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왕의 후손으로 성은 김씨요. 이름은 호(琥)요 자는 내진(乃進)이며, 호(號)는 휴은(休隱) 퇴우(退憂)이다. 신라에 대훈을 세운 흥무왕 (유신)이 중조이며 아버지는 시랑 세장(世章) 할아버지는 시중 석손(碩孫) 증조는 충간공 익근(益勤)이다.
경태 을해(景泰 乙亥1455년)에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가 되었는데 노릉둔위의 정변(魯陵遯位의 政變/계유정란)을 듣고 즉시 벼슬을 사직하고 금산(金山)으로 돌아왔었다가 간사한 무리들의 모함을 입어 능주(陵州)에 유배(流配)되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 제공(여러명)이 상왕(단종)을 위해 순절(충절을 위해 목숨을 버림)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이르기를 내 주상(단종)과 벗들을 구천의 지하에서 배견 할 수 없다하고 목욕정제 한 후 목을 매어 자살하니 이날이 즉 병자(丙子)1456년 九月 二十九日이다. 자손들이 두려워서 감히 사실을 고하지 못하고 공의 죽음을 숨겨 화순군 도곡면 신덕리 봉통등(벌통골) 자계원에 매장하였다. 부인은 탐진최씨(耽津崔氏) 판서(判書) 만(滿)의 女이니 합장하였다.
또한 공의 후손들이 대대로 능주에 살았는데 중종 정축에 이르러 병조참판을 증 하였고 숙종 신유에 대가헌(大可憲)를 가증하고 충순공(忠純公)의 시호(諡號)를 내리였다.
그후 후손들이 충순공의 시호를 받들어 충순공파라 하였다. (휴은공파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