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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의학 스크랩 동무 이제마 최초로 오행의 양적변화를 설명
감초 추천 0 조회 122 12.11.13 11: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행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五行의 본질적 법칙이며 또한 그것은 관념론적 연구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관념론적 방법을 현실적인 사물과 부합시키지 못한다고 하면, 또는 부합되지 않는다고 하면 五行이 변화의 법칙인 진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오행법칙을 양적(量的)인 면에서 관찰하고 따라서 이것을 인체의 장부(臟腑)에 배치한 것이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였던 것이다. 물론 그는 세부적인 설명은 피하였다(고대의 학통 그대로). 그러므로 그의 입론(立論)에 대해서 무정견적(無定見的)인 가혹한 비판을 가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동무(東武)가 개발(開發)한 진리는 연작지변(燕雀之辯)에 휩쓸리지는 않을 것이다

 

 

동무(東武)는 『내경(內經)』에 논한 바의

간목(肝木)?심화(心火)?비토(脾土)?폐금(肺金)?신수(腎水)를

간금(肝金)?비화(脾火)?심토(心土)?폐목(肺木)?신수(腎水)라고 바꿔 놓았다. 왜 그렇게 하였는가 하면 이것이 바로 상술한 바와 같이 관념적인 개념을 현실적인 개념으로 바꿔 놓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첫째로, 사물의 본질적인 유동은 인식하기 어려우므로 현상적인 형상에서 본질적인 개념을 파악하기 용이하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좀더 자세히 말하면 인간의 사상적(四象的) 특징은 지축의 경사에서 미치는 선천적인 천품(天稟)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질병의 치료원리를 밝히려는 것과 아울러 近取諸身함으로써 우주운행의 도통(道統)을 소명(昭明)하게 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런즉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의 의도하는 바는 고래(古來)의 본질적 법칙을 현실적인 현상과 교회융통(交會融通)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에는 그것을 검사해 보기로 하겠다.

 

 

오행운동의 이면(裏面)을 중심으로 하였던 것을 표리중심(表裏中心)으로 관찰함으로써 사물의 형상(形相)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木火土金水라는 개념(觀念的 槪念)이 나무/불/흙/금/물이라는 물질적(物質的) 개념으로 변화하는 실상을 연구함으로써만이 오행개념이 관념 중심에서 현실중심(現實中心)으로, 또는 피상적 현실(現實)에서 이질적(異質的)인 내용으로 자유로이 회통(會通)할 수 있는 실질적 원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동무는 폐금(肺金)을 폐목(肺木)이라고 하고 심화(心火)를 심토(心土)라고 하고 비토(脾土)를 비화(脾火)라고 하고 간목(肝木)을 간금(肝金)이라고 하고 신수(腎水)를 腎水(腎水는 不易)라고 함으로써 五行法則의 표리성을 밝혀 놓은 것이다. 이것을 좀더 자세히 말하면 나무라는 물질은 木을 본질로 하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木은 金의 방조 즉, 卯木은 酉金의 대화작용을 받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제2장 2절 3. [五運의 對化作用]을 참조). 그런즉 木이 나무가 되는 과정은 그것을 본질적으로 보면 나무는 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만일 그것을 현실적으로[피상적으로] 보면 나무는 金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무는 丑을 바탕으로 하고 寅卯에서 형성되는 것이므로 동무는 이와 같이 나무가 이루어지는 실상을 주체로 하고 사물의 운동개념(오행개념)을 설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인체에서 보면 간(肝)은 그 본질은 木이지만 肝의 참다운 기능인 木(氣運)은 인간의 장성(長成)과 정비례로 金化(硬化)하여 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肝의 본질은 간(肝)의 이질적 내용인 바의 金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동무는 이 점에 착안하고 肝을 金이라고 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물과 인간의 질량적 변화현상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木(無形)의 질적 변화는 [나무]라는 양적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관념이 현실화하게 되는 것이다.

 

== 말이 어려운데 쉽게  목의 성질을 가진 간이 살아가면서  간경화로 되어 간다 라는 말을 원리론적으로 설명한것이다

 

그 다음은 심화(心火)를 심토(心土)라고 하였다. 火(南方火)는 질적으로 보면 木에서 파생한 제2차적인 발전상태이지만 돌이켜 이것을 양적인 면에서 관찰하면 戌亥子의 對化作用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불]로서 현실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火를 질적으로 보면 그 성질은 산(散)하는 것이지만 양적(量的)으로 보면, 즉 [불]로서 보면 응취(凝聚)하는 일면성도 겸(兼)하여 나타낸다. 이와 같이 火의 질적 변화가 양적 변화를 나타낼 때 이면성을 나타내게 되는 것은 南方火의 발전이 火에서 [불]이라는 물질로 변화하게 되면 관념적인 火의 발전은 현실적으로는 土를 형성하기 때문에 火가 [불]로 변하면 응취성(凝聚性)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이것은 火가 戌亥子의 대화(對化)를 받아서 [불]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土가 형성되어지는 자연적(自然的)인 현상을 말하는 것인즉 이것이 바로 戌亥子가 辰巳午로 변화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물질적 변화에서 관찰하여 보면 火(午)가 왕(旺)하는 물질에 [물]을 부으면 나중에는 반드시 흙으로 변하는 것이다. 즉 불덩어리가 된 돌(石)에 [물]을 부으면 분쇄되는 것은 바로 저간의 소식을 말하는 것이다

 

==  심장을 해부학적으로 이해시켰다 라는 말도 된다 따듯한 장부란 뜻이다  질로는 불이지만 양적으로는 토다.. 이게 좀 어려운 말이다

 

우주의 변화현상은 이와 같이 본질적 변화가 반드시 양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인즉 인간의 심(心)도 본질은 화토합덕(火土合德)하여서 土를 이루는 군주지관(君主之官)이지만 나중에는 흙이 되고 마는 것이다. 더욱이 천체의 경사 때문에 만물의 심(心)이 편경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심(心)이 비록 [十]자의 정중성(正中性)을 이루어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 본질(火의 본질)이 土를 형성하는 점에 있어서는 비록 태과불급의 차이는 있을망정 심(心)의 土(중정지덕(中正之德)을 가진 바의 土)로서의 권능에는 변동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도(人道)의 지요(至要)는 심(心)의 土化作用에 만전을 기하는 반면에 흙으로 노화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 심장을 중정지덕이라 말하는 이유는 심장의 기운<감정>이 인간에게 있어서 인격적으로 모든것의 출발이란 의미로 이해될수 있다

=  마음을 다스리라는 말이 이때문이고  화병을  다스린다고  물을 부우면  깨져 버리듯  잘 달래서 고요함을 유지해야  빨리 흙으로 가는 시간을 줄일수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 본다

 

그 다음 비토(脾土)를 비화(脾火)라고 하였다. 비토라는 것은 상승지기(上升之氣)를 대표하는 土다. 다시 말하면 오장의 陰陽運動이 비기(脾氣)의 상향성을 바탕으로 하고 氣化作用을 시작하게 되면 거기에서 간기(肝氣)가 분발(奮發)할 수 있는 기본이 이루어지고 따라서 심장운동의 요인이 마련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비토(脾土)는 巳午未의 말단인 未土의 對化作用을 받고 있다. 未土는 지구가 23도 7분 정도 경사진 현실적 우주에서는 최대열량을 발휘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丑土인 비토는 이 때문에 화원(火原)으로 변화하게 되는 바 이것을 원천지화(原天之火)라고 한다. 그러므로 동무는 이것을 火라고 하였다.


그런데 위에서는 火가 土로 변하는 것을 말했으나(心에서) 여기에서는 土가 火로 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즉 그 오행적 변화의 특징도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다시 말하면 火가 土로 변화하게 되면 이것은 만물성숙의 기초를 이루기 위한 것이지만 土가 火(原天火)로 변화하는 것은 만물생장의 기본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런즉 이것은 바로 土가 火로 변하면 발전의 기본이 되고 火가 土로 변화하면 퇴장(退藏)의 기반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화(心火)가 심토(心土)로 변하듯이 비토(脾土)가 비화(脾火)로 변하게 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그런즉 비토는 火의 기본인 원천지화(原天之火)이므로 아직 탄력이 풍부하나 이것이 심토(心土)로 변하여서 [흙]으로까지 노화하게 되면 탄력을 전부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동무(東武)가 비토를 비화라고 한 [火]는 어떠한 [火]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비(脾)의 기능이 지닌 바의 성질도 알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비토가 未土의 대화작용을 받는다는 말은 바로 폐(肺)의 대화(對化)를 받는다는 말과 같은즉(太陰은 未土의 작용이기 때문에) 여기에 탄력이 있게 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저간의 소식을 가장 명확하게 표시한 것이 문왕팔괘도의 二坤地와 八艮山의 표현이다. 즉, 八艮山이 동북에 위치한 것은 丑土의 八하려는 작용(木의 작용)을 표시한 것이요, 서남위에 二坤地가 위치한 것은 午火가 未로 化한 작용을 종합하려는 象을 나타낸 것이다. 동무(東武)가 비(脾)를 火라고 하고 심(心)을 土라고 한 것은 진실로 이와 같은 최고의 철리(哲理)에 기본을 둔 것이다.


==  위가 점점더 탄력을 잃어가는 것을 이해할수 있게 말한것이다   이때문에 소식을 강조할수 있는것이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열량을

==  비화라고 표현할수 있겠다 

 

그 다음은 폐금(肺金)을 폐목(肺木)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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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여기에서 우선 말해 두어야 할 것은 일반적으로 五行의 운동은 논함에 있어서 생장과정은 질적 변화를 중심으로 논술하고 수장과정은 현상인 양적 변화를 중심으로 논하는 것을 관례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木火의 과정을 질적으로 설명하고 金水의 과정은 양적으로 논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므로 동무(東武)는 반대로 木火의 과정에서는 양적 변화를 표준으로 하고 金水의 과정에서는 질적 변화를 표준으로 하고 논술하였다. 위에서 말한 바의 [표리 중심]의 논법이란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이것도 또한 丑寅卯의 對化作用을 받음으로써 폐(肺)의 내용을 형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폐는 양적(量的)으로 보면 木을 양(養)하기 위하여 金으로써 포위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므로 화개지장(華盖之臟)으로서 상초여무(上焦如霧)하여서 파부사장(播敷四臟)하는 것이지만 이것을 질적으로 관찰하면 金 속에서 木을 양(養)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폐는 외관은 金이지만 내용은 木이다. 그런데 이것을 물질에서 보면 金[金氣]은 수축작용을 하지만 [쇠], 즉 철물은 늘어나며 木은 늘어나지만 나무는 늘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오행작용은 이와 같이 體用이 상반되는 작용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므로 동무(東武)는 폐(肺)를 木이라고 한 것이다.

== 폐가 나무처럼 가슴주위에 펼쳐져 있는 양적 표현이라 보면 될듯 하다


그 다음, 신(腎)은 본질로는 水요 양적(量的)으로도 水다. 다시 말하면 木火土金은 개념을 변경하였지만 水는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水는 만물의 생명이며 정신이며 또한 형체이기 때문이다([本體論]과 [精神論] 참조). 그러나 水에 있어서도 다른 개념의 경우와 같이 본질과 현상의 차이가 있다. 즉, 水의 본질은 응고하는 것이지만 물은 늘어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水는 [午]의 對化作用을 받아서 생성하는 것이므로 체용의 이면성을 지니면서 사물의 발전 목적인 항구성과 변화성을 창조하는 본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주의 변화는 五行으로 이행(移行)하지만 그것을 엄격한 의미에서 따져보면 土火木金이란 것은 水가 시공간적으로 그 형태를 가장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水는 木火土金의 생성을 완성하여 만물을 형성하는 것인즉 水는 변화하는 면에서 보면 木火土金이요, 변화하지 않는 면에서 보면 水인 것뿐이다.


여기에서 동무(東武)가 오행관(五行觀)을 이와 같이 뒤집은 경로를 잠깐 고찰해 보면 그는 일반적인 개념을 측면에서 관찰함으로써 오행원리를 질량적으로 밝혀 놓으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물을 경험적인 방법, 즉 물체의 형태에서만 관찰하려 하거나 또는 이성적인 방법, 즉 관념적인 이상만으로써 인식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일방적인 방법을 지양하고 有無[物心] 양면에서 관찰함으로써 진리 파악에 만유감(萬遺憾)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오행관을 계시한 것이다. 그런즉 이것은 기본개념을 개혁한 것이 아니고 관념을 현실과 직결시키며 현실을 관념과 결부시키려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또한 五行의 생성목적인 대립상태는 불가무의 필요악이란 것을 명시하려는 데에도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좀더 자세하게 말하면 木의 목적은 金을 만들려는 데 있고, 金의 목적은 木을 만들려는 데 있고, 水의 목적은 火를 만들려는 데 있고, 火의 목적은 水를 만들려는 데 있다는 것을 밝히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金木이 서로 대립하며 水火가 서로 구수관계(仇讐關係)에 놓여 있지만 이것은 모순을 위한 대립이 아니고 발전과 통일을 위한 우주 본연의 필요극(必要克)[惡]이라는 것을 밝혀 놓기 위함이다. 그런즉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金水의 응고작용 때문이지만 이것을 그의 이면에서 관찰하여 보면 새로운 정신을 창조하기 위한 외관(外觀)에 불과한 것인즉 이것은 바로 인간의 노사는 인간의 갱생을 위한 천도(天道)의 작용이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제7장 3절 3) [精神의 生死]를 참조). 그러므로 동무(東武)는 새로운 오행관을 제시함으로써 金水는 사지(死地)가 아니라 생지(生地)이며 木火는 생지가 아니라 사지라는 것을 밝혀 놓았던 것이며, 아울러 인간정신은 영생(永生)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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