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徐愈) 선생 초상
이천서씨 양경공파 파시조 서유는 본관은 이천(利川)이고 고려 공민왕 5년(1356년)에 출생하여
조선 태종11년(1411년)에 돌아가셨다. 공의 자는 염지 호는 임강이며 관력은 문신이며 학문과
덕망이 높아 태조 3년 세자 우필선(세자의 스승)을 지내셨고 우부승지를 역임하였으며 박포의
난을 평정하는데 크게 공헌하여 유충익제 좌명공신에 책록되었다.
1410년(정종 2년) 우부승지로 있을 때에 방원(芳遠:뒤의 태종)과 동복형인 방간
(芳幹) 사이에 일어난 제2차왕자의 난에 승리하여 방원이 왕위에 오르는 데 기여한 공으로
1401년(태종 1년)에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4등에 책록되었다.
그뒤 황해도 관찰사 역임하신후 예조판서가 되었으며 1410년에 가선대부 이성군(利城君)에
봉해졌다.
공의 유품으로는 초상화와 단서철권 하사 임강선생 문집, 교지 2부가 남아있으며 묘는 경기도
상두산 장위공 서희 장군묘 부근에 있으며 신도비와 묘정비가 있고 경주시 현곡면 소현리에
공의 사당이 남아있고 현곡 하구리 구산서원에 그 위패를 봉안하였다.
후세로 아들이 삼형제가 있으며 천째아들 敬興(경흥)은 황주목사를 지내 牧使公
(목사공)으로 칭하며 둘째 아들 思川(사천) 은 호조좌랑 도총관직을 지낸 어른으로
양경공파 제천문중,연천,여수문중으로 이어지며, 셋째아들 楊根(양근)은: 朝散大夫 典醫監正을
지냈으며 고원, 영흥, 함흥문중으로 이어져 후손이 번창하고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남아있는 공의 초상화에는 오른쪽 귀가 없는데 이는 박포의 난을 진압하다가 날아든 화살에
한쪽 귀를 맞아 잃었다고 전하며 따라서 초상화에는 한쪽귀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