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땅모양의 맹호(猛虎)를 상도(商道)상징화로 한 단체가 있다.
어려운 경제를 살리면서 일자리 234개자리를 창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자가 만난 사람은 남북이 공유하는 동학 - 천도교의 수장 김철 교령을 보좌하다가 통일을 앞당기는 통일정보신문에서 통일인성교육을 지도하면서 사업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고순계(60세) 교수였다. 작년까지 그는 국방대학교 국방정신교육원과 공군사관학교 공군보라매수련원에서 국방경제와 인성교육(단학수련)을 교육하는 군교수로 활약했었다.
그는 지금 전국 군/구 단위로 상술이 아닌 상도로 막가는 천민자본주의를 극복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상도경제인연합회'를 조직하고 있다. 고 교수는 "문제의 시대에 문제가 없는 기업인이 있다면 그 기업인은 문제의 기업인"이라면서 "이대로는 나라가 거덜날 수밖에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우리의 경제의 현실
"우리사회는 국제화 세계화라는 기치아래 사회 문화 전체를 서구적 양식에 맞춰 물질적 가치만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깐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면 과연 이렇게까지 우리가 서구문화에 동화되어 천한 물질주의에 함몰 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겠다고 해서 꼭 우리 자신의 모습을 서구인들처럼 바꾸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만들어 나간다면 국제무대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가, 인터넷을 얼마나 많이 아는가,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과 현실을 바로 알고 자신의 모습에 충실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경제 자체가 해외 의존적으로 수출 주도형 발전을 해왔기 때문에 국제경제무대에서 힘을 가지려면 그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몇몇 대기업에서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와 자동차, 정보통신 등의 분야에서 비교우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미래 시장 상황은 낙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이들 분야가 서구에서 시작한 것인만큼 그들보다 앞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2배 3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국내 경제의 내부적 결속력을 다지고 독립적 경제의 틀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고 교수의 개성상인의 상도 상징화인 맹호 보급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4년 고려대학교 ROTC 학군단 교관으로 부임하면서부터이다. 그는 당시 고려대 학생들이 신발은 나이키, 가방은 죠다시, 그리고 옷은 아디다스를 입고 다니면서 자칭 '민족의 대학'이라고 말하는 이중적 자아정체성의 모순을 발견한다. 그는 고려대학 학생들에게 강의 시간을 통해 지적한다. "외국제품을 팔아주는 것도 모자라 그 상표를 선량한 서울시민들에게 광고하고 세뇌하면서 어떻게 <민족대학 -고려대학> 학생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 행위는 길바닥에서 어느 특정업소 전단지를 뿌리는 사람들과 하등 차이가 없다. 차라리 그들은 업주로부터 일당 얼마를 받으면서 그 일을 하지만 여러분은 다국적기업 외제 상품을 팔아주고 또 그 기업의 광고까지 그것도 무료로 봉사하는 행동을 하면서 어떻게 민족 고려대학을 다닌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사실 이는 고려대학 뿐만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며 현실이기도 하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대한민국의 안방까지 점령한 병리현상
고 교수는 남북선수들이 운동하는 장면을 TV에서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남한의 선수는 'adidas'상표가 부착된 상의를 입고 있는데, 북한의 선수의 가슴에는 '조선'이라고 쓰여져 있는 것이다. 그에게 북한 선수의 옷이 그토록 신선하게 보이는 동시에 남한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고 교수는 국민의 순수한 망막에 미국의 다국적기업기업 상표가 스포츠의 이름으로 각인되는 자본주의식 광고의 역기능과 천민으로의 인성을 내면화하는 언론인과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놀라지 마십시오. 조선 독립 만세 소리가 메아리친 탑골공원 앞에 있던 민족기업 '태극당'이 '맥도날드'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남과 북의 두 지도자들이 만나던 2000년 6월 15일 민족기업 '고려당'이 '버거킹'으로 간판을 바뀌더니 지금 젊은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토종기업이 퇴출되고 우리 소비자들은 미국제품을 손에 쥐어야 행복하고 만족하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망국의 외제선호의식의 사회병리는 반듯이 치유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경제가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가 이같은 사회병리에서 기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일의 조선짓밝기 삽화)
맹호도의 상징과 그 의미
그는 고려대학교를 거쳐 국방대학교 국방정신교육원 국방경제 교수로 임용되는데, 이곳에서는 교수학술 논문집에 '개성상인의 상도商道 상징화 - 맹호'로 군에서 외제선호잠재의식을 치유해야 한다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고, 국방일보에 'IMF의 근본원인과 우리 군의 다짐'(국방일보 1998년 7월 17 ~ 19일 연재)을 발표하면서 군 부대를 순회하면서 국방경제에 대한 특강을 하는가 하면 학교, KBS, 기업체, 한국인성개발원 등에 특강을 한다.
고 교수는 강의하면서 교육생들이 모르게 '815콜라'와 '코카콜라'를 바꾸어 넣고 먹게 하면 분명히 815콜라를 먹으면서 '역시 코카콜라여야 해'라고 말하고 또 반대로 '코카콜라'를 먹으면서는 "안 되겠어, 역시 815콜라 - 국산품은 안 되겠어."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사회병리를 치유하기 위한 무기 '개성상인의 상징화 맹호도'를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한 것은 1984년 당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고려대학생들의 데모에 온 교정이 최류탄 가스로 가득차 있던 때였다. 최루가스를 피해 들어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맹호도를 발굴한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우리나라의 자화상은 토끼가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가 다시 되찾아야 하는 고구려의 저 만주벌판을 향해 포효하는 맹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 교관은 이 호랑이를 보는 순간 '우리의 민족얼을 내 뿜고 있는 만다라'라고 생각하고 이를 당시 종로 탑골공원 앞에 있던 민족기업 고려당 사장(고 김지웅)에게 찾아가 말한다.
"얼마 전에 태극당이 문을 닫고 맥도날드로 간판을 바꾸었는데 머지않아 고려당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이 큰 바위얼굴, 만다라를 인쇄해 고려대 학생들에게 선물하면서 우리의 일그러진 사회병리를 치유하고 싶습니다."
이 말을 듣고 김지웅 사장은 맹호도 7천 장을 인쇄해 주었다. 고 교관은 고려대학생들에게 이것을 나누어 주면서 민족 고려대학이 환골탈태해야 한다면서도 "이 맹호기상도를 가까이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웅혼한 맹호의 기상을 내면화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민족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외쳤다. 고려대학생들은 자신들의 모교 - 초 중 고등학교에 받은 맹호도를 액자로 만들어 선물하는 애교심과 애국심을 발휘하였다. 맹호기상도가 민족의 비화(秘畵)이자 성화(聖畵)요 만다라라고 믿으며 이것이 전국방방곡곡 가가호호에 보급되는 날 자연스럽게 우리의 지역경제, 나라경제가 되살아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국방일보와 호랑이 논문쪽)
개성상인의 상징화 - 맹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일제 36년 후반기부터 일본은 조선의 민족저항의식을 잠재울 방법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아냈다고 고 교수는 주장한다. "풍수지리설을 신봉하는 조선백성들에게 나라모양이 동물중의 겁쟁이, 토끼를 닮았다면서 못난 조선족으로 자신을 비하하도록 하였고 여기에 더하여 나라이름을 '조선'에다 통치자 '이씨' 성씨를 붙여 '이씨조선'이라고 평가절하하여 당시 저항하는 조일합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였습니다. 세상의 어느 나라가 그 나라의 통치자의 성씨를 붙여는 경우가 있습니까? '이씨만두집'은 있어도 나라이름에는 이럴 수는 없습니다. 자기들은 '대일본제국'이라면서 말입니다."
개성상인들은 일제가 무력적 침략에서 경제적 침략으로 전략을 전환하면서 이러한 모략을 발휘하는 사실을 인식하고 조선이 토끼가 아니라 포효하는 맹호라는 민족적 자존심을 극대화하면서 개성상인들간에는 서로의 고객을 공유하는 두레운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아울러 고객들에게 일본의 근대상품 불매운동을 펼치면서 자연스럽게 입소문(口傳)를 통해 다른 개성상인들의 광고를 전파하는 지혜를 발휘한다. 고 교수는 이런 운동을 전개하여 결과적으로 일제의 경제침략으로부터 벗어나 개성경제를 살린 개성상인들이야말로 경제전쟁의 영웅들이라는 것이다.
당시 개성상인들은 조선물산장려운동의 일환으로 "조선사람 조선 것으로"의 구호와 함께 맹호기상도를 보급한 개성상인의 상도는 경제를 활성화시킨 활화산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 고 교수의 주장이다.
(자존심과 자학심) 토끼와 이씨조선/ 맹호와 대한민국
고려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맹호도의 위력
고 교수는 지적한다. "오늘의 어려운 경제가 일제의 그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개성상인의 상징화를 통해서 '어설픈 남의 것을 좋아하는 드라큐라'를 퇴출시키고 '고운 우리의 것, 우리의 도깨비, 우리의 만다라'를 국민들의 잠재의식속에 내면화 해야 한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즉 가슴에는 조국을 눈에는 세계를 향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서구의 가치, 이념, 종교의 악화가 고운 우리의 양화를 구축해버린 현실입니다. 동양에서 중국과 일본이 기본의 뿌리를 갖추고 있는데 우리 남조국만이 미국화되어 버린 일그러진 자화상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많은 국민들이 미국이 없으면 못 산다는 자기능력 상실증에 걸려있습니다. 이 망국의 외세 숭앙의 사회병리는 반드시 치유되어야 합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군 병영에도 서양종교의 목사, 법사 그리고 신부들과 함께 우리 민족종교 천도교, 원불교, 증산교의 선도사가 자리를 함께 잡아야 이 시대 이 땅의 화두 - 조국통일도 자연스럽게 오게 될 것입니다."
'만다라'는 분단 반세기인 21세기를 살아가며 만연한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 풍조에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 있는 만신창의 현대인들에게는 더없는 자아발견, 자기개발의 성화(聖畵)가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현대는 응당 정신과 물질의 조화를 이루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야 하지만, 현재 우리는 물질의 풍요와 횡포 속에 정신문화는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황폐화된 지 오래되었다. 자기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그 열쇠가 우리의 자화상 맹호도 - 만다라 속에 숨어 있다고 고 교수는 말한다.
<맹모삼천지교>라고 했습니다. 맹자가 자라면서 무엇을 보느냐에 의하여 백번 변한다는 환경론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맹자는 공동묘지를 보면서 허무주의자가 되었고, 시장바닥의 상인들을 만나면서 천한 수전노가 되었습니다. 급기야 서당에서 글을 가까이하면서 결국 그는 숭문론자가 되는 것처럼 그저 사람은 주변의 환경이 곧 자신인 것입니다.
맹호도가 고려대학교와 인접한 안암동 동네에 보급되면서 그 일대에서는 미국의 다국적기업 상표 업소들이 사라지는 이변현상이 생겨났다. 연세대학 등이 몰려있는 신촌 동네와는 확연히 차별화 되는 기적이 창출된 것이다. 다국적기업들이 들어설 수 없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소비자의 구매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개성상인의 상징화 보급의 본의다. 고려대학교에 인접한 홍파초등학교의 여 교장선생님은 이 학교 출신의 고려대학생이 기증한 호랑이를 학교 현관에 붙여놓고 조회 때마다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에게 "국산품을 애용하자."고 말하는가하면 대광중학교의 복도에 전시된 맹호도는 그곳 중학생들이 자기들 모교인 초등학교에 보내겠다면서 맹호도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신촌(맥도날드)과 안암(토종업소)의 차별화/ 대광중학교의 맹호도 전시한 사진
자아발견→자기개발의 '큰바위얼굴' - 맹호 만다라
약육강식의 경쟁과 속도전에서 승자만이 월계관을 쓸 수 있는 자본주의의 물질문화의 횡포속에 자신의 정신적 존재가치를 상실한 우리들. 과연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그리고 성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보는 것(觀)이 곧 생각(念)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관념觀念'이다. 'seeing은 believing'이다. 굵은 수직선은 남성적 웅장한 생각을 낳는다. 반대로 가느다란 수평적 곡선은 여성적 평화를 뿜어낸다. 우리나라 지도의 수직선의 굵은 'S'형은 포효하는 이미지로서 '큰바위얼굴'의 성화인 것이다. 맹호를 응시(觀)하노라면 진취적인 힘(念)이 나옵니다. 바로 <생각의 힘>입니다. 새 세상을 여는 주체로서 내면의 참 나를 깊이 인식하게 될 때 바로 그 순간부터 세상은 바뀌게 됩니다. 이 맹호는 남조국과 북조국이 뭉쳐서 한 마리의 호랑이로 됩니다. 따라서 이 호랑이를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하나"라는 자연스런 우리의 소원 통일이 베어 나오게 되는 통일의 성화입니다. 냉전이 세계의 유물로 남아있는지 오래되었음에도 우리는 북을 증오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북보다 남이 더 많이 변해야 한다는 강만길 교수님의 지적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가보안법의 목적과 기능이 통용되는 현실에서 이 남북의 어울려버린 맹호는 치유의 만다라입니다. 또 미래의 주인공인 젊은 청소년들은 현실의 물질의 풍요속에 그대로 안주하여 통일이 아닌 분단의 현재를 - 이대로가 좋다고 주장하는 정서를 언론인이나 기업인들은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고 교수는 자신의 딸 고윤희를 키우던 육아의 비결을 공개하였다. 동대문시장을 지나는데 큰 수건에 새겨진 호랑이 그림을 보는 순간 "아! 저 맹호도는 자기개발의 만다라"라는 직감을 갖게 되었단다. 그 수건을 사서 당시 2살 된 딸의 요에 깔아주었단다. 처음에는 "어흥이가 무섭다"면서 저항하였지만 "바로 너가 호랑이라서 잘 어울린다."고 설득하면서 그 요에서 놀고 자게 하였단다. 보름이 지나 그 호랑이를 띄어 세탁을 하였는데 딸아이가 "호랑이 가져와라."고 떼를 쓰며 안 자는 것이 아닌가, 부지런히 선풍기에 말려서 요에 붙였더니 그때서야 그 호랑이에 뽀뽀를 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잠이 드는 것이었다. 지금 그는 호랑이대학 - 고려대학교에서 학사과정을 마치고 석사 박사과정을 밝고 있다.
"인간의 불변성은 가변성입니다. 오늘의 우리 사회병리도 얼마든지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올바로 정신을 세우고 주체성을 확립하면 치유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의 하나가 바로 호랑이를 응시하고 또 응시하는 것입니다. 만약 광야를 내달리는 맹호의 꿈을 꾸고 싶다면 방에 특히 천장에 맹호그림을 붙여볼 일입니다. 확신을 갖고 따라한다면 잠재의식에 그 호랑이가 각인되면서 무의식속에 호랑이의 기氣는 밤새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맹호는 잔상殘像이 남을 수 있도록 보색補色처리된 그림이기 때문에 눈을 깜박거리지 말고 처음 30초간 반복해서 응시하다 눈을 감게 되면 망막에 그대로 맹호의 이미지가 남게 됩니다. 더욱 적극적인 방법은 '난 저 호랑이 되어 산과 벌판을 달릴 것이다.'라고 자신을 향해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시청각 94%의 인지로 환경에 동화되는 고등동물 일뿐입니다. 종교의 상징물 및 성화들은 다 이런 원리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고 교수는 그래서 시각의 이 맹호도와 함께 청각의 '호랑이 명상곡'(고순계 작사, 나운영 작곡)을 만들어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청각 94%와 호랑이 그리고 맹호명상곡
호랑이모임의 활동
고려대학교에서 전국으로 개상상인의 상징화가 보급된 것은 고려대학교 교수와 학생들 그리고 학부형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한 덕이었다.
ROTC 교관으로 강의를 한 다음날 고대신문에 "호도로 민족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고파"라는 제목의 고교관의 강의내용이 실렸다. 이 신문이 나가자마자 한국일보 등 8대 일간지 신문에 소개되어 인터뷰를 하고, 각 TV에서도 소개되었다.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서는 "맹호도는 남과 북이 하나로 어울려 '자연통일'을 이룰 수 있는 통일화"라고 강의했고, KBS의 '오늘'에서는 전국의 호랑이 별칭이 붙은 모든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호랑이선생으로 호랑이해에 호랑이에서 견인할 수 있는 진취적인 호랑이정신을 닮자면서 자녀들의 방에 호랑이 그림을 붙여 놓으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한국일보/ 소년조선일보 / MBC/ KBS
이러한 언론매체의 소개에 힘입어 고려대학교 교수회관에서 호랑이보내기운동을 효율적으로 이루기 위한 단체가 최초로 만들어졌다. 호랑이모임(Tigers' club) 회장으로 유인종 교수(고려대학교 사범대학교 교수, 현 서울시 교육감)를 비롯하여 교수들이 주축이 되고 대학생들의 학부형들인 고 김지웅 고려당 사장, 서한샘 박사(한샘국어 저자, 한샘학원 원장) 등이 새로운 맹호기상도(호랑이전문화가 문세관의 새로운 작품)를 인쇄하는 등 호랑이모임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모임은 매주 일요일이면 탑골공원의 손병희 동상 앞에서 맹호기상도를 보급하면서 아울러 국가경제를 살리자고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사진(탑골공원앞의 사진과 유인종/ 사직동 어린이도서관)
전국에서 맹호기상도를 보내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는데 우편료가 모자라 애를 먹는 가운데서도 단체로 주문하는 사람들에게 소포로 보내주기도 한다. 어느 역사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우리의 자화상이 토끼가 아니라 맹호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교육이라면서 몇 백장을 주문하는 동시에 특강을 청하기도 하였다. 고 교수는 종로 사직동 '어린이도서관'에 단골로 나가 소년소녀들을 대상으로 '호랑이정신'교육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때 만난 사람들로 성동초등학교 김기인 교장선생님과 안호상 초대문교부장관, 윤보선 전 대통령과 백상창 사회병리연구소 소장 등과 고려대학교 이기수, 선병기, 박영민 교수 등이 함께 하면서 '호랑이모임'은 고려대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전국 방방곡곡의 맹호도 보내기운동으로 번져나갔다. 특히 설용수 중앙노동경제연구원 원장(전 세계일보 사장)는 "호랑이의 기상을 국민들에게 불어넣어 경제난국을 극복하자."면서 오늘의 천민 자본주의를 올바르게 계도한다는 차원에서 개성상인의 상도정신과 상도상징화보급에 남달리 애정을 갖고 호랑이모임의 후임 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민족경제운동과 대학발전기금
고교수는 1986년 이상훈 국방장관(현 재향군인회 회장)의 추대로 고 교관은 고려대학교 ROTC 교관에서 국방대학교 국방정신교육원 교수로 임명되어 국가경제를 강의하게 된다. 군 정신교육의 요람인 교육원에서 고 교수는 그 교육내용이 통일이 아닌 안보로 일관되게 편성되는 것을 보고 회의를 갖게 된다.
"제가 67년도 첫 육군소위로 임관하면서 저는 결심하였습니다. 통일의 장군이 되겠다고요. 그러나 그 꿈은 첫 부임지인 8사단에서부터 좌절되고 맙니다. 중동부전선의 가장 북조국 가까이 가깝다는 철원평야를 내려다보이는 곳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분단의 북을 볼 수 있다는 23세의 육군 소위의 설레임은 혼란의 계곡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산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철원 평야에는 약 200여명의 주민들이 농사의 모를 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장교가 소리를 쳤습니다.
'야, 저기에다 포탄 몇 발이면 박살낼 수 있겠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는데 바로 그 순간에 저에게는 다른 장교들이 포탄을 퍼부어야 한다는 제언에 공감하여 치는 박수소리에 한동안 저의 마음을 정리하는데에 참으로 혼란과 착잡함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우리 군은 안보가 아니라 통일의 군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
결국 그는 군생활을 통해서 뿌리없는 민족 주체성 상실의 서구문화와 망국의 외제선호 병리가 직접 연계되어 있다는 있음을 주목하고 그 사회병리를 치유코자 맹호 만다라를 보급(액자, 연하장, 스티커, 책받침, 명함, 모퉁이광고 등)에 열정을 올리면서 교수학술논문집에 맹호도로 외제선호의식을 퇴출시키는 인성교육의 논문을 게재하는가 국방일보에 'IMF에 대한 군 의식개혁'을 연재하기도 하면서 KBS 및 소년조선일보가 주관하는 소년소녀들의 방학 인성교육장에 초대되기도 하고 사직동의 어린이 도선관에 단골로 나악 맹호의 패기를 닮는 호돌이, 호순이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觀念(Seeing is believing)의 시청각 94%의 인식원리와 함께 나운영 교수의 작곡 고순계 작사의 맹호 명상곡을 부르는 호랑이선생으로 연출하기도 한다.
고교수는 경영학 석사과정을 한성대학교에서 공부하게 되는데 그는 경영대학원 원우회장으로서 민족경제인회를 조직하여 대학발전기금에 기여함으로서 졸업시 석사학위 최우수상 수상과 함께 한성대학 이사장으로부터 공로패를 받게 된다.
(국방일보 여군학교/ 맹호논문 표지/) 맹호명함/스티커(한성대학원)/연하장/모서리 광고/한성대학교 졸업안내서/ 사직동 어린이도서관과 소년조선일보)
1999년에는 공군사관학교 공군보라매수련원 교수로 4년간 인성교육을 하다가 2002년 말 전역을 하는데 청주에서는 '호랑이모임'을 '상도경제인연합회'로 바꾸어 현대판 개성상인의 상도를 펼치기도 한다. 현재 그는 남북이 공유하는 동학 - 천도교의 김철 교령 보좌역을 수행하면서 전국적으로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취지로 '상도경제인연합회'를 준비하고 있다.
한편 그는 무엇보다 남북을 한 마리의 호랑이로 만들어진 상도 상징화를 가까이하다 보면 우리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남북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양비가 아닌, 두 체제의 학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시고 있는 김철 교령의 양시론의 정서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반공을 국시로 하던 군사정권도 물러갔는데도 국민적 냉전정서는 못버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국기를 울부짖는 ㄱ종교 신자들을 보면서 우리의 고정관념으로부터 탈출을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일제 36으로부터 어떻게 찾은 조국인데 남과 북이 총을 겨눌 수 있습니까?"
남은 북을, 북은 남을 증오하는 마음을 지워버리고 공존 공생하는 제 3의 통일 방법론을 찾는다는 관점에서도 민족의 성화 맹호도는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을 내면화하여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줄것이라면서 상도경제인연합회의 상징화로 보급하는 일은 참으로 통일을 앞당기는 보람찬 일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상도경제인연합회의 청사진
국가가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도 맞아떨어지는 상도경제인연합회는 우선 전국 234개 군 ? 구 단위의 책임자로 '상도 도우미'를 조직한다.
상도도우미는 재택근무가 가능하며 현실적 수입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종이다. 상도도우미는 자신과 친척 그리고 지인들이 거래하는 모범업소를 1차 모아서 그들의 모범 업소를 모아서 100개 정도를 선발하여 2차 이(異)업종으로 조직하여 서로의 고객을 공유하는 개성상인의 두레운동으로 발전시키면서 3차의 모범업소 - 개성상인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하루 10명이던 고객이 1,000명이 되는 상도의 지혜를 현대화하면서 상도정신 즉 신용과 자린고비정신 그리고 민족경제 활성화를 오늘에 구현하게 된다.
1) 상도 기업인(대기업으로 실제로 개성상인 발굴)으로 하여금 상도의 정신을 계몽하는 것이다. 예컨대 개성상인의 상도정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 현재 북에서 내려와 자본주의에 접목한 남조국의 개성상인인 태평양 서경배 사장, 신도리코 우석형 회장, 한국화장품 임충헌 회장, 해성그룹 단재완 회장, 한일시멘트 허정섭 명예회장, 동양제철화학 이수영 회장 등을 찾아 상도정신 철학을 체계화하여 구체화 하고 그들에게 한글로 디자인된 선물(모자, 상의 등)을 받아서 자기 기업 식구들과 지역의 군/구 단위의 상도업소들에 선물하여 고객들로 하여금 개성상인의 정신을 입광고하게 하고 할인 혜택도 주도록 한다. 현재 상도경제인연합회 준비위원으로 남북경제협력포럼 조동섭 대표(백산인터내셔날 대표이사)가 물심양면으로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실에서 단기간에 동지들이 동참하리라고 보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의 기업인다운 기업인을 찾아가 그들이 준 상도로 전과확대하도록 하는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을 호소할 계획이다.
소비자는 상품을 선택할 때 품질에 대한 이성적 판단보다 기업의 이미지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상도기업인이 되거나 상도업소가 되면 매출이 증가될 것이며 우리의 안방에서만은 미국의 다국적기업을 퇴출시킬 수 있는 토종업소로소의 경쟁력을 갖추어 세계화와 지방화(민족경제-지역경제), 즉 건강한 세방화를 추진하는 모델링을 만드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고교수는 강조한다.
2) 군 / 구 단위로 모범기업 및 상도경제인연합회가 조직되면 그 업소들끼리 고객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경영노하우와 정보를 나누면서 개성상인의 품질경영을 유도하여 경쟁력을 높여갈 계획이다. 이 일은 전국 군/ 구 단위의 234명의 '상도 도우미'가 조직관리를 하면서 구체화된다.
3) 상도기업인과 상도업소 그리고 상도고객들이 추천 선발하여 시상하는 '상도 경제인상'을 제정할 계획이다.
4) 상도인들의 맹서(상도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
하나)내국인을 상대로 하는 상호와 상품은 한글로 이름 짓는다. 둘) 광고시 모델은 내국인, 소재는 민족적 정서를 내면화하는 것으로 한다. 셋) 배경음악은 우리가락을 (국방일보 IMF 극복방안 참조) 넷) 군, 학교, 지방자치 단체에 민족경제 상도경제교육(민족경제) 특강을 병행한다 등.
상도기업인 - 17개 시/도 단위로 상도 기업인 추천 조직
참 개성상인 : 태평양화학 등
다운 개성상인 : 한샘학원 등
상도업소 - 234개 군/구 단위로 상도
군단위 : 3-10여개 면 단위로 조직
구단위 : 3-10여개 동 단위로 조직
상도고객 - 상도상 수상자 추천 및 상도 모니터 고발 및 할인 부여
상도 도우미의 교량역활
고순계(高淳桂) 교수 프로필
생년월일/ 1944년 8월 15일생
주소/ 서울 종로구 사간동 91-1(우편번호 110-190)
전화/(02)722-8854 019-227-8854
가족관계(처/ 이순 영어교사)
자/ 고윤희(고려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중)
자/ 고영서(한양대학교에서 학사)
1944년 8월 15일생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졸업, 학군5기 육군소위 임관
/ 한성대학교 경영학과 경영학 석사
('민족경제인회' 조직하여 대학발전기금조성으로 이사장 공로패)
/ 경기대학교 경영학과 경영학 박사과정(휴학)
1967년 - 1971년 8사, 7사 정훈장교
1971년 - 1972년 맹호사단 기갑연대 파월
1973년 - 1985년 광운대학교/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 ROTC 교관
1986년 ~ 1997년 국방대학교 국방정신교육원 교수
/ KBS/ 한국인성개발원/ 뉴패러다임교육원/ 현대중공업/ 큰나무학교
/ 30사단 1년간 인성교육 시험교육으로 군인성교육 모델 제시
/ 교수학술논문집에 상도 상징화로 군에서의 국방경제방안을 제시
/ '단학수련에 의한 군정신전력에 관한 연구'로 교수학술논문집에
단학수련과 군인의 인성교육의 접합을 제시.
1998 ~ 2002년 공군사관학교 공군보라매수련원 교수
인성교육/ <일주일 氣수련> 개발 및 지도
청주에서 상도경제인연합회 조직 고객공유 두레운동
2003.1 ~5 종로구 삼청동사무소 氣수련
/ 한국인성개발원 및 뉴패러다임교육원 강사
/ 천도교 청년회 기氣 수련지도
2003.5 ~2004년 3월 천도교 김철 교령 보좌역(겸 인내천통일중앙회 사무총장)
2004년 4월 ~ 현재 통일정보신문 통일인성교육 교수 겸 사업본부장
/ 일요일의 무료 결혼주례
/ 전국 군/구 상도경제인연합회(상도기업인, 상도업소, 상도고객과 상도도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