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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네 구절초 농원을 찾아서 가을이 한창
문턱을 넘어가는 일요일 오후, 정읍 감곡면 방교리 구절초농원을 찾았다. 감곡면 소재지에서 물어 찾아 간 곳이 바로 '한나네 들꽃잠'이라는 구절초 농원이다. 원래는 잔디를 팔았다는데 6년 전부터 구절초를 가꾸어 지금은 잔디보다 구절초가 더 유명해진, 요새 말하는 구절초 하나로 신지식인이 된 농원이다 농원이 보이는 좁은 길을 접어들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하얀 구절초가 먼저 반긴다. 비포장 도로라서 누런 먼지는 쓰고 있어도 품위는 잃지 않고 의연하게 피어 있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꽃 너머로 잔디밭이 시원하다. 참으로 이색적인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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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볕이 내리 쪼이는 산자락 풀 섶이나 바위 벼랑에서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고 있어야 할 꽃이 이렇게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것이 어색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한 송이 들꽃에서도 천국을 본다는데 하물며 이렇게 백설기 같은 구절초 꽃밭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울타리도
없고 대문도 없는 '한나네 구절초 농원'에는 주인이 사는 집과 작업실,
안내 사무실과 방가로 세 채가 전부이다. 몇 천 평 될법한 드넓은 잔디밭
둘레로 울타리를 치고 있는 하얀 구절초가 파란 잔디와 절묘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다. 잔디밭 옆에는 마치 소금가루를 뿌려 논 듯, 온 밭이 구절초
꽃으로 덮여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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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우리에게 감기에 걸려도, 배가 아파도, 심하면 머리가 아파도 구절초를 달여 주셨어요. 외할아버지 한약방을 드나들며 보고 배운 거랍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자매들은 들로 산으로 구절초를 꺾으러 다녔단다. 구절초로 차를 달여 먹거나 전을 부쳐먹기도 하고, 창호지문에 꽃과 잎을 넣어 문양을 새겨 놓고는 겨울 내내 보고 살았단다. 그러다 보니 구절초는 어느새 어린 소녀의 영혼 깊숙이 자리한 것이다. |
대학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한 대구 처녀가 어찌어찌 하여 이곳에 왔다가 지금의 남편 조씨를 만나는 순간 '이 사람이다' 싶어 결혼한 뒤 정읍의 귀퉁이에서 잔디를 심고 가꾸며 삶의 터를 잡은 것이다. 복스런 얼굴의 이 억순이는 시집오자마자 호미자루 한 번 놓지 않고 억척같이 고생을 한 덕에 200평의 농토에서 시작한 것이 어느새 6300평이 되었고 마침내 구절초로 이름 날린 아담한 농장을 이루게 된 것이다.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의 고향에서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구절초를 보는 순간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캐다 심은 것이 오늘의 구절초 농장을 이루게 된 것이다. 안내장도 없고 소개 한 번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남편이 덜컥 방송 기자와 대담을 하고 난 뒤 축제를 열 정도로 이름이 널리 알려 진 것이다. 소문으로 찾아온 손님들이 그저 고맙지만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른다며 함께 일해주는 아주머니들에게 그 공을 돌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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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초 농장의 대표적인 상품은 '들꽃잠' 이라는 구절초 베개이다. 구절초꽃잎을 넣어 만든 베개가 숙면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지금은 손발이 딸릴 정도로 주문이 밀려온다고 한다. 이제는 공방까지 차려 직접 자연 염색을 하여 베개와 방석은 물론 주머니까지 만들고 있다 한다. 지금껏 살아 온 일을 온화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들려주는 김후종 님의 모습이 인생을 달관한 사람 같다. 손수 구절초 꽃차를 따르며 구절초를 심고 가꾸는 법, 차 만드는 절차부터 잔디 가꾸는 요령까지 세세하게 일러주는 마음씨가 너무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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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대접을 받고 일어서려는데 집 앞까지 나와 구절초 몇 포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건네 주며 번식해 보란다. 지금 심어서 뿌리내리면 내년 봄 새 줄기로 꺾꽂이를 하라며, 잘 안되거나 어려움이 있으면 내년 3월에 다시 오라는 부탁에 문수골 쉼터에 구절초 꽃밭을 이루리라 다짐해 본다. 참으로 고마운 심성이다. 안녕히 가시라며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이 꼭 정겨운 시골 아낙 같다. |
10월1일부터 5일까지
구절초 '들꽃잠' 축제를 연다는데 올해가 두 번 째란다. 우리나라 토종식물인
구절초 향기에 흠뻑 취하며 수천 여 평의 잔디밭과 구절초 꽃밭을 거닌다는
것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거기다 찾는 사람 모두에게 무료로 구절초
수제비와 비빔밥을 제공했다니 순수 민간인이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토종 축제를 연 것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농사꾼 조씨 내외에게 박수를
보낸다. |