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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에서 메콩강까지(6)
6월 25알 금요일 오늘로 3일째 관광을 맞으며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관관일 이다.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씨엠립 국제공항을 이륙 하여 베트남 탄손누트 공항에 도착하는 다소 느긋한 바쁘지 않은 일정 관계로 07:00에 모닝콜. 샤워와 식사를 마치고 09:30 킬링필드 위령탑과 앙코르 왓의 최대 저수지(인공호수) 바라이를 오전에 만나고 오후에는 동양최대의 호수인 톤레삽(tonle sap)을 만나기 위하여 출발하였다. 버스가 출발하여 가이드 채의 설명을 듣는 사이에, 영화 「킬링필드」에서 시체와 해골이 뒤범벅되어 널려 있던 곳을 연상케 하는 넓은 습지대를 지나자 위령탑을 모셔 놓은 조그마한 절(사원)에 도착하였다.
◘킬링필드 위령탑
캄보디아는 독립 후 15년간은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왕의 억압정치를 받았으며, 그 후 1969년부터는 베트남 전쟁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리고 1975년부터 1979년까지는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Khmer Rouge)에 의하여 공산화되어 킬링필드의 대 학살이 자행되어 7백만 캄보디아 인구 중 약 2백만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30만의 난민을 만들어 혁명 이전에 존재했던 캄보디아의 문화가 완전히 파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크메르 루즈의 학살 현장. 프놈펜 남부 12km지점에 위치하며 영화 「킬링필드」이후 ‘킬링필드’라 불리기 시작한 곳이다. 주로 S-21에 수용되어 있던 사람들이 이 곳에 와 처형되고 매장되었는데 약 10,000구 내외의 시신이 묻혀져 있었다고 한다. 커다란 구덩이를 파서 집단매장을 하였는데 어떤 구덩이에서는 목이 없는 시체 166구가 발굴되었고 어떤 구덩이에서는 100구 이상의 여자와 어린이 시체가 벌거벗은 채로 발굴되기도 하였다. 많은 시체들이 눈이 가리워진채 묶여 있어 당시의 참혹상을 짐작케 한다. 우리의 동족상잔의 역사에도 이처럼 비참한 참혹상이 아직까지 그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있듯이 이 나라도 아픈 과거를 거울로 삼아 밝은 미래로 도약하고자 몸부림 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위령탑과 위령탑 내에 전시(보존)된 두개골>
캄보디아 양식의 커다란 추모탑(위령탑)이 전국 27개 대도시 절에 세워져 매년 5월 9일 위령제를 지내고 있으며, 수도 프놈팬은 공원화되어 있다.
이곳 절에 세워져 있는 위령탑은 탑 아래쪽에 사면을 1m 높이의 유리로 시공하여 그 안에 유골과 유품을 넣어 밖에서 보이게 한 것이 당시 참혹상을 실감 있게 했다. 이러한 형태의 위령탑은 우리의 정서에나 상식에는 미치지 못하나 캄보디아의 정치지도자나 국민들은 킬링필드를 잊지 말고 상기하자는 깊은 의미를 내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위령탑을 모셔 놓은 사원을 둘러보았다. 불상의 형태가 우리와 유사하나 조잡해 보인다고 할까?? 그리고 우리 절에서 볼 수 있는 오색찬란한 단청을 전여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의 탱화는 신과 악마로 대별되어 권선징악과 같은 테마가 주어지는데, 여기의 탱화는 탱화라는 느낌보다는 일반적인 수채화나 유화정도의 느낌으로 그 주제도 전설적인 내용인 것 같다. 석조건축의 조각은 세계 최고로 불가사의의 한 몫을 하고 있는 데에 비하여 사찰의 탱화와 불상 등의 조각과 단청의 섬세함과 정교함 그리고 미적인 감각은 우리나라 사찰의 수준에는 가마득히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무지한의 생각이다. 작은 사찰 두 곳을 보고 이렇게 평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과 사찰의 규모가 작고 시골의 한적한 곳에 있다고 하여 종교적인 모든 것이 미흡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재래시장
앙코르 최대 저수지 바라이로 가는 도로변에 있는, 우리나라의 5일 시장과 비슷한 재래시장을 둘러보았다. 콩과 옥수수 등 곡식류, 오이와 수박. 호박 등 과채류 여러 가지 피복과 악세사리 등 일상적인 생필품이 주요 상품으로 진열하여 손님을 맞고 있었다. 냉동이나 냉장은커녕 얼음 한 조각 없이 좌판에 널어놓은 민물 생선에는 파리가 떼를 지어 앉아 있어서 구역질이 날 정도이다. 저 생선을 먹어도 될까? 생선의 취급 상태가 지극히 불량하여 비위생적이라고 우려하니, 가이드의 설명이 이곳은 자외선이 아주 강하여 살균력이 양호하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의 우려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으며, 부패보다 건조가 오히려 빨리 된다고 한다. 그래서 재래식 주택에는 별도의 화장실이 없는 것은, 집 주변에 적당히 용변을 보고 나면 강한 자외선과 작열하는 태양열에 의하여 금방 건조가 되어 말라버려 흔적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동료 몇 사람이 간단한 기념품을 사고는 서바라이 호수로 출발 하였다.
◘앙코르 최대 저수지 바라이
인공호수 “반데스레이(서바라이)”는 제방을 쌓아 만든 곳으로 그 크기가 2kmx5km로 수심은 5m 내외. 산악이 없는 이 지방이지만 년간 2,800mm, 우기에는 1일 200mm가 내리는 빗물에 의한 자연 담수호라고 한다. 물놀이 보트 접안소와 수영하는 곳을 조그맣게 개방하고 있었다. 모터보트로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다고 하나 마침 내리는 장대비(스쿨)로 인하여 아쉽게도 모터보트를 승선하지 못하였다. 제방 위와 주변의 기념품 판매 가게를 둘러보고 기념촬영을 하고 교민이 운영한다는 상황버섯 건조장으로 향하였다.
차창에 비치는 들녘의 푸른 풀밭에는 여기저기 5mx7m에 높이가 0.3-0.5m 정도 되어 보이는 비닐로 만든 사각형의 틀 안에 물을 담아둔 곳이 보인다. 무었에 쓰이는 것인지를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귀뚜라미를 잡는 덧이라고 한다. 귀뚜라미가 높게 뛰다가 물에 빠지게 되면 이를 손쉽게 잡아서 기름에 튀겨서 고단백 식품으로 판매한다고 한다.
얼마를 달렸을까? 교민 김씨가 운영하는 “천연 상황버섯 건조장”에 들렸다.
상황버섯차를 시음하고 사장의 인생 유담(流談)과 버섯이야기를 듣다. 28세에 목재 장사차 캄보디아에 들렸던 것이 41세 지금은 상황버섯 장사로 변신하였으며, 한국의 상황버섯과 유전자가 동일하다는 신문 스크랩을 보여주며 경희대한방병원에서 실시한 캄보디아산 천연 상황버섯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이다. 국내에서 재배한 것은 1kg에 800,000원에서 100여만원까지 고가인것으로 알고 있는데 1kg에 240,000원이라고 하니 싸기는 싼 편이다. 건강식품으로 또는 항암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에 따라 지인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터라 건강식품으로 먹고자 2kg을 구입하였다. 대부분의 일행이 1-2 kg씩 선물용으로 구입하였다. 우리 말에 싼게 비지떡이다. 물건을 모르면 값을 많이 주라고 하였는데.......!!
◘구시장(old market 프샤 쨔) 중앙시장(central market 프샤 르)
호텔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하여 되돌아 가는 길에 남은 시간을 쪼개어 구 시장과 중앙시장을 구경하였다. 바쁘게 움직이는 군상과 산처럼 쌓아 놓은 물건들을 보면서 사람이 사는 곳은 도처 일반이구를 실감할 수가 있었다. 프샤쨔와 프샤르는 씨엠립 시내 중앙부에 위치한 타운 겸 시장의 기능을 한꺼번에 하는 씨엠립 중심지역이다.
씨엠립 타운의 재래시장인 구시장과 함께 대표적인 기능을 하는 시장이지만 새롭게 변모를 한 신축 건물로 예전의 천막으로 지어진 시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시장으로써 각종 기념품 등을 구입할 수가 있다. 우리는 주어진 40분 동안 시장 내의 이곳저곳을 서너 차례 순회하면서 마산의 부림시장이나 대구의 서문시장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호텔식 중식
호텔의 체크아웃이 보통 13:00시인데 호텔중식으로 15:00시에 체크아웃 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진 모양이다. 관광 비수기라서 이런 것도 가능하며 이로 인하여 일행은 호텔식을 마치고 객실에서 샤워를 하고 오수를 즐길 수가 있게 되었으며 다음 일정까지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셈이다.
호텔식은 통상 아침식사였으므로 중식을 호텔식으로 하기는 처음이다. 식당 한 편에 별도의 식탁을 만들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하나의 음식이 순번대로 천천히 배달되었다. 기호에 맞는 것도 있고 맞지도 않은 것이 있는 현지식이다.
준비해간 김치와 멸치 김 깻잎장아찌 그리고 된장과 풋고추가 보따리에서 식탁위로 옮겨졌다. 현지의 음식도 생선구이. 달걀말이. 채소무침 등은 맛이 괜찮았다. K형이 처음부터 찬이 기호에 맞지 않아 엄청 고생을 하고 있는데 오늘은 더욱 죽을 맛인가 보다. 마주 앉은 내가 보기에 안쓰럽고 잘만 먹고 있는 내가 죄스럽고 민망하다. 아무튼 식사를 마치고 간단한 샤워로 땀을 씻고는 오수로 휴식을 하고자 하나 이국 만리에서 잠이나 자게 놔둘 화상들이 아니다. 한편에서 고스톱, 저 편에는 카드로 호텔이 온통 왁자하다. 가이드 채의 독촉에 여행가방에 소지품을 하나둘 챙겨 넣어 버스에 싣고 수상 가옥촌과 톤레삽 호수를 만나기 위하여 이틀 밤을 유한 엠프레스앙콜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출발 하였다.
◘톤레삽(tonle sap)호수와 수상 가옥촌
30분 정도 달리자 톤레삽 호수로 유입되는 작은 사잇강(개천)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톤레삽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세계3대의 자연호수라고 한다.
700m나 된다는 입구의 비포장 길을 지나서 수상 촌 입구에서 소형 보트에 탔다. 수상 경찰서 검문소가 있다고 들었는데 사진 찍고 경관 살피느라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르겠다. 냇가가 점점 넓어지며 배. 드럼통. 대나무 뗏목. 나무 뗏목. 기타 부상 물질 위에 주택형태로 지은 수상촌을 지난다. 수상촌가에는 강아지. 고양이. 화분과 화단이 보이고, 돼지우리에는 5-6두의 돼지가 사육되고 있는 것이 몇 군데 보이며, 반짝반짝 윤이 나게 잘 닦아 놓은 크고 작은 냄비가 가지런히 부엌에 걸려있는 것이 인상이 깊다. 장작을 쌓아 놓은 곳, 정미소, 학교와 교회, 보트 수선소, 생필품을 판매하는 배, 수상 시장 등등. 가이드 말로는 당구장, 다방, 카페, 가라오케 등 없는 것 없이 모두 있단다.
캄보디아 중앙을 뒤덮고 있는 커다란 호수인 톤레삽 호수(거대한 호수)는 마치 바다와 같은 느낌으로 여행자를 맞이하는데 평소 3,000km2(캄보디아 국토의 6분의 1 정도, 서울의 5배 정도)이나 우기의 절정에는 그 두 배에 이르는 규모로 확장이 되어 많은 국토가 침수되는 현상이 매년 반복된다.
<수상가옥과 시장가는 아주머니>
중국 운남성에서 발원한 4,513km의 메콩강 유역에 있기 때문에 우기를 맞아 메콩강의 수위가 남지나해의 해수면과 같아지면 톤레삽 호수에서 메콩강으로 이어지는 톨래스강의 물이 남에서 북으로 역류하여 톤레삽 호수는 만수가 된다. 건기가 시작되는 11월부터 물이 줄어들기 시작하여 이듬해 4-5월은 모두 배수가 되고 다시 우기가 시작되는 6월부터 담수가 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지금이 담수가 시작되는 시기라고 가이드 채의 입담 좋은 설명이다. 수심은 2m에서 최고 담수시 15m까지 변하며, 1km2에 10,000톤의 물고기가 잡힐 만큼 물 반 고기반이나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은 산란기로서 고기잡이가 금지된다. 따라서 수상촌 주민들은 6개월은 농부 그리고 나머지 6개월은 어부로 생계를 꾸려가며 약 17,00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1,2000명인 우리 남지읍민 보다 많은 인구가 수상가옥에서 생활하고 있다. 수상촌의 주민들은 캄보디아 주민과 베트남의 보트피풀 즉 난민으로 흘러들어 올 때 타고 온 배위에 집을 짓고 사는 베트남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트남의 보트피풀은 1998년 UN의 난민 판정으로 현재는 캄보디아 주민으로 인정받아 베트남인촌을 형성하여 살고 있으며 캄보디아 인은 뗏목 위에 그리고 베트남 난민은 주로 배 위에 지붕을 덮어 살고 있다.
국토 대부분이 평원지대이나 농수에 필요로 하는 물은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인근의 태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다모작은 특정지역을 제외하고는 흔한 편은 아니다. 수도 프놈펜에서 톤레삽 호수 위로 보트를 타고 씨엠 립으로 여행을 하는 또 다른 즐거움도 있다고 한다.
얼마나 달렸을까? 톤레삽 호수가 가까워지자 여기저기 물이 빠진 도로변에는 남아 있는 수상가옥이 하나 둘 보인다. 양측에 원두막 형태와 같이 물 위로 높게 지은 집들의 촌락으로 물이 만수가 되었을 경우에는 수상가옥이 되며, 물이 빠지고 나면 원두막 형태가 된 것이다.
아무튼 지나오는 길에 그림에서 보는 대형 목조 구조물을 견인하는 배와 조우하여 좁은 수로 위에서 이를 비켜가기 위하여 30분이 넘는 시간을 소비하여 이리밀고 저리 당겨서 겨우 비켜 갈 수가 있었다. 이 목조 구조물은 신축학교의 골격으로 제 위치로 옮긴 다음 완공하게 된다고 한다.
<수상학교의 목조 구조물을 옮기는 작업과 수상가족>
주민들은 모든 의식주를 수상가옥에서 해결하는데 배설도 흐르는 물위에 그대로 하며 또한 음용수도 흐르는 물을 퍼 담아 침전시켜 먹는다고 한다. 아주 빠른 유속으로 인하여 바닥의 시꺼먼 흙이 뒤집혀서 물의 색갈이 온통 검은 황톳물이지만 명반을 풀어서 침전한 물은 아주 깨끗하여 수인성 질병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가오는 우수기의 만수에 대비하여 수상가옥을 상류로 옮기는 이사가 시작되어 여기저기에서 이사를 하는 수상 가옥이 움직이고 있다.
1Km쯤 지나니 저 멀리 수평선이 까마득하게 보이는 망망한 대해가 나타났다. 여기가 세계3대, 아시아최대의 자연호수 톤레샵 호수”. 수평선이 보이니 호수가 아니라 바다가 맞습니다 맞고요. 우리나라의 여름철 소나기나 장마철에 갑자기 쏟아지는 국지성 호우와 같은 성격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내린다는 스쿨이 오늘까지 단 한차례도 없어서 여행하기에 아주 편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굵은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더니 강한 바람과 같이 스쿨비가 내려 붓는다. 아스라한 수평선은 순식간에 빗속에 묻혀버렸고 물위에는 거친 파도가 출렁이며 뱃머리로 달려들 기세다. 원래 계획은 톤레샵 호수 위를 얼마큼 멀리 나갔다가 U자형으로 회향하는 것이었으나 비와 바람과 밀려드는 파도로 모든 것을 취소하고 급히 되돌아 나왔다.
수륙만리 남남쪽 이국땅에서 억울하게 물귀신이 될 수는 없겠기에....!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는 “톤레샵 호수 이곳에서 바라다보는 캄보디아의 노을은 여행자들의 기분을 오랜 시간 깊은 침묵에 빠져들 게 한다.”라는 글귀와 아름다운 노을 그림을 보았는데, 아마도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톤레샵 호수의 일출”도 그 탄생의 신비함과 장엄함이 한편의 서사시와 같이 잊지 못할 감흥으로 남을 거라는 상념에 빠지면서 스쿨이 그친 줄도 모르는 사이에 앞 동료 따라 하선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하교시간>
시내로 되돌아가는 버스에서, 가이드 채는 누에가 마지막 실을 토하여 고치 집을 짓듯이 연신 캄보디아에 대한 정보를 토해 내고 있다. 캄보디아의 주택들은 뱀과 해충으로부터 보호받고 습도가 높은 기후로 통풍과 환기성을 고려하여 지상에서 1.5-2m정도 높게 주택을 지어며 장작과 숯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공공장소와 도심을 제외한 일반 주택지에는 화장실이 없는 것은 집 주변의 적당한 공터에 볼일을 보고 나면 불과 2-3시간 후에는 건조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므로 비용을 들여서 화장실을 건축하지 않는다고 한다.
집집마다 바나나를 심는 것은 바나나 줄기 향을 뱀이 싫어하기 때문이며, 1989년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환 될 때에 가구당 3.3ha씩 농지를 분배하였으며, 이나마 보전하지 못하고 탕진한 가구가 수상가옥촌을 구성한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한다. 가이드 채는 열대과일 중에서 “바나나 나무는 일년에 몇 번 수확 하는가?”라는 퀴즈를 내었다. “일년에 한번 수확으로 생명을 마친다”는 정답을 맞힘으로서 가이드는 약속을 지켜 도로변 노점 과일상에서 갖가지 열대 과일을 푸짐하게 사서 우리는 다양한 열대과일의 맛을 볼 수가 있었다.
◘기념품 판매장
원래 계획은 베트남의 호치민시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있었으나 항공기 이륙시간이 변경됨에 따라 여기에서 식사를 하고 호치민 행 비행기를 탑승하게 됨에 따라 남는 시간을 활용하기 위하여 식사에 앞서 기념품 판매장을 찾았다. 현지 교민이 운영하는 아주 규모가 큰 판매장이다. 아이들의 선물로 가오리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지갑을 남자용 2개와 여자용 1개 그리고 “평양담배”라는 이름이 적힌 빨간 담배 1보루(10갑)를 구입했다. 덤으로 주는 쟈스민 차를 3봉지를 얻어 함께 포장하다.
◘식당 평양랭면의 석식
가이드 채의 권유에 따라 “평양랭면”에서 한정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였다. 평양의 주민이 운영한다는 식당이라고 하는데 믿기지가 않는다. 북한 정권이 운영하는 “외화벌이 사업장” 같은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와 다양한 밑반찬이 입맛에 잘 맡는다. 북한 술 “백두산 들쭉술”을 한잔씩하며 식당 종업원인 북한 소녀들이 불러주는 처녀뱃사공. 반갑습니다. 새 타령 등의 노래와 춤을 감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파란들 남쪽에서...” 춤과 노래>
손님이라고는 옆 좌석에 인천에서 관광 온 팀과 우리뿐이다. 잘 모르기는 해도 관광 온 북한 주민을 고객으로 하는 식당이 아니라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식당 같다. 이 업소의 사장은 캄보디아 국왕 경비병의 태권도 사범으로 있는 북한 태권도 고수이며, 그의 부인이 총지배인을 맡고 있으며, 5명의 북한 미희 종업원은 3년 근무 기간이 완료되면 북한으로 입국하여 후임자와 교체된다고 한다. 미희들의 미모에 반하여 여기에 있는 한국의 남자 가이드 들이 자주 찾는 명소 중의 하나라고 한다. 기념 촬영을 마치고 씨엠립 국제공항에서 가이드 채와 명함을 건네고 그간의 수고에 감사드리며 석별의 정을 나누고, 출국 수속을 밟기 위하여 공항 대합실로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