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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최초의 경전 (李道士의 佛敎이야기 ④)
1. 대승불교, 소승불교
- 우리는 보통 대승불교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이보다 역사상으로 앞선 원시불교나 부파불교(소승불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간단히 말해서 원시불교는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나 사후 몇 백 년을 말하는 것이고 이때는 경전이 없었고 부처님의 행적이나 말씀이 전부 구전되는 때이다. 경전으로는 아함경이나 니까야 중에서도 일부만이 속한다고 봐야한다.
- 부파불교(소승불교)는 부처님 말씀이 무엇인가 하고 그 해석에 치중하던 때이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부파로 나뉘어서 스스로 의견이 맞다고 난립하던 때로 불교이론이 많은 발전을 하던 시기이다. 그때 당시 정립된 경전이 소위 말하는 아함경과 니까야라고 할 수 있다. 이것도 부파마다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서 정립했기 때문에 내용이 조금씩 다르고 수행법으로는 위빠사나가 있었다.
- 대승불교는 기원 후 200년경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다. 대승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만든 것이 아니고 후대의 고승들이 창작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또한 내용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기에 그것을 짐작하는 것이다. 대승불교가 꽃 피운 곳은 티벳과 중국인데 우리는 그 중에 중국 대승불교의 사상을 받아들여 (아함은 소승이고 화엄이 최고다.) 중국 대승불교의 수행법인 화두선이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나 중국대승불교를 최고로 생각하고 원시불교나 부파불교를 저급한 불교로 생각하는 것은 중화사상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의 꽃인 티벳불교에서는 원시불교와 부파불교에 대한 공부를 먼저 시킨 연후에 대승불교를 공부합니다.
초기경전인 숫타니파타나 법구경은 그래도 원시 경전에 속하는 경전이라 부타불교의 성격이 약하고 부처님의 원음에 가까운 성격의 경전들이다. 그러므로 아함경이나 니까야를 먼저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초기의 경전
-이 <숫타니파타>는 불교경전 중에서도 가장 초기에 이루어진 경전이다. 역사적인 인물로서 석가모니 부처님과 초기불교를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불교경전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들이 그 내용을 함께 암송해오다가 후기에 문자로 정착된 것이다. 따라서 소리를 내어 외기 편하도록 운문(시)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고 번호가 붙어 있지 않는 긴 문장은 산문으로 된 것이다.
당시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기 자신이 어떤 종교를 창시하겠다는 의식이 전혀 없었다. 단지, 눈 뜬 사람(선각자)으로서 그 역할을 다 했을 뿐이다. 그에 대한 호칭도 이 경전에서 ‘눈 뜬 사람’, ‘수행자’, ‘널리 보시는 분’, ‘고타마’ 등으로 불리고 있다.
그 시절의 수행자들은 나무 그늘이나 바위에 앉아 때로는 외진 동굴 속에서 명상하고 간소한 생활을 했으므로 요즘처럼 조직화된 규모의 사원이 없었다.
오직 남이 버린 천조각으로 그것을 꿰매어 걸친 누더기 옷에 바리때 하나를 들고 구름처럼 물처럼 여기저기 걸식 행각을 하면서 자신을 일깨우고 이웃을 깨우쳐 주었다.
그들의 삶이 이처럼 단순하고 소박했기 때문에 그들의 가르침 또한 단순하고 소박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숫타니타파>를 보면 2500여년 전 불교가 싹 트기 시작할 때 주변의 상황들과 특히 다른 수행자들과의 관계를 엿 볼 수 있고 그리고 부처가 말한 그 가르침의 원형이 무엇인가를 자세히 알 수 있다.
또한 이 <숫타니파타>는 현재에 동남아시아 불교권에서는 일상 샐활 속에 깊이 파고 들어가 있다. 그 한 예로 스리랑카에서는 결혼식 전날 스님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축복의식을 올리는데, 이때 스님들은 이 <숫타니파타>의 ‘자비’와 ‘더 없는 행복’ 중에서 몇 구절을 다같이 낭송하고 나서 설법을 한다. 새롭게 인생의 여행에 들어서는 젊은 두 사람이 의지할 교훈으로써 축복해주는 것이다.
3. 숫타니파타
- 숫타니파타는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에 수록되어 있는 경전이다. 숫타(sutta)는 ‘말의 묶음 涇’ ‘니파타 Nipata'는 ’모음潗’이란 뜻으로 두 단어가 합쳐져 ‘말의 모음집’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숫타니파타는 경전을 모은 것이란 뜻이다. 불교의 많은 경전 중에서도 가장 초기에 이루어진 경전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과 의미가 크다
- 이 경전이 이루어진 배경은 이러하다.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간추려 간결한 산문의 형태로 묶었다, 암송하기 쉽게 하여 구전되었기 때문에 원형 그대로 후세에 전할 수 있었다.
최초에는 부처님이 즐겨쓰던 마가다어( 북인도 마가다 지방에서 그는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됐다.) 또는 마가다어의 영향력이 큰 속어의 일종으로 구송되다가 그 후 팔리어로 정착됐다. 현재는 팔리어 성전(聖典: 남전대장경)으로 전해지고 있다.
- 이 경전처럼 시와 짧은 글귀로 결집되어 전해지는 또 하나의 경전이 <담마파다 Dhammapahda> 다시 말해 <진리의 말씀: 법구경>이다. 이러한 경전들은 대개 아쇼카왕 (기원전 268년에 즉위 323년까지 다스림) 이전에 성립된 것으로 보는데, 그 중에서도 숫타니파타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제 4장 ‘여덟 편의 시’와 제 5장 ‘ 피안에 이르는 길’은 다른 장보다 더 일찍 이루어진 것이라고 학계에서는 평가한다. 물론 맨 처음부터 숫타니파타(經潗)로 한데 묶어 형성된 것은 아니다. 각 장에 따로 따로 독립된 경전으로 전해지다가 어떤 시기에 와서 하나의 ‘경집經潗’ 으로 묶어진 것이다. : 여승女僧에 대한 말이 한마디도 없는 걸 보아도 이 경전이 가장 초기의 불교형태를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이 <숫타니타파>는 모두 1149수의 시를 70경에 정리, 이것을 다섯 장으로 나누고 있다. 그 다섯 장이 ‘뱀의 비유 蛇品’, ‘작은 장 小品’, ‘큰 장 大品’, ‘여덟 편의 시 義品’, ‘피안에 이르는 길 彼岸道品’ 로 이중에서 ‘여덟 편의 시’와 ‘피안에 이르는 길’ 등 세 장은 처음에는 독립된 경전으로 유포되었던 가장 오래된 불교경전이다.
첫째, ‘뱀의 비유’는 열두 개의 경으로 되어 있다. 그중 제 1경에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의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이라는 구절이 되풀이 되어 있어 사경 蛇經 이라고 부른다. 제 2경 소 치는 다이야 대목으로 16편의 시구로 된 경이다. 제 3경에는 독신자 수행자를 위해 모든 집착을 버리고 ‘무소의 불처럼 혼자서 가라’는 유명한 구절의 반복이 있다. 이 경전은 다섯 장중에서 제 4장만 일찍이 한역되어 대장경 (한문으로 번역된 것을 말함) 안에 수록되었고 전체의 번역은 없었다. 한역은 <불설의족경 佛說義足經> 두 권인데 쿠샤나 왕조(1세기 후반에서 3세기 전반에 걸쳐 웅성했던 인도의 통일 왕조)치하 서북 인도의 재가신자(在家信煮)인 지겸(支謙)이 중국에 와서 오吳나라 초기(223-253)에 번역한 것이다.
- 우리나라와 같은 한역 불교권에서 이 경전이 알려지지 않았던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어떤 경전보다도 최초에 성립되고 역사적으로 실존 인물로서의 부처 그 육성에 가까운 원초적인 설법임에도 우리에게 일찍이 소개되지 않은 것은 단순히 언어의 장벽만이 아니라 이른바 소승불교라 해서 무조건 얕잡아보고 거들떠보지 않았던 중화적인 배타성과 아집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숫타니파타> 가운데는 발전, 수정되기 전의 소박하고 단순한 초기의 불교가 그대로 심어져 있다. 부처님은 그와 같이 단순하고 소박하게 인간으로서 가야할 길을 모순과 갈등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서 해탈의 저 세계에 이르는 길을 말씀하신 것이다. 진리란 간단명료한 것임을 이 경전을 통해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 경을 읽는 독자들은 그 단순한 형식이 먼저 눈에 뛸 것이다. 어떤 때는 지리 하게 말이 반복되기도 한다. 우리는 여기서 초기 경전의 소박한 형태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구절마다 눈을 뜬 사람의 인간미가 배어 있는 점에 주의하게 된 것이다. 후기 경전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가르침을 듣고자 찾아와 묻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은 알아듣기 쉬운 표현으로 피안에 이르는 길을 차근차근 말씀하신 것이다.
<숫타니파타> 중 지금 오페라의 이중창으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소치는 사람’을 소개 합니다. 제 1장 뱀의 비유 중 첫 번째가 뱀의 비유이고 두 번째가 소치는 사람, 세 번째가 공지영이란 소설가가 제목으로 쓴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가 반복되는 무소의 뿔이다.
『소치는 사람』
18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는 이미 밥도 지었고 우유도 짜 놓았습니다. 마히 강변에서 처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내 움막 지붕에는 이엉은 덮어 놓았고, 집 안에는 불을 지펴 놓았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거든 비를 뿌리소서.”
19 스승은 대답하셨다.
“나는 성내지 않고 마음의 끈질긴 미혹도 벗어 버렸다. 마히 강변에서 하룻밤을 쉬리라. 내 움막에는 아무것도 걸쳐 놓지 않았고, 탐욕의 불은 남김없이 꺼 버렸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거든 비를 뿌리소서.”
20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모기나 쇠파리도 없고, 소들은 들판의 우거진 풀을 뜯어 먹으며, 비가와도 견뎌낼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거든 비를 뿌리소서.”
21 스승은 대답하셨다.
“내 뗏목은 이미 잘 만들어져 있다. 욕망의 거센 흐름에도 끄떡없이 건너 벌써 피안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뗏목이 소용없노라.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2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내 아내는 착하고 허영심이 없습니다. 오래 함께 살아도 항상 내 마음에 흡족합니다. 그녀에게 그 어떤 나쁜 점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3 스승은 대답하셨다.
“내 마음은 내게 순종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오랜 수양으로 잘 다스려졌다. 내게는 그 어떤 나쁜 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4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는 놀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아이들은 모두 다 건강합니다. 그들에게 그 어떤 나쁜 점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5 스승은 대답하셨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다. 스스로 얻은 것으로 온 세상을 거니노라. 남에게 소속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6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에게는 갓 태어난 송아지도 있고, 젖을 먹는 어린 소도 있습니다. 새끼 밴 어미 소도 있고, 암내내는 암소도 있습니다. 그리고 암소의 짝인 황소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7 스승은 대답하셨다.
“나에게는 갓 태어난 송아지도 없고, 젖을 먹는 어린 소도 없다. 새끼 밴 어미 소도 없으며, 암내내는 암소도 없다. 그리고 암소의 짝인 황소도 없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8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소를 매 놓은 말뚝은 땅에 박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새로 엮은 밧줄은 튼튼해서 소도 그것을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9 스승은 대답하셨다.
“황소처럼 고삐를 끊고 코끼리처럼 냄새나는 덩굴을 짓밟았으니, 나는 다시 인간의 모태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30 이때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고 검은 구름이 비를 뿌리더니 골짜기와 언덕에 물이 넘쳤다. 신께서 부리는 빗소리를 듣고 다니야는 이렇게 말했다.
31 “우리는 거룩한 스승을 만나 얻은 바가 참으로 큽니다. 눈이 있는 이여, 우리는 당신께 귀의하오니 스승이 되어주소서. 위대한 성자시여.
32 아내도 저를 따라 행복하신 분 곁에서 열심히 수행을 하겠나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생사의 윤회가 없는 피안에 이르러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33 이때 악마 파피만이 말했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기뻐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한다. 사람들은 집착으로 기쁨을 삼는다. 그러니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기뻐할 것도 없으리라.”
34 스승은 대답하셨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금심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걱정한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마침내는 근심이 된다.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근심할 것도 없다.”
※ 얼마나 아름다운 경전입니까? 소치는 목동 다니야와 깨우친 부처님의 대화가 정말 인도 마하 강변의 들판에서의 오페라 아리아와 같이 들리지 않은가요? 지극히 평범한 목동 다니야는 세속적이고 일상사적인 이야기로 진솔하게 물으면 부처님은 깨달은 선각자로 다니야에게 속삭이듯이 한 구절 한 구절 정성스럽게 설명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불교 초기의 경전은 이렇게 질박하고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첫댓글 정말 초기불교는 우리 초가집에 피어있는 박꽃 같지 않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