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로 살겠다는 것이 서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되게 하신 그 구원과 은혜로 인하여..감사하며 제사를 드리는 성도..
그 성도의 제사...예배...찬양을 기뻐 받으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최고의 제사는...
구원하심의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제사가 최고의 제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왜 그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제사가 최고의 제사가 되고...예배가 되고...찬양이 되느냐..
9절 끝절에...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구원은 누구에게 속하였다? 여호와께...여호와만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겁니다.
이것은 어떤 걸로도 안됩니다..무엇으로도 안되고...아무리 큰 일을 해도 안되는 겁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은혜...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0.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세상 만물의 주권자가 누구시다?
더 나아가 인간의 생사화복의 주권자가 누구시다?..하나님이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닷물의 주권도 가지고 계시지만...
더 놀라운 것은 바닷속에 사는 수 많은 고기들의 주권도 가지고 다스리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삼키라 하시면 바다속에 던져진 요나도 물고기가 삼키고...
하나님이 때가 되어 토하라 하시니...물고기가 토하므로 요나가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 겁니다.
우리의 모든 주권...하나님께 달렸습니다...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새로운 하루를 허락하심을 먼저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하루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로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요나는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렇다고 요나의 모든 삶이 예수그리스도의 예표로 이해하시면 안됩니다.
요나가 사람들에 의하여 바다에 던져지고 스올에까지 내려가고...땅이 빗장을 잠구었지만..
하나님의 명하시므로...물고기가...땅이 요나를 다시 토해 냄은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마39-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