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만월암과 혜공스님
김 종 훤
도봉산 만장봉 중턱에 커다란 바위를 지붕삼아 지어진 만월암은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가 세웠다. 역시 의상대사가 세운 천축사보다 바로 1년 앞선 1337년 전에 창건된 고찰이다. 천축사보다 더 높고 동쪽에 자리했다. 천축사도 처음에는 옥천암(玉泉庵)이라는 작은 암자로 세워졌으나 지금은 도봉 10대 명소에 들 만큼 중형 사찰로 발전했다. 그러나 만월암은 지형상 사찰로 발전하기는 어려운 여건이었다.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터가 비좁았다. 약 백 미터 길은 쇠줄을 붙잡고 올라야 할 만큼 험하고 밑에서 쳐다본 만월암은 가파른 바위 밑에 위태롭게 지어져 불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석굴암(石窟庵)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으나 도봉산에는 실제 석굴암이 세 곳이나 있다. 옛 고승들은 아무나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험하고 조용한 곳이나 엄숙한 영기(靈氣)가 어린 영험한 곳을 찾아 참선하고 도(道)를 닦아 깨달음을 얻은 후 번뇌에 사로잡혀 사는 중생 교화에 나섰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만월암은 한동안 보덕굴(普德窟)이라는 참선도량으로 알려져 오다가 1940년에 여여거사(如如居士) 서광전(徐光前) 주지스님이 중창하여 법당인 만월보전(滿月寶殿)과 만월선방(滿月禪房),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는 오늘날과 같은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만월보전 뒤에 있는 석굴에서는 엽전과 도검(刀劍), 방패, 화살촉 등이 출토되기도 했다.
만월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인 조계사의 직할 사찰이다.
석굴법당인 만월보전에 본존불로 모셔진 석조여래좌상 곧 석불좌상(石佛坐像)은 1999년 5월 19일에 서울시유형문화재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석불좌상은 등신대에 가까운 크기로 화강석을 깎아 만들었다. 불상의 높이80센티, 머리높이 25센티, 어깨폭 40센티미터의 온화하고 아담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세부 표현이 간략하여 원통형처럼 보이나 손에 약합(藥盒)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藥師如來)임을 알 수 있다. 이 약사여래상은 왼쪽에 관음보살, 오른쪽에 지장보살이 배치된 삼존불 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좌우의 협시 보살상은 본존불에 비해 크기가 작고 근래에 만든 것이다. 본존불인 약사여래상은 아담한 머리와 단정한 불신, 양어깨를 감싼 법의(法衣)에 보이는 옷주름 표현 등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지금은 만월선방의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왼쪽 석벽에 불상 조성기(造成記)가 새겨져 제작시기를 알 수 있다. 명문에 “건륭사십구년유월일개금...(乾隆四十九年六月日改金...)”이라는 내용으로 보아 1784년에 불상을 개금(改金)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의 조성연대는 개금시기와 불상양식을 감안하면 1700년대 전후로 추정된다.
약사여래의 본래 명칭은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이고 약사여래불이라고도 한다. 열둘의 큰 서원(誓願)을 발하여 중생의 질병을 구제하고 법약(法藥)을 준다는 여래로, 보통 왼손에는 약병을 가지고 오른손으로 두려운 마음을 없게 하는 결인(結印)을 하고 있다. 동방정토유리국(東方淨土瑠璃國)의 교주(敎主)다.
�만월암의 현 주지는 혜공스님이다.
-스님 얼굴을 보니 바로 부처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부처님을 많이 닮으셨습니다. 특히 귀가 영락없는 부처님 귀입니다.
-고맙습니다. 보살님께서 부처님의 마음을 지니셨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 입니다. 태조(이성계)께서 무학대사를 보고 '대사는 돼지를 많이 닮으셨군 요.' 하니까 무학대사가 '폐하께서는 부처님을 닮으셨습니다.' 하였습니다. ‘본래 돼지의 눈에 보이는 것은 돼지로만 보이고 부처님의 눈에는 모든 것 이 부처님으로 보이는 법입니다.’ 하였다는 일화가 있지 않습니까. 이리 들 어오셔서 차 드시지요.
우리는 등산화를 벗고 만월선방으로 들어가 대좌한 후 찻잔을 받았다. 식힌 녹차는 산을 오르느라 목이 마르던 참에 시원하게 넘어갔다. 차에 대한 예법을 잘 모르는 우리는 잔이 너무 작은 것을 속으로 탓하면서 따른 즉시 마셔 버리자 스님은 연거푸 세 잔째를 따라 주었다.
-스님은 이런 청정한 곳에서 계시니까 세상 걱정 모르고 지내시겠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근심 걱정이야 어디서 살든 마음에 달린 것이지요.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지만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지요. 살림 걱정, 손자녀 걱정 등 모른 체하고 딴세상에서 살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내 것, 내 것, 내 새끼, 내 새끼 하며 감싸고 집착을 하니까 걱정에서 벗어 날 수 없는 겁니다. 어디 재산이 내 것이고, 내 아들 내 손자가 내 새끼입 니까.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가는 나그네이고, 각자는 독립된 생명으로 자연에서 온 자연의 일부입니다. 각기 독립된 개체로서의 운명을 타고났고 대자연이 먹여 살리는 것입니다. 걱정은 부질없는 집착입니다. 우리는 집착 에서 벗어나야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집착은 미망(迷妄)인 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실수를 하면서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 아닙니까?
-우리 중생은 다 부처님의 본바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본래의 마음을 어 느 순간 깨달아 찾으면 우리도 부처님이 되고 열반(涅槃)의 경지 곧 광명한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견성(見性)인가요?
-네 견성이지요. 견성은 믿음이 오래되거나 일천하거나, 많이 배우거나 덜 배우거나 상관 없습니다. 우리의 본마음은 자기 안에서 스스로 깨달아 찾아 야 하는 것이니까요.
-죄송합니다만 스님의 연세는 어찌 되셨는지요?
-나이는 중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50세 전후로 보였다,)
-스님의 법명은 어떻게 되신지요?
-혜공입니다. ...지혜혜(慧) 빌공(空), 지혜가 없다는 뜻이지요.
-참, 빌공자를 들으니 생각나는데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란 말에 대해 설명을 좀 해주시지요.
-간단합니다. 이 잔이 여기 있지만 깨트리면 없어지는 겁니다. 본래 아무것 도 존재하지 않은 것이니까요.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밥상을 펴는 시간까지 앉아 있었다. 일어나려 하지 혜공스님은 공양을 함께하자고 하였다. 우리는 여신도 다섯 분과 남신도 두 분 그리고 다른 스님 한 분 등 열한 사람이 비좁은 선방에서 두 상을 맞대어 놓고 정갈한 사찰음식으로 점심 대접을 잘 받았다.
-스님은 어떻게 건강을 관리하세요?
-산길 오르고 내리는 것이 운동이지요.
-이 암자에는 신자가 얼마나 되나요?
-글쎄요, 말하고 싶지 않는 거지만 아무리 작은 절이라도 천 명은 되지요.
멀리 울릉도에서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여신도가 가져온 취나물이 특히 기억에 남을 만한 음식이었다, 울릉도에서 온 여신도는 고3 아들이 있는데 울릉도에는 대학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혜공스님은 걱정은 무슨 걱정이냐, 대학에 다니지 않아도 다 잘 사는 법이 있으니까 굳이 대학에 보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으나 한 달에 두 번씩 만월암에 온다는 그 불자의 소원과 걱정은 덜어지지 않은 듯했다. 우리는 다른 여신도들이 가져온 떡과 수박까지 잘 먹고 밖으로 나왔다. 스님은 툇마루까지 나와 우리를 배웅했다. 방안에서는 사진 촬영을 사양하던 스님은 툇마루에 선 채 두어 컷 찍을 동안 자연스럽게 서 있었다.
-스님, 저 석불좌상 옆의 ‘일체중생여아무이(一切衆生如我無異)’란 말이 무슨 뜻이지요? 모든 중생은 나와 다르지 않다는 뜻이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여태까지 내가 한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우리는 다 부처가 될 수 있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다른 종교에서처럼 주종관계나 수직관계가 아니라 부처님과 나는 대등한 입장에서 마음 한번 잘 깨달으면 부처가 되 는 것입니다. 부처는 곧 깨친 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는 누구하고나 다 같은 평등한 존재라는 뜻이지요.
-저 문화재로 지정된 석불좌상은 어떤 부처인가요?
-동방정토만월세계(東方淨土滿月世界)에 계신 여래입니다. 부처님이 계신 곳 이 서방정토이고 약사여래가 계신 곳은 동방정토입니다. 약사여래불은 중생 의 질병을 치료하는 부처님입니다. 이곳에서 많은 불자가 병을 치료받은 것 은 약사여래가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달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근심의 구름, 탐욕의 구름, 어리석은 구름에 가린 희미한 달이 아니라 본래의 밝은 달인 만월(滿月)은 우리의 마음, 부처님의 마음이 가득한 밝은 세상을 추구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하, 만월암에는 그런 심오한 의미가 있군요. 우리 중 한 사람이 허리가 아픈데 부처님께 절하는 오체투지(五體投地) 인사법이 아주 좋은 운동일뿐 더러 요통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요?
-되고말고요. 정신이 맑아지고 허리가 곧아지면서 치료가 되지요. 108번을 하면 좋고, 힘들면 아침 저녁으로 적당히 하면 됩니다. 요령은 손바닥을 짚 을 때는 나를 낮추고 손바닥을 뒤집어 위로 올릴 때는 상대를 높이는 마음 자세입니다. 오체를 땅에 던져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겸손이야말로 믿음 의 기본이고 깨달음의 요체이며 세상 사는 지혜입니다.
-밥 먹는 것, 한걸음 한걸음 걷는 것도 다 수행이라고 하셨지요?
-한 걸음 걸을 때 다리 자체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부터 움직이 는 겁니까? ...마음이지요. 마음의 작용에 따라 걸음이 떼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길 가는 것도 깨달음을 향한 마음 수행입니다.
-여러가지로 감사합니다. 스님께 많은 배움과 가피(加被)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법열(法悅)의 마음을 안고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만월’에 대한 깨달음과 큰 소득을 얻은 흡족한 마음으로 만월암을 떠나왔다. 약사여래의 가피를 입은 듯 가뿐해진 심신을 수행하면서 산을 내려왔다. (2009.7.23)
첫댓글 만월암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배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