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울의 망언을 고발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모략을 밝힌다.
우리로 성경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몰살시키는 죄악의 발단은
바울의 수많은 거짓말 가운데 그 중에 아래와 같은
바울의 망언 한마디에 축약되어 있었다.
<롬5:12>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바울의 이 한마디가 성경을 풀지 못하게 하는 죄악의 발단이라고 한다면
바울의 말에 세뇌된 사람들에겐 너무나 엉뚱해서 실소를 금치 못하겠으나
사실이다. 바울이 말한 한 사람은 저 에덴동산의 아담을 뜻함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데, 에덴동산의 아담이 과연 세상에 죄와 사망을
초래케 한 인류의 조상이란 말인가?
우리는 이천년 동안 바울의 이 한마디를 의문의 여지없이 골수에 새겨
믿어왔으므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기독인들은 너무나 합당한 바울의
말에 왠 태클을 걸고 있느냐고 나를 미친사람 취급할 것은 너무나 뻔하다.
우선 나는 창2,3장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아담이 실존 인물이 아니고
오늘날 우리시대에 우리의 선악과 죄를 뒤짚어 쓴 초림예수님을 예표한
가상의 인물임을 주장한다. 에덴동산 역시 가상의 무대 설정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일지라도 바울의 말을 따라 에덴동산의 아담이
저 태고때 죄와 사망을 유전시킨 실존인물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으며
따라서 창4장에 나오는 6천년전 믿음의 조상 아담과 동일인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에덴동산의 아담이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관점이기 때문에
창4장에 믿음의 족보를 그리스도까지 이어주는 6천년전 신석기시대의
실존인물 아담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 진위를 파헤쳐 보기로 한다.
기성교단 사람들은 에덴동산의 아담이 실존인물이며 하나님이 최초로
지으신 인류의 조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처음부터 아담과 그의 아내는
죽지 않고 영생하도록 지음 받았는데, 그만 선악과를 범한 결과
에덴동산 밖으로 쫓겨난 후, 그 때부터 피땀 흘려 농사지으며 자식들을
낳고 살았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 아담이 곧 창4,5장에 믿음의 족보를 이어주고 있는 아담과
동일인물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의 말을 들어볼 필요도 없이 그것이 허구임을
창세기 4장을 통해 간단히 밝혀주고 있다.
에덴의 아담과 하와가 인류의 조상이라면 그리고 창4,5장에 나오는
실존인물 아담과 동일 인물이라면, 아담이 최초로 낳은 첫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도망다닐 때에 그가 만날 사람이 없어야 하겠으며
그와 만나 결혼할 여자도 없어야 하겠는데 가인은 창4장에서
모두 있다고 했다.
즉 세상에는 아담과 하와와 가인 밖에 없어야 하는데 왜 가인은 도망 다니는
중에 자기를 만나 죽일 자가 있다고 했으며, 왜 놋 땅에서 아내 될 자도
만났다고 하는가? 이렇게 가인 앞에 이런저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가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창 4장에서 가인 앞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 당시 6천년전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지구도처에 널려 살고 있었다는 말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의 아담은 인류의 조상이 아님이 분명하다.
에덴동산의 아담이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 것은 기성교단에서 고래적부터
팔아 먹어온 구닦다리 가짜 상품이다.
그리고 오늘의 자칭 재림주교단(적그리스도) 사람들도 기성교단 처럼
에덴동산의 아담이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하며 창4장과 5장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 아담과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기성교단에서는 에덴동산의 아담이 “인류의 조상” 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자칭재림주 교단에서는 에덴동산의 아담이 “믿음의 조상” 이라고 하는
차이만 있을 뿐, 둘 다 실존인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칭 재림주교단도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범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창4장과 5장에서 그들 부부는 그 때부터 자식들을
낳으며 살았다고 주장하나 그것이 또한 허구임을 이번에는 창4장과 5장이
밝혀주고 있다.
에덴동산의 아담이 기성교단처럼 인류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든지 혹은
자칭재림주들 즉 적그리스도들 처럼 믿음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든지,
이는 둘 다 분명히 실존인물임을 전제한 말인데 이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의 해법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창4장과 5장에 나오는 실존인물인
아담과 하와의 이름만을 빌려서 오늘의 사건을 비유로 감추어 기록한
순수 예언서로 가상의 인물일 뿐이지, 태고 때 실제로 생존했던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는데 있다.
자칭재림주 교단의 주장처럼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가 창4,5장에서 믿음의
족보를 이어준 동일한 실존인물이라고 한다면 모순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왜냐면 우선 에덴동산 안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낙원의 개념이고,
그로부터 범죄하고 추방된 에덴동산 밖은 형벌 받는 아비규환의 개념인데,
축복받는 에덴동산 안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거룩한 믿음의 족보를 이어줄
자식을 한 명도 낳지 못하다가, 그로부터 저주와 형벌받는 자리로 내려온
후에야 믿음의 족보를 어어주는 자녀를 생산했다는 주장은
너무나 어폐가 심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자녀생산이란,
사실적으로 그 당시 육적 자녀생산의 기록임은 틀림없지만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낳고 있는 육적 자녀생산을 말함이 아니고,
영생케 하는 말씀의 실체가 말씀의 실체를 거듭 낳고 있는 영적 자녀생산을
뜻하여 대단히 축복 받고 있는 영적 기록이 된다.
그리고 만일 성경에서 말하는 자녀생산이 작금에 우리들이 낳고 있는
육적 자녀로 폄하시킨다 할지라도 그것은 대단한 축복의 선물로 간주한다.
그런데 왜 은혜의 동산 안에서는 한 명도 낳지 못하다가
저주받는 동산 밖에서는 이같이 축복 받는 거룩한 영적 자녀생산, 혹은
육적 자녀생산일지라도 줄줄이 어어지고 있는가를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에덴동산 안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나이가 아직 어려서 자식들을 낳지 못하다가
에덴동산 밖으로 추방된 후에야 성년으로 나이가 차서 자식들을 낳게 되었다고
말하려는가? 하지만 그런 시도 역시 어리석기 짝이 없는 기만일 뿐이다.
왜냐면 하나님이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러서 금나와라 뚝딱 하고 한 순간에
아담을 인류의 조상으로 지으셨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아담을 성년으로
지으셔서 그의 아내와 짝지어 주셨던 것이며, 만일 아담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웠다 할지라도 믿음의 조상인 만큼 그는 이미 지도자의
위치이므로 당연히 성년임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 대해서 그 진위를 올바로 설명하고자 한다면,
예수께서도 미리 말씀해 주셨듯이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낱낱이
드러내야 한다(마13:35).
성경의 키워드인 창세기 1장, 2장 3장을 토씨 하나라도 빠뜨리지 말고
일목요연하게 먼저 밝혀 놓은 연후라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성교단은 성경해석 자체를 하지 않는 꿀 먹은 벙어리이므로
논외로 하고, 성경을 풀었다고 자랑하는 자칭재림주의 추종자들에게
창세기 해석을 제시해 보라고 요청하면 기상천외한 답변이 돌아온다.
창세기는 이미 명명백백하게 풀었지만 너무나 중요해서 절대로 사람들에게
공개하면 안되기 때문에 지금은 말할 수 없다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해대니 화인 맞은 양심이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 성경 해석의 순서를
창세부터 밝히 드러내신다고 하셨는데 그들은 창세기는 감춰야 한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다시 그러면 창세기는 너무나 중요해서 말할 수 없다고 잡아 뗀다면
왜 창세기의 아담만은 실존인물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게 되었는가?
아담이 실존인물인지 아닌지 일절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또 다시 계속 화인맞은 양심으로 뻔뻔하게
에덴동산의 아담이 창4,5장의 아담과 동일한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자기논리 배반의 강력한 배경은 아래와 같다.
그것은 바울이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세상에 죄와 사망이 들어왔다고 하는
그 단 한마디를 의지해서 이다.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유전시켰으니 그는 실존인물이라는 것이다.
바울의 이 망언 한마디는 반드시 무너져야만 한다.
무너져야 성경은 풀리고 우리는 마침내 영생에 진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바울의 말이라고 하면 인분을 뭉쳐서 매주를 만든다 해도
믿어야 하고, 청산가리로 보약을 만든다 해도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부터 집단 세뇌되어 왔기 때문에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세상에 죄와 사망이 들어왔다” 고 하는
이 한 마디는 중천금인지라 거기에 모두 생명의 젖줄을 대고 있다.
불임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다.
그런데 바울의 주장을 도입하면 축복의 에덴동산 안에서는 불임으로 나타났고
반대로 저주의 에덴동산 밖에서는 그 저주의 불임이 풀렸다는 논리가 되기
때문에 내가 볼 때는 개도 안 물어갈 썩어빠진 주장이라는 것이다.
바울의 주장이 틀린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바울의 주장은 저 육천년전 아담 한 사람이 세상에 죄와 사망을 가져왔다고
하는 유전죄를 가르쳤으나, 하나님은 이미 에스겔을 통해 유전죄는 도무지
없고 아비의 죄는 아비에게, 아들의 죄는 아들에게 묻는다고 선포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 같은 유전죄를 가르치는 속담이라도 유포하는 자 있다면
반드시 차단하리라 하셨다(에스겔18장).
그런데 만일 하나님이 유전죄를 허락하셨다 한들
에덴동산의 아담은 저 육천년전의 실존인물이 아니고 가상의 인물로 판명되는
상황에서 어찌 그가 사실적으로 인간에게 죄을 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기는 한단 말인가? 그럴 수 없다.
또 바울의 주장이 틀린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에덴동산의 아담이 믿음의 조상으로 죄와 사망을 유전시켜 준 실존인물이라면
에덴동산 안에 있는 모든 사물과 사건들이 사실적 시공간을 갖는
창조 기록이어야만 하는데 도무지 현실적으로 불가하기 때문이다.
뱀이 어떻게 사실적으로 아담의 아내와 대화를 할 수 있는가?
아담을 잠들게 한 후 하나님이 어떻게 사실적으로 그의 갈빗대를 뽑아
그의 아내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어떻게 사실적으로 조물락 조물락 흙으로 각종 생물들을 즉석에서
만들어 아담으로 하여금 사실적으로 세상의 그 많은 생물들의 이름을
즉석에서 짓게 하실 수 있는가?
사실적으로 생명나무와 그 과일은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볼 수 있는가?
사실적으로 동산각종나무와 그 열매는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볼 수 있는가?
사실적으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그 열매는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볼 수
있는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담과 하와는 사실적으로 어떻게
벌거벗은 몸으로 선악과만 따먹고 살았단 말인가?
이 모두는 사실적으로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 가상의 세계이지
사실적 실존세계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에덴동산의 아담을 일컬어 사실적인 실존인물로서
아담이 세상의 죄와 사망을 가져온 장본인 이라고 주장했다.
바울은 여기에 또 다른 망언을 계속 엮어내어 우리로 도무지 하나님을 찾아가지
못하게 소경을 만들어서 생명길로 나아가는 길을 원천봉쇄 시켜버렸다.
그것은 바울의 말(롬5:12-15)을 간략히 줄이면
[한 사람(에덴동산의 아담)으로부터 세상에 죄와 사망이 들어와서 우리 모두
사망의 몸이 되었으나 한 사람 초림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려주셨다] 이다.
이를 좀더 확고히 뒷받침하는 바울의 말은 .
[히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초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재림)]
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두번 째 나타나시는 방법까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이는 예수님이 초림 때 이미 아담으로부터 유전받은 죄와 사망을 멸해주었다는
말이고, 예수님의 재림 때는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리라고 한것이다.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면
이미 구원받아 놓고 있는 우리들의 육체를 모두 들어올려
저 공중 스카이 하늘로 데려가실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구원문제에 있어서 이런 무지막지한 가르침이 어디 있단 말인가?
우선 죄는 저 에덴동산의 아담이 유전시킨 죄도 아니며,
그 죄를 초림예수님이 멸하여 목하 우리를 모두 영생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는 것도 아니며,
재림예수님이 죄와 상관 없이 우리의 육체를 하늘로 들어올리는 것도
아님에도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믿어왔다.
그럼에도 이 같은 바울의 일련의 가르침이 우리 모두를 독살시키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무조건 바울의 말이라면 중천금으로
신봉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바울의 말로 인하여 아직 구원이 아님에도 이미 구원을 받아버렸다고 믿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다 보니 더 이상 구원을 위해 나아갈 자리도 없고
그렇다고 현재 약속의 땅 가나안의 복지도 아니기 때문에
기독인들은 물 마른 웅덩이에 갇힌 올챙이들 모양으로 서로 피터지게
세상의 육신을 위한 밥그릇 싸움질만 하고 있는 작금이 되었다.
1. 그렇다면 이제 저 에덴동산의 선악과 죄를 지은 실체는 누구인가?
2. 초림예수님은 그 선악과 죄와 어떤 상관관계를 가졌으며 구원이란 무엇인가?
3. 재림 예수님은 과연 어떻게 나타나시는가?
등의 문제들에 대해 바울의 말을 뿌리치고 이제는 순전히 우리들의 통찰로
깊이 고민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에 대해 간단히 피력하겠다.
(바울은 오늘날 우리들과 동일한 일개 복음백성일 뿐임을 잊지 말길 바라며
그리고 바울시대는 초림 때이므로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때이고 오늘날은
재림 때이므로 말씀을 깨닫는 때임도 잊지 말길 바라면서 상고해본다)
상술했듯이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창4,5장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이름만을 빌려서 오늘날 우리시대의 사건을 예언해 준 가상의 인물이다.’
아담은 초림예수님을 상징했고 하와는 일차적으로는 기성교단백성을 상징하여
하와가 범한 선악과 죄를 아담이 대속해 주어야 했기 때문에
하와가 따 먹고 건네 준 선악과를 아담이 암말 없이 받아먹고 하나님 앞에
중죄인으로 심판 받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명장면이 나온 것이다.
따라서 선악과 범죄의 실체는 곧 오늘날 우리들이 된다.
그 중에서 바울이 선악과 범죄의 대표 선두주자이다.
왜냐면 선악과란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 일찍 되어버린 교만인데,
예수님은 말씀을 비유로 주셨으므로 구원이 아직 아님에도 불구하고
초림 예수님이 이미 구원을 주셨다고 가르쳤으며 그렇게 구원받아 놓고 있는
사람들을 재림 때는 하늘로 데려가실 일만 남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선악과 범죄의 실체는 자신들임에도 엉뚱하게 태고 때의 아담에게 전가시키고
자신들은 그 죄가 없고 다만 유전 받았다고 했다.
에덴동산의 아담은 실존인물이 아니고 가상의 인물로서 복음시대에 대한
비유인데, 그 비유를 깨닫지 못하고 아담을 죄를 물려준 실존인물로
보았다는 그 자체가 선악과 범죄의 단초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창세기 에덴동산의 이야기가 오늘에 대한 비유이고 실상이 아니다.
실상은 초림예수님 때부터 오늘날 재림예수님 때까지이다.
그런데 실상으로 오신 초림 예수님은 우리에게 비유가 아니면 한마디도
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으며, 그분의 행적조차 모두 비유였고 그 중심에 있는
십자가의 피 역시 육체의 피이므로 비유의 피였다.
사실적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깨닫게 함으로 영생을 주실 수 있는 신령한
말씀의 피가 아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비유의 피를 깨닫지 못하고
그 육체의 피 자체를 말씀의 피로 잘못 받아드려 구원을 이미 이루었다고
선포하였으니 그것이 선악과 범죄의 선두주자가 된것이다.
그러므로 초림 때는 선악과 범죄의 진원지이다. 그리고 그 선악과 범죄에 대한
죄를 대속해 주시는 예수님의 육체의 피도 신령한 피가 아니고 비유의 피였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의 비유문자와 예수님의 비유는 어떻게 다른가?
예수님의 비유는 실상의 비유이고, 에덴동산의 비유는 모형의 비유이다.
왜 모형의 비유와 실상의 비유가 있어야 하는가?
모형이 없이 예수님이 실상으로 오시면 아무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먼저 모형을 세우신 것이다.
그럼 다시 왜 초림예수님은 실상의 비유로 오셔야만 하는가?
이것이 곧 하나님의 모략이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비유를 받고도 그것을
당장 진짜로 구원의 말씀으로 받는지, 아니면 그 비유속에 감추어진
참 말씀의 뜻을 깨닫고자 굶주리며 참고 인내하며 말씀을 풀어주실
재림주가 오실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 하는지
그 진실함을 보시고자 시험하신 것인데 그 시험에 다 넘어지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재림 예수님이 오셔서 그 비유로 된 성경을 창세부터 낱낱이
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말씀의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사실적으로
대속하시고 동시에 구원을 주신다는 창조의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초림 때는 비유의 말씀을 주셔서 우리를 시험하시고
예수님이 재림 때는 말씀을 해독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범한 죄의 상처를
꿰매어 고쳐 주신다는 창조의 프로그램이 하나님의 구원의 모략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죄와 상관 없이 두번 째 나타나심이 아니며, 손오공처럼
우리육체를 공중으로 끌어 올리셔서 만화영화 찍는 재림주는 더더욱 아니다.
예수님의 두번 째 나타나심이야 말로 그동안
하나님을 몰랐던 우리들의 죄를 사실적으로 사해 주시는 진정한 구원주이며,
그분은 이 땅에서 지상천국의 보좌에 앉아 영원히 다스리는 천국의 주인이시다.
기독인들아,
하나님의 구원의 모략이 이러한데
지금도 바울의 망언을 계속 경청해야 되겠는가? 그것은 멸망의 길이다.
원문카페:https://cafe.daum.net/kkysn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