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임병걸
당신의 음악을 시로 노래하는 것은
어쭙잖은 일이지요
당신은 세상 모든 기쁨과 슬픔
아름다움과 눈물 죽음까지도
오선지에 담아놓은 시인인데
메마른 활자로 노래하려 든다니
알에서 깨어나
창공으로 날갯짓하는 새를
다시 알 속에 집어넣는 것이지요
어떤 시인이
당신의 녹턴보다 더 곱게
우련한 밤을 묘사할 수 있을까요
어떤 시인이
당신의 왈츠보다 경쾌하게
발라드보다 부드럽게
폴로네에즈보다 발랄하게
에튜드보다 격정적으로
사랑을 노래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당신이 내 시를
노래로 만들어주세요
당신이 뼈다귀같은 내 시에
붉은 피 흐르게 해주세요
숨결도 불어 넣어주시고
눈물과 웃음 사랑도 그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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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쇼팽의 피아노 곡을 듣다가 썼던 시입니다.
그는 피아노의 시인이지만, 사실은 활자로 시를 쓰는 어떤 시인보다 위대한 시인이었습니다.
'文字'라는 詩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과감히 부숴버리고 선율로 시를 쓰는 시인,
마치 형태와 색채라는 그림의 본질을 부수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 같았던 쇼팽,
그의 피아노 선율이 나를 울리고 웃기고 분노케하고 평화와 안식을 줍니다.
지난 주 금요일 가곡마을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조현영님의 '쇼팽' 이야기와 연주는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쇼팽을 깨웠습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 라는 영화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 바르샤바와 파리로 가서
쇼팽을 만나보고 싶어졌습니다.
20년 전쯤일까, 일선에서 한창 뛰던 저널리스트였을 때 바르샤바 근교에 있던 쇼팽의 생가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숲 속 아담한 단층이었던 쇼팽의 생가에서는 물론 그의 음악이 흘러나왔지요.
그 때는 쇼팽이 얼마나 위대한 음악가였는지 잘 몰랐던 시절이었구요.
(알았더라면 생가의 풀 한포기, 혹은 흙 한 줌 집어왔을 것을!)
녹턴을 테마로 한 쇼팽의 삶과 음악, 사랑과 조국애, 그리고 죽음
피아니스트 조현영 님의 물 흐르는 것 같은 해설과 녹턴 연주에 취한 밤이었습니다.
무대는 물론 객석도 관객의 마음도 온통 쇼팽의 선율이 넘쳐 흘렀습니다.
"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 정조 시대 문인 유한준의 말입니다.
조현영님의 해설을 통해 쇼팽을 만나니 정말 그를 알게 되고, 그가 보이게 되고,
분명 그의 음악이 예전의 음악과 달리 들렸습니다.
쇼팽은 진정 피아노를 사랑했고 피아노와 함께 잠들었으니 행복했겠지요?
그는 서른 아홉의 젊은 나이로 눈을 감았지만 그의 분신같은 음악들은 200년이 흘러도
텐샨 산맥을 넘어 실크로드를 따라 태평양의 파도를 넘어 극동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도 흘러나오니
분명 그는 부활한 것이지요?
비록 병마와 고독이 그를 괴롭혔고, 제국의 발굽 아래 신음하던 조국 폴란드가 그를 눈물짓게
했어도 그에게는 피아노가 있었으니까 외롭지 않았을테지요.
녹턴 연주와 해설에 곁들인 노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 도 가슴 뭉클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주인공이라는 '슈필만'이 사실은 쇼팽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피아노를 통해 자신을 구원하고 세상의 모든 분쟁과 증오를 녹여 마침내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쇼팽,
그가 태어난 시대와 내가 사는 시대가 달라 그를 만날 수 없었지만,
조현영님의 피아노 토크를 통해 나는 그를 분명 만났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밤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시간도 꽤 늦었지만 나는 다시 녹턴을 한참 듣고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 여의도에서 goforest -
첫댓글 선생님~너무도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 연주와 더불어 철학과 자신만의 생각이 깃들여 있어야만 진정한 음악이 된다고 항상 되뇌입니다.
자작시 "쇼팽" 언제 한번 음악과 함께 낭송 부탁해도 될까요? 연주는 제가 하겠습니다.^^
피아노 토크와 함께 행복하셨다니 저도 행복하네요.감사합니다...
좋지요^^ 다음 달 연주 테마는 무엇이지요? 기대 됩니다.
멋진 임병걸 선생님 !!!
시와 글이 아름답고 감동스러워 몇번이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가곡마을에 오시는 연주자분들도 청중분들도 넘넘 멋진 분들이
많으니 감동해서.. 행복해서... 울먹일때가 많으니...
하루 하루가 차암 아름답습니다~
좋은거 자랑하는걸 잘하는 자칭 무대뒤의 예술가 인지라
선생님의 글을 페이스북에랑 트위터에 올리고 싶은데...
괜찮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