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와 숫자는 둘 다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기호이지만 그 성격은 다르다. 문자에 익숙한 사람은 숫자에 서툴기 쉽고 또 숫자에 익숙한 사람은 문자에 서툴기 쉽다.
일찍이 세종대왕은 문자의 중요성을 깨닫고 한글이라는 우수한 문자를 창제하였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문자뿐만 아니라 숫자의 중요성도 깊이 통찰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산학은 비록 술수라 하겠지만 국가의 긴요한 사무이므로 역대로 내려오면서 모두 폐하지 않았다. 정자나 주자 등의 선현이 산학에 전심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이 사실은 통찰하고 있었을 것이다. 최근 농지를 등급별로 측량하는데 있어서 이순지. 김담 등의 활약이 없었던들 그 셈을 능히 할 수 있었을까? 널리 산학을 익히게 하는 방안을 강구하라. ― 세종실록, 25년 11월 17일
아무리 좋은 문자라도 숫자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또 아무리 정교하게 조합된 숫자들이라 하더라도 문자로 표현된 뜻을 다 담을 수는 없다. 문자와 숫자는 모두 자체의 특성과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우리는 문자와 숫자의 상이한 특성을 적절하게 살피어 씀으로써 더 많은 일을 정확하고 명료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가령, 숫자만으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고, 반대로 문자만으로 정확한 시간 약속이나 상품 주문을 하기는 어렵다. 숫자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많은 법률조항이나 계약서들의 작성도 불가능할 것이다. 상보적인 관계에 있는 문자와 숫자를 동시에 잘 이용할 수 있어야 사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표현에 이를 수 있다.
여기서 숫자란 1, 2, 3 등과 같은 아라비아 숫자뿐만 아니라 하나, 둘, 셋 등과 같이 문자로 표기된 것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