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춘기 6화|퇴사 후 시작한 40대 창업, 혼자 다 해야 하는 1인 사업의 현실
13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회사를 나왔을 때, 나에게도 나름의 로망이 있었다.
이제는 내 사업을 하는 사람.
대표.
CEO.
이 단어들을 떠올리면 뭔가 멋있지 않은가.
깔끔한 사무실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노트북을 열고, 전화가 오면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네, 대표 이경수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미팅을 마친 뒤 멋지게 차를 타고 다음 일정으로 이동하는 삶.
나는 정말 아주 잠깐 그런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데 직접 40대 창업을 해보니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대표이사는 맞다.
그런데…
대표해서 내가 다 한다.
명함에는 대표, 현실에서는 1인 10역
아침에는 영업사원이다.
“안녕하세요. XX입니다.”
고객과 통화하고 제품을 설명하고 견적을 낸다.
전화를 끊으면 바로 견적 담당자가 된다.
엑셀을 열고 가격을 계산한다.
제품 가격, 수량, 배송비, 마진까지 계산하다 보면 갑자기 머릿속 계산기가 과열되기 시작한다.
견적서를 보내고 나면 이번에는 물류 담당이다.
제품을 확인하고 박스를 챙긴다.
배송 일정이 급하면?
대표님이 직접 간다.
그 대표님이 누구냐고?
나다.
아까까지 사무실에서 견적서를 만들던 사람이 어느 순간 박스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차에 물건을 싣고 현장으로 출발한다.
내비게이션이 말한다.
“목적지까지 1시간 27분 소요됩니다.”
나는 대답한다.
“그래… 가자.”
내비게이션과 대화하기 시작했다면 1인 사업에 제법 적응한 것이다.
배송이 끝났다고 일이 끝나는 건 아니다
현장에 도착해 제품을 전달하면 끝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대표님, 이것도 한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
그 순간 배송기사는 기술지원 담당자로 변신한다.
설명하고, 확인하고, 사진 찍고, 다시 전화하고.
그러다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도 나중에 한번 견적 부탁드릴게요.”
좋다.
다시 영업사원으로 변신한다.
하루 동안 직업이 몇 번 바뀌는지 모르겠다.
대표 → 영업 → 물류 → 배송 → 기술지원 → 다시 영업.
마블 영화도 이 정도로 캐릭터가 자주 변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아직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퇴근 후 시작되는 마케팅팀 업무
집에 돌아오면 직장 다닐 때의 습관 때문에 잠깐 착각한다.
‘오늘도 고생했다.’
하지만 노트북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아, 블로그.
요즘 사업은 좋은 제품만 가지고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블로그도 해야 하고 SNS도 해야 한다.
사진도 찍어야 한다.
영상도 만들어야 한다.
제품 소개 자료도 만들어야 한다.
마케팅도 해야 한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현장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 밤늦게까지 소개 자료를 만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피곤하다.
아주 많이.
그런데 웃음이 나왔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회사 다닐 때는 마케팅팀에 자료를 부탁했다.
물류팀에 출고를 요청했다.
재무팀에 확인했다.
기술팀에 문의했다.
지금은?
나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내가 대답한다.
“네. 확인해 보겠습니다.”
참 편리한 조직이다.
회의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직원이 말을 더럽게 안 듣는다.
40대가 되어서 다시 학생이 되었다
퇴사 후 창업을 하면 적어도 내가 잘하는 일을 하면서 살게 될 줄 알았다.
그것도 맞다.
하지만 절반만 맞았다.
내가 잘하는 일을 하려면 내가 모르는 일을 훨씬 더 많이 배워야 했다.
제품을 공부한다.
스마트 조명을 공부한다.
IoT를 공부한다.
새로운 기술을 공부한다.
여기까지는 원래 하던 일이니까 괜찮다.
그런데 사업을 시작하니 새로운 과목이 계속 추가된다.
세금.
회계.
계약.
마케팅.
SNS.
블로그.
영상.
AI.
온라인 광고.
심지어 사진 찍는 법까지 배운다.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지금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40대가 되어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다만 학교와 사업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학교에서는 시험을 못 보면 점수가 낮게 나온다.
사업에서는 시험을 못 보면…
통장 잔고가 낮게 나온다.
채점 방식이 상당히 냉정하다.
40대 가장의 창업은 조금 다르다
20대의 도전과 40대 가장의 새로운 도전은 조금 다르다.
20대에는 잃을 것이 별로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40대가 되면 머릿속에 자동 계산기가 하나 생긴다.
생활비.
교육비.
대출.
보험.
카드값.
사업 운영비.
그리고 가족.
그래서 무언가를 결정할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이게 맞나?’
‘내가 괜히 회사를 나온 건 아닐까?’
‘그냥 참고 다녔어야 했나?’
솔직히 그런 생각이 왜 없었겠는가.
있었다.
지금도 가끔 있다.
SNS에서 성공한 창업가들의 이야기를 보면 모두 처음부터 확신에 차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확신보다 걱정이 많았고, 자신감보다 계산기를 더 많이 두드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하나 있다.
힘들지만 예전처럼 답답하지는 않았다.
힘든데 이상하게 재미있다
직장생활도 힘들었다.
사업도 힘들다.
그런데 두 종류의 힘듦은 조금 달랐다.
예전에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조직이 있고, 상사가 있고, 회사의 결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결과가 좋든 나쁘든 대부분 내가 결정한 결과다.
그래서 힘들어도 묘하게 재미가 있다.
내가 전화 한 통을 해서 새로운 고객을 만난다.
내가 만든 제안서로 일이 시작된다.
내가 소개한 제품이 실제 공간에 설치된다.
그리고 불이 켜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잠깐 생각한다.
‘그래, 이 맛에 하는 거지.’
물론 그 감동은 오래가지 않는다.
잠시 후 전화가 온다.
“대표님, 세금계산서 부탁드립니다.”
네.
다시 경리팀으로 복귀하겠습니다.
40대 창업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외로움이었다
혼자 사업을 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결정을 함께 내려줄 사람이 없다는 것.
회사에서는 불평할 사람이 있었다.
상사 욕도 같이하고, 점심 먹으면서 회사 이야기도 했다.
문제가 생기면 회의를 했다.
회의가 길어서 짜증은 났지만 그래도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인 사업은 다르다.
결국 마지막 결정은 내가 해야 한다.
가격을 얼마에 할지.
이 거래를 할지 말지.
돈을 어디에 쓸지.
어떤 방향으로 갈지.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는 있지만 마지막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나다.
그래서 가끔은 외롭다.
아마 많은 40대 자영업자와 1인 사업자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겉으로는 대표님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에게 묻는다.
“야, 이거 맞는 거냐?”
그리고 또 내가 대답한다.
“일단 해보자.”
대표와 직원이 같은 사람이라 가능한 초고속 의사결정이다.
그래도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회사 다닐 때가 편하지 않았어요?”
편했다.
월급날이 되면 월급이 들어왔다.
휴가도 있었다.
법인카드도 있었다.
회사 이름이 나를 설명해 주기도 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
오늘 열심히 일했다고 다음 달 매출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훨씬 불안정하다.
그런데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아니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길을 잘못 들 수도 있다.
막힐 수도 있다.
기름값도 내가 내야 한다.
심지어 물건까지 내가 싣는다.
그래도 목적지는 내가 정한다.
그게 좋다.
40대의 도전은 늦은 것이 아니라 무거운 것이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40대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아닐까?’
그런데 직접 해보니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40대의 도전이 어려운 이유는 늦어서가 아니다.
짊어진 것이 많아서다.
가족도 있고.
책임도 있고.
지켜야 할 것도 있다.
그래서 한 걸음 내딛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40대에게는 20대에는 없었던 것도 있다.
경험이 있다.
사람이 있다.
실패를 몇 번 겪어본 맷집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조금은 알고 있다.
그러니 늦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속도가 조금 느리면 어떤가.
방향을 알고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늘도 대표이사는 배송 중입니다
요즘도 하루는 정신없이 지나간다.
아침에는 영업을 하고,
낮에는 제품을 챙기고,
오후에는 현장을 다니고,
저녁에는 문서를 만들고,
밤에는 마케팅을 고민한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새로운 것을 배우러 간다.
어떤 날은 정말 정신없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싶은 날도 있다.
그런데 또 다음 날 아침이면 노트북을 켠다.
전화를 한다.
차에 물건을 싣는다.
그리고 다시 움직인다.
나는 아직 성공한 사업가가 아니다.
멋진 성공담을 들려줄 단계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성공으로 가는 길 한복판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사람에 가깝다.
그래서 사십춘기에 이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성공한 뒤에 과거를 멋지게 포장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힘들고, 지금 고민하고, 지금 부딪히는 모습을 그대로 남겨두고 싶었다.
언젠가 몇 년 뒤 이 글을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한마디 해줬으면 좋겠다.
“야, 그때 잘 버텼다.”
그리고 아직 그 말을 들을 수 없으니 오늘은 내가 먼저 말해본다.
그래. 오늘도 잘 버텼다.
내일도 영업하고,
배송하고,
견적 만들고,
공부하고,
마케팅하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가보자.
왜냐하면 지금 나는 회사에서 정해준 길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길을 걷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것이 마흔을 넘긴 내가 다시 겪고 있는 두 번째 사춘기.
나의 사십춘기다.
사십춘기 6화 한마디
“사장님이 되면 일을 시키는 줄 알았다.
막상 사장님이 되어보니 시킬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
오늘 내가 나르는 이 박스 하나,
오늘 내가 만드는 견적서 하나,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 한 명이
언젠가는 내가 꿈꾸던 회사를 만드는 작은 조각이 될 테니까.
마흔 이후의 인생도 아직 공사 중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안전모 대신 노트북을 들고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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