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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네르바 경제 원문보기 글쓴이: 장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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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부작 건설족기업소설 : 저작권은 잭런던에 있음을 공지합니다. 80-6부
퍼플레인(Purple Rain)
무너지는 이태리
아이쿠ㅡ허리야!
온 몸 구석구석 맞닿은 부위마다 벅쩍지건하다.
여독이 똘똘 뭉쳐 머리며 허리며 팔이며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어제 이곳 시간으로 밤 열 시가 다 되어서야 밀라노 리나테 공항 도착하였다.
이태리가 아니라 할까봐, 비행기가 리나테를 앉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각진 독수리 상징의 엠프리오 아르마니 물류창고였다.
거대한 창고 상단 초대형 독수리가 밀라노의 어둠 속에 발광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나에게 빛나는 환영사를 외치는 것 같았다. ‘어서 오게 광서!’
눈을 살짝 감을 때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파리의 에펠탑과 그 형광 빛 독수리가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민박집에 도착하자 말자 나는 곯아 떨어졌다.
하지만 소위 시차라는 것을 몸소 느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허걱! 이제 6시?
분명 피곤한데, 잠은 더 이상 오질 않는다. 그냥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난 가방을 열어 영어로 인쇄된 명함과 회사 팜플릿을 꺼내 하나 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관셔! 하이 롱타임 노씨이!”
밀라노에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지오바니가 방문하였다.
지오바니는 작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이태리어 강사로 있었다.
3년의 한국생활이 그에게 한국어를 능숙하게 한 것이다.
우리 눈으로 보면 이태리 사내들이 다들 엇비슷하듯이 지오바니도 역시 그랬다.
눈이 깊고 까맣고 약간 곱슬기의 머리카락 콧매가 예리한 게 얼핏 잡지책 모델 같다.
그는 작년에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 곳 이태리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태규, 나 그리고 지오바니 이렇게 세 명이 재작년 경주에 당일치기로
불국사에 간 적 있었는데, 지오바니의 처 지영 씨를 그 곳에서 만났다.
지영 씨는 그 당시 여행사에 소속된 일본인 대상 가이드였다.
입구 주차장 불국사 대형 안내판 앞에서 처음 그들은 만났다.
지오바니는 한참 깃발을 든 일본인들을 상대로 설명에 여념이 없는 지영 씨에게 철이 자석을 따라가듯 찰싹 붙어버린 것이다.
그 후 그 무리들과 어디론지 함께 사라졌다.
잠시 자판기 커피를 뽑으러 한 눈을 판 사이 실종된 것이다.
핸드폰도 꺼져 있었다. 절 내에도 가보고 온 사방을 찾아 해맸지만 일본인 관광객들도
지오바니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한 참 주차장에 주저앉아 열심히 담배만 태우고 있을 때
연락이 왔다. ‘관셔! 나 여기 경주시내. 지영씨랑 같이 있서. 데리러 와줘.’
*
“안녕하세요~, 광서씨!”
지오바니 뒤에서 지영 씨가 고개를 스륵 내밀었다.
우린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이 곳 밀라노 민박 주인인 태규 후배 철중도 이미 한국에서 면이 있었다.
“광서 형, 식사하세요. ”
철중의 아내가 한국 친정으로 간 바람에 장기간 집을 비우고 있는 상태였다.
아마 일상적인 언어가 아직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 너무 스트레스가 되었나보다.
그 스트레스가 결혼 사 년차인 그들에게 애를 쉽사리 가지지 못하는 부작용을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물론 철중의 말이다. 언젠가 한국에 왔을 때,
그 고충을 털어 놓더니...
결국 해결책으로 내 논 것이 당분간 한국 친정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것인가 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난 비싼 호텔이나 생면부지의 민박을 구태여 구할 필요는 없었다.
김치찌개로 아침을 든든하게 때운 후 나 , 태규 , 지오바니 그리고 지영씨가 일행을 이뤄 두오모 광장으로 향했다. 두오모는 이태리어로 대성당을 뜻한다 그랬다. 이태리 전역 대도시에는 통상 이런 두오모가 중심지에 세워져 있다고 했다.
밀라노도 예외가 아닌지라 그 중심에도 그런 두오모가 우람한 자태로 서 있었다.
특히 밀라노의 두오모는 걸작 중 걸작인 성당 건축물이라 하였다.
성당을 넓은 광장이 에워싸고 있었다. 광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던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더러 '하나 , 둘 , 셋!' 한국말이 들렸다. 온 세계의 언어들이 광장 속에 빽빽이 풀어져 있었지만 내 귀는 사냥개가 냄새를 맡듯 한국어는 귀신같이 잡아내고 있었다.
두오모 옆은 '갤러리아' 쇼핑돔이 위치해 있었다. 사람들은 천정이 높은 고색창연한 터널같은 갤러리아로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마냥 굉장하고 마냥 신기했다.
태규와 난 갤러리아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 집사람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마음 한 켠이 한 번 훅 가라앉는다.
한강처럼 흐르는 人流를 따라 계속 거리를 활보했다.
십 여분 정도 걷다보니 세계 패션의 대명사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 표지판이 보였다.
모퉁이를 도니, 다시 노폭이 넓은 큰 길이 나오면서 그야말로 세계 유수의 브랜드가 모조리 모아진 패션 스트리트가 펼쳐졌다.
샤넬, 루비통, 아르마니 , 에트로 , 펜디 열 걸음마다 세계 탑 브랜드 매장들이
잡지책의 광고지를 넘기듯 간판을 바꾸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도 그 거리에 걸맞게 옷을 입는 감각들이 장난이 아니다. 우리가 입은 회색 양복차림은 좀처럼 볼 수가 없었다.
블루, 레드, 오렌지, 블랙 , 화이트, 좀 요상한 블루, 야릇한 블랙, 파스텔 오렌지 ....이태리 사내들은 양복 하나 걸치지만 참으로 다양한 칼라다. 남세스럽다는 느낌도 없다. 모두 멋졌다. 세상에서 가장 큰 패션쇼를 보는 것 같았다. 은연중 나부터도 뭔가 화끈한 색상의 양복을 하나 구입해야겠다는 충동마저 강렬하게 일었다.
진작이 느꼈지만 밀라노는 하나의 거대한 바위였다.
‘야 정말 돌로 다 만들었네.’ 도로도 건물도 벽도 밀라노는 온통 돌로 만든 도시였다.
그것도 최소한 몇 백 년 된 갈색 이끼가 도돌도돌핀 때깔 나는 올드 스톤으로 말이다.
당장이라도 거리에 줄지어진 가로등과 전선줄만 없애버린다면. 그리하여
누군가 로마병사의 복장으로 창을 들이댄다면,
난 금방이라도 시대가 헷갈려 멍해질 판이다.
사진만 줄잡아도 필름 두 통은 소진했다싶다. 이제 포즈도 웬만한 프로 모델들보다 각이 나왔다. 헌데 사람이라는 게 말이다.
교만해서인지, 그 돌 타일을 깐 도로와 영화세트 같은
건물과 맵시 뽐내는 사람들조차 늦은 오후로 접어들 때 쯤 벌써 객창감이 삭감되면서 눈에 익고 슬슬 질리기 시작했다. ‘무얼 먹어야겠다.’ 질리기 배가 고프다.
일요일은 내내 민박 주변만 혼자 어슬렁거렸고,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방에 모여 태규가 말한 업체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첫 주는 업체 방문으로 스케줄이 꽉 짜였다. 다음 주는 세레발네나 꼬모 그리고 스위스
폭스타운 등 명품 아울렛 시찰로 대충 아우트라인을 잡았다. 태규와 지오바니가
열심히 일정 의논에 열을 올렸다. 지오바니는 이태리로 돌아와서 밀라노 지역 신문사에 프리랜서 칼럼니스트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었다.
틈틈이 우리 일을 돕겠다며 자청했다.
하지만 난 태규를 조용히 불러,
‘그래도 자동차 렌트도 그렇고 어차피 가이드를 겸하여 사람이 필요하니,
지오바니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하루 100유로씩 돈을 지급하겠다고 말해줘‘
나름 복무규정을 만들어 버렸다. 합리적인 선이었다.
지오바니는 태규가 부엌에서 자기를 부르자 지영 씨와 애기 도중 방을 나갔다.
잠시 뒤 방문을 열고 내 얼굴을 응시하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관셔, 왜 그래.’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손가락 하나를 힘주어 이마를 갈랐다. ‘그만!, 애기 끝’
철중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두 달 정도 월세는 내가 지불할 테니 한국 관광객을
더 이상 받지 말라 일러두었다.
그리고 철중에게도 역시 한 달 2000유로를 단기 임금으로
지급할 터이니 가이드를 겸하여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철중은 흔쾌히 수락하였다.
지영씨 에게도 부업거리를 주었다. 그 곳 유학생을 수소문해 하루 일당 50유로를 지급 조건으로 알바 세 명을 구해 달라 부탁했다.
그러면서 지영 씨를 팀장으로 의류나 패션 소품을
사입하는 전문팀을 만들고자 한다- 라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모두들 마치 큰 일전을 앞 둔 비장한 표정들이었다.
그들의 순수한 마음이 읽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함박, 웃음이 터져 나왔다.
“즐기자, 즐겨!”
*
다음 날 아침 출정을 앞 둔 시작부터 지X같은 일이 발생하였다.
지오바니가 우리를 데리러 간 사이 잠시 아파트 밑에 주차한 차를, 정체불명의 도적들이
유리창을 깨고 안에 있던 카오디오 및 전자수첩, 뒷자리에 걸어 놓은 에트로 양복까지
모조리 강탈해 간 것이다. 난 너무 어이가 없었다. 뭐 이래! 이태리.
하지만 지오바니는 자기 잘못이라고 몇 번을 자책했다.
그리고 태규와 철중도 지오바니의 말에 잔인한 동의를 한다.
원래 이태리가 그렇단다. 밤이고 낮이고 깔딱 잘못하면 이미 없다.
난 지오바니에게 기왕 이렇게 된 거 전자수첩과 양복은 선물로 사주겠다고 선언을 해버렸다. 태규와 철중은 ‘지오바니!. 이럴 줄 알고 일부러 세웠던 거 아냐? ’ 농까지 던졌다.
지오바니의 얼굴에 그늘이 살짝 거둬지며, ‘아냐, 아냐!’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지금이 가을이라서 다행이지 겨울이었다면 차창을 열고 야단날 뻔 했다.
정말이지, 이태리의 물가 또한 만만치 않았다.
네 명이 식사 한번 하더라도 , 모든 것이 낱개 하나하나 계산이 되나보니
이게 장난이 아니다. 식당에도 한국에 그 흔한 정수기 하나 없다.
물 값 따로, 메인 음식 값 따로, 디저트 값 따로 심지어 스프 값 따로
통상 밥 한 끼도 1인 당 평균 40유로였다. 환율이 1091원 이니까..
사 만원이 약간 웃돈다. 네 명이 식사를 하니까 한 끼에 보통 십 만원이 족히 깨졌다.
태규가 말한 첫 업체를 돌아보고 그 곳 업체들이 모인 타운에 딸린 식당에서
지오바니에게 궁금증을 물어보았다.
“지오바니, 이태리 사람들 보통 직장인 월급이 얼마야?”
지오바니는 눈을 껌벅거리며 속셈을 하더니,
“음... 3500~4500유로 되겠다. 관셔 ”
태규가 옆에서 말을 거둔다,
“아니지, 여기는 공제하는 액수가 많아서 실 수령액은 2500유로 정도 밖에 안 돼..”
그러니 나의 은밀한 궁금증 더욱 커졌다.
“야, 태규야. 그렇다면 한국돈으로 대충 250만원에서 300만원인데.
보통 네 식구 밥 한끼 먹어도 십 만원이면,,,이거 어케 살어? “
지오바니는 스파게티를 면 줄기를 둘둘 말며 짧지만 단호하게 대답해 버렸다.
“NO! 그건, 가족같이 밥 먹으러 다니면..리치. 부자들이야”
지오바니 말은 이랬다.
이태리가 유로 존으로 편입되면서 물가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상승해 버렸단다.
거의 폭등 수준이란다. 국민들이 그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 받고 심지어 폭동설까지
돌아단다. 이태리를 비롯하여 라틴계 유럽 국가들은 알프스 이북 유럽 선진국들 비하면 국민들의 소득격차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속으로 한국과 달리 어둠과 함께 거리에서 사람들이 사라지는 이유를 다소 알 것 같았다.
경제학을 배워본 적이 없어 지오바니의 말에 맞장구를 쳤긴 했지만 솔직히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상황이 감각으로 담박 이해가 갔다.
지오바니는 이태리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겨간다고 걱정을 했다.
물론 이 말도 난 납득이 어려웠다. 뭐 그는 칼럼니스트이니까.
그에게 상식은 나에겐 지식이니 그리 나 스스로에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되레 실망은 사실 방금 돌아본 그 업체의 실사과정에 있었다.
소위 TOP 클래스의 명품 아이템들이란 정보,
그래 브랜드를 꼼꼼히 살펴보면 그 말은 분명히 틀린 바는 아니다.
하지만, 가격과 퀄러티의 굴곡이 너무 심했다.
태규가 말한 덤핑 가격의 물품은 나의 관점에서 냉정히 따져 봤을 땐
의류 같은 경우에는 몽땅 팔다 남은 재고품이었다. 예컨대 바지인 경우 사이즈가 한국인에게도 너무 작은 24,25,26 가 물량의 8할 이상이었다.
아님 현저히 퀄러티가 떨어졌다. 아무래도 제 3국 OEM 제품들 같았다.
에트로 패션 시계 같은 경우는 겨우 50유로. 하지만 우리나라의 웬만한 길거리에 파는
시계나 별반 차이를 못 느꼈다. 시계 뒷면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원산지표시가 없었다.
이는 ‘Made in Italy'가 아니라는 반증일 것이다.
그리고 잡화 같은 경우도, 이를테면 가방이나 신발, 지갑 등은 거의 태반이 원산지 표식이
없는 동유럽 OEM 제품으로 추정되었다.
‘야, 이건 그나마 좋네..’ 싶은 아이템들은. 역시 입수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여지없이 그 부분에 있어서는 업체관계자가 이태리산이라 힘주어 강조했다.
물론 시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지안 프랑코 페레 남방 같은 것은 불과 30유로 였다. 30유로면 지금 환율로 환산하면(1091원) 약 33000원 정도 여기서 부가세 관세 물류의 공식, 곱하기 1.33하면 약 4만 4천원 정도로 원가가 정해진다.
하지만 이 남방은 모두 원산지표식이 없었다.
업체 관계자는 이미 여러 차례 한국인과 접촉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뭘 원하는지를
넌지시 되물었다. 원하면 메이드 인 이태리 Tag을 붙여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추가로 2유로를 더 지불해야한다는 조건이었다.
지오바니가 걱정스럽게 말한 보이지 않는 ‘균열’이 패션제국 이태리에 대한
나의 지나친 ‘기대’로 차츰차츰 번져가고 있었다.
둘째 날, 셋째 날도 균열이 이어지긴 마찬가지였다.
업체들 하나하나가 오십 보 백 보였다.
심지어 어떤 업체에서 본 정장용 셔츠가 브랜드만 바뀌어 다른 업체의 쇼룸에서
발견되었다. 구태여 지오바니나 태규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장사꾼의 눈썰미에만 포착되는 미묘한 차이였기 때문이다.
태규의 히든카드였던 버버리 머플러도 이상한 고민만을 남겨 놓았다.
태규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대상이 바로 버버리 머플러였다.
30유로에 2만장을 입수할 수 있다는 정보는 그 신뢰성 자체가 무너졌다.
그 출처인 업체는 난색을 표하면서, 버버리는 영국 본사에서 각국마다 일정 쿼터로
제한하여 할당판매 하기 때문에 한 나라에서 2만장이라는 수량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의 경우엔 1900장, 일본 9000장, 미국 19000장 이런 식이다 는 것.
하지만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진술이 나왔다.
그 버버리 머플러를 작년 이태리에서 영국본사의 물량을 발주 받아 제작을 한 건 사실이란다. 허나 그 수량도 총 1 만장에 불과 했다. 그 제조 단가가 아마 25유로 정도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 이태리 공장이 정체불명의 동양인과, 추정컨대 홍콩업자와 결탁한 것인지 아님 한국인과 결탁한 것인지 지금에 와서 판별이 불가능하지만 30유로에 3만장을 더 생산해
현찰 박치기로 넘겨버린 것이다. 그러니 제조코드가 진품 바코드랑 하등 다를 바가 없으니 그 물품에 관한 한 일일이 법적으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영국 본사가 난리가 나서 그 공장라인을 당장 폐쇄해 버렸단다.
이러한 사정도 모르고 이태리에 가면 버버리 머플러를 30유로에 입수할 수 있다는 말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다. 태규에게 그 정보를 넘긴 장본인이 후배 철중이었고
철중도 비즈니스 투어를 온 민박 손님인 한국인 무역업자에게 그 소문을 들었다는 것.
철중은 몹시 당혹해 했다. 당혹한 건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터넷으로 쇼핑몰을 운영하던 내가 작정하고 이번 투어를 왔다면 차라리 이태리는
아직 보물창고였다. 하지만 상열이 추구하는 바대로 10만 명이 지속적인 비젼을 가질 수
있는 솔루션으로서는 기대 이하 점수다.
이태리의 패션 산업은 고정비를 결국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무너지는 형국 아닌가.
이유는 간단하다. OEM이 빈번하면 브랜드 관리는 당연히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장사꾼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상식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난 묵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건 태규도 마찬가지였다. 바보가 아니라면 태규는 내가 입을 닫고 침묵하는 이유를 알 것이다. 하루 종일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이젠 달리는 고속도로 표지판마저 이젠
한국처럼 느껴진다.
후회막급이다. 세상에 정말 쉬운 일이 없구나.
애들이 뭐라 할까...벌써부터 별의 별 걱정이 다 앞섰다.
‘아냐, 시간이 아직 많잖아.... 정신부터 좀 차리자. 광서야’
“내일은 그냥 하루 쉬자. 전략을 좀 바꿔야겠다.”
나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모두 대답들이 없다.
바깥에 내려진 어스름처럼 차 안은 시무룩한 표정들이 짙게 드리워졌다.
6편 끝.
7편 - 여하튼 ‘ 솔루션은 찾아라! ’
PS- 지금 시간적 배경이 2003년 가을입니다.
그러니 1 유로 1091원인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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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론) 오늘 좀 바빠서리. 돌장군님 질문에 이제 첨부하여 대답 드립니다.
돌장군님의 질문,
최근 국내에서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데요.
대우,미래에셋,동양,현대PwC 등에서 만든 팀의 구성원들을 보면 큰 이슈인 듯 싶어요.
예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의 조카(이상득 의원의 아들) 이지형(전 골드만삭스자산운영 대표), 산업은행 이사 출신 2명, IMM인베스트먼트 대표, 한국IT벤처투자 대표, 전 코스닥증권시장 사장 등 굴지의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더라고요.
보시기에 SPAC 시장이 어떻게 예상되는지, 또한 각 팀들의 특징에 대해서도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 조금 어리석은 질문이라 부끄럽네요. *^_^*
대답)
님의 논리적이고 예리한 질문에 저는 또 비논리적인 대답을 드리는 우를 범합니다.
제 스펙을 벗어나니까...이런 제기랄...
본래, 무너지는 곳에 먹을 것이 많습니다.
상위 0.01%의 고급기업정보를 권력 네트워크를 통해 우선 독점 취득할 수 있는 그들에겐,
곧 경제상황이 맞이할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일시적 위기를 터 잡아 양질의 기업을 삼킬 절호의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0.01%의 정보를 갖는 이유는 뻔~하죠.
사실 우리나라의 기업인수목적회사의 주체는 기존엔 외국 먹튀 헤지 펀드 계열 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론스타였죠. 하지만 이를 반성하고 방어하기 위해 움직인 국내 자체 세력들이 등장하였는데, 바로 각 공제회들 이었습니다.
교원공제, 군인공제, 경찰공제가 서울 산업 은행과 손잡고 외국계 M&A 세력들을 악의적으로 침투하는 것을 그나마 많이 커버링을 했습니다.
덩어리가 커면 산업은행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산업은행과 각 공제회 그리고 정책당국자인 재정경제부를 통틀어 ‘모피아’라고
하지요.
예컨대, STX조선의 경우 2002년인가 유동성의 위기를 겪은 바가 있습니다.
위험에 노출된 STX조선을 구해준 기관이 바로 군인공제회입니다.
STX조선은 500억의 중단기 자금을 수혈 받고 멋지게 일어셨죠.
이자 100억까지 받고 감사패까지 공제회가 받았습니다.
(이거도 기밀인가? 언급해도 되나?)
노통 때 각 공제회는 영리창출 때문에 부동산 투자도 물론 했지만 각종 주식 개입,
STX처럼 리스크가 커져 금융기관에 배제를 당한 기업들도 여럿 살렸습니다.
아마 이런 공제회가 없었으면 양질의 중견기업들 많이 인수합병 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골프장이나 해외 물거리나 찾는 하이에나로 변질된 것 같더군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며느리도 모를 것입니다.ㅋㅋ.
님이 말한 질문의 의도는 저의 대답과 거리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위에 말한 대우,미래에셋,동양,현대PwC 등은 겉으로 들어난 사적 모듈일 뿐이고
그 배후에서 움직이는 실세들은 따로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불법적 정보 독점이고 공적 자금 동원이면 ~~~게이트가 되죠.
그러니 각 회사의 특징도 전 없다고 단정합니다.
특징은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의 특징이겠죠. 시장은 커질 겁니다. 마구!
단기 유동성을 막지 못해 쓰러질 양질의 기업들도 많을 것이니까요.
대답이 어눌해서 죄송합니다.
아~, 오늘 readme 선상 말 잔혹 하네..
나도 창녀출신이라 이미 자폭한 후에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면 난 어켜..흑흑....
하지만 논리는 분명히 맞음. 왜? 습성은 쉽게 버려지는 것이 아니거던..
대포알로 머리가 바수어져야 겨우 바뀔까 말까...이거던.
그래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음.
난 야권 단일화 걸레 할래!
걸레에게 책값 투척!
(다 보입니다. 생까고 가는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