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중국 훈춘 제1실험소학교 방문기)
조선족 아리랑
송라초등학교
교장 황승택
베트남을 방문하여 후엉 딴 초등학교와 문화교류를 하고 돌아온 후 작성한 보고서 ’후엉호아에 남기고 온 사랑의 밀알’(2013), 150년전 조선을 떠나 척박한 땅 러시아 연해주에 살고 있는 고려인 마을 방문과 교류기 ‘연해주의 선물’(2014), 지난해에는 그동안의 실적을 인정받아 경기도교육청 국제교류 협력학교로 지정 받아 중국 연변의 장춘 조선족 소학교와 자매결연과 문화교류, 백두산 천지를 다녀 온 후 작성한 ‘민족의 얼이 살아 숨쉬는 터’(2015). 특히 올해도 경기도교육청 국제교류 협력교로 지정되어 연변 자치구에서 2시간 남짓 걸리는 훈춘 제일 실험 소학교를 우리 학생들 10명과 교사 7명이 학습과 문화교류를 위한 친선 사절단으로 방문을 하였다.
조선족 학교로 거의 100년이 되어가는 학교이지만 리모델링과 새로운 건물 신축으로 외양적인 시설과 운동장은 녹색 잔디로 잘 단장되어 있었다. 36학급인데 교사 수가 134명이라니(우리는 39학급 55명) 정말 놀라웠다. 실험 소학교가 어떤 의미인가를 묻자 쉽게 말하면 우리의 연구학교, 시범학교 같은 형태인데 훈춘 소학교는 스페인어 학습을 실험학교로 운영하며 거기에 더하여 중국어, 한국어에 영어까지 학습한다하니 우리보다 글로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경철 교장(당지부 서기) 선생님의 친절한 학교 소개에 이어 우리 학생들은 자기 학년에 맞는 교실로 들어가서 그들과 어울려 학습하는데 순회하면서 섞여 있는 아이들 중 우리 아이들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비가 내려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중간놀이 활동을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들은 우리 민족 고유의 예술과 민속 놀이의 계승을 위하여 환경 구성과 해당화 예술단 운영, 그네, 널뛰기, 태권도등 우리보다 우리의 것을 아끼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돗보여 뿌듯하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만 우리의 동해에 대한 표기가 일본해로 되어 있음을 홍미영 선생님이 찾아내고 동해로 정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여 교장도 수정을 약속하였다.
준비해간 우리 아이들의 댄스 공연에는 무감각하더니 바이올린 연주로 고향의 봄을 연주하니 박자에 맞추어 손벽을 치며 호응하여 분위기가 부드러워졌으며 교사와 학생 모두가 ‘ 우리의 소원’, ‘홀로 아리랑’을 기타와 함께 노래하니 참석자 대부분이 따라부르며 분위기는 절정에 올랐다. ‘기타 연주가 아니라 국악기 연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가 없었다.
훈춘 소학교에서는 3학년 학생이 사회를 보는데 얼마나 야무지고 똑 소리 나게 하는지 우리들이 배워야할 지경이다. 그들은 수업시간에 전학생이 웅변하듯 소리내어 읽기를 하는데 그것을 통해서 발표력과 표현력이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남학생들로 구성 된 칼 군무, 거의 뮤지컬에 가까운 공연, 여학생 중창단의 솜씨는 동아리 모임임에도 우리의 입을 딱 벌어지게 하는 수준의 공연이었다.
학부모회에서 준비해준 도서 100권( who)과 운영위에서 준비해준 기념 볼펜과 축구공, 배구공, 연 등을 전달하였다. 훈춘초에서는 그 답례로 우리 학생들에게 기념품과 맛있는 점심을 대접해 주었다.
집에서 새벽 4시반 출발하여 연길 국제 공항에 11시40분 도착한 우리는 용정에 있는 대성중학교를 방문하기 위하여 기나긴 버스 여정을 시작 하였다.
‘중국에서는 버스로 4시간 이동은 초 단거리, 12시간 이상 걸릴 때 장거리라 한다’는 홍병호( 단등에 사는 조선족으로 우리 안내를 위해 8시간 기차타고 왔다 한다)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우리 일행은 서서히 중국에서의 삶에 적응해 간다.
대성중학교는 민족시인 윤동주와 문익환 목사님이 동문 수학 한 학교로 간도지역의 독립운동하던 역사적인 위치를 확보하며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중국은 56개 민족이 살고 있으며 연변 조선족 자치구에는 85만의 조선족을 포함하여 동북 삼성에 250만의 조선족이 살고 있는데 지금은 젊은이들 약 60만명 한국에 들어와 생활하고 있어서 아이들도 줄어들고 조선족 학교도 사라지고 있다는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연변의 한줄기 해란강의 물조차도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도문강으로 뗏목 체험을 하러 가는 길가에 하얀 돌배나무 잎과 진달래 꽃의 연분홍의 조화로움이 너무 멋지다. 우리나라는 가로수조차도 벚나무로 뒤덮여 도시의 특성이 사라져가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드는데, 사실 가로수로는 이팝나무가 훨씬 아름다운데 왜 일본이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하면서 동물원과 벚나무를 심은 현실을 도외시하는지 답답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청경궁에 벚나무를 뽑았으면 좋겠다.
압록강을 보다가 두만강을 보면 도랑물 같다는 가이드의 말에 압록강을 보지 않더라도 두만강의 물은 깊은 맛이 부족하여 우리 북란 동포들이 감시만 소홀하면 탈북하기에는 좋은 여건으로 여겨진다. 도문강 뗏목을 타는 중 북쪽의 군인이 망원경으로 우리를 계속 살피고 삼엄하다. 사진 한컷 찍으려하니 뱃사공이 펄쩍 뛰며 제지한다. 숙소로 돌아와 TV를 보니 탈북을 지원하던 한충열 목사님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우리가 뗏목을 탔던 곳에서 중계를 한다.
이제 백두산으로의 마지막 여정을 시작하는데 날씨가 맑다. 4시간의 초 단거리 지역을 가는데 기후의 변화가 무쌍하다. 비가 오다가 맑고 눈 싸래기가 오는가 하면 백두산 입구에서 점심을 먹는데 아주 쾌청하다. 아! 백번 올라가면 두 번 마주할 수 있다는 백두산 천지를 두 번 만에 다 보는 행운을 맞이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백두산 입구를 향해 가는데 눈발이 가볍게 내리는가 하더니 입구에 도착해서는 한국에서 볼 때는 폭설이라 표현할 정도의 눈발로 바뀌었다. 그래도 아이들 까지 함께 왔는데 장백폭포는 마주하고 돌아서야 할 것 같아 오르는데 시야를 확보하기가 어렵다.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래도 아이들은 신이 나서 계단을 오른다. 하긴 이제 처음 백두산에 오는 아이들이 백두산 천지를 한 번에 보면 천지의 소중함을 알기 어려우리라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다. 어른 키를 훨신 넘는 켜켜이 쌓인 눈 밭을 지나 장백폭포 앞에서 인증 샷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 더 걱정되어서 오래 머무를 수 가 없었다.
버스에 오르자 가이드가 한마디 한다. ‘온 천지에서 백두산 천지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 오는데 천지를 보지 못하고 가는 사람이 천지임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콧 노래가 나온다.
‘아리랑 아리랑 천지 아리랑, 아리랑 간도를 찾아가자.......’
‘전사들의 투쟁의 고향 백두산을 찾아서, 간도 땅 후예들과 어깨를 결자, 통일의 그날이 찾아 오면은 간도도 우리 땅 이루어보자’
그래 이번 보고서의 주제는 ‘조선족 아리랑’이다.
첫댓글 조선족 아리랑은 들어보지 못했는데, 언제 기회있으면 듣고 싶습니다.
'조선족 아리랑' 이라는 노래는 없구요 제가 조선족들의 삶을 보고 느낀 상황을 조선족 아리랑이라 표현한겁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