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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코네리 [Sean Connery]
생년월일 : 1930. 8. 25
신 장 : 189
출생지 :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가 족 : 아들 제이슨 코네리
학 력 : 세인트앤드류스대학교 문학 명예박사
<닥터 노>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으면서 일약 세계적인 대 배우로 부상했고 이후 007 시리즈 <두번 죽다>, <골드 핑거>, <썬더 볼>,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네버세이 네버어게인> 등에서 주역을 맡았다. <언터처블>로 1987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및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상을 다수 수상는데, 프랑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Legion d'Honneur and Commandeur des Arts et des Letters를, <장미의 이름>으로, 영국의 영화 및 TV 예술 아카데니(BAFTA)가 수여하는 남우주연상을, 그리고 1990년에 BAFTA로부터 평생의 영화업적을 기려 수여하는 LATA 상을 수상했다. 1968년 스코티쉬 국제 교육 신용기금을 건립했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가난한 트럭 운전사였던 아버지를 둔 덕분에 '토마스 숀 코네리'는 일찌감치 생계의
곤란함을 몸소 깨우치며 살아야 했다. 그에게 생활이란 다른 또래의 아이들에게 허용된 수많은 즐거움으로부터
격리된 것이었고, 오히려 가족의 생계를 떠맡아야 하는 것이었다. 숀 코네리의 어린 시절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대영제국의 몰락과 불행히도 겹친다. 그런 불운한 시기에도 어린 코네리는 스포츠에 열의를 보였다.
그는 장차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될 꿈을 품었다. 그러나 가난은 그에게 일찌감치 학교를 중퇴하고 해군에
입대하도록 만들었고, 그나마 군대 생활도 위궤양 때문에 제대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의 하층민으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부두 노동자, 인명구조원, 미술학교의 남자모델 등
그때그때 돈벌이가 될 만한 일들을 닥치는 대로 했고, 그 와중에도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에게 가진 것이라곤 자신의 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기회가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였다.
1953년 숀 코네리는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해 3위에 입상했고, 그의 멋진 외모를 눈여겨 본 연예계에서
손길을 뻗어 왔다. 그러나 성공은 아직도 그에겐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그는 간혹 에딘버러에서 뮤지컬 공연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연기수업을 쌓았고, 1955년 영화 <Let's Make Up>에 출연하면서 영화에 정식으로 데뷔하게 된다.
스파이 같지 않은 스파이 - 007 제임스 본드
스파이 영화의 대명사 격인 007 시리즈의 원작자인 이안 플레밍(Ian Fleming)은 전쟁 기간 중 실제 첩보
업무에 종사한 인물이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해군 정보부에서 중령으로 일했고, 종전 후에는
<선데이 타임스>지의 편집부 기자로 근무하며 스파이 소설을 썼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제임스 본드
(James Bond)는 머리가 비상하고, 만능 스포츠맨에 여자, 도박 그리고 스포츠카를 사랑하는 스파이지만 이안
플레밍이 창조해낸 제임스 본드는 원작자의 경험이 녹아 유능하긴 하지만 유머러스한 면모는 결여된 좀 더
사실적인 스파이의 모습이었다. 그런 제임스 본드 배역이 숀 코네리로 결정되자 원작자인 플레밍은
"내가 생각하는 007의 이미지가 전혀 아니다"라며 반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62년 007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
<닥터 노(Dr.No)>를 제작하려 할 때 제임스 본드 역의 물망에 올랐던 남자 배우들의 이름만 들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캐리 그란트(Cary Grant), 렉스 해리슨(Rex Harrison), 트레버 하워드(Trevor Howard) 등 쟁쟁한 인물들이
제임스 본드역을 노렸고, 이안 플레밍 자신은 로저 무어(Roger Moore)를 캐스팅하고 싶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숀 코네리가 제임스 본드 역을 맡게 된 것 <데일리 익스프레스>지가 독자들을 대상으로
제임스 본드 역에 가장 걸맞는 배우를 공모하는 이벤트에 뽑혔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숀 코네리의 등용에
반대했던 이안 플레밍조차 영화 시사회가 끝난 뒤 "나는 큰 실수를 했다. 그야말로 바로 본드다"라고 말했다.
세계 최다, 최장수 영화 시리즈물인 <007> 시리즈에는 숀 코네리를 제외하고도 조지 레젠비(George Lazenby),
로저 무어, 티모시 달튼, 피어스 브로스넌이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었지만 제임스 본드를 연상할 때 사람들은
아직도 숀 코네리를 먼저 떠올린다. 물론 007 시리즈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동서냉전이라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섹스어필하는 본드걸, 비밀무기와 스펙타클 등 다양한 볼거리, 콜렉터라는 매력적인 범죄 집단의
창조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숀 코네리의 매력을 빠뜨릴 수 없다.
그가 출연한 007시리즈는 <닥터 노>를 비롯해 <007 위기일발>, <007 골드 핑거>, <007 선더볼 작전>, <007 두번 산다>,
<007 다이아먼드는 영원히> 로 총 6번의 시리즈물에 출연하며 '제임스 본드 = 숀 코네리'의 등식을 만들었다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은 정식 시리즈가 아니다). 그는 이런 등식이 성립되는 것이 배우로서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스스로도 본드 역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는 <007 두번산다 (You only live twice)>를 끝으로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골프를 즐기고 싶다며 본드 역을 은퇴했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를 쉬게 하지 않았다.
2대 본드를 맡았던 조지 레젠비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숀 코네리는 다음 편인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로 컴백하며
그만의 억양으로 "본드, 제임스 본드"를 말했다(본드는 자신의 이름을 꼭 두 번 말한다).
로저 무어에게 본드 자리를 내 주면서 그는 007 이미지를 벗으려 노력했고, 1975년엔 <왕이라 불리운 사나이>를
비롯해서 중년의 캔디스 버겐과 연기한 <바람과 라이온(The Wind And Lion)> 등에 출연하며 연기의 폭을 넓혀 나갔다.
그러나 숀 코네리의 '007 제임스 본드'에 대한 애정 역시 대단한 것이었다. 그가 은퇴한 뒤 당시로서는 무명에 가까운
'로저 무어'가 그럭저럭 제임스 본드 역할을 잘 해나가고 있는 동안 숀 코네리는 '로저 무어'가 연기하는 본드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했고, 마치 '본드는 이렇게 연기해야 하는 거야' 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양 로저 무어 주연의 007 시리즈
<옥토퍼시(Octopussy,1983)>에 대항해 자신만의 007 시리즈인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 1983>을 개봉했다.
"결코 안된다고 말하지 않는" 스파이는 그렇게 최후까지 본드 역에 충실했다.
제임스 본드 이미지와 여유자적한 스승의 이미지를 결합시킨 인물창조
앞서 숀 코네리가 제임스 본드로 자신의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을 염려하여 본드역을 은퇴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숀 코네리가 연기한 영화 속 '제임스 본드'는 그 자신인지도 모른다. 본드 역 은퇴 이후 숀 코네리는 알프레드 히치콕
, 브라이언 드 팔마, 휴스턴 감독 등과 함께 작업하며 연기 변신을 꾀한다. 그러나 코네리의 연기 변신이란 것은 크게
압축해보자면 두 가지 테마를 경우에 맞춰 변주한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본드의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패트런(patron) 혹은 스승의 이미지이다. 이 두 가지 테마를 가장 극적으로 잘 보여주는 영화가 <더 록(The Rock)>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미국의 악명 높은 감옥. 알카트라즈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유일하게 탈출에 성공했던
영국 MI6의 전직 스파이 존 메이슨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분명 그의 본드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숀 코네리의 연기에 필적할 만한 인물은 영화 <아폴로 13>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인 에드 해리스(Ed Harris) 정도였고,
그의 상대역으로 등장한 스탠리 굿스피드의 니콜라스 케이지(Nicolas Cage) 역시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배우이기는
하지만 숀 코네리에게 압도당한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게 했다. 숀 코네리는 이 영화에서 화학무기 담당 FBI요원인
니콜라스 케이지를 마치 교관처럼 이끌고 있는데, 이런 그의 캐릭터는 본드 이후 비중있는 조역으로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는 것이다.
가령 영화 <하이랜더>에서 숀 코네리는 '코너 맥클라우드(크리스토퍼 램버트)'의 친구이자 스승인 '라미레즈'로
등장해 코너를 불사신으로서 각성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 <장미의 이름>에선 바스커빌의 명 수도승으로
어린 크리스찰 슬레이터와 연기했고, <언터처블>에서는 아일랜드 출신의 고집불통이자 노련한 형사
제임스 말론으로 등장해 금주령 시대의 재무성 연방 수사관 엘리엇 네스(캐빈 코스트너)를 이끌어주는 역을 맡고 있다.
이외에도 이와 비슷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영화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인디애나 존스 3>에서는 존스 박사(해리슨 포드)의
아버지로, <붉은 10월>에서는 라미우스 선장으로 등장해 잭 라이언(알렉 볼드윈)의 정신적 아버지로 보이기 까지 한다
. 마치 007 시리즈가 수많은 본드걸 여배우들을 탄생시키고, 섭렵해 나가는 것처럼 배우로서의 숀 코네리는 본드걸보다
더 많은 남자 배우들을 훈련시키고, 성장시켰다(물론 영화 속에서). 하다못해 목소리 연기만으로 등장하는 영화
<드래곤 하트>에서도 그는 데니스 퀘이드의 친구이자 스승격인 용으로 등장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007 시리즈를 '마초이즘'의 대명사 격으로 말하고, 일부 그런 요소들(여성의 역할을 몇몇 스테레오
타입으로 한정시킨다는 차원에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의미에서 살펴보자면 여성의 역할을 확장시키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당대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심각할 정도는 아니란 사실 역시 알 수 있다. 내가 무협지를
읽으며 가장 동경했던 것은 초절정 고수들이 펼쳐보이는 절대 무공이 아니라 그들에게 가르침을 베풀고 이끄는
스승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숀 코네리가 1989년 60 환갑에 다다른 나이로 <피플>지 선정 최고의 섹시남으로 선정된
사실은 그가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 지 본보기를 보인 대가가 아닐까 싶다.
파인딩 포레스터와 제작자로서의 숀 코네리
숀 코네리를 두고 연기파 명배우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무래도 그의 대표작을 논하는 데
있어 007 시리즈가 드리운 그늘이 큰 탓도 있을 것이고, 그가 출연한 작품들 대부분이 오락성을 염두에 둔 상업적인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배우로서의 숀 코네리를 싫어하는 사람 또한 나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영화
배우든, 한 인간이든 어떤 한 분야에 평생 몸 바쳐 일해온 사람들을 장인으로서 존경한다. 배우로서 숀 코네리는 자신의
약점과 장점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부각시키는 노력을 통해 연기자로서
긴 수명을 누릴 수 있었다. 젊은 날, 냉전의 스파이에서 탈냉전 시대의 여유있는 노장의 여유를 보여주는 숀 코네리의
자연스러운 변모에서 연기자로서 그의 노력을 읽어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숀 코네리는 환갑도 훌쩍 넘기고, 어느새 70세가 넘는 노익장을 말할 나이가 되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의 세세한
부분까지는 알 수 없어도 스물을 갓 넘긴 나이부터 시작한 연기 인생 동안 극중에선 숱한 본드걸들과 염문을 뿌렸지만
실생활에선 이렇다 할 스캔들 한 번 없이 성실하게 살아온 한 연기자에게 존경의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화 속에서 단지 조역으로 등장할 뿐인데도 화면 전체를 가득채우는 카리스마를 풍기는 것이 거저 얻어진 결과는
아닐 것이다. 그의 뒤를 이어 등장한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를 은퇴한 뒤 이렇다 할 작품없이 B급 영화의 시시한
배역으로 연기 인생을 접는 것과 비교해볼 때도 70세라는 고령의 나이로 <파인딩 포레스터>의 제작자로,
주연 연기자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숀 코네리(그는 <파인딩 포레스터>, <엔트랩먼트>, <라이징 선>, <더 록>,
<Just Cause>, <Medicine Man>의 제작자로 나서기도 했다). 나이 때문에 예전처럼 그가 출연하는 영화들을 많이
만나게 되긴 어렵겠지만 연기자로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리란 믿음을 그에 대해서 품어 본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TV와 영화를 오가며 활동하던 숀 코너리가 헐리웃의 탑 스타로 떠오르게 된 것은 역시 영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시리즈로 평가되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를 맡게되면서 부터였다. 폭발적인 액션을 펼치면서도 여유만만한 표정을 잃지 않는 매력적인 제임스 본드의 캐릭터를 선 보인 숀 코너리는 가장 섹시한 배우로 손꼽히면서 <007 살인 번호>, <007 위기일발>, <007 두번 산다>를 비롯한 모두 7개의 <007>시리즈에 출연했다. 1971년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를 끝으로 <007> 시리즈에서 은퇴한 숀 코너리는 이후 정통 007 시리즈가 아닌 <007 네버세이 네버어게인>에도 출연하였다. 그러나 그는 <007 두번산다> 이후로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장미의 이름>에서는 수도사로, <언터처블>에서는 베테랑 경찰로, 그리고 <붉은 10월>에서는 잠수함의 함장으로 출연하며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특히 <언터처블>에서의 호연으로 1987년 아카데비와 골든 글로브에서 최우수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장미의 이름>을 통해서는 BAFTA 시상식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맡은 배역에 완전히 몰입하여 연기를 펼치는 여타의 성격파 배우들과는 달리 숀 코너리는 스코틀랜드의 억양, 예의바르고 여유로운 영국 신사로서의 풍모, 나이가 들면서 더욱 빛을 발하는 중후함 등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맡은 배역에 그대로 반영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그 때문에 숀 코너리가 연기하는 모든 인물은, 그 인물이 영국 스파이든 스페인 전사이든 또는 전설 속의 왕이든지 언제나 똑같다는 혹평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는 그러한 면을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고착화 시켰고, 그러한 이미지 덕분에 1990년 BAFTA의 평생공로상, 1995년 골든 글로브의 세실 B. 드빌상, 1998년 BAFTA의 The Academy Fellowship등 각종 권위있는 영화제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았고,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기까지 한다.
이후 <떠오르는 태양>,<카멜롯의 전설 >,<더 록>,<어벤저 >,<엔트랩먼트>,<젠틀맨리그>등의 영화에 활발히 출연하고 있다. 백발이 성성하고 머리가 반쯤 벗겨진 노년이 되어서도 그는 여전히 섹시하고 젠틀한 인물들을 연기하며, 영원한 섹시가이로 팬들의 가슴 속에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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